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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으로
2017.10.29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장 17절)

오늘 저는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오직 믿음으로”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0월 31일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500년이 되는 날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당시 가톨릭의 타락과 부패한 모습을 95개조의 항목에 적어서 비텐베르크 성당 앞에 붙였습니다. 그는 힘없고 보잘것없는 한 신부였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서 한 사람으로 시작된 이 종교개혁이 온 유럽을 휩쓸고 교회를 변화시켜서 기독교가 탄생되어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 우리 교회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 종교개혁의 모토가 된 말씀이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 그는 복음과 하나님의 의와 믿음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1. 하나님의 의

 먼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복음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절망에 처한 자를 건져내고, 그들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 한평생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의 삶을 바쳐 헌신했습니다. 순교하는 그날까지 이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그의 삶을 마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전해지는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나님의 의로부터 나옵니다. 성경은 로마서 1장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의와 완전히 대조가 됩니다. 인간의 의는 불완전합니다. 인간의 의는 늘 자기중심입니다. 그래서 힘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그 의가 늘 바뀝니다. 내가 옳고 저 사람이 틀리기 때문에, 함부로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 의를 휘두르면 많은 피해자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공평합니다. 하나님의 귀한 뜻을 우리에게 펼치는 하나님의 의가 이 말 속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의에 굳건히 서야 되는 것입니다.

시대를 따라 변하는 사람의 의에 서면 우리는 늘 그 변하는 시대 속에서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를 따라갔던 사람들은 결국 실패하고 절망에 빠지게 되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조심해야 될 것은 어떠한 힘을 가진 자리에 있을 때, 권력의 정점에 올라섰을 때, 내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어디 있는지를 찾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시고 선하신 뜻을 이루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옳고 나와 맞지 않으면 다 틀리다고 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혼란과 어려움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우리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의를 펼치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 이루어지는 데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순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인간의 행함으로썬 절대 의로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이것이 잘못되고 이것이 잘못됐다는 그 문제를 지적할 뿐이고 우리의 죄를 들춰낼 뿐이지, 율법을 우리가 행함으로 지켜서 하나님의 의를 얻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 죄인이 죄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의는 우리 모든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십자가에서 완성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은혜로,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임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선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 9절은 말씀합니다.“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자신의 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늘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문제 있다고 지적하던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내려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는 끊임없는 다툼과 갈등을 일으킬 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임할 때 하나님의 의를 통하여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고, 우리의 삶 가운데 모든 갈등과 문제와 어려움이 해결되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고백하고 “예수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신다.”고 고백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이 값없이 선물로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2.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믿음 

 두 번째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믿음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의를 우리에게 주실 때에 믿음의 손을 내밀어 그 의를 받게 하셨습니다. 구원은 모두에게 값없이 주신 것인데 믿음의 손을 내밀지 않으면 그 구원을 선물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밥상에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있어도 내가 그 음식을 먹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 것처럼, 구원의 은혜는 모두에게 우리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신 것인데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그 구원이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러분 모두가 다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르틴 루터는 카톨릭의 신부입니다. 늘 자신의 죄에 대해서 민감했습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선한 일도 많이 하고, 또 선임 신부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합니다. 카톨릭에서는 신부에게 가서 자기의 죄를 고해성사하면 죄 사함 받는다고 하는 그러한 교리가 있어서 늘 신부를 찾아가서 자기 죄를 고백했는데, 죄 같지도 않은 죄를 가지고 와서 자꾸 와서 선임 신부한테 고해성사를 하니까 선임 신부가, “제발 죄 같은 죄 좀 가지고 와서 고해성사를 하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늘 자기의 죄를 회개했는데, 양심이 ‘너는 죄인이다.’ ‘너는 죄인이다.’ 늘 자기의 죄를 지적했어요. 그래서 그가 늘 마음의 양심과 싸우며 고통 가운데 지내다가 로마서를 읽는 가운데 주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로마서를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하나님의 의였다. 그때 나는 수도사로서는 흠잡을 데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마음이 괴로운 죄인이었기에 도무지 나의 공로로는 그분을 누그러뜨릴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의’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께서 은혜와 순수한 자비를 발휘하신 나머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죄가 없는 것으로 취급하시는 그 의라는 것을 터득했다! 그 순간 나는 새로 태어나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이른 기분이었다!” 할렐루야!

그가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힘으로 의로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게 되고 믿음으로 구원 얻게 된다는 그 놀라운 진리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로마 교황이 거하는 성 베드로 성당을 증축하기 위해서 저들이 모금을 하는데, 테첼이라고 하는 이 수도승이 다니면서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여러분이 헌금을 하면 여러분이 지은 죄, 여러분의 부모가 지은 죄까지 다 용서해줍니다.” 그래서 더 이상 참지 못해서 그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입니다. 종교개혁 5대 원리는 이와 같습니다. 첫째가 ‘오직 믿음으로’, 둘째로 ‘오직 성경으로’, 셋째가 ‘오직 은혜로’, 넷째가 ‘오직 그리스도로’, 다섯 번째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

할렐루야!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립니다. 이 다섯 가지 주제의 기본이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가 이 오직 성경의 내용을 받아들일 수가 있고,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수가 있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생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초점을 딱 예수님께 맞추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은 방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염려, 근심, 걱정이 들어오고 문제와 어려움을 바라보면 문제가 내 마음에 들어오지만, 예수님을 바라볼 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늘 흔들리는 내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놀라운 은혜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 입니다. 로마서 9장 30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우리 이방 사람들이, 유대인이 아닌 우리 이방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된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야 되고, 우리 믿음이 진실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삶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믿습니다. 믿습니다." 말하면서도 내 삶이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진실된 믿음으로 주님께 인정받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함께하여 주셔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것 입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우리가 무엇을 확신하느냐? 주님이 나와 함께하셔서 주님의 때에 주님이 놀라운 일을 다 이루어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굉장히 조급해요. 어떤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빨리 이루려고 하는데 잘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고 참고 견디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을 이루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사는 삶

 셋째로,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니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 하반절에,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완성이 아닙니다. 출발입니다. 그다음 믿음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선한 일을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고 나서 우리가 선한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느냐?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이름은 크리스천인데 그 삶이 크리스천답지 못하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비판할 때 하는 말 중에 ‘예수 믿는 사람은 물에 빠지면 입만 뜬다’고 그래요. 늘 말만 앞서고 삶의 열매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가 비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앞에서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고 나서 우리가 행함의 열매를 맺어야 되는데, 우리가 믿고 난 다음 우리 믿음이 날마다 성장해야 됩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믿음이 자라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믿음이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삶의 진정한 변화가 다가와서, 내 성격이 급하고 하루에도 열 번씩 화내던 모습이면 믿음의 사람은 열 번 화냈다가 아홉 번 내고, 여덟 번 내고, 일곱 번 내고, 여섯 번 내고, 나중엔 화를 내지 않는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많은 축복을 주셨을 때 그것을 아낌없이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역자가 저에게 축복에 대해서 물어봤어요. 제가 그랬습니다. 진정한 축복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할렐루야! 60년대 70년대 가난하고 못살 땐 우리가 “복 주시옵소서!” 그래서 많은 것을 가지는 것이 복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21세기를 살면서 우리가 보니까 그것이 다가 아니에요. 가지고 나니까 그다음 문제가 생겨나고, 너무 많이 가져가지고 그 집안에 불화가 생겨서 최근에 살인 사건도 나고. 이런 것을 보면서 아낌없이 나누고 또 나눈다면 진정한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고 더 큰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믿음이 더 나아져야 합니다. 열매 맺는 믿음으로 바뀌어야 됩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절대로 과거 회귀형, 뒤로 돌아가는 그러한 모습으로 살면 안 됩니다. 우린 미래 지향형이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워지고 날마다 더 나은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구약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살고 있을 때에 남 왕국 유다는 정치적으로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완전히 타락해서 절망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선지자들을 핍박했고 저들이 우상숭배에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그 어딜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어요. 죄와 불의가 가득했던 그때에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하나님의 의로움이 어디 있습니까?" 그때 주신 말씀입니다. 하박국 2장 4절입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세상 사람들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불의 속에 살지만 너희, 믿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기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떠한 죄와 절망이 우리를 엄습해 온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칭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그 귀한 역사를 이루어나갈 때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할렐루야! 성경은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주여, 우리 모두가 큰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어떻게 우리가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지켜 행할 때 우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굳게 서서 기도하며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거 그거 가지고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은 한 주일의 시작이고 그때로부터 일주일 내내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주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될 때 큰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우리에게 믿음이 생겨납니다. 그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고 그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한때 승려였다가 변화받아서 지금은 한국 교회를 보호하고 동성애와 이슬람을 반대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이정훈 교수를 소개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불교에 빠져가지고 반야심경 해설서를 읽고 종교철학에 관심이 깊었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합니다. 대학교 2학년 때 머리를 깎고 출가해서 승려가 됩니다. 타락한 자본주의를 사회주의적으로 개혁하고자 법철학을 연구하면서 좌파 법철학에 빠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는 없어져야 될, 말살되어야 될 원수로 여기게 되었고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에 들어가서 그다음, 군종 장교 군 법사로 임관하고 군대 내 포교를 위해 군 법당도 건축하고, 전역 후에는 학생이 되어 사회를 개혁하고자 환속한 후에 종교자유정책연구원(종자연)을 만듭니다.

2005년 종자연 출범 때부터 산파 역할을 감당하면서 종교의 자유도 인권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민사소송, 입법청원, 헌법소원심판청구, 진정, 신고 등을 통해 한국 교회를 종교 편향 집단으로 몰아냈습니다. 그래서 고려은단이 그 큰 길에 세운 ‘Jesus loves you’라고 하는 그 간판도 내리게 하고, 대광고등학교에서 그 예배드리는 거 반대했던 학생을 뒤에서 지원하고 도와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게 하라고 하고 하는 이러한 일들에 앞장섰습니다.

더욱 여세를 몰아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절에 들어가서 기독교를 책을 보고 연구하면서 어떡하든지 기독교를 무너뜨리려고 그가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성경책도 많이 읽고 신학 서적도 많이 사서 읽고, 그런데 2007년 어느 날 너무 머리가 아파가지고 절에서 나와서 집에 와서 기독교 TV를 틀었는데, 중앙성결교회 한기채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더랍니다. 그런데 설교하시던 중에,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그 말하는 말씀을 듣고 속으로 ‘죄인? 웃기고 있네. 너나 잘하세요!’ 그런데 갑자기 혀가 꼬부라지면서 불이 임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임하신 것입니다. 그 자리에 고꾸라졌습니다. 늘 기독교를 핍박하는데 앞장서고 기독교의 약점, 문제점만 들춰내서 폭로하던 그인데 기독교 TV 보다가 불을 받았어요. 여러분, 그래서 집에서 기독교 TV를 많이 봐야 됩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그 자리에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제가 한국 사회를 위해 굉장히 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기의 의죠, 자기 의. 하나님 의가 아니라, 왜냐하면 한국 사회를 망치는 악의 근원이 교회라고 판단했거든요. 그런데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이대로 죽어도 항변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그냥 알아버렸어요. 신학 서적에서 봤던 전적 부패가 뭔지 몸의 구석구석, 세포까지 느껴졌습니다. 의롭다고 자만했던 저의 죄성이 낱낱이 보였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죄인을 살리신 창조주, 구세주가 확실히 믿어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드라마틱한 변화인지 모릅니다. 승려로써 기독교 박멸 운동에 앞장섰던 그가 마치 사도 바울이 교회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이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 잡아넣는데 앞장서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 만나서 변화된 것처럼 그가 변화가 되었어요.

그래서 2008년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울산대 교수로 그가 이제 교편을 잡으면서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살았던 그가 기독교를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반미, 이슬람 미화, 동성애 옹호 세력이 연대해서 교회를 공격하고 있는 이때에 교회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렇게 당부합니다.

“지금은 순교신앙으로 무장해야 하며, 한 발짝도 물러서면 안 될 때입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면 영국처럼 영적으로 황폐화되는 수준을 넘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붕괴마저 우려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부활 파워로 반전을 일으킬 때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성령이 임해서 하나님의 의를 깨닫게 되면 믿음이 생겨나게 되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 삶의 운명이 이렇게 바꿔지는 것입니다. 가장 기독교를 무너뜨리는데 앞장섰던 사람이 지금 가장 기독교를 보호하고 기독교를 지키는데 앞장서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 무장해서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한평생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지금까지 나의 의로 내 스스로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 살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내 의가 살아서 늘 비판적이고 부정적이었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의가 임해서 나는 죄인이고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게 하여주시고, 전적으로 예수를 믿고 의지함으로 우리 주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다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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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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