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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2018.01.2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장 7절]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7절에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사랑 받는 자녀이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닌데 길거리에 생낯선 사람에게 가서 구하면 들어주겠습니까? 아버지라는 관계가 되어 있어 아버지가 자식의 요구에 응해주는 것입니다. A.W 토저 박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범하는 가장 보편적인 실수는 하나님 일에 바빠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기도를 못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도의 힘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기도가 의무로 생각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놀라운 특권이라는 것을 알면, 아무리 바빠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줄 것인데 기도를 재껴놓고 다른 것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2천 명의 고아들을 돌보았던 조지 뮬러는, “하나님께 위대한 일을 기대하면 위대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행하실 것을 믿고 기도하면 마음에 꿈이 생기고 기도 시간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반드시 응답 받을 것을 믿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더 좋은 방법을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은 “기도는 황금열쇠”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열쇠가 있어야 집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금고문도 열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열쇠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비해놓으신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E.M. 바운즈는 “하나님의 거대한 창고를 여는 열쇠가 기도”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라는 열쇠를 주셨으니 그 열쇠를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1.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예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지킴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예수님 말씀을 우리 마음, 내 마음 속에 가지면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6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 그것과 꼭 같이 우리가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키면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런 깊은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죄 용서함을 주시고, 거룩함을 주시고, 병 고침을 주시고, 물질적인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생명을 주시고, 천국을 주시는 오중복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건 예수님 몸속에 가지고 계신 것인데 우리가 예수님의 속에 들어가면 우리 밥상에 오중복음의 밥그릇이 즐비하게 놓여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고린도전서 2장 9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은혜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말씀을 받아서 가슴에 모시면 그 말씀이 굉장한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2.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모세를 따라 나와 홍해를 건너서 수르 광야에 들어옵니다. 나흘 길을 물없이 고난을 당했는데 다행히 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물을 먹으려 하니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알려주신 것이 나뭇가지였고, 그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니까 물이 달아졌습니다. 그 나뭇가지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은 든 것도 그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반대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니까 하나님이 노하셔서 뱀을 보내 뱀이 광야에서 백성들을 무니 뱀에 물린 사람들이 죽습니다. 그들이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고함을 치니까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뱀을 잡아서 막대기에 매달으라고 합니다. 그를 쳐다보는 사람마다 고침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뱀을 잡아서 놋뱀을 만들어가지고 나무에 매달았습니다. 쳐다보고 믿으면 뱀을 통해서 놓여남을 받는다고 했는데, 안 믿는 사람은 쳐다보지도 아니하고 거역하고 욕만 했습니다. 그러나 뱀독에 물려서 죽어가던 사람도 회개하고 쳐다보면 독이 사라지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놀라운 일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 마귀의 독에 들린 두 사람이 양쪽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오른쪽 달린 강도와 왼쪽에 매달린 강도 죄인인데, 이 사람들이 다 마귀의 독이 올라 온갖 죄를 다 짖다가 십자가에 예수님 못 박힐 때 함께 좌우편에 못 박혔는데, 그 독이 오른 사람이 구원 받을 수가 있나요? 구원받을 수가 없는데, 그 한 사람이 주님보고 “주여, 주님 나라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예수님이 그를 용서하고 구원을 주었던 것입니다. “네가 오늘 나와 같이 낙원에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여 아주 버림받은 인생일지라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리고 도움을 구하면 순식간에 용서받은 의인이 되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이 세상에 살 때는 육신의 장막 집에 들어있지 않습니까? 육신의 장막 집에 사는데 나이가 먹어서 혹은 사고가 나서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에 들어가서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것이 상당히 괴로워 보이지만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가 있을 영원한 집을 예비해 놓았기 때문에 육신의 장막 집이 천막처럼 무너져도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버림받지 않습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기도의 방해물은 의심입니다. 야고보서 1장 6절로 7절에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의심을 하지 않고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다 받아 누릴 수가 있는데 의심이 자꾸 생기는데 어찌해야 될 것입니까? ‘의심’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인간의 이성으로 헤아려 재어본다’는 말인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룰 것이냐? 안 이루어질 것이냐? 될 것이냐? 안 될 것이냐?  이렇게 인간의 이성으로 재보는 것이 의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 일이 될 것이냐? 가능한 것인가?’하고 이성으로 헤아리고 봅니다. 그러고 나서는 ‘절대 안 되. 못 해’라고 합니다. 그것이 의심인 것입니다. 그래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사물을 볼 때 성령의 가르침을 통해서 보아야 합니다. 의심으로 재보면 결국 실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생각을 가지고 이리 저리 따지면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아무것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의심이 들어올 때, 의심을 물리치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바로 입술로 고백하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술로써 의심을 제어하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할 때 그저 하나님께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난 다음에 조용히 앉아서 내 귀에 들리도록 고백합니다. “용기야, 하나님이 너와 같이 계신다. 알지?” 내가 나보고 그렇게 말하고 난 다음에 “용기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 찢기고 피 흘려서 너를 위해서 죽으셨다. 그러므로 너를 귀하게 여기신다. 알지? 용기야, 낙심하지 말아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의심과 싸워서 이기는 것은 말로써 이기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보고 말을 해주고, 또 자기 이웃을 보고 말해주는 것이 굉장한 도움이 됩니다. 스스로 축복해도 기적이 일어나는데, 다른 사람 위해서도 축복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더불어 다른 사람에게도 격려하는 말, 축복의 말을 해 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실제로 큰 축복이 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심과 싸우지 못하고 의심에 짓밟혀서 고통당하는 이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말이 의심을 이기는 위대한 도구인 것입니다. 


 3.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합니다.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하는 뜻은 원하는 것을 꿈꾸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소원을 가지고 주님께 구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에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때에 크고 적은 것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하고 난 다음에 의심이 들어올 때 와서 그걸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구했으니 하나님이 들으셨고 이루어진다. 절대로 구한 것이 이루어진다. 의심은 물러가라.” 그렇게 말로써 투쟁해야 합니다.

 기도를 할 때, 바라봄의 법칙을 적용하면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적용하되 무엇을 바라보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만날 때,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동료들, 제자들과 같이 배를 타고 밤바다를 건너는데,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십니다. 제자들이 놀라서 유령이라고 고함을 치니까 예수님께서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님이시거든 나를 물 위로 오라하소서”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저벅저벅 물 위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광풍이 불어와서 물보라가 얼굴을 때리자 예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그 물보라를 바라보고 의심이 들어와서 물에 빠졌습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요란한 소리가 나오는 것을 바라보면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해주신 것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목표만 바라보도록 훈련 받듯이, 예수님의 십자가만 바라보도록 계속 훈련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올림픽 선수들이 그 공을 칠때 공만 바라봐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면 그것이 이루어진 것만 바라봐야 합니다. 방해물을 바라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으로 우리가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님이 그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우리 생애 속에 창조적인 힘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15살에 중국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그는 늘 선교사가 된 자기 모습을 꿈꾸고 바라보았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중국 음식을 먹고, 포크 대신에 젓가락을 사용했습니다. 잠잘 때, 침대가 아니라 마룻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잠을 잤습니다. 그가 몸이 약해져서 수개월 동안 침대에 누운 채 지낼 때는 벽에 큰 중국 지도를 걸어놓고 그 지도를 바라보면서 자고 깼습니다. 이렇게 꿈을 바라보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일으켜 중국선교사역을 허드슨 테일러만큼 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놀랍게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테일러는 그 몸속에 중국이 들어 앉아 있었습니다. 중국이 테일러 몸속에 들어 있는 것은 중국을 늘 꿈꾸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창에서 겨울 올림픽을 하는데 이것을 못하도록 막는 세력이 있다해도 우리의 일천만 성도가 올림픽을 전부 마음속에 담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쉽게 방해를 못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꿈을 꾼다. 환상을 가진다. 바라봄의 법칙으로 바라본다. 말 한다’는 모든 것은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아직 달성하지 못했던 것을 속에 품고 입으로 시인하므로 성령이 우리 속에 꿈과 환상과 믿음을 통해서 역사해서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꿈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능력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선교사와 후보생들이 허드슨 테일러의 기도를 통해서 중국선교에 뛰어들게 하셨습니다. 시편 37편 4절은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에 바라보고 소원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마음에 품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장 6절)” 하나님은 상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이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꿈을 마음속에 그리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달라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꿈을 마음에 그리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꿈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꿈을 종이에 적으십시오. 자기계발과 성공학의 대가로 유명한 지그 지글러는 “목표를 기록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직 뿌려지지 않은 씨앗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목표를 종이에 적고 바라보는 것은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그 씨앗이 자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도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도 바라봄의 법칙을 이용해서 우리가 소원하는 것을 들어가며 나오며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들어가며 나가며 “저건 내 것이다.”라고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의  땅을 줄 때도 나와서 땅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주의 종들이 목회를 할 때도 교회를 시작할 때, 오백 명이면 오백 명, 천 명이면 천 명, 교회를 꿈꾸고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다섯 명 앉혀놓고도 오천 명을 바라본다면 오천 명을 바라보고 설교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없는 사람 숫자세기를 잘합니다. 세 명 앉혀놓고 삼백 명 바라보고 하나, 둘, 셋, 삼백. 그런데 하나님이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그렇게 큰 꿈을 가지고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고 그렇게 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꿈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소원을 가지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소원을 하면 소원이 꿈입니다. 소원과 꿈은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그림을 그려서 벽에 붙여놓고 바라보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몸에 병이 나서 잘 낫지 않고 고통스러운 사람은 자기 책상 앞에 건강한 모습을 사진 찍어 놓고 그려놓고 그 앞에 “참 건강하고 보기 좋다‘라고 적어놓고 긍정의 입술로 시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목표를 기록함으로써 분명한 목표를 가지는 것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분명한 꿈과 소원을 품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므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무엇이든지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수 있는 한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꿈과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가면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인 우리를 돌보셔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인 것입니다.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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