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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
2017.12.24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27~32)

오늘 누가복음 5장 27절로 32절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 나눕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은 인류 역사 상 최대의 기적이고,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갈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존재였던 우리들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되고, 죄와 절망에서 놓여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가난과 저주와 질병을 짊어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와 절망에서 놓여남 받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된 자녀가 되어서 한평생 주님의 은혜 가운데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구원의 주님으로 오신 예수님,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방에 널리 전하여 절망에 처한 모든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병든 자를 위해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병든 자를 위해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함께 기억합니다. 누가복음 5장 31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말씀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 짓고 타락한 이후에 질병이 들어오고, 가난과 저주가 들어오고,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치료자로 오신 것입니다. 죄의 결과로 초래된 질병과 가난과 저주를 우리 삶에서 벗겨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병을 짊어지셨도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세 가지 귀한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는 말씀을 가르치신 것이고, 또 하나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것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병을 고치신 것입니다. 그런데 병 고치는 사역은 예수님의 전체 공생애 사역의 삼분의 일을 차지합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 24절은 자세히 이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그들을 고치시더라. 우리 모두가 어떤 면에서 보면 병든 자입니다. 육신의 병에 걸렸든지, 마음의 병에 걸렸든지, 사람과의 관계의 병에 걸려서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든지, 무언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힘들게 하는 병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것입니다. 대형 병원마다 얼마나 환자들이 많은지.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고 하면, 입원하면 그냥 받는 것이 아니라 예약을 하고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육신의 질병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원장이신 윤동원 박사 말하기를요, 그냥 사람은 그냥 병하고 같이 사는 거래요. 병과 싸우면서 그냥 살아가는 거지, 병에 걸렸다고 암에 걸렸다고 절망할 것이 없고 그냥 싸우며 살아가는 거다. 의학이 좋아져서 발달되어서 옛날 같으면 벌써 끝났을 그러한 삶도 지금은 오래오래 살면서 병과 싸우고 있다는 그런 말을 합니다. 병이 이렇게 이 세상에 많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사와 약을 선물로 주셔서 의술을 통해서도 병을 고침받을 수 있고, 또 믿음으로 기도를 통해서 병을 고침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병보다 더 심각한 병이 마음의 병입니다. 특별히 우리 대한민국에는 마음의 병 가운데 분노의 병이 사람마다 가득합니다. 뉴스를 보면요, 참 끔직한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둘이 사귀고 연애하다가 여자가 싫다고 헤어지자고 하니깐, 폭력을 휘두르고 자동차로 막 치어 죽이려고 하고. 아, 싫다면 그냥 관두지 왜 이렇게 괴롭히는 거예요. 싫다고 그러면 "세상에 너밖에 없냐? 또 있다!" 하고 그냥 가면 그만이지. 또 못난 자식이 부모님이 야단친다고 부모님을 때리고, 이웃끼리 다투다가 폭력을 행하다가 심지어 살인까지 하고. 이 분노라는 병을 치료받지 않으면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질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우리 마음에 분노의 병을 치료받아야 됩니다. 과거에 모든 상처를 치료받아서 마음에 분노가 사라지고 마음에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넘쳐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 사회에 만연한 병이 갈등과 분열의 병입니다. 노사 간의 갈등, 이념 간의 갈등. 좌우로 나뉘어서 싸웁니다. 여러분, 진보도 필요하고 보수도 필요한 것인데, 나와 다르면 적이 되어서 막 싸우는 거예요. 여러분, 진보는 바꾸자는 것이고, 보수는 지키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되요. 바꿀 것은 바꾸고 지킬 것은 지켜야 되는데, 안 바꾸면 다 적이라고 그러고 바꿨다고 그러면 다 적이라고 싸우고 있으니, 이 사회가 혼돈 속에 병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남과 북과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다 같은 한국 사람들이에요. 같이 한국말하고, 같은 음식 먹는 사람인데, 이 공산주의, 특별히 세상에서 가장 악질적인 독재자가 북한에 들어와 가지고 북한 사람을 괴롭히지, 그 소수의 지배층을 제외해놓고 일반 북한 주민들은 불쌍한 주민들입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복음이 들어가서 이제 휴전선 무너지고 하나 되는 날이 다가오게 우리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이러한 갈등과 대립의 병이 고침을 받아야 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이 모든 병에서 놓여남 받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29절,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할렐루야. 미국의 목회자이자 전문 심리 삼당가인 마이클 존 큐직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에 대한 많은 이름과 묘사 중에서 위대한 의사라는 표현이 있다. 3년간의 공생애 사역 동안, 예수님의 중심 사역은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귀신들을 쫓아내며 병든 자를 치유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가 회복되면서 우리 내면의 회복도 가능해졌음을 잊어선 안 된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신다. 하나님은 만물을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시는 분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은 어제도 병을 고치시고, 지금도 병을 고치시고, 앞으로도 병을 고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무거운 짐을 다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은혜와 축복을 다 얻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


둘째로,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5장 27절, 28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가장 미워하고 싫어하던 세리를 택하여서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왜 그 당시 세리가 미움을 받았느냐? 로마 제국이 이 유대 사람들을 세워가지고 세금을 걷게 했습니다. 근데 이 세금을 걷는 이 유대인 세리들이 정해놓은 세금보다 더 많이 걷었어요. 쉽게 예를 들면, “한 집 당 10만원만 걷어라”하면 20만원을 걷어가지고 절반은 내고 절반은 자기가 착복을 했습니다. 그래서 “배신자, 매국노!” 뒤에서 욕을 듣고 비판받은 사람들이 바로 세리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미워하고 멸시 천대하는 세리를 예수님이 친히 부르셔서 제자 삼으시고, 그들을 품으시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누가복음 5장 29절, 30절은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그때 주님 대답하신 것입니다. 5장 32절에,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할렐루야! 시애틀의 시티교회의 주다 스미스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고 완벽한 분이셨지만, 공생애 기간의 대부분을 소위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보내셨다. 예수님이 그들의 수준으로 내려가신 이유는 그들이 주님의 수준으로 올라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 중 한 명이 아니라 죄인들의 유일한 친구였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친구가 되어주셨다.  우리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죄악이 있음을 시인할 때, 주님은 우리 곁에 가까이 오신다.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하는, 그처럼 스스로 본인이 교만에 사로잡힌 의인을 주님이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하는 죄인을 찾아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할 때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주의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회개하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죄를 사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은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우리가 죄 사함 받기 위해서 우리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을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2절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가 철저히 우리의 잘못과 우리의 죄와 허물을 회개할 때 주님이 용서하시고 우리를 새사람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일 먼저 외치신 말씀이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 이유도 우리의 죄를 회개케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 8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우리의 불의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 앞에 회개하고 나와서 예수의 보혈로 씻음 받고 정결함 받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찬송을 작곡한 로버트 로우리 목사님을 소개합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서 뉴욕 브루클린침례교회를 담임했던 목사님이십니다.
그 목사님이 목회하던 당시엔 남북전쟁이 막 끝난 후였는데. 미국 전역에 전염병이 얼마나 유행했던지 병원에도 환자가 가득차고 길거리에도 환자들로 가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병원 심방을 다녀오는데 어느 날 피곤해서 잠깐 눈을 붙여 잠이 들었을 때 환상을 봅니다.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이 서 계시는데, 예수님 손바닥에서 피가 뚝 뚝 뚝 뚝 떨어지면서 계신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깼습니다. 그 때 그 목사님은 ‘나를 정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고 일생을 지켜주시는 것은 예수님의 피 밖에 없구나!’ 그래서 많은 찬송을 지었습니다.

 우리가 많이 불러온 ‘무덤에 머물러’, ‘나의 죄를 씻기는’, ‘주 사랑하는 자’,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울어도 못하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어도’, ‘성자의 귀한 몸’,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나 위하여 십자가에’,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주 음성 외에는’ 이 찬송을 다 이분이 지었어요. 252장은 그 보혈을 바라보면서 지어진 찬송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다시 정케 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를 정케 하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사죄하는 증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의 죄 속하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는 공로 없으니 예수의 피 밖에 없네/ 평안함과 소망은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영원토록 내 할 말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의 찬미 제목은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찬송가 252장: 나의 죄를 씻기는>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다시 정케 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늘 예수의 보혈로 죄 사함 받고 정결케 되어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으로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셋째로,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은 설명합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할렐루야! 예수 믿고 구원받은 이후에 주님의 은혜가 풍성한 삶을 살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는 삶을 살도록 주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 후서 9장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우리가 예수 믿고 복 받고 잘사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받은 은혜를 나누기 위함입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우리 이웃들을 찾아가야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베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축복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알게 모르게 탐욕이라는 것이 들어와서 자꾸 더 움켜지려고 합니다.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더 움켜집니다. 여기 있는 분들 빼놓고. 그래서 진짜로 진짜 부자는 누구냐? 베풀고 나누는 사람이 진짜 부자입니다.

 제가 세브란스 장로님을 소개했죠? 자기 전 재산 다 선교 구제비로 내놓아서 병원 짓는데 지금 가치로 일천억 원 되는 기금을 내놓고 정작 자기는 죽을 때 자기 집 하나 없었어요. 얼마나 멋있습니까? 지금까지 100년 넘게 세브란스가에서 세브란스 병원에 보내준 선교 헌금이 오천억 원이 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것을 본받아야 되요. 돈이 많은 사람들은 “아멘!” 안 하시고 구경만 하시고. 그런데 많이 내놓으면 더 많이 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하나님 법칙이에요. 시편 23편 1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저는 6.25 직후에 태어나가지고요, 굉장히 힘들고 어린 그 시절에 자랐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흔하게 고기를 먹지만 갈비 한 번 뜯으려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 때나 가능했습니다. 얼마나 질긴지 온 몸에 힘을 다해서 갈비 뜯은 기억이 나는데. 평상시에는 그렇게 고기를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초등학교 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는 것은 뜨거운 밥에다가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버터 있잖아요, 버터. 버터를 넣어서 간장에 비벼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요즘에는 그렇게 먹으라고 해도 안 먹을 거예요. 우리 아이들이, 버터를 밥에 비벼먹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도 그게 별미였다니까요.

 그렇게 살았는데 요즘은 너무나 먹을 것이 많아서 남는 음식이 얼마나 쌓여있는지 몰라요. 대천덕 신부님이 그러시더라구요, 먹는 거 남기면 죄라고. 그래서 아예 먹을 만큼 만들어서 딱 먹고 말아야지 남기면 안 되거든요. 제일 위험한 게 뷔페 집 가는 거예요. 갈 때는 의욕적으로 가서 담아오는데 대부분 반도 못 먹고 남기는 분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 앞으로 뷔페 집 가더라도 조금만 담아 와서 음식을 안 남겨야 됩니다. 안 남겨야 되요. 왜? 우리 주위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려 죽어가는 많은 이웃들이 있으니까, 가난하고 불쌍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서 우리가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늘 현재의 삶에 만족해하면서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빌립보서 4장 11절로 13절입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6장 38절에 축복의 원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주라! 그냥 아낌없이 주라는 것입니다. 조건을 묻지 말고, 기대하지 말고, 그냥 주고 베풀면 당신이 갚아주신다. 또 은혜 베풀면 또 주시고, 또 베풀면 또 주시고, 그렇게 살다가 천국 가는 것입니다. 막 움켜쥐고, 또 움켜쥐고, 움켜지고 살다가 갑자기 세상 떠나면 자녀들끼리 재산 싸움 하는 것밖에 남는 게 없어요. 그러니까 많이 가진 분들은 살아계실 때 다 나누시고 물려주시지 말고요. 물론 조금만 물려줘야 되요. 많으면 싸워요, 또 싸워. 그래서 여러분들이 정말 주님 가르치신 축복이 무엇인지 참 의미를 깨닫는 복된 성탄절 되기를 바랍니다.

 스탠드업 커뮤니티 임인환 대표를 소개합니다.
‘스탠드업’, 일으켜 세우는 사역인데, 이분은 2010년 2월 달에 인도네시아 주재원으로 있을 때 기자가 취재를 하러 왔어요. 그래서 사업장을 보여주러 배를 타고 가는데 스피드 모터보터를 타고 가는 중에 이 핸들 잡은 사람이 심장마비로 보트를 몰다가 죽어버렸어요. 그래가지고 배가 섬에 콱! 부딪쳐 사고가 나는 바람에 그 사람은 죽고 본인은 목뼈가 부러져가지고 목 이하를 전혀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산소 호흡기를 의지한 채 중환자실에서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데 의사가 와서 말합니다. “앞으로 환자께서는 손과 다리를 쓸 수 없을 것입니다. 팔과 다리를 못 씁니다.” ‘이제 난 이렇게 죽는 구나.’ 그런데 그 누님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오셔서 그에게 전도합니다. 간절히 기도해줄 때 마지막 절망의 밑바닥에서 예수님을 붙잡았습니다. 그 주님의 은혜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성경을 읽어주는데 성경 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았어요. 자기가 다치고 나니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더래요. 그래서 ‘이 못된 놈들아!’ 하고 미움과 분노가 가득했는데, 그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제가 이 기사를 읽으면서 깨달은 것이요.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두 종류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너무나 속상하고 분노가 치미니까 부모님을 때리고 옆에 병간호하는 사람을 때리고 소리 지르고 난폭해지는 겁니다. 그런데 그 자식을 둔 부모는 맞으면서도 돌봐야 되요, 중증장애인이니까. 또 한편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외롭게 내버려두니까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가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우리가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야 됩니다. 늘 가서 기도해주고 사랑으로 돌보아줄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처럼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꿈과 희망을 주어야 되겠다’ 하고 그분이 시작한 것이 스탠드업 운동입니다. 그래가지고 이런 분들을 이제 모아서 같이 예배드리고 꿈과 희망을 주고. 스탠드업이라는 말은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는가 하면 예수님이 죽은 소녀를 일으킬 때 “달리다굼, 일어나라! 소녀여 일어나라!” 그래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스탠드업 코멘트를 만들어서 스탠드 대디, 스탠드 마미, 스탠드 영. 스탠드업 코멘트를 만들어가지고 이 절망에 처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같이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그래서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삶을 새롭게 살아가도록 도전을 주고, 죽고 싶어서 몸부림 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 다시 살아나게 하고, 완전히 온몸이 이 장애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기도해주는 이 귀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본인이 중증이 되었다고 그 삶을 마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더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자기처럼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헌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잠시 풍족했던 그 시절이 진정 성공한 삶이 아니었고, 인생의 성공이, 돈과 권력이 명예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탠드업커뮤니티 사역을 통해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게 되었고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 안에서 교제하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작은 것을 통해서도 평안을 느끼고 일상의 삶 가운데 행복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나의 삶을 늘 지지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저는 오늘도 주님 안에서 성공과 감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번 달 월간 조선을 보시면 자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 이렇게 온몸이 중증 장애를 앓고 있으면서도 예수의 사람을 실천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는 이 모습이 우리에게 도전이 되고 감동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 은혜받은 우리들이, 이제 우리가 나서야 될 때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작은 예수가 되어서 예수의 사랑을 온누리에 펼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고도 감사하지 못하고 늘 자기중심적으로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의 모습을 갖고 살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이제 남은 여생 예수님의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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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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