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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유익
2020.04.19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편 71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사태로 말미암아서 벌써 2달째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고 모바일로 인터넷으로 또 TV 앞에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위로하심과 평안함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드시 우리에게 이 어려움을 통과하고 난 후에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절망이지만 절망 뒤에 다가올 희망의 내일을 우리가 바라보면서 우리가 기도합니다.

이제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게 하여 주셔서 우리 대한민국이 온 세계에 그 의료기술이 가장 뛰어난 나라로 인정받고 주목받는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고 이 땅에 독버섯처럼 자란 신천지 이단이 완전히 해체되고 뿌리 뽑혀서 교회가 정화되고 교회에 제2의 부흥이 있게 하여 주시고 신천지를 통하여 가정이 파괴되고 교회에 분열과 사회의 혼란을 가져왔던 이 모든 문제가 싹 해결되는 좋은 결과가 있게 하여 달라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 총선에 세워진 많은 국회의원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을 섬기고 올바르게 그 맡겨진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있는 자리에서 우리 다 같이 통성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평안을 저희의 마음 가운데 허락하여 주셔서 염려, 근심, 걱정이 다 사라져버리고 주님이 주신 평안함으로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승리하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시편 119편 71절 말씀 가지고 "고난의 유익"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유익" "고난의 유익"

이 세상 사는 사람들 가운데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게 고난이 다가오면 어떡하든지 고난을 피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될 것은 아무리 애를 쓰고 피하려 해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어찌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할 때 많은 사람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남 탓을 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고난은 궁극적으로 신앙과 생활의 큰 유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예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으로, 은혜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 고난 없는 성숙은 없다

먼저 고난 없는 성숙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언제 영적으로 성숙합니까. 고난을 당할 때 성숙하는 것입니다.

온실의 화초가 잘 자라는 것 같아도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아도 병충해에 약하고 찬 바람 한 번 불면 시들어 버려 죽게 합니다. 왜? 고난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고난을 겪어서 찬 비바람을 맞은 화초가 굳건히 잘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힘들고 어려워도 열심히 공부해야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가 있습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합니다. 건강 검진 가면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죠. "하루에 30분 이상은 숨이 찰 정도로 운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목사님처럼 나이가 드셨으면 하루에 30분은 숨이 가쁘게 걸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이렇게 우리가 수고하는데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훈련과정을 통하여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 고난을 통하여서 주의 말씀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119편 71절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사람들은 고난을 당할 때 왜 하필이면 이러한 일이 내게 다가왔습니까. 원망하고 불평하고 남 탓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고난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이 그를 더 짓누를 뿐인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이 다가올 때 오히려 자신을 살펴보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뢰하고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 이 고난의 과정 속에 어떻게 나를 훈련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까를 깊이 생각하며 믿음의 전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고난 속에서 주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고난을 통하여서 우리를 바로잡아 주시고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길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하나님이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길을 바른길로 가게 바꾸어 놓으십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야 하는데 다시스로 가니까 풍랑이라고 하는 고난을 통해서 그를 물고기 뱃속에 넣으시고 다시 니느웨로 방향을 돌리신 것처럼 우리가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과연 내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지금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알게 모르게 주님 뜻과는 벗어난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 자신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까. 고난의 때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 주님의 뜻이 있고 주님의 은혜가 있고 주님의 가르치심이 있고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과 잘못된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을 바로잡고 바른길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는 삶의 나침반이요, 인생의 내비게이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통과할 때 철저히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거울을 보면 내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를 다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서 내 영혼을 살펴서 주님 보시기에 내가 잘못된 것이 무엇이 있는가 다 찾아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말씀을 통해 새 힘을 얻고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9편 50절입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고난 당할 때에 말씀이 내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치료가 되고 능력이 되어서 정말 죽을 것 같은 그 고난의 자리에서 우리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절대로 우리에게 손해가 아닙니다. 절대 절망이 아닙니다.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지만 우리를 더 나은 길, 좋은 길로 인도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 중에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고 오히려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웬 귀신 들린 아이가 자꾸 쫓아와서 방해를 합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아버렸어요. 그랬더니 이 점치는 여자아이를 통해서 돈을 벌던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이상한 풍습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고발해서 붙잡아서 매를 맞게 하고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아마 그 지역 유지였던 모양이죠. 재판도 받지 않고 그렇게 몰매를 때리고 감옥에 넣을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억울하게 매 맞고 들어간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 여기까지 복음을 전하러 왔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밤중에 감옥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감사하고 찬양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은 설명합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그 순간 옥터가 흔들리고 손과 발에 매인 모든 것이 풀어지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26절입니다.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고난의 감옥에서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절망 가운데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고난의 옥터를 흔드시고 매인 것을 풀어주시고 닫혔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시편 119편 54절, 55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야훼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할렐루야. 여러분 아프지 않은 주사가 없습니다. 한 번 어릴 때 주사를 맞은 아이들은 병원에만 가자고 그러면 싫다고 그럽니다. 주사만 보면 웁니다. 그러나 그 아픈 주사가 내 몸에 있는 병균을 죽이고 나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고난의 주사가 아픕니다. 그러나 그 아픔이 내 영혼을 찌르는 그 통증이 내 영혼 속에 들어와 있는 영혼의 악성 바이러스들을 다 죽이고 나를 치료하고 살려내는 놀라운 은혜를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난 중에, 절망 중에, 아픔 중에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고난은 축복으로 가는 과정이다

둘째로 고난은 축복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 없는 영적 성숙도 없을뿐더러 이 고난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더 나은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3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입니다. 피한다고 해서 피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참고 견디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극한 영혼의 고독과 통증을 느끼며 그냥 고난의 시간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저 눈물의 골짜기에 이르면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아픔 없는 고난이 없습니다. 고난은 아픈 것입니다. 아프지 않은 주사가 어디 있습니까. 다 주사가 아프지요. 그러나 그 고난이 축복입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중에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119편 84절, 85절입니다.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얼마나 힘들면 이제 내 인생의 남은 날이 며칠이나 됩니까? 막 너무 고통이 심해서 막 거의 죽게 되었어요. 마음이. 나의 남은 날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내가 너무나 힘듭니다. 나를 물고 뜯고 원수들이 나를 공격해오고 웅덩이를 파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고난이 그러한 고통이 다가왔다고 할지라도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우리를 건져주시고 우리를 모든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승리하게 해주시며 우리 앞에 시온의 대로가 펼쳐지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119편 88절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나를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유 없는 고난이 없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잘 참고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룩한 꿈을 꾸었을 때 형들이 시기 질투하고 미워했습니다. 동생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심부름 온 그 동생 요셉을 상인에게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17살 때 이야기입니다. 꿈 많은 소년이 하루아침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고난의 시간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울면서 형님들 그러지 말라고 그랬는데 형들은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당시에 노예로 팔려간다는 것은 죽음의 길과 같았습니다. 1년 365일 때리고 일 시키고 부려먹다가 병들면 광야에 내다 버려 짐승의 밥이 되어 죽게 하는 것이 그 당시 노예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노예로 팔려갔어도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고난 속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참고 견디고 또 견디고 또 견디고 또 견뎠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인정을 받아가지고 이제 좀 안정되려고 하니까 덜커덕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어도 누명을 씌운 그 경호 대장 보디발의 부인을 욕하거나 원망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형들을 원망한 이야기도 없고 누명을 씌운 사람을 원망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억울하고 기가 막힌 일을 당했지만 주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주님의 뜻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속에 이미 주님의 거룩한 꿈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 기간이 13년입니다. 그 기간을 잘 견뎌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억울한 일 당하고 젊은 나이에 13년 참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린 누구에게 그런 말만 들어도 발끈하고 당장 팔 걷어붙이고 그와 싸우려 하는데 요셉은 그저 억울하게 당하면서도 13년 동안 참고 또 참고 또 참았습니다.

마침내 때가 되어 하나님이 높이시매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젊은 소년의 나이에서 13년은 몇십 년 같은 긴긴 세월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 긴 세월을 잘 참고 견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간을 잘 견뎌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억울한 일 당하고 젊은 나이에 13년을 참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그런 말만 들어도 발끈하고 당장 팔 걷어붙이고 그와 싸우려 하는데 요셉은 그냥 억울하게 당하면서도 13년 동안 참고 또 참아서 마침내 때가 되어 하나님이 높이시매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젊은 소년의 나이에서 13년은 몇십 년과 같이 긴 세월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 긴 세월을 잘 참고 견딘 것입니다. 그런데 그 13년 중에 가장 힘들었던 기간이 마지막 2년입니다.

그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하루는 바로왕 옆에서 섬기는 높은 관원장 두 명이 들어왔습니다. 한 명은 떡 맡은 관원장, 다른 한 명은 술 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꿈을 꾸었는데 요셉이 해몽을 해보니 술 맡은 관원장은 사람은 살 운명이고 떡 맡은 관원장은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이 복직되면 바로왕에게 말해서 풀려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요셉의 해몽대로 그는 복직이 되었지만 사람이 화장실 갈 때 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나가는 순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창세기 40장 21절에서 23절입니다.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잊힌 인연. 요셉은 "야 이 밤만 자면 내일 나가겠구나." 밤잠을 못 자고 설렜을 것입니다. 해몽을 해준 사람이 바로왕 옆으로 갔으니 그가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노예로 잡혔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는 한 소년을 만났는데 해몽을 잘합니다. 그 사람 살려줘야 합니다." 그 한 마디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까맣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기다립니다.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까?" "연락이 없는데." "아마 오늘 복직해서 바쁜 모양입니다." 다음 날 아침 "연락 없습니까?"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열 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 시간이 길게 늦게 느껴졌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도 잘 참고 견뎠습니다. 참고 견디다 마침내 서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그를 높이십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고 낮추시면 높일 자가 없는 것입니다.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41장 38절로 41절입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그가 지낸 그 긴긴 13년의 기간 그 누구도 자기를 돌봐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17살 그가 소년의 때에 어린 청년으로서 애굽에 끌려왔을 때 말도 다르고 풍습도 다른 애굽 문화 가운데 노예로 자라면서 히브리 노예로 붙잡혀왔으니 얼마나 멸시를 당하고 짓밟힘을 당했겠습니까? 사정없이 등에 채찍질이 내리쳐져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그를 불쌍하다고 위로해주고 돌봐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혼자였습니다. 감옥에 내동댕이쳤을 때에도 혼자였습니다. 꿈을 해몽해 준 지 2년이 지났으니까 그전에 또 얼마 정도 감옥에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 수년간을 감옥에서 외롭게 혼자 깊은 고독 속에서 그는 오직 주님 앞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긴긴 이 고독의 시간이 그의 영혼을 깊이 통찰하게 하고 영적으로 큰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고난 중에 나 홀로의 시간을 갖게 될 때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내 자신이 서서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치료받고 위로받고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고독의 밤을 지나며 외로움의 밤을 지나며 슬픔의 밤을 지나며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3. 고난 중 말씀과의 동행은 형통을 가져온다

셋째로 고난 중 말씀과의 동행은 형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위대한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은 생명입니다. 능력입니다. 은혜입니다. 빛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구원받아 모세의 인도함을 따라 가나안 입구까지 40년이 걸려서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갑자기 모세를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때까지 모세가 눈이 침침하지도 않고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하나님이 모세를 "이제는 너의 할 일을 다 잘 감당했으니 이제는 그만 다 내려놓고 내게로 와라." 그러고 주님이 데려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데려가셨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허탈감과 충격에 빠졌습니다. "아니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따랐던 우리 지도자 모세를 데려가면 어떻게 합니까?" 후계자로 모세의 몸종이었던 시종이었던 여호수아를 세웠지만 40년 동안 모세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눈에 안 들어 왔을지도 모릅니다. 여호수아 자신도 갑자기 40년을 따라다니던 영적인 거인이요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가 천국에 가시게 되자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가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때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이 말씀을 주십니다. 여호수아 1장 7절 8절입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매 순간순간 말씀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9편 105절은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인생길이 흑암으로 뒤덮여서 앞이 안 보이는 것 같아도 말씀을 붙잡으면 말씀이 내게 호롱불이 되어서 나의 갈 길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슬픔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오직 믿고 의지할 것은 주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그 말씀을 붙잡을 때 그 말씀이 나를 절망에서 건져주고 슬픔에서 위로해주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는 위대한 능력을 내게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7절입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야훼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할렐루야! 주의 말씀은 우리를 살립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를 살려 주시고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에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무책임하게 말합니다.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합니다. 그 말을 통해서 내게 큰 상처를 안겨줍니다. 그 말 하나하나에 연연해하지 말고 귀 닫아버리고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주의 말씀이 나의 은신처가 되고 나의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4절입니다.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말씀이 나를 붙들어 주고, 말씀이 나에게 꿈과 소망을 이루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6절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어떠한 고난이 어떠한 절망이 어떠한 문제가 어떠한 슬픔이 어떠한 괴로움이 여러분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할지라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일어나십시오.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십시오.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이 말씀 붙잡고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너를 붙들리라.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이 고난 가운데 극한 상처와 절망 괴로움 가운데 있는 나를 살리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두 딸을 키웠던 한 엄마가 큰딸을 잃고 다시 말씀 붙잡고 일어나 승리한 홍애경 집사님. 수원 온누리교회 집사님이신데요, 이분 간증으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이분은 음대 교수인 아버지 밑에 태어나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드라마 작가로 활동했고, 남편과 결혼하자마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두 딸을 낳았습니다. 두 딸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서 사우스베일로 한의대를 졸업해서 한의사로 활동하며 남들이 보기에는 승승장구하고 잘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큰 고난이 찾아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큰딸이 결혼을 앞두고 말기 암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2년여 동안 암과 싸우다가 27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엄마로서 더 큰 충격이었던 것은 자기는 세상 성공을 향해 승승장구하고 잘 달려나갔지만 큰딸 제니퍼는 얼마나 주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면에 신앙적인 면에서 부족한 것이 없던 딸이었는데 "어떻게 하나님 왜 저렇게 착한 제니퍼를 데려가셨습니까, 날 데려가셨어야죠." 울부짖어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울다 지쳐 쓰러져 있을 때 이와 같은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너를 데려가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니? 내가 너를 데려갔으면 너는 지옥에 갔을 거야. 그래서 너를 데려갈 수 없었어. 그러면 너는 영원히 제니퍼를 만날 수 없어. 그래서 제니퍼를 먼저 데려온 거야. 그러니까 너도 이제부터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해. 그래야 제니퍼를 만날 수 있어."

쾅, 주님이 해머를 때리신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름 그대로 그는 이름뿐인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이름뿐인 크리스천. 그래서 미국에서 예수 믿느냐고 물을 때 꼭 물어보는 말이 있습니다. '아 유 본 어게인 크리스천 (Are you born again christian?) 거듭난 사람입니까?'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본인은 크리스천으로서 교회를 왔다 갔다 하고 무엇하나 남들이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진정한 구원의 확신이 없이 세상의 성공을 향해 달려나갔던 그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눈물로 회개하고 모든 것 다 접었고 정리하여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때부터 바르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말씀으로 출발합니다. 큐티를 하면서 큐티하는 권사님들이 같이 모여서 간증을 나누면서 매일매일 말씀으로 무장을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를 주시는지 과거의 잘못되었던 자기 모습을 보여주시고 이제는 바로 살 수 있는 인생의 기회를 제시해 주셔서 자신처럼 고난 당한 이웃들 위해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올해 1월에 '오늘도 만나를 줍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간증집을 냈습니다. 이 책에서 고백합니다.

"다시는 기뻐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내 마음에 기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다시는 감사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모든 일이 감사했다. … 어떻게 세리 같던 내가 그리스도의 신부를 꿈꿀 수 있었는지, 내 삶에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 하지만 난 그 이유를 안다. 말씀으로 내 영혼이 소생되었기 때문이다. 말씀은 이렇게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힘이 있다."

고난 없는 성숙은 없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축복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인 것을 잊지 마시고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며 철저히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변화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껍데기뿐인 신앙생활 했던 것 용서하여 주옵소서. 원래 교회를 다녔으면서도 구원의 확신도 제대로 없는 채 구원받은 것처럼 착각하고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면 회개하고 이 시간 돌이키게 하여 주시고 예수 바로 믿고 남은 인생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사는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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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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