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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2019.12.15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이사야 32장 1~4절, 8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한 해를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었습니다. 잘못되어진 것은 내가 잘못한 것이고 잘 된 것은 다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한 해를 보내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철저히 반성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는가, 아니면 내 뜻대로 살았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었는가 아니면 나의 유익과 나의 만족을 위한 삶이 되었는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입술로만 고백하고 그 삶은 그렇지 못한 삶을 살지 않았는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우리들의 말과 행실이 같아야 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 앞에 부름을 받고 새사람이 되었는데 새 사람답게 살지 못한 것 회개합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앞으로 다가오는 날들을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저희들의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79장(통:40) :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가 주 앞에 가는 그날까지 주님 보시기에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고 보배로운 그러한 모습으로 쓰임 받게 하시고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여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이사야 32장 말씀 가지고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신분이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마귀의 노예로 살던 우리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새로운 신분에 맞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이전에 잘못되었던 모든 모습을 다 내버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존귀한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 믿고 우리가 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옛 사람에 머물러있기 때문에 그 삶에 끊임없이 문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옛날에 머물러있기 때문에 우리는 상처투성이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축복받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의의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1. 의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

첫째로 예수님은 우리의 의의 왕이 되십니다. 이사야 32장 1절의 말씀입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예수님이 나에게 의의 왕으로 오셔서 내 삶 가운데 모든 죄악을 몰아내시고 내 삶에 주님의 의가 임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어둠에 거하는 삶을 살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은 그 순간부터 철저하게 우리의 모습 속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내보내고 의의 왕 되신 예수님이 나를 다스려서 내 마음에 주님의 평화와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가 넘쳐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예언을 했던 시기는 아하스 왕이 유다를 다스렸던 시기입니다. 아하스 왕은 아주 악한 왕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 숭배에 앞장섰습니다. 바알 신상을 만들고 자식을 제물로 바치고 이런 악한 일을 행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셔서 북 왕국 이스라엘이 쳐들어와 저들과 싸울 때 하루 동안에 12만 명이나 죽고 전쟁에 패하여서 20만 명이 포로로 끌려가는 그러한 큰 고난을 겪었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엎드려 회개하지 아니하고 이웃 강대국인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유다를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유다를 더 위협했습니다. 그래서 남 왕국 유다는 완전히 고립되고 깊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이사야가 한 왕이 나타나서 공의로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왕은 장차 아하스 왕의 왕위를 물려받을 아들 히스기야 왕을 가리키는 것이며 동시에 장차 올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된 후에 큰 개혁 운동을 일으켜서 유다 백성들의 신앙을 회복했습니다. 성전을 수리하고 성전에 있는 모든 우상을 다 제거해버리고 대대적으로 유월절을 지켜서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리게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눈에 보이는 앗수르도 애굽도 의지하지 아니하고 만군의 야훼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과 함께해주셔서 두 번에 걸친 앗수르 대군의 침략을 물리치고 또 블레셋까지 점령하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의로운 왕이라고 인정했고 그의 의로운 통치를 통해서 나라가 부강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힘 있는 나라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공의를 행할 때 하나님께서 나라를 굳건히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 때는 우리가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주님 이 어려움을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이 고난을 잘 극복하게 해달라고 부르짖고 매달립니다.

그런데 고난을 통과하고 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시면 알게 모르게 신앙의 열심이 사라지고 내가 잘해서 그런가 보다 하는 교만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여러분 잘될 때 더 겸손하시기 바립니다. 뭐가 형통한 일이 일어날 때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 주님의 은혜인 것을 알고 더욱 겸손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줘서 부귀영화가 그에게 하나님의 축복으로 다가왔을 때 이웃 강대국, 새로 태어난 강대국 바벨론의 사신들이 왔을 때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에게 자기 무기고와 자기 보물들을 다 보여 주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고 그들에게 자랑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바벨론 사신들이 돌아가서 저 나라에 우리가 뺏어올 것이 많다고, 우리가 그 나라를 쳐서 뺏자고 하는 침략의 빌미를 제공한 그러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자신의 부귀영화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축복을 자랑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그는 공의의 왕이라는 것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는데, 결국 그 예언의 성취가 히스기야를 통해서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 후에 다가올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 공의의 왕에 대한 예언이 완전히 성취된 것입니다. 우리가 늘 성경의 교훈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어려울 때나 잘될 때나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주님의 귀한 백성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공의의 왕이십니다. 우리 삶 가운데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주님의 은혜와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축복이 임하도록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주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을 입고 모든 고난을 겪으신 후에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가난과 저주를 못 박으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지시고 모든 만물이 그 앞에 무릎을 꿇는 그러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9절, 10절은 설명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불의를 행하는 자를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72편 2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72편 4절에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주님께서 불의를 행한 자를 꺾어버리실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을 괴롭히고 힘들게 할 때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를 주님이 꺾으시는 것입니다. 공의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기에 지금 잠깐 내가 어려움 당하고 내가 억울한 일 당하는 것 같지만 반드시 주님의 때에 모든 것이 바르게 되고 악한 자는 심판을 받고 우리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때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우리를 존귀한 자로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불의가 가득해서 억울한 일 당하는 사람도 많고 상처 입은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공의의 왕 되신 예수님을 전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그 삶에 함께하시면 모든 불의를 극복하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공의의 왕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모든 죄와 저주와 절망에서 건져주시고 주님의 평안함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2. 보호자 되신 주님

나아가서 공의의 왕 되신 주님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십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참으로 좋으신 우리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32장 2절은 설명합니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예수님만이 진정한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때때로 인생에 폭풍우가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그러한 고난이 우리 앞에 몰아닥쳐서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두 손을 놓고 그저 깊은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때가 다가오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두가 다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지내도 마음속에는 너도, 나도 크고 작은 문제와 아픔과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세상에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이 모든 것을 완전히 해결함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눌림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오직 예수님만이,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모든 절망에서 건져주시고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시는 위대한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안전한 피난처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문제를 만났을 때, 고통 가운데에 있을 때, 남에게 말 못 할 고민으로 잠을 자지 못하고 눈물로 밤을 새울 때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와 "주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말씀 한마디로 바람과 풍랑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고난의 풍랑아 잠잠하라. 문제의 풍랑아 잠잠하라. 질병의 풍랑아 잠잠하라. 마음의 염려, 근심, 걱정의 풍랑아 잠잠하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죄와 절망과 가난과 저주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위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늘 샘솟는 듯한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마시는 물은 다 우리에게 갈증을 가져다 주지만 주님이 주시는 이 생명의 물은, 이 성령의 생수는 우리 속에서 강물을 이루고 우리 마음에 평안함을 넘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모든 절망의 자리에서 건져주시고 우리를 그 품에 꼭 안으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 우리의 일생을 은혜 가운데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목자가 양을 돌보시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를 돌보십니다. 이사야 40장 11절입니다.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예수님이 그렇게 우리를 돌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을 돌보는 것처럼 늘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계시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고 우리를 돌봐주시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보호가 아닙니다. 예수님 믿는 그 순간부터 우리가 나이 들어 저 천국 갈 때까지 우리 일생을 주님이 지키시고 돌보시고 함께하시고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6장 3절, 4절은 설명합니다.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스스로 걷지 못합니다. 부모의 돌봄이 없이는 어린아이가 자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늘 부모가 품에 안고 있던지 업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으면 어린애가 된다고 나이가 90세가 넘고 100세 가까이 되면 또 어린애처럼 맘 놓고 걷질 못합니다. 휠체어를 타야 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우리를 업고 백발이 되어 걷지 못할 때도 주님이 우리를 업고 가신다고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끝까지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품 안에 거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돌보시고 일생을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구원을 받았습니까? 노예로 살던 그들이 어떻게 최고의 최대의 강대국인 애굽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능력의 손으로 저들을 붙들고 구원해내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니깐 마치 독수리가 새끼를 업고 날라간 것처럼 저들을 계획적으로 구원해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4절입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그들이 애굽을 빠져나왔을 때 앞에 홍해가 가로막혔습니다. 뒤에는 바로의 군사가 쫓아서옵니다. 완전히 그 사이에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신 것입니다. 마치 독수리가 새끼를 업고 날아가는 것처럼 그 절망의 바다를 날아 건너가게 하시고, 뒤에 따라오는 바로의 군대가 물이 합쳐져서 완전히 멸망을 받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상상하지도 못한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은혜의 길로 축복의 길로 그의 길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주님이 우리의 반석이 되시고 우리의 요새가 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시편 18편 2절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다윗의 고백을 다 함께 하겠습니다. 18편 2절입니다.

야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의 반석이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구원자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고 승리자가 되시고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에게서 눈을 떼고 내 자신을 바라보니깐 내가 절망하죠. 주님에게서 눈을 떼고 사람을 바라보니깐 내가 상처를 받지요. 주님에게서 눈을 떼고 문제를 바라보니깐 문제가 내게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눈을 딱 주님에게 고정을 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한평생 여러분과 동행하시며 여러분을 존귀한 자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3. 존귀한 자로 세우시는 주님

셋째로 존귀한 자로 세우시는 주님에 대해서 함께 말씀의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저는 이사야 32장 8절에 얼마나 은혜를 받는지 모릅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예수님이 우리를 존귀한 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존귀한 자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존귀한 자입니다. 존귀한 일을 하라고 존귀한 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깨달았으니 이제부터 존귀한 자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존귀한 일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따라 해보세요. "나는 주안에서 존귀한 자입니다. 나는 주안에서 존귀한 자입니다." 여러분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존귀한 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존귀한 자인 것입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내 뜻과 내 고집대로 살았고 죄짓고 불행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나서 존귀한 자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옛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모습을 다 내던지기 바랍니다. 이미 존귀한 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핏값을 주고 우리를 사셔서 우리를 존귀한 자로 세우셨으니 이제 우리는 존귀한 자로 살아야 합니다. 상처 입은 실패자가 아닙니다. 패배자가 아닙니다. 저주의 자식이 아닙니다. 존귀한 자입니다. 존귀한 자입니다. 존귀한 자입니다. 이제는 나의 꿈이 아닌 주님이 주신 거룩한 꿈을 품고 이제는 나의 영광이 아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귀한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나를 물고 뜯는다고 상처받지 마십시오. 왜, 주님이 우리를 귀하게 보시는데.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는데 누가 우리를 뭐라고 하겠습니까? 내가 지금 가진 것도 없고 몸도 건강하지 못하고 수많은 실패의 상처가 내 삶 속에 깊이 자국을 내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여러분 그거 예수님 안에서 다 내던져 버리기 바랍니다.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고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나아갈 때 이 전에는 보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여러분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17살 때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13년이라는 긴긴 세월 동안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노예로 팔려갔다 그 다음에는 죄인이 되어서 감옥에 죄수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고, 13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이 그를 높이셔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존귀한 자로 그의 남은 인생이 쓰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믿음의 사람, 꿈꾸는 사람, 존귀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과 2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거룩한 꿈을 꾸고 믿음으로 붙잡고 바라보며 나아가시를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하시고 반드시 그 꿈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고아로 또 맹인으로 가장 낮은 자리에 떨어졌던 그 어디에도 희망이 없었던 한 소년이 예수님 안에서 주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 붙잡고 꿈을 품고 존귀한 자가 되어 존귀하게 쓰임 받은 강영우 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한국인 1세대로는 최초로 미국 백악관에 차관보 자리까지 올라갔던 분입니다. 한국인 1세대가 미국에 가서 그렇게 높은 위치에 올라가기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 태어나서 처음에는 그저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장남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님이 여러 척의 돛단배를 가지고 운송업을 했는데 그런데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이 모든 배가 다 불에 타버리고 운송업을 접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서울에 올라온 지 1년도 안 돼서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의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어서 그가 중학생이 되어서 나가서 축구를 하다가 공을 눈에 맞았는데 일 년 동안 수술하고 수술해도, 있는 재산 다 팔아서 수술했는데 결국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장남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는 말에 그 어머니가 충격을 받아서 뇌졸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졸지에 동생들을 돌봐야 될 처지가 된 누나는 부모 역할을 대신하느라 돈을 벌어야 되니까 봉제 공장에 나가서 하루 종일 일을 하는데 밤낮없이 일하다가 2년 만에 과로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이 누나가 죽기 전에 참 놀라운 일을 했어요. 어디서 이야기를 들으니까 병을 고치는 목사님이 계시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 앞을 보지 못하는 동생 손을 붙잡고 물어물어 찾아온 곳이 대조동 천막 교회입니다. 대조동 천막 교외에 가서 조용기 목사님에게 우리 애 눈을 뜨게 해 달라고. 조 목사님이 그때 그 강형욱 박사를 봤던 때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나도 거지 목사인데 너는 왕거지구나.'

때 국물에 찌든 옷을 밤낮 입고 발발 떨면서 그런 모습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애가 왔는데, 누나가 '우리 애 눈 좀 뜨게 해달라'고. 그래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강영우 소년이 영의 눈이 떠졌습니다. 몇 번씩이나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왜, 왜, 내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9장 3절과 고린도 후서 12장 9절을 말씀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맹인에게 그것이 누구 죄냐 물었을 때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답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또 사도 바울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성경 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눈이 아주 나빴다고 얘기합니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눈이 워낙 나빠서 편지 쓸 때 누가 대신 부르면 써줬습니다. 그리고 큰 글씨로 써야 볼 수 있었어요. 그렇게 눈이 안 좋았습니다. 눈 때문에 기도했는지 무엇 때문에 기도했는지 간절히 세 번이나 하나님 앞에 고쳐달라고 기도하니까, 본인은 죽은 사람을 살리고 모든 병을 다 고치는데 자기 병을 못 고쳤어요.

주님 말씀하시길 '네가 약한 모습이 있어야, 내가 더 강하게 너에게 역사한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늘 사도 바울은 약한 모습으로 주님만 의지해서 위대한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자신에게도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로 알고 그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 영광을 위해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게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나처럼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을 돕겠다는 거룩한 꿈을 꾸고 공부 열심히 해서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그 다음에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 가서 석사 박사를 받고 한국 사람으로 시작 장애인으로는 최초의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한국에 돌아오려고 하니까 받아주는 대학이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미국에 문을 열어주셔서 미국 대학에서 강의하게 하시고 그리고 부시 대통령 시절에 2001년부터 2009년까지 4성 장군에 준하는 미국 백악관 국가 장애인 정책 차관보를 맡아서 역임하면서 모든 장애인 정책을 세우고 UN 세계 장애인 위원회 부위원장 겸 루즈벨트 재단 고문을 지내면서 세계 장애인 복지 향상을 위해 헌신한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는 눈을 뜨지 않은 것이 오히려 축복이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기도에 NO로 응답하셔서 지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도에 NO라고 응답하시면 '내 기도는 왜 안 들어주시나' 생각하고 원망합니다. 하지만, YES만 하나님 응답인 줄 알았는데 NO가 먼 훗날 좋은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육신의 눈을 뜨지 못했지만, 영의 눈이 떠져서 거룩한 꿈을 가지고 꿈을 이루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때 응답 안 하신 것이 축복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축복은 자신뿐 아니라 그의 가정에도 이루어져서 아버지처럼 눈이 나쁜 사람을 고쳐주겠다고 약속했던, 기도했던 큰아들 강진석은 안과 의사가 되어서 워싱턴 안과 의사협회 회장까지 역임을 했고, 둘째 아들 진영이는 나는 변호사가 되어서 억울한 일 당하는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해서 결국은 그가 위대한 인물로 뽑혀서 오바마 행정부에서 법률 고문으로 쓰임 받기도 했습니다.

2012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 간 강형욱 박사님은 그의 유고작에서 이와같이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눈을 가져간 대신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다. 하나님은 나의 실명을 통해 나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셨다. 실명을 하기 전 나는 딱히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이 없었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이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실명을 하고 나서야 나는 꿈을 가졌다. 그때서야 온전히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가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목표가 생기니 공부할 이유도 생겼다. ...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고, 나의 장애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리신 저주가 아닌 축복이었다고."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님 안에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존귀한 자로 여러분을 부르셨으니 남은 여생 존귀한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이 존귀한 자로 부르시고 존귀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전처럼 그렇게 상처투성이의 실패투성이 인생에 머물러 있지 말고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지 말고, 오늘 모두가 다 내던져 버리고 여러분 앞에 펼쳐진 찬란한 축복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존귀한 자로 부르셨는데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사소한 상처 고난 스트레스 염려에 붙잡혀서 나의 신분을 잠깐 잊어버렸던 것을 회개합니다. 존귀한 자가 되었으니 존귀한 자로 살게 하여 주옵시고 믿음의 자로 살게 하여 주옵시고 복 받은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옵시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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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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