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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Ⅱ)오래 참음, 자비, 양선
2017.08.20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한 열매 속의 아홉 가지 내용인데, 첫 번째 세 가지 내용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맺혀지는 열매로 사랑과 희락, 기쁨과 화평이고, 두 번째는 나와 이웃 간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세 가지 열매 모습으로,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의 모습을 우리가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범주의 ‘오래 참음’, ‘자비’, ‘양선’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오래 참음(Patience)

 오래 참음이라고 하는 것은 막 화가 나는데 막 눌러서 억지로 참는 그런 참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참고 견디는 것을 말씀합니다.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관용의 마음을 가지고, 내게 당한 문제에 대해서 분노하거나 흥분하고 요동하지 아니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모습이 성경이 말하는 오래 참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되게 만들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장으로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사랑의 정의를 열다섯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다섯 가지 내용 가운데, 네 가지가 오래 참음과 연관이 있습니다. 첫 출발이 ‘사랑은 오래 참고’, 그 다음에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충만하면 어떤 시련도 잘 참고 견딜 수가 있고 사소한 일에 성내지 아니할 수가 있고 환난과 핍박을 잘 견디고 참고 이겨내는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여서 어떤 환난과 핍박이 다가와도 문제와 어려움을 만나도 내가 흔들리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다투지 않게 하여주시고, 오래 참고 견뎌서 반드시 주님의 은혜로 승리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야고보서 1장 19절부터 20절은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듣는 것은 빨리 듣지만 말할 때는 한 번 더 생각하여 ‘이 말이 혹시 상대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는지’, ‘상대편을 분노하게 하지는 않는지’ 늘 염두에 두고 말은 천천히 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 아무 때나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는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가장 온유함이 승한자라 그랬습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는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가장 온유함이 승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온유하고 마음이 부드럽고 잘 참고 견디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말 많고 불평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끌어서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온유함이 지상의 모든 사람보다 뛰어났다고 하는 모세가 그 가나안 입구, 가데스바네아에 왔을 때 백성들이 또 불평하니까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그렇게 잘 참고 인내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던 그가 그 순간에는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위를 명하여서 물이 나오게 하라’ 말씀하셨는데 그가 화난 것을 참지 못하고 “내가 너희에게 물을 내랴” 지팡이를 들어서 바위를 두 번 쳤습니다. 화를 내고 화난 행동을 보여준 것입니다. 물이 나왔지만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민수기 20장 12절은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꿈에도 그리고 소원하던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 입구까지만 가고 거기서 그의 삶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 분노함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 우리의 감정을 잘 다스려야 됩니다. 물론 화날 일이 있죠. 속상할 일이 있고, 소리 지를 일이 있죠. 그러나 소리 지르고 싶다고 해서 다 소리 지르고, 화내고, 욕하고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오래 참는 덕을 쌓아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교회 안에서 소리 지르고 다투면 안 됩니다. 소리 지르고 다투는 것은 마귀의 역사요,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자꾸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싸워라, 싸워라!’, ‘소리 질러라, 소리 질러라!’, ‘화내라, 화내라!’, 거기에 그냥 유혹을 받아서 감정을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고 이제 이만한 은혜 가운데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는 우리가 모든 것을 참고, 견디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배려하고, 품는 그와 같은 덕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사울 왕도 그랬습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오는데, 이제 사무엘이 와서 제사를 드려야 되는데 사무엘이 늦게 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불안해서 흩어집니다. 그러니까 “언제 선지자가 올 것을 기다리느냐. 내가 제사를 드리겠다.”고 제사를 드려버렸어요. 그때로부터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귀하게 쓰임받지 못하는 그러한 길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주님의 일을 할 때, 끝까지 우리 마음을 다스리고 특별히 몸 된 교회를 섬길 때 기쁨과 감사함으로 섬겨야지, 주님 몸 된 교회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내 맘에 맞지 않는다고 소리 지르고 다투면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시는 사실을 믿고, 참고 견디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나가야 합니다.
 로마서 5장 3절, 4절 말씀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을 당해도, 핍박을 당해도, 억울한 일 당해도, 속상한 일 많아도, 잘 참고 견디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결국 우리가 꿈꾸고 소망하는 것을 이루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때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됩니다.

 시편 37편 7절은 말씀합니다. “야훼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는 말씀은 불평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내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꾹 참고 기다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그냥 잡초처럼 싹 한순간에 몰아내버리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여러분에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당장 응답이 없어도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좋은 일이 다가올 것을 믿고 참고 기다리면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0절 11절은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오래 참고 기다리면 은혜가 임합니다. 아브라함이 25년을 기다렸습니다. 보통 사람은 1년, 2년, 참 어떤 약속을 받고도 못 기다립니다. 아브라함 25년, 요셉이 13년이라는 그 긴긴 연단의 과정을 통한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여러분, 주님 안에서 큰 은혜를 주실 때 그냥 갑자기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연단에 연단을 거쳐서 때가 되어 받을 만한 그릇이 된 다음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강한 군대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을 하고 또 훈련하고 훈련해서 강한 군대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훌륭한 스포츠 선수들이 그냥 탄생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또 훈련하고 또 훈련하고 또 훈련해서 그렇게 정상의 위치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 참고, 견디며, 맡은 일에 묵묵히 순종하며, 헌신할 때, 큰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자비(친절, Kindness)

 이 자비는 친절한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섬김의 자세가 바로 친절입니다. 친절은 사람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만들고 폭넓은 대인 관계를 이루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친절한 것에는 어떠한 목적이 있어요. 왜? 장사하는 사람들이 친절하게 하면 손님들이 더 많이 옵니다. 똑같은 물건을 사더라도 친절한 데로 가지, 불친절한 데를 왜 갑니까? 어디 가서 무엇을 하더라도 그 입으로 늘 친절하게 말하고 손님을 기쁘게 하는 곳으로 우리가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더 많은 손님을 끌기 위한 친절입니다. 물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친절해야 합니다.

 일본이 저렇게 성공한 비결 중의 하나가 그 민족정신 가운데 있는 친절입니다. 얼마나 친절한지 모릅니다. 제가 1978년에 처음 일본에 갔는데 깜짝 놀랐어요. 백화점에 가니까 모든 사람들이 90도 절을 하는데 일본 사람은 헤어질 때 한번만 절하는 것이 아니라, 안녕히 가시라고. 또 돌아보면 안녕히 가시라고. 한 세 번은 인사해야 갑니다. 아! 저 몸에 깊숙이 배인 친절이 일본을 오늘날의 성공으로 이끌었구나. 우리 한국도 많이 친절해졌습니다. 관공서가 친절해졌고 또 어디를 가든지 기업체의 일하는 분들이 친절하게 손님들을 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 많은 우리 교회는 처음 온 분들이 자꾸 부딪히고 그래서 친절하지 못하다는 말을 합니다. 우리 모두가 친절이 몸에 배어야 합니다. 배려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친절은 몸에 배어서 베풀 때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덕을 끼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평생 소외된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친절을 베풀며 사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36절에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모든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너희도 이웃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고 친절을 베풀라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친절은 조건 없이 베푸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우리 이웃이냐”고 율법 교사가 물었을 때 선한 사마라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가진 것 다 빼앗기고 온 몸을 두들겨 맞고 길거리에 버려졌을 때, 늘 제사를 드리고 거룩한 말을 하는 제사장은 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열심히 하는 레위인들도 보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그들을 존중히 여기지 않았던 사마리아 사람이 가다가 그것을 보고 나귀에서 내려서 상처를 싸매주고 주막에 데려가서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돌봐주도록 하고 돈을 맡기고 가는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0장 36절, 37절입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미국의 유명한 성공 철학의 대가이자 루즈벨트 대통령 고문관을 지낸 나폴레온 힐의 ‘성공의 열쇠’라는 책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어느 비가 많이 오던 오후 필라델피아 한 백화점 앞에 할머니 한 분이 서 있다 들어왔습니다. 대부분 직원들이 할머니가 들어온 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검소한 옷차림의 나이 많은 할머니가 들어와서 문 앞에 서 있을 때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데 한 젊은 직원이 달려가서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뭐가 필요하세요?”, “아니야, 아니야. 난 지금 비가 와서 잠깐 비를 피해 들어왔는데 차가 오면 갈 거야.”, “할머니,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여기 앉아서 기다리세요.”하고 의자를 내다놓고 의자에 앉아서 차를 기다리게 합니다. 한참 기다린 후에 차가 왔습니다. “고마워, 젊은 양반. 명함이나 하나 줘.” 그래서 명함을 줬어요. 그 할머니는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젊은 직원은 다 잊어버리고 열심히 그곳에서 또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백화점 사장에게 편지가 왔습니다. 이 백화점 사장에게 편지가 왔는데, 아무 아무개 직원을 나의 고향 스코틀랜드에 보내서, 큰 성의 가구 전체를 그 청년이 주문해서 다 채우게 하라고. 알고 보니 그 편지를 쓴 사람은 그 직원이 의자를 가져다 드린 할머니였고, 그 할머니는 당시 미국 최대의 재벌인 철강 왕 앤드류 카네기의 어머니, 마가렛 모리슨 카네기였습니다.
 늘 검소한 옷차림으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 어머니가 이 한 젊은 직원의 친절에 감동되어서 본인 고향에 있는 큰 성에 있는 모든 가구를 이 백화점에서 납품하도록 해가지고, 이 젊은 청년이 고속 승진해서 그 회사의 중역으로 파견되어서 모든 물건을 납품하게 했습니다. 그 한번의 친절이 이 청년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아니하고 그냥 할머니 한 분에게 친절을 베풀었는데 이런 큰 축복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친절을 베풀어야 될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하늘나라의 큰 상급으로 우리 모두에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친절을 행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양선(착함, Goodness)

 여섯 번째가 양선입니다. 이 양선이라는 말은 착함입니다. 착한 성품, 착한 행동을 말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착한 마음을 넣어주십니다. 예수 믿는 순간 우리가 그동안 악한 마음을 먹고 살았던 어둠의 자녀였는데, 성령이 오셔서 착한 마음을 심어주시고 빛의 자녀로 살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면, 예수님의 은혜로 그 운명이 바꿔집니다.
 당시, 예수님 당시, 세리장이었던 삭개오가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예수님 만난 후에 그의 운명이 바꿔졌습니다. 누가복음 19장 8절에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로마정부의 앞잡이가 되어서 많은 세금을 거둬가지고 일부는 로마정부에 바치고 일부는 아마 본인이 축적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거부가 되었는데 예수님 만난 다음, 그 악한 마음이 바뀌어서 착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내가 가진 재산의 절반을 가난하고 불쌍한 자에게 다 나누어주겠습니다. 그리고 강제로 착취한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 그는 그 후에 가이사랴의 첫 주교가 되었다는 기록이 남겨져있습니다.

 우린 빛의 자녀로서 의로움과 착함과 진실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8절, 9절에 설명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여러분, 여러분이 어두움이 아니라 빛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사랑의 빛을 비춰야 됩니다. 용서의 빛을 비춰야 됩니다. 착한 빛을 비춰야 되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일 동안 기도하는데 주님 말씀하시기를 “무조건 용서하라! 용서하라! 용서하라!”며 용서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착한 사람은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대단히 죄송하게도, 마음이 착하지 못하면 절대로,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마음에 아픔과 원한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미움과 아픔과 상처가 있는 한 그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늘 그 상처에 눌린 바 되고, 그 상처 때문에 분노하고, 더 미워하고, 더 사람과 갈등이 생기는 그러한 삶의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문제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원인이 나한테 있습니다.

 주여, 오늘부터 내 마음이 착한 마음으로 바꿔지게 하여주옵소서.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다투고 미워하고 분노하며 살지 않게 하여주시고,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또, 용서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우리가 빛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빛의 자녀답게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마태복음 5장 15절, 16절에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은 어두움을 밝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어두움을 밝혀야 됩니다. 신앙은 말이 아니라 행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말로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면서도 행함이 뒤따르지 못하면 그것은 거짓 사랑인 것입니다. 진짜로 사랑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무얼 쏟아 붙고 다 주어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2장 15절에서 17절에는 말씀합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지금 옆집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몇 달이 되어서 쌀독에 쌀이 떨어지고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리는데 “먹을 것이 없으면 음식점에서 사 잡수세요.” 말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금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아닌데 그때는 아무 말 하지 아니하고 집에 있는 쌀독에 쌀을 한 포대 담고, 집에 냉장고에서 밑반찬 가져다가, “아이고, 이거 우리 함께 나눠먹어요. 우리 집에 좀 넉넉하게 있어요.” 나눠주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정이 많은 나랍니다. 시골 어느 데도 가다가 들어가서 인사를 하면 먹을 것을 주는 그러한 정이 많은 민족입니다.

 한 일본 사람이 한국을 알리기 위해서 한국 전체를 순례해서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국 사람은 한마디로 말하면 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시골 어디를 가도 반갑게 맞아주고, 말도 통하지 않는데 먹을 것을 내오고, 어떤 때는 잠도 재워주고. 그래서 일본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그 정을 한국 시골 곳곳에서 체험했다고 하는 그런 책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일반 사람들의 모습일진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 이보다 더 열배, 백배, 천배로 사랑을 실천하며 어려운 사람을 돌보며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 안산 전체가 경제적으로 침체되고 가라앉았습니다. 모든 가계들은 개점휴업입니다.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저희들이 안산희망나눔 프로젝트로 한 번에 천 명씩 12번을 갔습니다. 처음 갈 때는 ‘한 번 이벤트성으로 왔다가나’ 했는데, 세월호가 올라올 때까지 간다고 약속하고 3년 동안 12번을 갔더니 완전히 안산의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저들이 얼마나 교회에 대해서 감사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가서 단 한 번도 예수 믿으라고 전도한 적이 없고 우리가 그냥 가서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말씀만 전했는데, 저들이 크게 사랑을 체험하고 감동을 받아서, 저들이 열두 번째 가니까 “아이고, 이번이 마지막이냐”고 저들이 안타까워하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올해 추수감사절 때 한 번 더 갈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랑은 행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고린도 후서 9장 8절입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먹을 휘두르는 삶에서 이제는 주걱 푸는 삶으로 바뀐, 그 무료 급식 담당을 하고 계신 <바나바하밥집>의 김현일 대표님. 바나바하우스 밥집을 <바나바하밥집>이라고 하는데, 매주 700명이 넘는 그 노숙인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원래 운동선수 출신의 좋은 체격 조건으로 한때 주먹 휘두르는 삶을 살다가 그가 마음을 잡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IMF로 완전히 망합니다. 아내와 딸을 친정에 보내고 노숙 생활을 하는데 말로 없이 그 삶이 비참했다고 합니다. 무료 급식 받으려고 줄을 설 때의 심정을 고백합니다.
 “그 줄은 마치 절망의 줄 같아요.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온갖 생각이 들어요. 배식이 제 앞에서 끊긴 적도 있어요. 그럴 땐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죽고 싶기도 하고…. 너무 끔찍해요!”

 5개월 후 간신히 일자리를 구해 가족과 다시 만납니다. 그때 나들목교회의 김형국 목사님을 만나서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새 출발 했습니다. 2008년, 한 노숙자가 버스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목사님을 찾아가서 말합니다. 교회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줘야 되지 않겠냐고. 그때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교회가 누구냐? 교회가 무엇이냐? 우리 교회도 교회지만, 네 자신도 교회인데, 너는 도대체 뭘 하고 있냐? 하나님이 네게 보여주시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마라.”
 아! 그 말을 듣고 감동받아서 2009년, 컵라면 다섯 개와 빵 다섯 개를 들고 신설동에 있는 노숙인을 찾아간 것이 그의 사역의 시작입니다. 노숙인들은 처음 그를 경계했습니다. 왜냐하면 노숙들에게 와서 그 신분증을 빌려가지고 대포통장도 만들고, 대포폰도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닌가?’ 했는데, 끊임없이 와서 저들을 섬기며 자기도 노숙 생활을 했다고 하면서 가진 것을 나누어줄 때, 한 사람 두 사람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하우스 프로젝트를 열어서 매주 7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고, 무료 급식뿐 아니라 노숙인 자활, 거기서 그냥 가라앉아 있지 않고 이제 일어나서 새 출발 할 수 있도록 저들을 상담도 하고 주거, 의료, 법률, 다양한 방면으로 저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사회 적응 훈련,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이제 저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데, 봉사자들과 함께 어울려서 지금 40여 가구를 이루어서 저들의 자활을 돕고 있습니다. 그 절반 이상이 미혼모 노숙인 장애인들입니다. 그들을 사랑으로 섬기는데 그들이 그곳에 와서 하나, 둘씩 변화됩니다. 완전히 인생을 포기했던 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새 삶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분들에게 필요한 건 공동체였어요. 밥도 먹고, 예배도 드리고, 함께 울고 웃는 그런 공동체가 필요한 거죠. 지역생활공동체로 함께 먹고, 마시고, 예배하고, 사역하는 사도행전의 교회 모습이 우리 공동체가 추구하는 모습이에요. 공동체 안에서 네 번의 결혼식과 돌잔치를 치르는 등 그야말로 삶의 대소사를 함께 나누고 있어요. 주님의 말씀은 아주 선명해요.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받고 핍박받는 사람들 가운데 함께 계셨어요. 저희 역시 삶에서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예수님을 배우고 발현하는 공동체가 되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은혜를 받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선을 행하며 착한 일을 행하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주셔서, 성령의 은혜를 물 붓 듯이 부어주셔서, 모든 일에 참고 견디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선한 일을 행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온 천하에 드러내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복된 인생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너무나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그다음 이기주의로 살았습니다. 베풀지 아니하고 늘 움켜지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오래 참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착한 행실로 통하여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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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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