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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2019.09.22

야훼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야훼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야훼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야훼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 37:1~5)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가장 큰 우리의 문제는 분열과 다툼입니다. 반만년 역사 가운데 이렇게 국론이 분열되고 편 가르기를 해서 다툰 적이 없습니다. 정치권이 반성을 해야 합니다. 우리 바로 옆에 있는 큰 집에서 밤낮 싸우고만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지 못하니까 일본은 일본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우리를 여러 가지로 어렵게 합니다. 미국도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서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어서 등을 돌리까 하는 그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나누어서 다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 1천만이 먼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목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편 가르기를 해서 싸우면 안 됩니다. 위대한 대한민국이 어떻게 이러한 모습이 되었습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먼저 철저히 반성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주님,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고 나누어서 다투고 서로 비난하고 헐뜯고 좋은 이야기보다 좋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했던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하나 됨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먼저 믿는 가정이 하나 되게 하시고 교회가 하나 되게 하시고 일천만 성도가 하나 되어서 이 어려움에 처한 우리 대한민국을 구원해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이 임할 때, 성령의 바람이 불어올 때,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우리 마음을 감동시켜서 우리를 하나 되게 만들고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주여!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셔서 이 어려운 난국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헤쳐나가게 하시고 지금 어려움이 오히려 좋은 우리의 훈련과정이 되어서 우리의 밝은 미래가 우리 앞에 다가올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여 삼창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복음성가 : 성령님 내게 오소서>

성령님 내게 오소서

기도드립니다

권능과 능력으로써

나에게 채우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고 더 이상 분열과 다툼과 서로 불신하고 상처를 주고 받는 이러한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게 하여 주옵시고, 더 이상 잘못된 모습에 머물러 있지 않고 변화되어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복 받은 주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1천만 크리스천들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여 주시고 서로 화목하고 용서하고 하나 되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남북통일의 문을 열어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영광을 주님께 돌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에스겔 37장의 말씀을 가지고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인생을 고난의 바다라고도 이야기합니다. 끊임없이 고난의 파도가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기치 않은 문제가 다가와서 문제와 씨름하며 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 또 다른 문제가 다가오고 또 다른 문제가 다가오고 그래서 우리는 이 문제와 어려움 앞에 스스로 좌절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때가 수시로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그러한 어려움은 다가옵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한 것은 그러한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고 성령충만의 은혜를 체험하면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헤쳐나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충만 받기 전에는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에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가고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는 배신자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성령충만 받고 나니까 권능 받은 복음의 증인들이 되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성령충만의 역사입니다. "성령이여 우리에게 오시옵소서.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우리에게 임하여 주셔서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고 권능을 더해 주셔서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우리가 기도하고 모두가 성령충만 받아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른 뼈 골짜기와 같은 상황

오늘의 말씀은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 가운데 한 골짜기에 가서 수많은 사람의 마른 뼈가 있는 곳을 보았던 그 이야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마른 뼈 골짜기와 같은 상황에 대해서 설명드리기 원합니다. 에스겔서 37장 1절과 2절입니다.

야훼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에스겔 선지자가 성령에 이끌려서 한 골짜기로 갔는데 가보니 온 사방에 사람 뼈가 널려 있었습니다. 그 사람 뼈가 널려 있는 것을 자세히 보니까 그 뼈들이 아주 말라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널려져 있는 그 심히 마른 뼈는 당시 포로 생활 가운데 절망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때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하면서 모든 민족들을 자기들보다 열등한 민족으로 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처하며 자부심을 갖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며 죄짓고 타락하게 되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남과 북이 나누어진 이후 200년 후에 주전 722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주전 586년에 남 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들이 업신여기던 이방 민족의 포로가 되어서 가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들의 절망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나라가 망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던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것을 보면서 "이제 우리 희망은 다 사라졌다. 우린 끝났다." 그들이 한숨 지으며 그와 같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던 것입니다. 에스겔서 37장 11절은 말씀합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들이 심판받아 포로로 끌려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고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셨습니다. "너희들이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은 무덤 같은 상황이지만 너희들은 다시 그곳에서 무덤을 헤치고 나와 축복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37장 12절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야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우리들이 마치 이 마른 뼈 골짜기의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인생이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이 죄의 모습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죄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숨짓고 상처투성이 인생이 되어서 살았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노력을 해도 내 마음의 깊은 절망과 공허를 메울 길이 없습니다.

요즘 한국이 경제적으로 잘살게 되니까 마약이 얼마나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는지. 마약은 영혼을 파괴하고 인생을 망치게 하는 것입니다. 잠깐 내게 순간적인 쾌락을 줄진 몰라도 그 인생을, 가정을 파멸로 몰아가는 것이 마약인데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이 마약에 빠지고 도박에 빠지고 이런 것들에 빠져서 폐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참된 희망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온 인류의 희망이 되시고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류의 절대 희망 되신 예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인류의 절대 희망이 되신 주님

둘째로 인류의 절대 희망 되신 주님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37장 3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야훼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물으십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그 뼈들이 살 수가 있습니까? 이미 말라비틀어진 뼈들이 어떻게 살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에스겔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주님만이 아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우리 주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이 마른 뼈도 주님이 살리실 수가 있고 이 마른 뼈도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주님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동시에 이 마른 뼈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님 안에 불가능이 없습니다. 인생의 삶은 끊임없는 절망과 고통이지만 주를 믿고 주님을 섬기는 그 삶에는 늘 은혜와 기쁨과 평안함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해결하지 못할 문제들이 다가왔을 때, 가정에 풍랑이 일고 병원에서 나의 질병에 대해서 의학적으로 고치기 어렵다고 하는 사형선고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삶이 파산했을 때 주님이 물으실 것입니다. "이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겠느냐?" 우리는 주님께 고백해야 됩니다. "주님만이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도저히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내 가정의 문제를, 내 생활의 문제를, 내 질병의 문제를 주님이 해결하여 주시고 주님이 고쳐주시고 나를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세상을 붙들었던 손을 놓고 주님을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주님, 주님만 붙잡고 의지하고 나아갑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나를 이 절망의 자리에서 건져주시옵소서."

내 힘을 의지하면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뭐가 잘되면 내가 잘난 줄 알고 교만하고 뭐가 안되면 스스로 낙심하고 좌절했는데, 두 가지 모습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뭘 잘한다고 해도 그것이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안 된다고 해도 그것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 인생에 지나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주님께 맡기고 나면 주님께서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잠깐 어려움이 다가와도 문제가 다가와도 그 어려움을 발판으로 딛고 일어나서 더 높은 자리로 더 좋은 자리로 우리가 믿음의 전진을 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실패는 더 나은 축복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 직장이 없어서 직장을 찾는 많은 사람들, 약 200만 가까운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좋은 직장을 이미 예비해놓고 계시고 믿음으로 통과한 후에 우리는 그 좋은 자리에서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자" 할렐루야.

영어 NIV 성경을 보면,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예수님께 딱 초점을 맞추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초점을 우리 예수님께 딱 맞추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면 내게 절망이 엄습해 들어옵니다. 내게 고통과 괴로움이 몰려 들어오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기쁨이 임합니다. 평안함이 임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늘 주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할 때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할렐루야! 날마다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십시다.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바람

셋째로,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이 필요하고, 성령의 바람이 필요합니다. 에스겔서 37장 4절 5절은 말씀합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야훼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야훼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음성을 들으면 우리에게 낙심을 주고, 우리를 상처를 주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희망이 있고 기쁨이 있고 치료가 있고 용서가 있는 것입니다.

요즘 얼마나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지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니까 어느 분이 나와서 말하기를 "다 저거 가짜뉴스입니다."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근데 그 말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요. 다 가짜라고 하니깐. 서로 가짜라고 하니깐. 다 거짓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이 거짓인지 저 사람이 거짓인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세상의 음성은 그렇습니다. 거짓 뉴스, 가짜뉴스가 다 세상을 뒤덮고 있지만 주님의 음성은 진리이고 축복이고 생명이고 은혜이고 희망이고 치료이고 용서인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를 치료하고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고,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해 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변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에스겔서 37장 7절에서 8절입니다.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뼈들아 붙어라!" 하니깐 뼈들이 척!척!척!척! 붙어가지고, 사람의 모양을 이루더니만 살이 돋아나면서 가죽이 덮이면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모습은 갖추었는데 아직 생기가 들어가지 않아서 생명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이 호흡을 뺏어 가면 다시 흙덩어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생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대언해서 생기가 불어오게 하니 생기가 저들에게 들어가서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37장 9절로 10절입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야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이 죽음의 골짜기에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 들어오니, 저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하나님의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생명의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부흥의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치료의 바람이 불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생기를 히브리 원어로 루아흐라고 합니다. 루아흐. 루아흐라는 말은 호흡, 영, 숨을 다 루아흐라고 합니다. 그것을 헬라어 말로 바꾸면 프뉴마라고 합니다. 프뉴마. 그래서 생기나 호흡이나 영이나 다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우리에게 이 루아흐. 생기가 불어와야 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 됩니다. 하나님의 숨이 우리에게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호흡하게 될 때 위대한 하나님의 군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우리가 살아나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우리에게 예비 된 축복의 나라로 걸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37장 12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야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무덤 같은 우리의 절망적인 현실이 열려져서, 이제는 축복의 미래를 향해서 걸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는 이 절망의 자리에 죽음의 골짜기에 무덤에 갇혀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성령충만 받고, 믿음으로 일어나서 믿음의 전진, 또 전진, 또 전진을 해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성령의 충만입니다. "성령이여, 내게 임하여 주시옵소서.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임하여 주셔서 권능 받고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면 너무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예수 믿고 나서도 성령충만 받지 않으면 인생이 너무나 힘들고 지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18절은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 반 동안이나 예수님에게서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령 받기 전에는 다 무기력했습니다. 예수 믿고 교회를 오래 다녀도 성령충만 받지 못하면 그렇게 무기력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열흘 동안 간절히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로 4절은 설명합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 받으면 권능이 임하는 것입니다. 권능 받으면 증인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내 증인이 되리라. 내 증인이 되리라. 할렐루야.

이제 우리는 이 죽음의 골짜기에서 마른 뼈 같은 인생에서 성령 받고 다시 일어나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권능의 사람 능력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아야 될 것입니다.

참 특이한 분 한 분을 소개하려고 그럽니다. 원불교 스님이었다가 원불교에서 교무라고 그러는데 목사가 된 분입니다. 이분은 온 집안이 원불교 뿌리 깊은 집안입니다. 원불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너는 원불교 교무가 되라, 스님이 되라." 그래서 원불교 스님이 될 준비를 하는데, 누님이 또 원불교 스님이에요. 정녀라고 하는데, 여자 교역자를 정녀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 원불교 교무의 길을 가는데, "너는 소록도에 가서 소록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원불교 교리를 가서 전해라." 그래서 가서 열심히 부처의 도를 전합니다.

"당신이 나병에 걸린 이유는 전생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처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거꾸로 한센병 환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믿어야 행복해진다."

그래서 오히려 소록도인은 대부분이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이 원불교 교무를 거꾸로 전도를 한 것입니다. '아! 내가 건강하고 자기들이 한센병에 걸렸기 때문에 내 말을 듣지 않는구나.' 그래서 수염도 밀고 그들처럼 같은 모습으로 다가갔는데 "아이고 그래도 소용 없습니다. 예수 믿으셔야 됩니다." 7년이나 가서 열심히 원불교 교리를 전파했지만 저들이 오히려 자기를 자꾸 전도했어요.

1988년 3월 2일 소록도에 가서 열심히 부처의 도리를 전한 지 7년째 되는 해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어느 날 법당에서 목탁을 딱딱 두드리는데 갑자기 입에서 찬송가가 나오는 거에요. 그 소록도에서 장례식이 많이 일어나는데 장례식을 많이 갔었는데 장례식에서 하도 찬송가를 많이 들어가지고 그 찬송가가 그냥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똑딱똑딱하더니 "며칠 후 며칠 후. 아 이게 뭐인가." 그래서 다시 목탁을 두드리는데 "요단강 건너가. 아니 이게 웬일이냐." 그래서 이분이 목탁을 두드리다 찬송을 부르다 목탁을 두드리다 찬송을 부르다가 성령을 받아버렸어요. 할렐루야.

입만 열면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거 참 하나님의 은혜가 특별하게 임했습니다. 그래서 성령 받고 방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즉시 회개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했던 것처럼, 저도 그 순간 성령의 임재 가운데 찬송가 후렴구를 반복하며 방언을 하면서 크게 변화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성령님이 나를 찾아와주신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가서 농아인들을 위해서 축구팀을 맡고 2000년 농아인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따기도 하고 2001년도에는 카자흐스탄으로 임지를 옮겨서 거기서 농아인 대표로 가서 선교하며 교회를 세웠는데, 2012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 장애인의 날 행사에 카자흐스탄 농아인 축구팀을 데려가서 시합을 하고 그 북한에 있는 농아인들 축구팀 대표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그 축구팀을 창단해서 올해 11월 홍콩에서 열리는 농아인 아시안 게임에 출전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앞으로 사명에 대해서 그는 고백합니다.

"38선으로 나뉜 장애 국가를 건강한 나라, 하나 된 나라로 회복시키는 일에 쓰임받고 싶습니다. 장애인들과 함께 '용서의 사람 요셉'의 마음을 품고,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던지며 통일 한국을 이루고 싶습니다."

할렐루야. 성령이 임하면 이 같은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목탁을 두드리다가도 성령 받고 목사가 되어서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게 된 것처럼 여러분 모두가 성령충만함을 받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 복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뤄 나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에 멈추지 말게 하시고 성령충만 받고 권능 받아 복음의 증인 된 사명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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