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봉독>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아 2:10-14)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어저께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굴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말씀 둘을 주셨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과 7절을 주셨고 시편 55편 22절을 주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 은혜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을 붙들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 말씀 함께 고백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55:22)
염려, 근심, 걱정, 고통, 괴롬 다 맡기시지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고 가야 해결이 안 됩니다. 문제가 문제를 만들고, 어려움이 어려움을 만들고, 슬픔이 슬픔을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께 다 맡기고 나가면 주님께서 반드시 주님의 때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시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찬송가 490장(통 542장): 주여 지난밤 내 꿈에>
(1절)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2절)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될 때 내게 소망을 주셨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 보이도다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3절)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 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하루 한 시간도 기쁨을 누릴 수 없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무 연약하고 쉽게 상처받고 쉽게 무너지는 연약함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셔서 오늘도 주의 전에 부르시고 말씀을 통하여, 찬양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회복시켜주시니 감사합니다. 강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그 귀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구약 아가서 2장 10절로 14절 말씀 가지고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겠는데요. 한번 제목을 따라 해주세요.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일어나서 함께 가자”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무언가에 미쳐서 삽니다. 돈에 미쳐 사는 사람, 권력에 미쳐 사는 사람, 도박에 미쳐 사는 사람, 명예와 인기에 미쳐 사는 사람, 또 사랑에 미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친다는 것은 어떤 일에 너무나 열중하고 집중해서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돈에 미친 사람은 돈밖에 안 보이는 것이고 권력에 미친 사람은 권력밖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사랑에 미친 한 남녀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가서입니다. 성경 66권 가운데 남녀 간의 사랑을 이렇게 어떻게 보면 매우 자세하게 또 표현이 굉장히 직설적이고 강하게 기록되어 있는 책은 아가서 밖에 없습니다. 아가서의 두 주인공은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입니다.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신분의 두 사람이 뜨겁게 사랑한 것입니다. 모든 편견을 뛰어넘어서, 사람들의 방해를 뛰어넘어서 저들이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사랑하면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사랑하는 사람 생각밖에 나지 않습니다. 이 사랑의 모습은 남녀 간의 사랑의 모습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고 영적으로 볼 때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을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는지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지 오늘 말씀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살펴보길 원합니다.
1.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고 있습니다. 아가서 2장 10절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 말을 하고 있는 솔로몬 왕은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여인이 사모하는 존귀한 왕입니다. 그런데 그 많고 많은 여인 가운데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을 택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 어여쁜 자”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높은 지위를 갖고 있지도 않았고 또 얼굴도 밭에 나가서 일해서 거무스름하고 무엇하나 그렇게 자랑할 것이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아가서 1장 6절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그런데 솔로몬 왕은 이 여인을 택하고 지극히 사랑한 것입니다. 왕의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술람미 여인은 본인의 얼굴이 좀 타서 거무스름했던 것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왕이 나를 사랑하니까 그 사랑에 감동되어서 나의 모습은 마치 솔로몬 궁전의 아름다운 휘장과도 같다고 설명한 것이 아가서 1장 5절입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그런데 우리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를 택하여 그 누구보다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이 놀라운 하나님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하여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1절은 말씀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내가 너를 지명해서 부르시고 너는 내 것이라고 주님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지명을 받아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투성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매우 보배롭고 존귀히 여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3장 4절입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어떻게 보면 우리 모습은 초라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하게 살았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사람이 강한 것 같아도 말 한마디에 무너지고 약한 그러한 연약한 모습을 갖고 있고 한번 상처를 받으면 그 상처가 오래오래 그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그를 고통 가운데로 몰고 가는 그러한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편하게 잘 지내다가도 어떤 문제가 다가오면 정신을 못 차리고 우왕좌왕하고 당황하고 실수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허물도 많고 늘 내가 중심이고 하나님은 뒷전이고 욕심쟁이이고 이기적인 죄로 얼룩진 나를 주님이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밭에서 일하느라고 얼굴이 거무스름해졌어도 솔로몬이 사랑한 것처럼 우리가 죄로 얼룩졌어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그러잖아요. 그 사람이 실수해도 남들이 욕하고 비난해도 내가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겁니다. 허물이 많아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아무리 부모 속을 썩여도 자식은 자식인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서 늘 눈물 뿌려 기도하고 자식을 사랑으로 돌보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인 것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허물투성이이고 때때로 주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났어도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보다 내 자신을 더 사랑합니다.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적으로 현실적으로는 그러지 않을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서는 주님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났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을 인하여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고 스바냐 3장 17절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 야훼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허물이 많고 문제가 많았는지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셔서 저들을 430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하던 그들을 구원해 내어서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했건만. 저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배신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또 저들이 심판을 받고 난 다음에 돌아오는가 했더니 또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또 죄짓고 또 죄짓고 또 죄지어서. 결국은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고 남쪽과 북쪽이 다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가 70년이 지나간 후에야 그들이 뒤늦게 회개하고 주님의 긍휼하심에 돌아오게 되는데.
그렇게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위선적이고 늘 주님을 배반하는 죄 덩어리였던 저들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하시는 그 사랑,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우리가 그렇게 죄짓고 무례하고 방탕하고 세상에 나가서는 주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내 마음대로 살고 그렇게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온 우리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용서하셔서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인도하신 주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감사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기까지 그 죽음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의 일생동안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감사한지.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를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 자격이 없어요.
주님의 백성들끼리 미워하고 다투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조금만 내게 손실이 오면 몸부림치고 분노하는 이 부끄러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주님이요, 그렇게 우리가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있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고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1장 9절입니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내가 저 절망의 땅 끝에 있을 때라도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은 저 변두리와 같은 그러한 구석진 곳에 컴컴한 곳에 혼자 웅크려 울고 있는 나를 그 누구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돌아보지 않는 나를 주님이 오셔서 꼭 붙들어주시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온 세상 사람 너를 버리고 다 떠나도, 나는 절대로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할 것이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이제 일어나 함께 가자.” “일어나 함께 가자.” 더 이상 절망의 자리에 슬픔에 자리에 고통의 자리에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서 우리 함께 가자.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주님.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오셔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일어나 함께 가자.”
2. 희망의 봄이 밝아온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에게 희망의 봄이 밝아올 것이다. 2장 11절에서 12절입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비가 그쳤습니다. 고난의 겨울이 지나가고 축복의 봄이 다가왔습니다. 슬픔의 비가 그치고 기쁨의 날이 밝아왔습니다. 꽃이 피고 비둘기 소리가 들리는 평화의 노래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아픔과 슬픔은 서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늘 24시간 같이 있고 싶은데 어떤 이유로 보지도 못하고 이야기도 못하고 연락할 수조차 없을 때 얼마나 그 마음이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왜 너무 그리워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이 그 지위로 인해서 그가 하는 말로 인해서 자신을 자주 볼 수 없었던 그 안타까운 현실 때문에 너무나 왕을 그리워하다가 몸에 병이 나기까지 했습니다. 아가서 2장 5절입니다.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때때로 우리에게 겨울과 같은 시간이 다가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 같은 그러한 고통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술람미 여인은 늘 솔로몬이 사랑한다고 얘기했지만 볼 수도 없고 연락도 안 되고 그러니까 그 마음이 너무 사모하다가 병이 든 것입니다. 왕이 나를 잊어버렸나? 왕이 나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렸나? 왕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닌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닌가?
여러분의 인생에 그러한 겨울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사업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고 그렇게 착하고 말 잘 듣던 자식이 갑자기 돌변해서 속을 썩이고 부모에게 대들고 집을 나가고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배신하고 등을 돌리고 이런 겨울이 다가옵니다. 그렇게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앓아서 병원에 들어가게 됐는데 언제 나을 기약이 보이지 않고 한 달 두 달 병실에 누워있을 때 그 마음에 절망의 밤은 깊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신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고난의 겨울이 다가옵니까? 인생의 겨울을 겪게 되는 것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를 강하게 연단시키셔서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의 삶에서 죄를 제거하시기 위함입니다. 인생의 겨울이 다가올 때 절망하지만 말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자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서 내가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부끄러운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아나와야 합니다. 믿음을 회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윗 왕도 한때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그러한 절망 속에서 부르짖은 적이 있습니다. 시편 22편입니다. 1절에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한 번도 나를 떠나지 아니하신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왜 나를 이 절망에 자리에 이렇게 내버려 두셨습니까? 주님 어디 계십니까? 내가 밤에도 부르짖고 낮에도 부르짖는데 왜 주님은 침묵하십니까? 이러한 고난의 때를 지나고 계신 분 계시지 않습니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에도 주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밤잠 못 이루고 눈물로 통곡하던 다윗이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믿음으로 주님을 붙잡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22편 10절에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그렇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셨고 나를 떠나시진 적이 없습니다. 주님이 그 믿음을 보시고 다윗을 붙들어 주시고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왕으로 이름이 남겨지게 된 것입니다. 비록 그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잘못했어도 주님을 향한 그 사랑은 변치 않았기 때문에 그 회개의 눈물을 보시고 그를 붙들어 주셔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겨울은 절대 겨울로 끝나지 않습니다. 겨울이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겨울이 긴 것 같아도 결국 봄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응답이 더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밤이 깊으면 새벽이 밝아오는 법입니다. 새벽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여전히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여러분을 붙들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필요한 것이 바로 강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붙잡고 나가면 주님께서 모든 어려움의 시간이 지나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에게 희망이 움터오는 찬란한 축복의 봄을 맞이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눈물로 씨앗을 뿌리지만 기쁨으로 우리가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아가서 2장 13절은 말씀합니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렇게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3. 불신앙의 요소를 제거하라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전진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삶속에 불신앙의 요소를 제거해야 됩니다. 아가서 2장 15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희망의 봄이 다가왔습니다. 시냇가에 얼었던 그 시내가 녹아 물이 졸졸 흐르기 시작하고 포도나무에 싹이 돋고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어느 날 포도밭에 나가보니까 포도나무가 여기저기 나무가 시들어가고 말라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땅은 파헤쳐져 있고 엊그제까지만 해도 잘 자라던 포도나무가 말라 죽어가고 있던 것입니다. 포도밭의 가장 큰 적은 사자나 곰 같은 큰 맹수가 아니라 이 큰 들쥐 크기의 작은 여우들입니다. 이 여우들이 와서 땅을 파고 포도나무 뿌리를 갉아가지고 이 포도나무를 말라 죽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의 뿌리를 갉아 먹는 영적인 작은 여우들을 잡아내야 할 것입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해치는 가장 큰 적은 어떤 큰 사건 큰 일이 아니라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갉아내고 있는 이 영적인 작은 여우들입니다.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감사를 빼앗아 갑니다. 열정을 빼앗아 갑니다.
우리가 큰 범죄를 지으면 즉각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 나오죠. 내가 막 분노해서 막 폭력을 휘둘렀다던지 한때 정신이 나가서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 했다던지 내가 해서는 안 될 그러한 행동을 했다던지 잘못된 관계에 빠져서 큰 문제를 일으켰다던지 이런 것은 하나님의 채찍이 임하면 돌이키고 회개하고 나올 수 있는데, 아주 작은 것들 우리 마음속에 기쁨을 빼앗아가는 부정적인 생각들 시기, 질투, 미움, 원망, 불평의 작은 여우들, 그들이 들어와서 우리 신앙의 뿌리를 갉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뿌리가 갉아져 가지고 신앙이 시들어 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증세는 이렇습니다. 예배에 대한 기쁨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교회 나오기가 싫어졌어요. 예배 드리기가 싫은 겁니다. 옛날에는 찬양을 해도 그렇게 좋고 기도를 해도 간절하게 기도했는데 찬양이 나오지 않습니다.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냥 구경꾼이 되어 있는 거에요. 가만히. 그것은 이미 심각하게 작은 여우가 여러분의 신앙의 뿌리를 많이 갉아먹은 상태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기쁨이 사라졌을 때 감사가 사라졌을 때 신앙의 열정이 사라졌을 때 이미 작은 여우가 여러분의 마음을 많이 갉아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지금도 늦지 않았기 때문에 빨리 회개하고 작은 여우들을 잡아내고 다시 회복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찬양이 회복되고 기도가 회복되고 감사가 회복되고 기쁨이 회복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작은 여우는 잘 안보여요. 살짝 들어와서 둥지 틀고 땅을 파고 들어가서 뿌리를 갉아먹기 때문에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이중적인 잣대를 갖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굉장히 엄격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못한 것은 용서하지 않고 낱낱이 죄목을 파헤쳐서 돌을 던지지만 자기의 죄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똑같은 것인데 저 사람이 지은 범죄는 큰 범죄고 내가 지은 것은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의 기준입니다.
예외가 없어요. 누구나 다 똑같습니다. 왜,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은 자기가 자기의 왕이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질적인 어떤 사건에 부딪히고 나면 자기가 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깨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3절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주여! 내가 주님 앞에 아주 작은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 모습을 내가 발견하게 될 때 어떤 모습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다 그 모습을 제거해 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의 신앙의 뿌리를 갉아먹는 작은 여우들을 철저히 잡아내야 합니다. 말씀의 덫을 수백 개 놔서라도 작은 여우들을 다 그 덫에 잡혀서 여러분 삶 속에서 완전히 떠나게 해야 됩니다. 더 이상 여러분의 삶 속의 기쁨을 빼앗아가면 안됩니다. 감사를 빼앗아 가면 안 됩니다. 여러분 삶속에 자꾸 분노를 만들고 미움을 만들고 원망을 만들고 다툼을 만드는 것은 다 작은 여우의 여러분의 신앙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계략인 것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1절 22절은 말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주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사랑을 빼앗아가는 모든 작은 여우를 뿌리 뽑기를 바랍니다. 다 잡아내기를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불신앙의 모습은 떠나갈 지어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해서 약속의 말씀 붙잡고 주님만 바라보며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사랑이 전부입니다. 이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여기까지 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덩어리이고 돌아 서기만하면 주님을 배반하는 그러한 연약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사랑하고 또 사랑하시고 또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고 우리를 꽉 붙드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렇게 잘못된 길을 가고 내가 그렇게 못되게 했어도 난 너를 사랑한다. 난 너를 버리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영원토록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이 사랑에 감동되어 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했던 우리 자신을 회개하고 하나님보다 내 자신을 더 사랑했던 내 자신을 회개하고 오늘 첫사랑을 회복하는 귀한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평생 예수에 미쳐서 살기를 원했던 이용도 목사님. 일제시대 때 큰 부흥의 역사를 일으켰던 이용도 목사님. 예수에 미쳐서 예수처럼 살다가 예수처럼 죽기를 원했던 이 목사님은 예수님처럼 서른 살에 사역을 시작해서 서른 세 살에 돌을 맞고 순교합니다.
열세 살부터 기도생활을 시작해서 그가 자라나면서 삼일 운동에 가입해서 옥에도 여러 번 갇혔는데 그가 옥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이제는 내가 사람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갑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주의 종이 되어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불을 받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을 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내 한평생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과 하나되어 우리 주님위해 살다가 주님 앞에 가겠다고 그는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항상 목사님의 부흥회는 눈물이 넘쳐났습니다.
어느 날 어느 시골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는데 목사님이 강단에 딱 서시니까 그 교회가 사람들이 얼마나 교만하고 마음이 굳어져 있던지 팔짱끼고 딱 ‘젊은 목사가 설교 어떻게 하는지 보자.’ 그 모습 앞에 한마디 설교도 못하고 주님과 함께 울었습니다. 주님이 그들을 보시고 슬퍼하시는 모습이 마음속에 너무나 다가와서 한참 울었습니다. 그 눈물이 모든 성도들의 마음을 다 녹여서 눈물바다를 이루고 그날 이후로 그 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주의 사랑에 삼키운 바 되고, 주는 나의 신앙에 삼키운 바 되는 이 합일의 원리여! 오, 나의 눈아, 주를 바라보라. 일심으로 주만 보라. 잠시라도 한눈팔지 말고 오직 주만 바라보라!” 평소에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미치자, 크게 미치자! 예수를 위해 미치는 것만이 우리 소원이다!”
고난받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늘 기억하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돌보아 주셨던 가난하고 헐벗고 버림받은 자들의 친구가 되어 사셨습니다. 그는 늘 가난한 자들의 이웃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왔습니다. 부흥회에 나가서 사례비를 받으면 다 그들에게 나눠줬습니다. 부흥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면 근처의 거지들이 다 몰려왔습니다.
그는 생전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원하는 바는 세상이 버린 사람, 세상에서 쫓겨나거나 몰리워가는 사람을 받아 그를 거두어 손을 잡고 울며 사는 것입니다. 내쫓는 것은 당신들의 자유요 의무일는지 모르거니와, 나는 쫓기우는 자를 거두어 그들과 함께 우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은 돌을 들어 던질 때 같이 돌을 던지기 바쁩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그를 매장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용도 목사님은 다른 사람들이 다 돌을 던질 때 그 돌 맞는 사람에게 가서 덮어주고 대신 돌을 맞아주면서 함께 울어주고 함께 손잡고 그의 삶을 이끌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여 예수님에 미쳐 예수님을 위해 살다 예수님을 위해 죽은 목사님의 모습이고 이제 앞으로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사순절의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면서 주님 내가 주님을 향한 이 사랑을 다시금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처음 예수님 믿었을 때 은혜 받았을 때 그 사랑의 모습을 회복하여 내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게하여 주시고 내 맘의 깊은 곳에서 생수가 넘쳐나게 하여 주시고 주님 향한 사랑의 열정이 넘쳐나서 나의 남은여생 오직 주님 사랑하며 주님 위해 살다가 주님 앞에 가기 원합니다.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함께 가자. 너에게 이제 희망의 봄이 다가왔다. 나와 함께 가며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아내고 나와 함께 기쁨을 누리자.” 주님 말씀하십니다. 이 사랑의 기쁨과 감격 속에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입술로는 사랑을 이야기 했지만 마음에는 미움 시기 질투 원망 불평 온갖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했던 저희들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죄인인데 남만 판단하고 남만 정죄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 다 주님 앞에 회개하고 사랑을 회복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의 자녀들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지면보기
행복으로의 초대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