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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2019.02.24

<말씀봉독>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요 6:5-13)

<등단 후 멘트>

귀한 은혜의 찬송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 첫째도 예수님, 둘째도 예수님, 마지막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우리가 하루 한 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오늘 우리가 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딱 예수님께만 고정시키고 절대로 눈을 떼면 안 됩니다. 눈을 떼면 우린 풍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 손 붙잡고 험한 풍랑을 헤쳐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442장(통 499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

(1절)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2절)

그 청아한 주의 음성 우는 새도 잠잠케 한다

내게 들리던 주의 음성이 늘 귀에 쟁쟁하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3절)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간절히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십시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우리 구세주 예수님 때문에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인생의 고비고비 힘들고 어려운 순간순간마다 우리를 붙들어주시는 주님의 은혜 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주님 손 꼭 붙잡고, 꼭 붙잡고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저희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주님의 사랑 가운데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리고 절망에 처한 자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눠주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할렐루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입니다. 요한복음 6장을 본문을 해서 함께 은혜 나눕니다. 말씀의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경험 가운데 가장 큰 경험은, 가장 감격적이고 놀라운 순간은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 순간이요, 그 경험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죄와 절망과 상처 속에 사는 인생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주님의 사랑에 힘입어 믿음으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인생이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인생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면 그렇게 됩니다. 이 귀한 예수님을 여러분이 만났으니 한평생 예수님의 손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많은 기적을 행하셨는데 그 기적 가운데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에 다 기록된 기적은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어린 소년이 다섯 개의 떡과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바침으로 그곳에 모인 남자만 5천 명, 여자와 아이를 합쳐서 약 2만 명이 배불리 먹고 열두 바구니가 남은 이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이 있습니다.

1. 우리 형편을 아시는 주님

무엇보다 주님이 우리 형편을 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예수님이 어디 계시다’하는 소문이 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요한복음 6장 5절을 보니까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 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 주님이 주신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 병을 고치기 위해서 주님께 몰려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그 모든 사람들을 다 불쌍히 여기시고 저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저들의 모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 34절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주님의 앞에 나오는 그 많은 무리를 볼 때 목자 없는 양같이 그들이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양들은 목자가 없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양들은 워낙 고도근시이기 때문에 눈이 나빠서 1m 앞을 내다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목자는 자기 바로 뒤에 가장 고참되는 양을 앞세우고 그 뒤를 양들이 따라오게 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들의 인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배고플 때 풍성히 먹을 양식이 있는 풀밭으로 인도하시고, 목이 마를 때 저들을 물가로 인도해서 목의 갈증을 사라지게 해주는 공급자가 되어서 양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나운 맹수가 쳐들어 올 때는 맹수를 막아내는 보호자로서 목자는 양들의 목숨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양들에게 있어서 목자는 인도자요, 공급자요, 모든 것이 되는 그들의 주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고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시는 공급자가 되시고 우리를 모든 죄악의 권세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보호자가 되십니다. 우리의 영원한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철저히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주님께 나온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의 병을 고쳐주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14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누가복음 9장 11절입니다.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언제나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주님이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 주님 앞에 나와 주님의 긍휼하심을 체험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세상 사람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내가 상처 입고 쓰러져 눈물을 흘릴 때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우리를 그 절망에서 일으켜주시고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그 품에 꼭 안아주시는 것입니다. “내 아들아. 내 딸아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냐.” 그 사랑의 품에 우리를 안아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으로서 평생 구걸하며 살아야 했던 바디매오가 어느 날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오셨는데 그 분 앞에만 가면 모든 병이 다 고침을 받는다더라. 그래서 바디매오는 이제나 저제나 내가 언제 예수님을 만날까 사모하며 기다렸는데 어느 날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예수님이 오신다.”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외쳤습니다. “조용히 해라! 시끄럽다. 거지 주제에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냐.” 그러나 그는 더욱 목청을 높여서 있는 있는 힘을 다해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의 부르짖음이 주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7절에 보니깐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말씀합니다. 주님이 발걸음을 멈추시고 “저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라.” “예수님이 너를 부르신다.” 그러니깐 바디매오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인 겉옷을 내던져버리고 주님께 달려 나아갔습니다. 주님께서 물으십니다.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예수님! 제 평생소원인 보는 것, 보기를 원하나이다.” 주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주님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게 있는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할렐루야! 주님은 지금도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이 주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며 믿음의 사람으로 주님 앞에 나올 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히브리서 13잘 8절로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주님은 변하신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약해졌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강단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주님께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문제 가운데 슬픔 가운데 고통 가운데 질병 가운데 살고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강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강한 믿음의 은사를 소유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나올 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기적을 체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하고는 절대 같이 일하지 아니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기적도 베풀지 아니하십니다. 늘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원망 불평하고 속이고 사기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절대로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사람들만이 주님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허물 많고 부족하고 연약해도 주님 앞에 주님을 감동시키는 믿음만 갖고 있으면 그 믿음만 갖고 있으면 주님이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주여! 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주님 앞에 그 믿음을 보이게 하시고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 기적이 지금 이 자리에 내 마음 가운데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가정 가운데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의 사람과 일하셨습니다. 어떻게 그 믿음을 보일 수 있습니까? 우리가 말씀과 동행할 때 그 믿음을 보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씀이 시작합니다. 2절에 가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이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 말씀을 기초해서 예수님을 부여잡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부여잡지 못하는 것이고 예수님께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꽉 붙잡고 말씀에 서서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주님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주님이 되십니다. 마가복음 6장 35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주님의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아서 아침부터 하루종일 말씀을 들으면서도 배고픈 것을 몰랐습니다. 너무 은혜를 받아가지고, 주님 말씀에 빨려 들어가서 감동 속에 그들이 하루종일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서대문 시절에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는지 매 예배 시간마다 성령의 용광로였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우리 조용기 목사님이 이 두 주일 동안 요한계시록 강해의 말씀을 전하시는데 얼마나 은혜가 되던지 매일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 두 시간 넘게 설교하시고 두 시간 반씩 설교하시는데 그냥 넋이 빠져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은혜가 강하게 임하면 다른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 것입니다. 날이 저물고 말씀을 마무리해가니까 그때서야 ‘어! 배고프네.’ 배고픈 생각이 났습니다.

때때로 인생이 밤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어둠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잘 되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곤두박질해서 파산 지경에 이르고, 한 번도 감기를 안 앓았던 건강한 몸이 어느 날 병원에 가보니까 중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고 등을 돌리고 떠나가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가게 될 때 그 영혼의 밤이 깃들어 오는 것입니다.

밤은 원래 우리에게 안식을 위해 주시는 것인데 안식이 다가오지 않을 때는 그 밤이 우리에게 절망의 밤이 되고 고통의 밤이 되고 슬픔의 밤이 되고 상처의 밤이 되는 것입니다. 절망에 가라앉고 있을 때 제자들은 말합니다. 마가복음 6장 36절에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제자들은 문제 해답의 그 방법을 몰랐습니다. 예수님 모시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이 문제 해답의 길이 되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예수님 저들 빨리 해산시켜서 가서 흩어져가지고 자기 동네에 가서 뭐 사 먹게 하세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를 절망에 처한 모습으로 그대로 돌아가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절망의 눈물을 철철 흘리고 밤잠을 자지 못할 때 우리를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라 곁에 오셔서 우리를 꼭 안아주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참으로 귀하고 사랑스럽고 은혜가 풍성하신 우리 주님이신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6장 37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주님이 말씀하시니 요한복음 6장 7절에 보면 빌립이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선생님! 이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우리가 음식을 구해다 줄 수 있습니까? 어림잡아서 한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한데요” 한 데나리온이 하루의 품삯이기 때문에 이백 데나리온은 이백일 나가서 돈을 번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달에 이십일 일한다 치고 열 달 치 월급입니다. 한 달에 삼 백만 원 버는 사람은 삼천만 원입니다. 이백만 원 번다면 이천만 원입니다.

“예수님! 최소한도 이삼천만 원은 드는데 어디서 그 돈을 구합니까? 우리 돈도 없잖습니까? 설사 돈이 있어도 갑자기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음식을 어디서 구해옵니까?” 빌립은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안 된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하나님은 부정적인 사람하고 함께 일하지 아니하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입술에서 긍정적인 고백을 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것입니다. “안됩니다, 할 수 없습니다, 끝났습니다, 망했습니다.” 하는 사람과 일하지 아니하십니다. 주님 안에서 다시 일어나야 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고백을 하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안드레라고 하는 제자는 예수님 말씀 듣고 나가서 찾았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먹을 것을 갖고 오신 분 없습니까? 예수님이 먹을 것을 갖고 오라고 말씀하시는데 먹을 것을 갖고 오신 분 혹시 있으면 저에게 좀 전해주세요.” 근데 어린 소년이 아침에 엄마가 나가서 배고플 때 먹으라고 간식으로 싸준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그때 주님 앞에 내놓습니다.

“선생님! 이거 예수님께 갖다 드리세요. 엄마가 아침에 나올 때 도시락 싸주신 건데요. 갖다 드리세요.” 어린아이 도시락이니까 머 조그만 주먹밥 다섯 개 하고 물고기 두 마리라 그래 봐야 큰 멸치 두 마리 있겠지 뭐겠습니까? 그러니까 한 사람 어른이 먹긴 부족한 양인데 이 어린아이는 참으로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 원하신다니깐 그냥 “주님 원하신다면 내 다 드릴게요.”

할렐루야! 이 어린아이의 믿음이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 믿음이 안드레 믿음과 합쳐져서 주 앞에 드릴 때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이 탄생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8절 9절은 말씀합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빌립은 불가능을 말했고 안드레는 가능을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이거 갖고 누구 코에나 붙이겠습니까.” 이 말을 뺐더라면 더 점수를 땄을텐데 이 말을 했어요. 사람이니까. 가지고 오면서도 “예수님! 제가 구할 수 있는 것은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린데요.” 주님이 그 떡을 받으시고 감사기도를 드리십니다. 요한복음 6장 11절입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간절히 기도한 후에 떡을 떼어 주시니 떼면 또 나오고, 떼면 또 나오고, 떼면 또 나오고, 떼면 또 나오고, 떼면 또 나오고 거기 있는 이만 명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거두었더니 열두 바구니가 차고 넘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주님의 기적입니다. 주님의 기적은 우리의 믿음 위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면 그 믿음 위에 주님이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할지라도 믿음을 갖고 주님께 나아오면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신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좋으신 우리 주님이 지금도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와 기적을 베풀기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 앞에 믿음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날이 저물어 어두워서 인생의 황혼이 깃들어서 절망의 밤이 깊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두 손 놓고 좌절하고 상처를 받고 주저앉아 있을 그때에 다시 일어나십시오. 다시 일어나십시오. 주님께 나오십시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작은 믿음을 가지고 나오면 그 믿음 위에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워싱턴순복음교회를 지을 때 미국교회 성도가 새벽에 나와 기도하다가 주님 음성을 듣고 자기가 갖고 있는 집 세 채를 교회건축물로 쓰라고 저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하고 자기가 사 놓은 집 두 채 하고 집 세 채 문서를 갖고 온 것입니다. “목사님! 목사님! 제가 기도하는데 주님의 음성을 들었는데요! 목사님 교회 건축하는데 제가 갖고 있는 것 다 갖다 드리라 해서 제가 살고 있는 집하고 제가 갖고 있는 집 두 채 하고 집 세 채 문서를 갖다 드립니다.” “집사님! 집을 바치면 집사님 어디 가실 때라도 있습니까?” “아닙니다. 주님 말씀하셨으니까 마음 바뀌기 전에 먼저 바치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요. 이것은 절대 비밀로 해주세요. 이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니까 내가 기쁜 마음으로 오른손이 한 것 왼손이 모르게 그런 마음으로 드립니다. 그리구요. 목사님 부탁이 있는데요. 헌당예배 때 제가 참석할 터인데 그때 아 저 분 일어나세요 저 분이 집을 세 채 바친 분입니다. 저는 끝까지 주님 앞에 이것을 제 믿음의 작은 정성으로 드리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저에게 헌당예배 때 목사 가운 두 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2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목사 가운을 결혼 주례할 때마다 입습니다. 하복과 동복을 줬는데 제 결혼식 주례 와보시면 그 옷을 볼 수가 있습니다. 28년 지나도 옷이 새 옷 같아요.

그런데 2년 후에 제가 한국에 들어올 때 그 집사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회사가 컴퓨터 프로그래밍하는 회산데 국방부 프로젝트를 수주받았다는 것입니다. 국방부 프로젝트를 땄는데요. 5천만 불짜리를 땄습니다. 할렐루야!

26년 전에 오천만 불이니까 550억 정도의 프로젝트를 땄으니까 지금 한 5천억 정도 되는 프로젝트를 딴 것입니다. 그가 주님 앞에 드린 집 세 채는 미국 집이 30년 월부로 내는 것이기 때문에 월부를 다 제하고 나면 세 채를 합쳐도 한 15만 불밖에 안 됐을 터인데 하나님이 300배 축복을 주신 거에요. 그 믿음 보시고 하늘 문을 여시고 부으신 것입니다. 이 복을 다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차고 넘치는 은혜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차고 넘치는 은혜입니다. 요한복음 6장 12절 13절입니다.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님의 은혜는 차고 넘치는 은혜입니다. 절대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자람이 없습니다. 차고 넘치는 은혜입니다. 차고 넘치는 은혜인 것입니다. 지금 내가 손해 보는 것 같고 지금 내가 망하는 것 같고 지금 내가 아파서 절망의 자리에 누워있는 것 같지만, 결국 주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가 일어나서 차고 넘치는 은혜를 차고 넘치는 은혜를 다 받게 될 것입니다. 절망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뒤로 물러가지 마십시오. 차고 넘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 인생은 넉넉한 인생입니다. 부족한 인생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인생이 아닙니다.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주님 은혜에 감사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인생이지 늘 쪼그리고 앉아서 남의 눈치 보고 한숨 쉬며 탄식하는 인생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차고 넘치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게 부끄럽게 사십니까? 예수 믿고 우리가 하나님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감격적인 일인데. 이젠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사십시오. 믿음의 사람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조상 아담을 지으시고 주신 축복의 말씀을 보십시오. 창세기 1장 28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만물의 영장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는 복을 주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주신다고 하는 약속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아들 이삭에게는 백배나 되는 축복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그 손자인 야곱에게는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복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차고 넘치는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가슴을 당당히 펴고 어떠한 환란과 풍파가 몰아닥쳐도 절대 요동하지 말고 주님 나와 함께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믿음으로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기 원합니다. 믿음으로 전진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실수 많고 상처 투성이고 지난 상처로 인해서 몸부림치는 우리들이지만, 예수 믿고 새사람 되었으니 이 내 모습 이대로 주님 앞에 내 자신을 드리기 원합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님 받아 주시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님 내 모습 이대로 주님 받아 주시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감동시켜드린 이 어린 소년처럼, 안드레처럼 보이는 믿음을 주님 앞에 드리는 그래서 큰 기적을 체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무엇이관데 주님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셔서 우리를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시고 우리에게 이와 같은 은혜를 주시는지 주님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이제 믿음으로 일어나서 주님께 믿음을 보이며 한평생 믿음의 사람으로 살기 원하오니, 주님 우리에게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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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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