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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의 대화
2018.05.1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중략)…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로마서 8장 1~17절)

 ‘성령님과의 대화’라는 제목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사람은 무생물이나 동물과는 대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인간과 달리 무생물이나 동물들은 인격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1.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인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인간은 영적 존재로 지어진 것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을 가진 인간은 영이신 하나님과 대화할 수가 습니다. 성경을 보면 죄를 짓기 전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언제든지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존재로서 자기 자신과 대화하고 자기 이웃과 대화하고 자기보다 높은 하나님과 대화할 수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린이날도 있었고 어버이날도 있었는데 요즘 사는 생활이 너무 바빠서 그런지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가 대단히 부족합니다. 하지만 자녀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와 대화를 나누고 서로 소통이 있어야 됩니다. 자녀는 자녀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대화가 없으면 서로 잘못된 일이 생겨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고 사람들은 집에, 교회에도 나오지 아니하고 기도할 시간도 없고, 성경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도우심도 얻지 못하고 살아갈 힘과 용기도 얻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살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을 보면 베드로는 성도들을 ‘나그네’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길을 혼자서 외롭게 걸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것입니다. 전도서 4장 12절은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혼자서가 아니라 좋은 친구와 함께 가면 외롭지 않고 또 힘든 일이 있어도 잘 이겨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해 주신다면 우리 마음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함께 길을 가면서 아무 말도 없이 걷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함께 걷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과 대화하기 단절된 것은 함께 길을 가는 사람이 아무 말도 없이 걷는 것과 같습니다. 대화도 하지 않고 성령님 모시고 그냥 걸어가면 혼자 걸어가는 것과 꼭 같습니다. 성령이 계실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과 대화가 단절된다는 것은 함께 길을 가는 사람이 말도 없이 걸어가는 것과 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께 우리의 속사정을 말씀드리고 또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지, 정, 의를 가지신 성령님

 성령님은 단순히 영향력이나 신비한 힘이 아닙니다. 성령은 인격을 가진 하나님인 것입니다. 아버지 인격, 아들의 인격처럼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지식, 감정, 의지를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첫째 성령님은 지성을 갖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신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성령께서 지성을 가진 분이심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살아가는 생활 속에 성령은 낱낱이 속사람을 보고 아십니다. 지성을 가진 성령님은 우리 어려운 문제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성령을 의지하면 우리의 문제를 다 아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해 주시는 것입니다.

 한 구역장님이 구역예배를 인도하는 동안에, 오랫동안 집을 하나 마련하려고 돈을 모았는데 그 돈 생각이 났습니다. 구역예배 내내 구역예배는 안 되고 속이 불안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방언기도를 했습니다. 왜 불안하지 모르니까 성령님은 알고 계시니까 방언기도를 약 2시간동안 했는데 마음에 평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방언기도를 했는지 몰랐는데 집에 와서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방안에 의복들이 사방 전신 흩어져 있고 중요한 것들이 마당에 질펀하게 내버려져 있습니다. 틀림없이 도둑이 들어왔던 모양이었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예수에 미쳐가지고 살림 제대로 안하고 가정이 이 모양 이꼴이라는 소문이 걱정되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고함을 치고 안방에 뛰어 들어가서 서랍을 당겨보니 이상하게 모든 의복은 다 흩어놓고 뒤집어 놓았는데 돈은 그대로 덮인 데로 있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사정을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 보혜사를 의지하면 우리를 잘 인도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성령님은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라고 말하는데 근심한다는 것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임으로 성령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감정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힘들 때 위로해 주십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에 보면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성도들에게 평안을 주고 기쁨을 줍니다. 초대교회 때는 매우 어렵던 교회 생활이 성령님이 오시고 난 이후에는 위로와 평안을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위로해 주시니까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번 주에 우리 교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데 우리 교회도 지난 60년 동안 성령님이 늘 함께하시고 어려울 때마다 위로해 주시니 오늘날 이처럼 세계적인 교회로 든든히 서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성령이 계셔서 우리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마음에 평안하고 즐거워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하늘나라가 임하시고 즐거움이 있고 두려움이 마음에서 떠나가고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또 행복한 삶의 향내를 품을 수 있으면 사람들이 왜 교회에 안 나와요? 교회에 나오면 그렇게 삶이 즐거운데 마땅히 교회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오면 아주 위로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지성과 감정을 갖고 계실 뿐 아니라 의지도 갖고 계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님은 자신의 뜻을 따라 바울의 선교 여행을 인도하셨습니다. 안디옥에서 선교사를 보낼 때도 성령은 바울과 바나바를 내가 시키는 대로 선교사로 보내라고 강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선교사로 나가서 일할 때도 오늘 자신 마음에 뜻을 따라 성령께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됩니다. 성령님의 뜻을 구하고 나를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할 때, 성령님과 의식적인 교제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령님과 방언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도들은 다 동분서주 산지사방으로 흩어졌으나 나중에 한 자리에 모여서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한 증거로 모든 사람이 방언을 했습니다. 방언을 하니까 방언을 귀로 듣고 성령이 오신 것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로 4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자기들이 아는 말이 아닌 방언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방언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설교하러 나오기 전에 “하나님, 내가 떨리는 입술로 방언이 어떤 것인지 성도들에게 보여 드려야 될 텐데 용서해주시고 격려해 주시면 내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락을 받고 나왔습니다. 그냥 떨리는 입술이라는 것은 기도하다가 혀가 질서를 놓아버린 것 같이 돼서 “랄라라라~랴랴랴~루루루루(방언)” 떨리는 입술입니다. 방언은 정확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해준 한도 내에 다른 방언으로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알아들었습니까? 통역하는 영이 임해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모르는 소리가 아니라 성령께서 그 사람의 입술을 통해서 말씀하는 것이므로 큰 유익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서 31절에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이 오시면 성령을 통해서 여러 가지 은사를 나타냅니다. 특별한 역사를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방언을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방언을 많이 하고 많이 성령이 계신 것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방언을 하게 되면 성령을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체험적으로 성령이 와 계신 것을 알기 때문에 용감하고 담대하게 되고 기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신자가 다 용감해지는 것은 성령을 받고 방언으로 말하면 성령이 와 계시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방언을 하면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고 어려운 고통 속에 있는 이웃을 도와주시 위해서 방언으로 기도해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방언기도를 한 시간, 두 시간 계속한 적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기에게 마음에 답답하고 괴로운 일이 생겼는데 그것을 처리할 도리가 없습니다. 위기에 빠졌다는 공포심만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그럴 땐 방언으로 기도하셔야 돼요. 방언으로 30분, 1시간, 2시간, 3시간 소리 내어 기도하고 나면 나중에 마음속에 있는 고통이 다 사라지고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기도를 들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정해주는 것으로 강하고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혀 내가 목적을 모르고 있는데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생기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고 귀중한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18절에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그렇게 열심히 전도하고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승리해 나간 것은 자기를 위해서 기도할 때 아는 말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방언으로 많이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 도움을 받았던 것입니다. 방언해야 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귀한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신앙이 죽습니다. 그 기도와 함께 방언을 해야 알지 못하는 일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4. 성령님과의 대화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를 통해서 방언으로 가치 있는 것을 보여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그 다음 성령은 꿈과 환상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사도행전 2장 17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우리가 방언으로 대화할 뿐 아니라 꿈과 환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꿈과 환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사도행전을 보면 선교 여행을 떠난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로 가려고 할 때에 성령님께서 환상을 통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6장 9절에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이라고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베드로에게도 환상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먹지 못하는 음식이 담긴 바구니가 내려오는 환상을 보여 주심으로 이방인 고넬료의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요한 사건을 가르칠 때에는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 해주실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이 성령으로 기도할 때 꿈과 환상을 통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가르쳐줄 때가 많습니다.

 저는 우리 60년의 목회생활에 꿈과 환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얻은 적이 참으로 많습니다. 또 성령님은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게 하시고, 기억나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존경쟁이 심한 이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으로 총명을 얻는다는 것은 지극히 귀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지성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성도들을 가르쳐 주십니다. 요즘 성경을 가르쳐 주겠다고 미혹하는 이단들이 많은데, 초대 교회 당시에도 새로운 가르침을 주겠다는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요한일서 2장 27절)”라고 말하여서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가르쳐주시기 때문에 이단의 속임수에 넘어 갈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성령의 가르치심을 우리가 받아들이면 이단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감격 속에서 성경을 공부하면 성경의 말씀이 마음을 뜨겁게 하고 변화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베드로후서 1장 21절)” 꿈과 환상, 예언은 이것은 성령이 여러분들 마음속에 주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가운데, 성령님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 책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말씀도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셔야만 우리가 말씀을 깨닫고 믿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에베소서 6장 18절에 말씀합니다. 우리가 기도와 간구를 하되 성령 안에서 성령님 모시고 기도와 간구를 하면 성령님이 함께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웬만한 고난을 당할 때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기가 차고 힘든 일 가운데 처하면 기도하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그럴 때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울은 방언의 유익에 대해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영으로 기도하는 것’은 방언기도를 말합니다. 바울 선생은 방언으로 찬송을 하고 아는 말로 찬송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아는 말로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지만 방언으로 기도하면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은 우리 편에 서서 우리를 도와주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방언으로 오래 기도하면 어느 순간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62편 8절에 보면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가 마음의 고통과 아픔을 다 아뢸 수 있습니다.

결론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쪽지 한 장을 평생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그 쪽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빛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품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지키고 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 내가 어디를 가든 하나님께서 거기 계신다.” 그는 “인생은 변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오직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령님과의 대화를 위해 이후 가장 좋은 시간을 우리가 내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좋은 시간에 뜨거운 마음으로 방언기도를 하고 마음에 영광을 얻게 되면 하나님의 응답이 곧 다가오고 우리는 마음에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루 종일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성령님이 여러분과 대화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아십시오. 여러분과 같이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부탁하면 여러분 같이 대화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와 대화하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며,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하시는데 도움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인 것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주셔서 선물로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는 언제든지 성령님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사정을 다 아뢰면 성령께서 귀 기울여 들으시고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여주십니다. 그 성령이 오늘 이 자리에 계십니다. 여러분 속에 계십니다. 여러분 입술을 통해서 떨리는 입술과 모르는 나라말을 통해서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답답할 일을 당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마음에 고통스러울 때 방언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기도를 해야 그걸 받아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도록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과 우리 대한민국이 대화를 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에 천만성도가 모여서 기도를 하면 우리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아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때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 시대에 와 있는 것입니다. 시간을 얻을 때마다 방언기도를 해야 되는 것은 북한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아는 지식은 성령이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언으로 기도하면 방언기도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구약 사천년 동안 일하시고 난 다음에 바통을 아들 예수님께 넘겨주매, 예수님이 이천년 동안 일을 하시고 난 다음에 바통을 성령께 넘겨주었어요. 구약 야훼 하나님 아버지의 시대, 그 다음 예수님의 시대, 이제 성령님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우리가 일을 합니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함께 일을 합니다. 아버지가 예수님 뒤에 서서 성령님과 역사하지요. 신약시대 예수님이 33년 동안 일을 할 때는 아버지와 성령께서 예수님 뒤에서 일하지요. 이제 예수님 천국 가시고 성령이 오신 성령시대에는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놀라운 은사를 통해서 일을 하고,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주시고, 꿈과 환상을 주시고, 믿음의 은혜를 마음에 부어 주시고,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해주시는데, 방언을 하는 게 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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