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봉독>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야훼께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야훼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창 13:14~18)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 중에 하나가 바로 기도하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모일 때마다 기도해야 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 구역과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일 때 기도하고 흩어져 주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어렵고 외교적으로 어렵고 국가 안보가 불안한 이때, 우리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 1천만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우리나라를 굳건히 세워 주시고 교회를 부흥시켜 주시고 우리 가정에 평안함을 주시고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오늘 우리가 모두 성령충만 받게 하시고 우리 교회에 큰 부흥이 있게 하시고 우리 대한민국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서 대한민국이 굳건히 서게 하여 주셔서 주의 복음으로 통일 시대가 열리게 하여 주옵소서.”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35장 (통:492) : 나의 영원하신 기업>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봅니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여 주시사, 대한민국의 모든 불안한 요소들이 다 사라지게 하여 주옵시고, 대한민국이 굳건히 서게 하여 주옵시고, 1천만 크리스천이 기도할 때 북한의 문이 열리게 하여 주옵시고, 북한 전역에 다시 교회가 서고 주의 복음으로 남북이 통일되는 은혜의 시대가 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 말씀의 제목은 “눈을 들어 바라보라.”입니다. 창세기 13장 14절~18절 말씀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눕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라.” “눈을 들어 바라보라.”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느냐,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바라보는 그것을 닮아가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알콜 중독이 유전한다고 말을 하는데 DNA를 통해서 유전한다기보다는 늘 어려서 부모님이 술 취해서 다투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절대 저렇게 살지 않을 거야.” 하는데 나중에 커서 보면 자기가 알게 모르게 자기도 알코올 중독이 돼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별히 아버지가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것을 보고 자란 자녀들이 “난 절대 저렇게 나쁜 아버지 안 되겠다.” 결심하는데 어느새 자기가 부인을 때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보는 것을 그냥 마음에 담아두고 살다가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난 다음 우리가 이런 모습을 내던져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어두웠던 나의 모습을 바라보지 말고 상처투성이인 내 모습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우리 일생이 복 된 일생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고 나서 늘 부정적인 모습 바라보고 과거를 바라보고 상처를 바라보고 어두움을 바라보면 알게 모르게 자신이 그러한 모습에 갇혀 버리고 말게 되는 것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이야기를 통하여 어떻게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는지, 어떻게 아브라함이 바라봄의 법칙을 통하여 은혜받았는지를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1. 만남과 헤어짐
먼저 만남과 헤어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세기 13장 14절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75세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그가 떠날 때 조카 롯이 그와 함께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었던 터라 조카 롯을 아들처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식솔들을 다 데리고 조카 롯도 자기의 식솔들을 다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5절은 설명합니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에 머물렀다가 가나안에 올 때까지 아브라함과 조카 롯과의 관계는 아주 좋았습니다. 늘 친아들처럼 사랑하고 또 조카 롯도 자기 삼촌 아브라함을 늘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와서 그들이 돌보는 가축들이 늘어나게 되니까 가축을 돌보는 목동들끼리 다투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더 좋은 풀이 있는 곳을 차지하려고 하다 보니까 다툼이 생겼어요. 성경은 설명합니다. 창세기 13장 7절과 8절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우리가 이 가축을 먹일 풀 때문에 다툼이 생겨서야 되겠느냐? 서로 떨어져서 자기가 좋은 곳에 정착해서 그곳에서 가축을 돌보면 좋겠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줍니다. 13장 9절과 11절입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사람이 이렇게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만냐고 왜 헤어지냐 그 이유가 중요한데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헤어진 것은 분쟁을 피하려고 헤어진 것입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다투면 안 됩니다. 다투는 것은 마귀의 역사인 것입니다. 물고 뜯고 다투면 하나님의 영광도 가리고 남는 것은 상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 예수 믿는 사람이 혈기를 부리면 안 돼요. 예수 믿고 나서는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성격이 강하고 내가 급하고 소리를 잘 지른다고 할지라도 예수 믿고 나서는 바뀌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내 성격을 나타내서 다투고 분쟁이 생기면 안 됩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는 영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절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다투는 것은 마귀의 역사요, 화목하고 사랑하고 하나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때때로 이렇게 분쟁이 생겨날 때는 서로가 잠깐 거리를 두는 것도 좋습니다. 주님 일을 할 때 분쟁하면서 일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을 다녀온 다음 2차 선교여행을 갈 때 다투었습니다. 왜냐하면 같이 선교여행을 떠났던 마가라고 하는 사람이 중간에 돌아갔는데 바나바는 마가를 데려가자고 하고 바울은 그 사람은 안 된다,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5장 37절~39절은 설명합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사명감이 없는 사람을 데리고 가면 계속 선교할 때 걸림돌이 될 것이니 데려갈 수 없다. 바나바는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데려가자. 다투다가, 그럼 우리 서로 나누어서 선교하자. 그래서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떠나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떠나는 장면이 바로 사도행전 15장의 이야기입니다.
의견이 달라서 서로 다른 곳에서 일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자꾸 다투면서 같은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어요. 나뉘어서 일을 해야 됩니다. “나는 이 자리가 내 자리니까 절대 이 자리 비킬 수 없다.” 해서 다투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양보한 것처럼 “네가 먼저 택해라.” 우리는 양보할 줄 알아야 됩니다. 내 자리, 내 것. 이것이 아닙니다. 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양보하고 배려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리의 법칙이 있습니다. 참새는 참새들끼리 모이고 오리는 오리들끼리 모이고 원숭이는 원숭이들끼리 모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늘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고 남을 비판하고 물고 뜯는데, 그들이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늘 긍정적인 이야기만 하고 좋은 이야기만 하고 칭찬하고 덕을 세우고 남을 세우고 살리는 이야기만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바로 긍정의 법칙을 따라서 긍정적인 사람과 하나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과 하나가 돼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부정적이고 원망, 불평을 일삼는 사람들하고는 가까이 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나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믿음의 눈으로 바라봄
둘째로 우리는 늘 믿음의 눈을 갖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눈을 갖고 바라볼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데 롯은 육신의 눈으로 자기의 보기에 좋은 것을 바라보고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여 갔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그 곳을 택하여 갔다가 롯은 완전히 망합니다. 창세기 13장 10절입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야훼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야훼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눈으로 보기에는 참 좋은 성을 택했지만, 결국 그것은 멸망의 도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13장 14절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절~17절입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바라본 곳을 다 너에게 주리라.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눈을 갖고 바라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갖고 바라볼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바라볼 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됩니다. 이 자녀가 장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크게 쓰임 받을 하나님의 귀한 자녀이다, 복된 자녀이다, 믿음으로 바라볼 때 그 자녀의 인생이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말을 좀 함부로 했어요. “이 지지리 못난 것” “이 밥통아” 아니, 왜 사람을 밥솥으로 비교합니까. 자기 자녀가 얼마나 귀한데. 그렇게 함부로 말하기 때문에 자녀들이 일그러진 자화상을 갖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나는 밥솥과 같은 존재이구나.” “나는 머저리구나.”
여러분, 자녀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자녀가 사고를 쳐도 “장차 큰 사람이 될 거야, 큰 인물이 될 거야.” 칭찬하고 바로잡아 주면 한, 두 번 실수하다가 뉘우치고 돌아와서 큰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나서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믿음의 입술로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십니다. 절대로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나서 믿음으로 나아가야지 제자리에 머물러있고 뒤를 돌아보고, 그리고 부정적인 말을 해서 받은 은혜를 쏟아버리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갈렙은 85세가 되는데도 꿈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눈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점령하지 못했던 그 높은 산지를 자기에게 달라고 여호수아에게 요청합니다. 여호수아 14장 10절입니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2절에
그 날에 야훼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야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산지에 험한 땅을 본인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그곳은 아낙 자손이라고 하는 거인들이 있는 그러한 성읍이었습니다. “그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 믿음으로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땅을 그에게 주셨고 갈렙은 그 땅을 정복한 것입니다.
꿈을 꾸는 데는 나이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85세면 “이제 내 인생 끝났다.”하고 마무리할 시기입니다. 그리고 여생을 그냥 그렇게 편하게 지내도 됩니다. 그러나 갈렙은 85세에 새로운 꿈을 꾸었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내가 점령하겠나이다.” 여호수아가 허락했을 때 그는 그 산지를 점령했습니다.
우리에게 이와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흔들리는 믿음이 아니라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고 눈에는 보이는 것 없어도, 귀에는 들리는 것 없어도,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나아갈 때 위대한 역사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적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칠십오 세에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가서 구십구 세가 됐습니다. 구십구 세가 되고 부인은 팔십구 세가 되어서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는데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믿음이 있고 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그 꿈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7장 1, 2절 4절로 6절입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구십 구 세에 자식이 하나도 없는데 “너로부터 민족이 나오게 된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꿈꾸고 믿었을 때, 백 세에 드디어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을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아들, 이삭을 백 세에 선물로 받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꿈꾸고 믿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 여러분이 꿈꾼 그것이 주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꿈꾸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하게 하여 주셔서 그 말씀이 내게 축복으로, 기적으로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이러한 축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 대하여서 성경은 설명합니다. 13장 18절에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야훼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아브라함이 복 받은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예배드리기를 힘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12장 7절을 보니까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야훼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디든지 그는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예배 잘 드리는 사람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교회를 섬길 때, 미국의 소리 방송을 했던 ‘황재경’ 목사님이 하루는 창립 예배 초청 강사로 오셔서 말씀을 하시는데, 백발이 성성하시고 구십 세가 다 되셔서 미국 교계의 이민 목회의 원로가 되시고 존경받는 목사님입니다.
근데, 그분이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평생 내가 뒤돌아보니 주일날 예배 빠지지 않고 예배 잘 드리는 사람이요, 그리고 십일조 하는 성도, 사람입니다.” 두 가지 말씀하시더라고요. 예배 잘 드리는 사람, 십일조 잘하는 사람이 예수 잘 믿는 사람이다. 평생 동안 목회하면서 교회를 돌보면서 내린 결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린 뭐 대단한 말씀하실 줄 알고 펜 들고 무얼 말씀하시나 했더니 예배 잘 드리라고 그러고 십일조 잘하라고 그러시더라구요.
여러분! 예배 잘 드리고 십일조 잘 드리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왜 아멘 소리가 작죠? 여러분의 믿음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보여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보일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쏟아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서 어디 가든지 제단을 쌓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먼저 하나님 앞에 드린 십일조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늘 문을 여시고 쌓을 곳이 없이 부어 주셔서, 백 세에 아들을 얻고 그 아들이 형통하게 되고 그 자손이 자손만대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롯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아니라 육신의 만족을 위해서 소돔과 고모라에 갔다가 완전히 패가망신합니다. 그곳이 침략을 받았을 때, 포로로 잡혀가기도 하고 또 유황불이 쏟아질 때 온 재산을 다 잃게 됩니다. 창세기 14장 12절을 보니까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또 심판받을 때, 전 재산, 사위들, 아내까지 다 잃었습니다. 창세기 19장 24절로 26절입니다.
야훼께서 하늘 곧 야훼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아브라함이 완전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도 실수가 있고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그 믿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의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고 복을 쏟아부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 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아브라함 같은 믿음을 주셔서 우리 모두가 복 받은 인생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형통케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하여 주시고 모든 일이 주님 안에서 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사람들은 하는 일마다 잘 되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지고 장애인을 섬기고 있는 임정택 대표. 히즈빈스의 임정택 대표를 소개합니다. 그는 11년 전에 대박 창업을 꿈꾸던 25세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동대학 다닐 때 2008년도에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 대학생 창업 교류전’에 참가했다가 북경대 출신 중에 학생을 만났는데, 이 학생이 말하기를 나는 중국에 저 소외된 지역에 가서 가난하고, 헐벗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돌보며 살기 원한다는 말을 듣고 큰 도전을 받았어요.
중국의 13억 인구 중에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이 가는 북경대학 출신이 하는 말이 “나 성공해서 잘 살겠다.”라는 말이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겠다는 말을 듣고, ‘도대체 예수 믿는 난 뭐하고 있었던 것이냐’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돌아와서 포항까지 내려가는 길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앞으로 저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요.’ 내내 집에 도착할 때까지 6시간 동안 ‘주님 제가 앞으로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기도하는데, 주님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입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래서 그때로부터 동사무소 가서 이제 그 지극히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회 복지센터에 가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어려운 일을 어렵게 사는 사람들 중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에서 관심도 없고, 돌보지도 않고, 늘 외롭고 힘들고 어렵게 사는 그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분들을 도와야 되겠다.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사업이 뭔가?’ 해보니까 이 커피 내리고, 커피를 만들어주는 카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사업을 하는데, 돈이 필요해요. 돈이 수천만 원 이상 자본금이 필요한데, 통장에 25만 원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장애인을 돕는 사업을 하겠다고 만들어서 포스코라고 하는 큰 대기업에 가서 사업계획서를 내밉니다.
“장애인을 돕는 사업을 하고자 하는데 투자 좀 해주세요.” 웬 청년이 와서 갑자기 돈을 내놓으라고 하니까 “당신 뭐요 가시오.” 또 가서 이야기하고, 또 가서 이야기하고, 또 가서 이야기하고. 6개월 동안 문을 두드렸더니 창업자금 5천만 원을 받게 되었어요. 할렐루야!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1년 만인 2009년 9월, 한동대학교 도서관 3층에 히즈빈스라는 카페를 차리고, 4명의 장애인 바리스타와 함께 카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이 기쁨으로 그곳에서 일하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전국에 18개의 점포를 열었고, 필리핀에도 한 개를 열었는데, 85명의 직원 중에 63명이 장애인 직원입니다.
사업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꿈꾸지도 못한 자들이 가정을 이루고, 또 전문가 의식을 가지고 상태가 점점 좋아져서 일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을 돌보았던 의사들이 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이렇게 좋아지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보고 의사들도 감동을 받고, 이 사례가 전 세계로 알려졌습니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평균 한 곳에서 일하는 기간이 석 달을 넘기지 못한답니다. 석 달 이상 일하는 그 퍼센트가 우리나라는 18.4%래요. 근데 OECD 평균 국가 기준은 50%가 평균을 이루기도 하는데, 히즈빈스는 95%가 3개월 이상 일을 하고, 그래서 전 세계에서 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벤치마킹하러 왔습니다.
신앙, 복지, 기업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이 기업을 운행해 나가는데 경영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급여를 줄 때는 장애인 직원을 1순위로 지급하고, 일반 직원이 2순위, 임원이 가장 마지막에 받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장애인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다”
할렐루야! 그는 고백합니다.
“제가 한 모든 사업은 100%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셨습니다. 우리는 실수할 때가 있고, 실수할 수밖에 없지만,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즈빈스를 통해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길 원하십니다. 끝까지 성령으로 충만하고 꿈과 믿음을 지켜나가며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대단한 분이에요. 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꿈꾸는 사람, 믿음의 사람,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일생이 다 가도록 넘치는 은혜로 함께하여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그의 일생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와 같이 복 받은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복 받은 인생 살게 하여 주옵소서. 거룩한 꿈 꾸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우리의 삶이 기적의 삶, 축복의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지면보기
행복으로의 초대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