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야훼가 사랑하는 자는 나의 기뻐하는 뜻을 바벨론에 행하리니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 그들 중에 누가 이 일들을 알게 하였느냐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사 48:12~15)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이사야서 48장 12절로 15절의 말씀을 가지고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말씀의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에 받을 수 있는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 체험할 수 있는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없고,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없고,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신분이 완전히 바뀌어집니다. 죄의 노예, 마귀의 노예로 살다가 하나님의 축복받은 자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옛 사람의 모습으로 살지 말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늘 깨달아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누가 부른다고 하는 것은 관심입니다, 관심. 대통령이 우리를 보자고 부른다면 우리는 굉장히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잘 단장하고 갈 것입니다. 그런데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오늘 본문 이사야48장 12절에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도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를 지명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이 자리까지 인도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나오게 된 것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택하고 부르셔서 이곳에 나와 주님 앞에 감사하며 찬양하며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해야 됩니다. 주님, 나 같은 죄인을 불러서 하나님 자녀 삼아 준 것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를 하면 할수록 더 큰 은혜와 축복이 임합니다. 불평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가라앉고 더 문제 속에 파묻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나의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렇게 두 가지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사기꾼이었고 문제 많았던 그 옛 모습을 의미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만난 후에 변화받고 축복받은 모습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야곱과 같았습니다. 야곱의 뜻이 사기꾼입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그래서 장자권의 축복을 가로챘던 야곱이었습니다. 그런데 외삼촌 집에 가서 20년 동안 외삼촌 밑에서 일을 하면서 외삼촌이 그를 또 속이고 또 속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삶은 고난과 거짓과 인간의 탐욕으로 얼룩진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얍복 강 나루터에서 깨졌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 붙잡고 매달렸는데 날이 샐 즈음에 거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제대로 걷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를 축복해주지 않으면 내가 놓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천사를 붙잡고 놓지 않아서 “넌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고 하는 그러한 축복을 받게 되었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응답을 받을 때까지 주님께 매달려서 절대로 그 손을 놓으면 안 됩니다. “주님, 응답하지 아니하시면 내가 이 손을 놓지 않겠나이다.” “주님, 나를 복 주지 아니하시면 내가 절대로 이 붙잡은 손을 놓지 않고 주님 앞에 매달리겠습니다.”
우리는 늘 야곱과 이스라엘의 두 가지 모습에서 갈등합니다. 알게 모르게 내 마음속에서 탐욕이 올라옵니다. 미움과 원망과 불평이 올라옵니다. 섭섭함이 올라옵니다. 분명히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옛 사람의 모습이 내 마음속에 둥지를 틀고 있어서 자꾸 나를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 나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주셔서 내가 옛 사람을 이기고 이스라엘의 모습으로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깨어지고 낮아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서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되어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와서 살게 되었는데도 그들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이기주의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또 채찍질하시고 또 채찍질하셔서 그들을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신 다음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41장 8절과 9절에는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그랬습니다. 그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서도 또 돌아서면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중심적으로 탐욕을 가지고 우상숭배 하며 살았으니 얼마나 그들의 마음이 강퍅한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고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붙드셔서 주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습니다. 만세 전에 우리를 사랑으로 택하여서 부르시고 하나님 자녀 삼아주셨는데 예수 믿고 나서도 우리 삶을 뒤돌아보면 부끄러움 투성이입니다.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탐욕이 있고 교만이 있고 미움이 있고 원망이 있고 불평이 가득 차서, 내 뜻대로 안 되면 이 사람과 부딪치고 저 사람과 부딪치며 살았던 우리들의 연약한 모습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품어주시고 우리를 의의 길로, 축복의 길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말씀합니다. 주님 보시기에 흠 없고 부족함이 없고 거룩하게 우리를 만들어주시고 그러한 삶을 살도록 우리를 이끌어주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택함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금도 만들고 계십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를 날마다 더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주신 하나님! 그런데도 우린 또 뒷걸음쳐서 옛 모습으로 또 돌아가고 또 있다가 주님이 만들어놓으면 또 돌아가고. 주여! 다시는 이와 같은 반복적인 모습으로 살지 않게 하시고 성장하고 성장해서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쓰임 받게 해주시옵소서!”
2.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하나님
둘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처음과 마지막이 되어주셔서 우리 일생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48장 12절은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처음이 되시고 마지막이 되십니다. 역사의 흥망성쇠는 다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예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이 태어나지만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오라!” 부르시면 가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 워싱턴에서 목회할 때 보면 나이 많은 권사님들, 또 할아버님들, 안수집사님들이 많으셨습니다. ‘아, 저분들은 나이가 지금 70대 후반, 80대가 되시니 얼마 있지 않아 천국 가시겠구나.’ 했는데, 처음 장례식을 치른 분은 30대였고 그 다음에 20대 자매가 세상을 떠났고, 그분들은 제가 그 교회 사역을 마치고 한국 들어올 때까지 살아계셨습니다. 제가 20여 년 만에 워싱턴에 방문해보니까 아직도 살아계신 분이 계세요.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주님께서 주신 나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 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교만하고 불순종하고 잘못된 길로 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치셨습니다. 앗수르를 통하여서 그들을 때리시고 바벨론을 통하여서 그들을 때리셨습니다. 결국 주전 586년에 남 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모든 지도자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사야 43장은 그때를 배경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저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너희들을 다시 회복시켜 줄 것이라” 그들은 바벨론을 대항할 힘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8장 13절에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고 세계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처음이 되고 마지막이 되십니다. 이사야 41장 4절은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야훼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그니라.” 내가 그라고 하는 말씀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구원해낸 그 하나님이 바로 나니라. 너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절망 가운데 있을 때, 문제 가운데 있을 때 너희를 구원해준 그 하나님이 바로 나야.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의지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고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 일생을 이끌어가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넘어지고 실수하고 상처받고 분노하지만 주님은 그때도 우리를 어루만져주시고 우리를 또 새 사람으로,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만들어주셔서 또 세워주시고, 또 세워주시고, 또 세워주셔서 오늘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복음주의 목회자인 미국의 제라드 윌슨 목사님은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전 영역 중 그분의 것이라고 외치지 않으시는 곳은 단 1제곱인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통치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오직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목적만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매일 아침 희망차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분명히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겐 염려가 다가오고 근심이 다가오고 걱정이 다가옵니다. 때때로 몸이 아프기도 합니다. 가까웠던 친척이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때에 문제를 바라보고 질병을 바라보고 염려, 근심, 걱정하면 안 됩니다. 염려는 염려를 낳고 근심은 근심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나의 힘이 되신 우리 주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우리 다 같이 함께합니다. 시편 18편 1절과 2절에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야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고 말씀합니다. 나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 66권중에 가장 긴 책은 시편입니다. 시편은 전체가 150편으로 되어있는데, 시편 마지막 결론이 150편 6절에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훼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라고 고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 숨 쉬는 그 동안에, 마지막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입만 열면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을 마치고 천국에 갈 때에, 천국 갈 때 다 놓고 갑니다. 내가 입던 옷도 놓고 가고, 돈도 놓고 가고, 가족도 놓고 가고, 다 놓고 가는데, 이 세상 지위, 명예, 권세, 다 놓고 가는데 무엇을 가져가느냐? 찬양만은 갖고 갑니다. 우리가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찬양하다가 천국 가는 그 순간부터 영원토록 우리 주 하나님을 우리가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지상에서는 음악에 재능을 부여받은 우리 찬양대, 오케스트라가 이렇게 찬양을 전담하지만 천국 가면 우리 모두가 찬양대가 되어서 다 같이 우리 주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숨 쉬는 동안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고 우리의 일생을 인도하시는, 처음이 되고 마지막 되시는 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
셋째로,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잘되게 만들어주시는,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48장 15절은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자의 그 길이 형통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이사야 48장에서 이 형통의 대상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에서 놓여나게 할 고레스 왕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방의 왕을 택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포로로 살던 저들을 구원해내시고 바벨론을 무너뜨리시고, 이 고레스 왕이 바사, 페르시아 제국을 열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이사야 48장 14절은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야훼가 사랑하는 자는 나의 기뻐하는 뜻을 바벨론에 행하리니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 그들 중에 누가 이 일들을 알게 하였느냐’고 말씀합니다.
고레스는 내가 사랑하고 택해서 이 바벨론은 심판하고 너희들을 구원해낼 것이다. 바벨론 성은 난공불락의 성입니다. 유프라테스 강이 흘러들어오는데, 이 바벨론 성에 들어오면서 한 줄기는 성안으로 들어와서 식수를 공급했고, 또 양쪽으로 물줄기가 이 성을 딱 둘러싸가지고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이 성은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성벽 두께가 30미터, 성벽 높이가 120미터에 달하니까 어떠한 무기로도 공략할 수 없는 그러한 성이었는데 하나님이 그 성을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120미터가 얼마쯤 될까? 한 층 높이를 3미터만 해도 삼사 십이, 사십 층 높이입니다. 그 높은 성을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무너뜨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불가능이 없는 것입니다. 그 성을 무너뜨리시고 새로운 왕국을 일으키셔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주시고, 돌아가서 다시 성전을 짓도록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 일생을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사십 년 동안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삶에 말씀의 구름 기둥으로, 환란의 밤이 다가올 때는 성령의 불기둥으로 우리를 인도하여주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 주님 함께하여주셔서 어려움을 넉넉히 이길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3절, 4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고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한평생 나의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 얼마나 감사한지. 때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그때 나와 동행해주셔서 지팡이가 되어 나의 길을 인도해주시고, 막대기가 되어서 원수를 물리치시는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질병의 골짜기, 환란의 골짜기, 문제의 골짜기, 어둠의 골짜기, 가난의 골짜기, 그것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혼자 외롭게 인생을 걸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아무도 없이 혼자에요.” “이 세상에 저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여러분과 동행하시고 여러분을 꼭 붙들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래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편 3절에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고 말씀대로 사는 하나님 자녀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하는 모든 일이 형통케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믿고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겸손히 늘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말씀 묵상하고 말씀 인도함을 받을 때 풍성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고 하는 책을 지은 젠 브리커의 간증을 들어보십시오.
날 때부터 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난 닉 부이치치같이 이 자매도 태어날 때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납니다. 1987년 미국 일리노이 주의 한 병원에서 하반신이 없는 기형으로 태어났는데, 그 부모님이 이 아이를 보고 너무 놀라, 두 다리가 없으니까 그 아이를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부모가 버린 이 아이를 예수 잘 믿는 믿음의 가정에서 입양을 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미국의 신앙인들이 우리보다 한 단계 성숙한 신앙인 것은 이렇게 아무도 돌보지 않고 버려진 아이들을 오히려 믿음의 가정에서 입양하고, 어느 집은 아이를 넷을 입양을 했는데 넷 다 장애인들이에요. 독실한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그렇게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양 절차를 밟을 때 검진을 병원에 받으러 갔는데 의사가 “이 아기는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다른 병원에 갔더니 그 믿음 좋은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여자아이는 당신들이 상상도 못한 일을 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이 새 엄마는 아이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봐도 절대로 그 시선을 의식하지 말아라.”
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금 ‘날 어디를 보나?’ 그렇게 관심이 많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할 때는 꼭 눈을 보고 이야기를 해야지, 그분이 불편한 곳을 보고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시선도 이겨내고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갈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 아이가 어릴 때부터 소프트볼, 수영, 배구, 심지어 롤러스케이트까지, 두 팔에 스케이트 신발을 신고 달리는 그러한 운동을 다 했어요. 여섯 살 때 TV에서 미국 국가 대표 체조 선수인 도미니크 모체아누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러한 체조 선수가 되어야 되겠다.’ 열한 살 때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로 이 아이(도미니크 모체아누)가 두각을 나타내게 되는데, 본인이 두 다리가 없는데도 열심히 노력해서 열한 살 때 건강한 체조 선수들과 경기를 해가지고 전미청소년체육대회 일리노이 주 지역 결선에서 텀블링 부문에 금메달을 땄습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시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보다 완전히 실패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내가 시도하고, 실패하며, 내 길을 찾고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용감한 부모를 만난 것이 큰 축복이었다! 나의 삶 속에서 어떤 일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님 때문이며, 그분을 몰랐다면 나는 망가졌을 것이다. 그분은 나의 힘이요, 나의 인내요, 나의 지혜요, 나의 관점이시다!”
할렐루야!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자기가 친 가족을 찾던 중에, 2003년에 자기 본래 성이 모체아노이고 자기가 동경하던 그 체조 선수가 자기의 친언니인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4년 후에 가족을 만나서 자기를 버린 가족들을 용서하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며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유명 체조인으로 전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자매님은 2015년에 ‘전설의 인물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리가 없는데 저렇게 곡예를 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TV 프로그램과 뉴스쇼에 나와서 간증합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지독히도 운이 나빴던 것처럼 보일 것이다. 어쨌든 나의 생물학적인 부모는 내가 태어난 날 나를 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신 것으로 본다! 하나님은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분은 나의 재능과 은사를 개발시켜주며 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가르칠 수 있는 최적의 사람들과 올바른 장소에 나를 보내셔야 함을 알고 계셨다. 하나님은 그분이 하시는 일을 잘 알고 계셨다! 그분은 언제나 그렇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저는 이분의 간증을 읽으면서, 설교를 준비하면서 마음에 큰 감동을 받고 또 주님 앞에 좀 죄송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건강한 두 다리를 가지고 활동하면서 이 자매처럼 범사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여기 계시는 분 중에 태어날 때부터 두 다리 없이 태어난 분은 한 분도 없는 것 같은데, 두 다리 멀쩡하게 가지고 감사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신경질 내고, 화내고, 다투었던 우리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몰라요. 예수 믿고 달라져야 되는데, 예수 믿고 나서도 성질이 다 살아있는 분들이 있어요. 오늘 우리가 회개하고 반성하고 정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에 감사합니다. 우리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시고 형통케 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한평생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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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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