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한복음 3장 14∼21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해서 하나님 독생자를 보내주셨으니 하나님에게는 이보다 더 큰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고 예수님 안에서 꿈을 가지게 되고 믿음으로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인생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첫째가 건강이요, 둘째가 가족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 믿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건강도 좋고, 가족도 중요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1. 삶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예수 믿는 자는 이러한 긍정적인 믿음의 자세를 항상 그 생활태도에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이 삶의 요점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염려, 근심을 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간구를 하고 맡기면 하나님이 그 자리에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개인문제, 가정 문제, 생활 문제, 자녀 문제, 사회 문제, 국가 문제. 문제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엎드려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면 마음에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 바다 파도가 잠잠해지고 고요해 지는 것처럼 마음에 하나님 아버지가 평안을 주시면 굉장히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어려운 문제도 해결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고 우리가 살아나가면 하나님께서 굉장히 영화롭게 여기시고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느냐 하면 갈보리 십자가 밑에 나아가서 십자가를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그런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를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뿐입니다. 예수님이 대신 몸 찢고 피 흘려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그 하나님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 주시는 긍정적인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마음속에 끊임없는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은 갈보리 십자가 밑에 엎드려서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가 내는 고통의 소리를 마음에 들으면 마음에 어떠한 평안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면 염려 걱정할 일이 많고 변명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흐르는 핏방울을 받아가면서 예수님 고난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우리 자신은 예수님 보혈로 말미암아 목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말하던 우리가 예수님 보혈을 덮어썼으니 그 대가로서 용서와 의롭게 된 저 자신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지 않다 해도 예수님이 나 때문에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 피가 “너는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고 고함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를 우리가 지금 통해서 우리 자신을 한 번 바라보십시다. 마음의 눈으로. 예수님의 피가 나의 생애 위에 떨어져서 씻어주신 그 대가로 용서와 의로움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다 굉장히 의로운 분입니다. 이 세상에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가 의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보기 때문에 여러분은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용서받은 의인 앞에 마귀가 참소할 수가 없습니다. 참소할 거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가슴 뿌듯한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 보좌 앞에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예수님 온 몸이 찢어져서 갈기갈기 찢어진 살점을 통해서 보혈이 우리에게 덮어졌는데 그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예수님의 찢어진 몸에서 고함을 칩니다.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 내가 너 위해서 채찍에 맞아버렸기 때문에 대가는 지불해버렸다. 이제 문제는 너희들이 이를 인정하고 믿고 효과를 발생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서 우리 질병을 다 짊어졌을지라도 믿고 맡기지 아니하면 효과가 없습니다. 효과를 발생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이 헛맞은 것입니다. 정말로 이 세상에 그 수많은 질병과 고통을 예수님이 맞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아 알고 그 보혈의 능력을 통해서 건강한 생명을 얻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자유, 해방을 얻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저주를 받아서 가시와 엉겅퀴가 난다. 가정에 결혼을 하고 나니까 부부간 결혼생활에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장사를 하니 장사 터에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일어나도 가시와 엉겅퀴가 앉아도 가시와 엉겅퀴가 생겨난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모든 가시와 엉겅퀴는 내가 영원히 갚았다. 다 이루었다.” 우리가 저주를 받은 것은 사실인데 그것이 청산되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우리가 나아갈 때 우리의 가시와 엉겅퀴는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저주받은 사람 아닙니다.
여러분이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을 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을 크게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때문에 저주 받았는데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항상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복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절대 저주받은 사람이 복을 받았다고 믿지 아니하면 효과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모두 복받은 분들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너무 기뻐하시고,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볼 때도 복 받은 사람입니다. 무수한 죄인이 들끓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복이고,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자로써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우리를 부요케 하려 하심또한 우리의 복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복된 여러분은 부요한 사람이 되어서 이 세상에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도움을 베풀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와 더불어 죽고 장사 지낸 바 되고, 부활에 동참한 바가 되었음으로 여러분 속에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요 11:26)라고 말씀하셨는데, 참 엄청난 선언 아닙니까?
얼마 전 텔레비전 뉴스에서 80먹은 할머니가 죽어서 시체실로 옮겨 놓았는데, 다시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있어 응급실로 옮기고, 의사 선생님들은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으니 모르겠다”고 놀라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니 이것을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음이 다가와도 우리가 죽음을 보고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비웃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충만한 분들입니다. 참 복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한 것은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너희와 함께 하시리니 그는 예수님은 우리를 외롭게 내버려 놓지 아니하고 자기와 꼭 같은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혜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기 위해서 늘 기다려주시는 분이 보혜사인 것입니다. 파라클레토스라고. 그러므로 우리를 돕기 위해서 바람과 같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이 보혜사 성령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심으로 말미암아 큰 위로를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모략과 재능을 주십니다.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이 보혜사 성령께서 같이 계시고 도움을 베풀므로 항상 보혜사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성령이여,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으로써 저와 같이 계심을 감사합니다. 성령님을 보혜사로 인정합니다. 저는 환영합니다. 모셔 들입니다. 의지합니다.”라고 기도하면 성령 보혜사께서 그 반응을 주십니다. 마음에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기쁨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 밑에 들어가서 십자가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깨달아 보면 참 놀라운 은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소망과 꿈을 품어야한다
우리의 삶에는 성령께 의지하고 소망과 꿈을 품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소망과 꿈이 있어야 돼요. 마음에 소망이 없으면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꽃피어 나면 꿈이 만발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면 여의도 윤중제의 꽃들이 만발한 것처럼 우리들의 소망도 만개하게 될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삶은 좌절하고 절망하나 소망이 꽃피어나면 꿈이 만발합니다. 꿈을 품에 품고 기도하면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시편 145편 19절에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소원과 소망을 갖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에 뜨거운 소원이 있고 소망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소원도 소망도 없는 자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위해서 고쳐주실 때 그가 소원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꼭 물어보았습니다. “무엇 해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나이다.” 여리고성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가 장님 거지였는데 성 밖에 앉아서 구걸하고 살았는데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병 고침을 받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하루는 사람들이 복잡하게 떠들면서 떼를 지어 지나가는 것을 느껴서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물으니까 예수님이 지나갔다고 하니까 일어나서 동냥하던 밥그릇을 던져버리고 겉옷을 벗어서 던져버리고 벌거벗은 몸이 되어서 나가면서 “다윗의 아들이여, 나를 살려주시옵소서!” 그는 예수님이란 소식을 듣고 마음에 뜨거운 소원과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만 만나면 구걸하지 않고 살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돈 담은 그릇을 던져버리고 겉옷을 벗어버렸어요.
그 당시에는 거지 노릇하는 데로 등수가 있어서 일등 장소에 있는 사람은 국가가 주는 제복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제복을 벗어가지고서 예수님 향해서 제복을 던져 버렸습니다. 예수님 만나면 거지의 제복을 다시 입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지의 제복은 바디메오의 살림 밑천인 것입니다. 비올 때 우비도 되고, 추울 때는 외투도 되고, 잘 때는 이불이 되고, 손님을 만났을 때는 예복이 되고, 그에게는 바꿀 수 없는 예복인데 예수님 지나간다니까 예복도 던졌습니다. 왜 그러냐면 사람들이 “야, 이 장님 거지야. 너 같은 사람은 부르짖어도 안 돌아봐주신다. 돌아가라!” 그리 고함을 치니까 뛰고 구르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예수님이 발걸음을 멈추시고 바디매오를 보시면서 “내가 네 무엇해주기를 원하느냐?” 간절한 소원이 있는 것을 주님이 보셨거든요. 그러니까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장님은 떠나가고 보게 되었습니다.
열 두 해를 혈루병 앓던 여인도 군중 사이로 뛰어 들어가서 내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면 나을 것이라고. 그는 목숨을 걸고 뛰어 나갔습니다. 왜냐면 그 당시에는 혈루병은 나병과 같습니다. 군중 속에 들어갔다가는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러므로 죽느냐 사느냐의 결단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는 헤치고 들어가서 예수님 옷자락에 손을 대어서 혈루병이 떠나가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발걸음을 멈추시고 돌이켜 보시면서 “누가 내 몸에 손을 대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둘러싸고 밀고 댕기는데 누가 손을 댔다고 말합니까?” 하고 베드로가 물으니까 “아니야 손 댄 사람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그 여인이 더 감추지 못하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어서 “내가 손을 대어서 나았다”라고. 주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고쳤으니 평안히 가라.” 마음속에 뜨거운 믿음과 소원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뜨거운 믿음과 소원이 있으면 예수님이 그를 통해서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과 소망을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고 하나님께 나가면 반드시 우리에게 크고 작은 꿈을 주시고 소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백성들의 마음속에 꿈과 소망을 주었습니다. 외국에 잡혀가서 종노릇 하더라도 그를 살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꿈과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9절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라고 하심으로 백성들의 마음에 꿈과 희망을 주셨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장 13절)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소망과 꿈을 주시고 그 소망과 꿈을 통해서 주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꿈을 꼭 가지십시오. 여러분 꿈을 꼭 가지십시오. 마음에 안 떠오르면 글로써 쓰십시오. 꿈은 하나님의 영광을 여러분께 가져올 것입니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는 굉장히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었습니다만 꿈 때문에 강철왕이 되었습니다. 강철왕 카네기의 사무실에는 볼품 없는 그림 한 폭이 벽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 그림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나룻배 그림인데 그는 이 그림을 보물처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사람이 다 지나가고 배들이 다 떠나가 버리고 없는 휑한 해변 모랫가에 덩그러니 오랜 배가 한 척 버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 ‘반드시 밀물이 밀려오리니, 그날에 나는 바다로 나간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답니다. 지금은 썰물이 되어서 모래에 파묻히다시피 되어서 버림받고 있으나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밀물이 다가온다. 그땐 덩실 뜨면 나도 바다로 나간다. 이 카네기는 패가망신해서 빈손 들고 있었으나 때를 기다리고 있어서 강철왕이 되었습니다.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때가 온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낡은 배 같다고 생각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밀물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기도 올리면 반드시 하나님이 밀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썰물에 고배를 먹었지만 밀물이 다가오면 바다를 향해서 건너갈 수 있는 것입니다. 때가 오지요. 때를 기다린 사람은 때를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모래사장에 덩그러니 남은 나룻배와 같아도 바다로 가겠다는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밀물을 보내어 드넓은 바다로 출항하게 될 것인 것입니다.
꿈은 삶의 척도인 것입니다. 얼마나 꿈을 꾸었느냐? 얼마나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느냐? 성공적인 인생을 산 척도가 꿈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나님이 얼마나 채워주셨는가 그것을 보고 인생을 성공하고 살았는가, 안 살았는가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믿은 여러분은 희망과 꿈을 마음속에 가지고 입을 넓게 벌리십시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입을 벌리고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소원대로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0편 4절에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시편 81편 10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했는데 또한 믿음을 통해서는 꿈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생각도, 꿈도, 소망도 믿음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3. 믿음에는 놀라운 창조력이 있다
꿈이 믿음을 통해서 이뤄지게 되는 것 때문에 꿈이 마음에 있으면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면 믿음이 생기게 되고 믿음은 주님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능치 못한 일이 없다니까 그 믿음이 얼마나 창조적인 힘이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듣거나 읽거나 말씀을 통하여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면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말씀을 갖고 기도를 하면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생겨나면 창조적인 기적이 일어나고 맙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마음속에 생기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일단 믿었으면 믿음이 늦게 이루어진다고 탄식하고 소망을 놓아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 나아갈 때 철옹성 여리고를 만나게 됩니다. 도저히 정복할 수 없는 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하루에 한 바퀴씩 성을 돌게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7일째에는 성을 일곱바퀴 돌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순종을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을 도는데, 아무리 돌아도 한 번 돌아도 까딱없고 두 번 돌아도 성이 까딱없고 세 번 돌아도 까딱없습니다. 백성들이 “이거 우리가 속은 것 아니냐? 성이 무너질 것 같으면 지금 돌 한 덩어리라도 떨어져야 될 것이 아니냐?” 불평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 7일째 일곱 바퀴를 돌고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백성들이 일제히 고함을 칠 때, 성이 와르르르 무너졌습니다.
이에 앞서 여호수아의 명을 받아 여리고를 정탐하였던 군사들이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갑니다. 라합은 비록 그의 신분이 천한 기생이었으나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정탐꾼을 피신시키면서 그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내가 너를 고발하지 아니하고 감추어 놓을 테니까 너희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 우리를 살려다오. 우리 아버지, 내 형제들을 살려다오.’
이 때 정탐꾼들이 라합과 약속을 합니다. ‘우리가 이 성을 점령할 때 네 집에 있는 모든 사람은 살려 주겠다.’
정탐꾼을 떠나 보낸 후 라합은 자신의 집에 가족들을 불러 모읍니다. 부모도 형제 자매도 다 불러 모으고, 한 사람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믿음없는 가족들은 원망하고 불평하며, 라합을 꾸짖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합은 출입문을 봉쇄하고 끝까지 이스라엘 정탐꾼과 한 약속을 믿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 약속대로 정한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정복하게 되는데, 라합의 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라합의 믿음대로 다 살아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이 여러분 인내가 마지막까지 믿음을 견제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하나님 말씀을 믿고 기도하실 때는 하나님께서 인내를 체험하게 한다는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안될 것이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 같이 마음에 담아서 감사하면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담아서 감사하면서 기다려야 돼요.
히브리서 11장 1절로 2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것이 실상이고 그것이 증거인 것입니다. 실상과 증거는 시간을 두고 기다리게 하면 결정적인 증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없는데 있다고 합니다. 안되는데 된다고 합니다. 지는데 이긴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확실하게 마음속에 부둥켜안고 인내하면 “너희 가슴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믿음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4. 창조적 선언을 하라
그러고는 우리가 기도하고 믿음이 생겼으면 입술의 말로 선포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 하지 말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업이 잘된다. 내 육신의 병은 고침을 받았다. 하나님의 축복의 때가 다가온다.” 입술의 말을 믿음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일이 다 실패가 되었다. 끝났다.” 그렇게 되면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일이 되어간다. 성공이 다가온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고 기도하고 난 다음에 믿은 줄로 마음에 믿으라 하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입으로 시인해야 믿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언제나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믿음의 선언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수기 14장 28절)
이제 말도 안하면 하나님 귀에 들리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믿음의 고백을 해야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꿈을 품고 믿음을 나아가면 우리 삶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늘 십자가를 의지하며, 소망과 꿈을 품고, 믿음으로 전진하며, 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고백을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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