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봉독>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잠 8:17, 30-31)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진짜로 예수님 안에서 날마다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습니다. 오늘 찬송을 함께 부르려고 하는데요. ‘복된 예수’라고 하는 찬송입니다. 잘 몰라도 ‘복된 예수’만 열심히 하면 이 노래는 따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찬송을 부르면서 예수님의 은혜가, 사랑이, 예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게 되길 바랍니다.
<복음성가: 복된 예수>
(1절)
내 사랑하는 그 이름 예수 복된 예수
내 귀에 음악 같도다 예수 복된 예수
(2절)
내 맘에 계신 그 이름 예수 복된 예수
내 눈물 씻기는 예수 복된 예수
(3절)
저 천국 예비하신 주 예수 복된 예수
날 구원하신 그 이름 예수 복된 예수
(후렴)
아 귀하다 그의 이름 갈보리 산에 어린양
귀한 생명 버리셨네 예수 복된 예수
한평생 예수님만 사랑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 귀한 사랑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아 귀하다 그의 이름 갈보리 산에 어린양
귀한 생명 버리셨네 예수 복된 예수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는 만입이 있어도 감사를 다 드리지 못합니다. 날 위해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 그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 은혜, 그 사랑, 그 축복, 그 기적, 그 놀라운 주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의 역사를 통해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그 사랑을 받고도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남 탓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저들을 용서하여주시고 축복의 새해에 우리 삶 가운데 주님의 사랑이 넘쳐나서 넘치는 감사, 넘치는 사랑, 넘치는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며 주의 사랑을 전하며 살다가 먼 훗날 주님께서 부르실 때 기쁨으로 우리 주님 맞이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 가운데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아 귀하다 그의 이름 갈보리 산에 어린양
귀한 생명 버리셨네 예수 복된 예수
<설교말씀>
할렐루야!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나의 사랑을 입으며”입니다. 오늘 제목을 따라해주세요.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의 사랑을 입으며” 잠언서 8장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가 한평생 살아가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힘과 능력,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는 그 힘은 바로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 이 사랑 하나 가지면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기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본체가 되십니다. 이 사랑을 우리에게 물 붓듯이 부어주셔서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사랑하며 살도록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넘치는 그 감사와 감격, 그 사랑을 가지고 모든 문제를 이기고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가 사랑하는 것
오늘 말씀 가운데 보니까 우리가 사랑해야 되는 것에 대해 이렇게 8장 17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라고 말씀했습니다.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가 제일 먼저 우선순위로 해야 되는 사랑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신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날 위해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를 택하여 하나님 자녀 삼아주신 그 은혜에 우리는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만 됩니다.
다시 고백합니다. 시편 18편 1절에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나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 나의 생명보다 귀한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늘 잠언 8장 17절 본문 말씀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사람을 사랑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보내주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자라나면서 형제들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또 나중에는 영원히 함께할 동반자를 사랑하고, 그렇게 사랑의 일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사랑이 희생을 동반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사랑합니다.” 말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희생, 배려, 존중, 이해가 동반될 때 온전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사랑으로 불렸던 영국 왕 에드워드 8세와 심슨 부인의 사랑은 온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었습니다. 그는 총각으로 왕에 올랐습니다. 1936년 1월 20일 영국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이나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에서 온 심슨 부인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사랑에 빠졌습니다. 왕이 되고 난 다음, 이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의회를 설득하고 왕실을 설득하고 했지만, 모두가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영국의 자존심이 있지 미국에서 건너온 두 번 이혼한 여자를 어떻게 우리나라의 국모로 모실 수 있느냐! 국회에서 반대하고, 왕실에서 반대하고, 온 국민이 반대하고 11개월 동안 왕으로 설득하고, 설득하고, 또 설득했지만 결국 설득하지 못해서 그는 12월 11일 모든 국민에게 “내가 사랑을 택하기 위해서 왕좌를 내려놓겠습니다.” 선언하고 왕에서 내려와서 자기 동생에게 왕좌를 물려줬습니다.
그때까지 그가 가지고 있는 타이틀은 인도 황제, 영국 왕 그리고 전 세계 영국이 지배하고 있는 모든 나라의 왕이었는데, 사랑 하나 때문에 다 내려놓고 그리고 평민으로 돌아가서 프랑스 파리를 건너가 결혼식을 하게 됐는데, 기록에 따르면 하객이 열여섯 명. 영국에서 건너 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 부인을 아는 열여섯 명의 하객을 모시고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평생 그 부인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영국이 그를 용서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왕을 버리고, 왕좌를 버리고 이혼녀랑 살 수가 있냐! 그래서 죽을 때까지 영국 왕실에서 그를 안 받아줬는데, 죽고 난 다음에 그를 영국 왕실에서 용서해 주어서 왕실에 있는 묘지에 묻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인도 묻히게 해주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모든 것을 희생하고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도 이 모든 것을 희생했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은 이렇게 내 가진 모든 걸 다 포기하면서까지도 우리 주님을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코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돈을 많이 가진 분들 앞에 하면은 갑자기 말문이 막힐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한 5천억 재산이 있는데, 그걸 포기하고 예수님을 택할 수 있겠습니까?” 할 때, “네!”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5천억이 아니라도 100억만 있다 해도, “100억 다 포기하고 예수님을 택할 수 있겠습니까?” 쉽게 “네!”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도 이렇게 희생을 하는데, 우리를 위해서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인들 아까울 것이 있겠습니까! 올해 우리는 결심해야 합니다. “이제 내 모든 것 다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주님이 원하신다면 나의 생명까지라도 아낌없이 드리는 그와 같은 주님의 자녀들이 되기 원합니다. 세상의 물질도, 인기도, 명예도 있다 사라지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목숨 걸고 살지 않게 하시고 나의 생명보다 귀한 예수님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 다 드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인간의 사랑은 다 완전하지가 않습니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헤어지는 것이 인간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늘 젊은이들이 만났다가 헤어지고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평생 같이 살기로 결혼한 그 부부조차도, 어떤 부부는 신혼여행에서 깨지는 부부가 있어요. 사람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아무것도 아닌데 틀어져서 평생 원수처럼 지내는 분이 있습니다.
세상의 돈과 권력과 명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깊은 절망에,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섬길 때 필요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지, 그것이 우리의 전부가 되면 그때로부터 우리는 파멸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력을 가질 때 권력을 가지고 백성을 잘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높은 위치에 있을 때 그 위치에서 잘 섬길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 것인 양 휘두르면 그것은 파멸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사랑의 감동에 의해서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1서 4장 10절은 말씀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능력이 없어요.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에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죄 덩어리였기 때문에. 그런 우리를 불쌍히 보셔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사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고 그 보혈의 은혜로 우리의 모든 죄를 덮어주시고 사하여주시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하고 불러 주셨습니다.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그 우리의 삶이 행복하고 기쁘고 주님의 은혜가 풍성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4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이 우리를 모든 절망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우리를 높여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의 말씀을 사랑해야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우리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된 우리 주님의 귀한 백성들 사랑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요한일서 4장 7절과 8절은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형제자매를 뜨겁게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는 다시는 교회 내에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물고 뜯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다투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 하면서 같은 구역식구들끼리 조그만한 것 가지고 의견이 안 맞는다고 원수처럼 다투고 고개를 돌리며 지내고 있다면 우리는 참 부끄러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주님의 자녀들인 것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뭐가 잘난 것이 있어서 뭐 자랑할 것이 있다고 그렇게 성도들 내에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분노하고 다투고 미워하고 절대 용서 못해 이러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인지 회개해야 됩니다. 주여! 오늘 이후로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여주옵소서.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용납하고 화목하고 화해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저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대도 내가 먼저 가서 내가 주님 안에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는 그러한 용기를 허락해주시옵소서 그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되고 축복받는 길인 것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우리가 찾아야 할 것
둘째로 성경은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언 8장 17절의 하반절은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억압받고 있는 사람은 자유를 찾아 헤매고 있고, 절망에 처한 사람은 희망을 찾아 헤매고 있고 몸이 수시로 아픈 사람은 유명한 의사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우리가 찾는 것은 우리에게 참된 만족함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왜? 우리 모두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만족과 일시적인 답은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어도 영원한 만족과 영원한 응답은 문제 해결자 되신 우리 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린 영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진정한 문제 해결은, 영적인 갈급의 해소함은 우리 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전도서 3장 11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주님을 간절히 찾는 자가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니까 이 ‘간절’이라고 하는 말에 ‘새벽’이라고 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이른 새벽에 주님을 찾듯이 간절히 주님을 찾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눈을 떴을 때 우리 주님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나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주식 시세만 눈 빠지게 보고 잠을 자다가 눈을 뜨면 오늘 주식 시세 어떻게 되었나. 여러분, 주식이 여러분의 삶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저는 주변에서 주식 했다고 해서 돈 벌었다는 사람을 한 사람도 못 봤어요. 그것이 우리의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새벽을 깨우는 새벽형 인간이 되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도하고 말씀보고 주님을 찾으면 그 하루는 열린 문의 복이 임할 것입니다. 시편 57편 8절입니다.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새벽을 깨우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코드 가운데 하나가 새벽형 코드가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잘 때 먼저 일어납니다. 먼저 일어나서 하루를 구상하고 나아갑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새벽형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새벽에 깨자마자 주님을 찾고 기도하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늘 영적으로 깨어있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언제 우리가 은혜를 받느냐 주님을 찾을 때, 지금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의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지금 주님이 우리를 만나시는 것입니다. 찬양할 때 지금, 예배할 때 지금 주님이 우리를 만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나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우리를 치료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우리에게 은혜와 기쁨을 충만하게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지금 이 시간에 주님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드릴 때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기도할 때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찬양을 부를 때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왜, 지금 주님이 만나시니까. 지금 주님을 만나서 우리가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함 받고 주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주님 앞에서 위대한 주님의 자녀로 변화되어지고 치료받고 회복되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모스 5장 4절은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죽음에서 일어나리라. 절망에서 일어나리라. 문제 가운데 일어나리라. 언제? 나를 찾을 때. 왜 사람을 찾아다닙니까. 힘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합니까?
잠시 잠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중에 잘못 엮여서 그것이 더 큰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찾아야 됩니다. 주님을 찾아야만 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우리 주님을 찾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길과 진리와 생명되신 예수님을 찾아 만나서 변화 받고 치료받고 회복되고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인생의 본분
주님을 만날 때 셋째로 주님께서 우리 인생의 본분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주님의 사랑을 받고 택함을 받았는지 잠언서 8장 30절 31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 주님 사랑의 감격 속에 살아가는데, 사랑의 감격 속에 살아가는 그 삶의 원리 첫 번째가 무엇이냐, 따라 하세요. ‘그 곁에 있어서.’
1)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예수님 곁에 바짝 달라붙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예수님 곁을 떠나면 안 됩니다. 예수님 손 꼭 붙잡고 주님 제 손 놓지 마세요. 열두 해 혈루병 앓는 여인이 예수님 옷자락이라도 잡으면 낫겠다고 하는 그 심정으로 주님을 꼭 붙잡고 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곁에 붙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꼭 붙어 있어서 떨어지지 말고 함께 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한평생 제 곁을 떠나지 마세요. 주님 없이는 저는 하루 한 시간도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 제가요,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요. 주님 나 아시잖아요. 주님 어려운 이 자리에서 저를 붙들어 주시고 일으켜 주세요” 이렇게 날마다 고백하세요.
그러면 주님이 여러분 곁에 있어서 여러분과 동행하며 여러분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시고 절망의 자리에서 여러분을 일으켜 주시고 여러분 삶 가운데 기쁨과 평안함을 넘치게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영광위하여 일하게 하십니다. 이사야 43장 7절은 말씀합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로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주님 곁을 떠나지 마세요. 말씀을 묵상하면서 찬양하면서 기도하면서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예배드리면서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여러분 일생이 주님과 동행하는 일생이 되면 여러분이 일생일대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올해 그렇게 살아서 올해가 지금까지 살아온 해 중에 가장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생애 최고의 해로 여러분에게 은혜가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창조자가 되어
주님과 동행하면서 어떻게 해야 되나. 그 다음에는 주님과 함께 창조의 역사를 일으켜야 되요. 따라하세요, 창조자가 되어. 이제 우리는 그냥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창조자, 이제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야 됩니다. 절망이 있는 곳에 우리가 가면 희망이 창조되고, 슬픔이 있는 곳에 우리가 가면 기쁨이 창조가 되고, 상처가 있는 곳에 우리가 가면 위로함과 평안이 창조가 되고, 싸움박질하고 문제가 있는 곳에 우리가 가면 화평의 역사가 창조가 되고, 그러한 은혜가 임하게 되길 바랍니다.
과거의 어두움에 처해서 슬피 울고 있는 우리에게 가면, 광명한 빛이 비춰져서 희망의 내일이 밝아오는 그러한 창조의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하던지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만 나타내게 되기를 원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할렐루야! 여러분 주님의 사랑으로 무장해서 주님과 동행하며 창조의 역사를 일으키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여러분을 통해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고 허다한 허물도 덮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은 어떠한 고난도 이겨내게 만들고 고난을 축복으로 바꿔 놓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뇌성마비로 태어나 평생 절망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송명희 시인은, 캄캄한 밤에 부모님이 혼자 내버려 두고 일을 나갑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캄캄한 밤에 뇌성마비로 온몸이 비틀려서 말 한마디도 비틀어야 할 수 있는 그런 절망 가운데 라디오를 통해서 극동방송에서 들려오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캄캄한 밤에 희망의 빛이 생명의 빛이 비춰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니까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난 죽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살아 무엇하나 그러한 마음이 바뀌어져서 이제는 살아야 되겠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되겠다. 그래서 하루 다섯 시간씩 기도하고 한글을 독학하면서 성경을 무려 30독을 했습니다. 3독이 아니라 30독. 여러분 할렐루야. 두 눈 멀쩡히 뜨고 어디 하나 아픈 데가 없는 사람이 “아이고 나는 3독도 못했는데.” 한다면 회개하고 올해는 여러분 성경 깊이 묵상하고 성경 통독을 통해서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찬양시를 백 여곡을 짓고 천오백 회 간증을 나가며 그러다 몸이 힘들고 부쳐서 많이 아파졌습니다. 그는 그때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오른 팔을 목에 끼고 엎드려서 성경을 하루 종일 읽고 왼발로 종이를 누르고 엎어져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려니 왼쪽 목이 항상 아팠다. 목에 몽우리가 생기고 잠을 못 잘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기도와 자제력으로 이길 수 있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나’라고 하는 그 시도 그분이 지은 것인데요,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네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인생을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주십니다. 시편 91편 14절 말씀을 다시 기억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시편 37편 4절입니다.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주님께서 주님을 사랑하는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을 다 이뤄주실 것입니다.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아무리 인생의 밑바닥에 내동댕이쳐져도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과 동행하시며 여러분 눈에서 눈물을 다 닦아 주시고, 내가 너와 함께한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한다, 힘내라. 힘내라. 네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그 이름 예수 복된 예수, 그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감사한지, 2절에 가면요, 우리를 감동시키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 맘에 계신 그 이름 예수 복된 예수
내 눈물 씻기는 예수 복된 예수
아 귀하다 그의 이름 갈보리 산에 어린양
귀한 생명 버리셨네 예수 복된 예수
이 사랑의 감동 속에 한평생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몸 버려 피 흘려서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사랑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 호흡 다하는 그 날까지 예수님 사랑하고 예수님 닮아가고 예수님을 증거하며 예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다가 먼 훗날 주님 앞에 다 가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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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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