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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2017.03.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사도행전 2장 14~19절)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실 것을 기대하며 십 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기도는 꿈이 없는 기도였고, 응답을 받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하늘의 뭇별을 보며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자기의 후손이 그와 같이 많아질 것을 꿈꾸었습니다. 그 꿈을 품고 믿음으로 기도했고 하나님은 아브람의 기도가 참되다고 보시고 응답하여 주신 것입니다.

 꿈이 없는 기도는 허탈한 기도입니다. 반드시 응답받는 기도는 먼저 응답받기 전에 꿈으로 그 상황을 보고 하나님이 꿈이 있는 백성을 찾아서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1. 꿈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새로운 세계를 정복하는 것은 꿈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아브람이 75년 동안 살던 고향땅을 버리고 가나안으로 갈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꿈을 주셨기 때문에 그 꿈을 바라보고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5세의 노인의 가슴에 가나안의 지도가 펼쳐져서 새로운 꿈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주여행, 달 정복 등 이 모든 것은 꿈의 대상인 것입니다.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가능하게 된 것은 누군가가 꿈을 꾸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꿈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받은 줄 어떻게 믿습니까? 꿈을 꾸는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삶의 목적이 없어집니다.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것입니다. 잠언 29장 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꿈이 없으면 목적을 잃은 삶을 살기 때문에 허둥지둥 살다가 결국 패배한 인생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의 롤 모델을 가져야 합니다.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이 쓴 ‘큰 바위 얼굴’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거기에 주인공이 사는 마을의 절벽 위에는 사람 모양을 한 큰 바위가 서 있었습니다. 그 모양이 웅장하고 다정해 보이는 바위였습니다. 주인공은 늘 그 바위를 바라보면서 자랐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어른이 되었는데 하루는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랍니다.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바로 바위의 얼굴로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으로 바라보는 것을 따라 우리는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인생의 롤 모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롤 모델은 꿈을 이루기 위한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룬 사람을 정해서 그 사람을 닮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서서히 그 사람을 닮아가게 되고 결국 나의 꿈을 이루게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왕대밭에 왕대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롤 모델은 위인이 될 수도 있고 현재 살아있는 인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장 좋은 롤 모델은 부모님인 것입니다. 어린애는 부모님을 보고 자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를 따라서 같은 꿈을 품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꿈을 가지고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셔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2.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꿈꾸는 사람들이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꿈꾸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꿈을 꾸고, 이 세상에 물질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지 않고, 물질세계를 뛰어넘은 영적세계 속에서 꿈을 꾸며 살았습니다. 3차원의 물질세계냐? 4차원의 영적 세계냐?를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 10절에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신명기 26장 8절로 9절에 “야훼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인간적인 생각을 따를 것인가? 꿈의 인도를 따를 것인가를 마음속에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간적인 생각을 따라서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했지만, 그 가운데 유일하게 꿈을 따라가자고 결심한 사람이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야훼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는 것을 보라. 네가 본 애굽 사람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할 것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고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체의 사람들로서, 육체의 현상들을 믿었지 육체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영적인 것은 믿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믿은 세계는 육체의 세계가 아니고 영적인 세계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으로 영이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두 세계를 살게 됩니다. 육신의 세계는 우리 육체의 몸으로 체험하면서 살지만, 영적인 세계는 성령 안에서 영적으로 사는 세계입니다. 영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영적으로 꿈과 환상을 가지고, 영적으로 믿고, 영적으로 믿음을 선언하는 이 세계 속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혼돈을 많이 합니다. 비록 우리는 육신을 입고 살아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환경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니라 꿈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꿈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니까 꿈의 세계를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생각을 버리고 꿈을 따라 살아갈 때,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그릇입니다. 꿈은 하나님이 우리와 대화하는 언어입니다. 꿈이 있어야 우리들과 대화하고, 우리의 소원을 담아줄 그릇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했으며, 시편 81장 10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새로운 세계에는 꿈을 꾸며 사는 세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만나서 제일 먼저 ‘꿈이 있는가?’고 물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우리 안에 꿈이 있는가?”를 먼저 물어보십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길 가에 앉아 구걸하던 한 맹인이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그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예수님은 길거리에 앉은 거지가 동냥하고 살다가 예수님 부르짖는데 보기 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입으로 꿈을 고백하기를 예수님은 원하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예수님은 그 맹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어보신 것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앞을 보고자 하는 간절한 꿈이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하시기 원하신 것입니다. 그 맹인은 질병에서 치료 받고자 하는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질문하실 때,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간절한 소망을 말했을 때, 눈을 번쩍 뜨고만 것입니다. 우리도 분명한 마음에 꿈을 품고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기도는 헛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3. 꿈은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꿈은 새로운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입니다. 꿈은 삶을 사는데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휘발유가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사람도 꿈이 없으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멈춰 서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희망이다. 수확할 희망이 없다면 농부는 씨를 뿌리지 않으며 이익을 거둘 희망이 없으면 장사꾼은 장사하지 않는다. 희망을 품는 것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꿈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꿈이 있어야 날마다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바로 꿈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30절에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야훼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합니다. 꿈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따라오는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는 항구로 이끌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꿈을 하나님께서 와서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꿈이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만 흐르다 보면 중도에 꿈을 포기해 버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다시 꿈을 가질 이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는데 천사들이 가끔 와서 그 물을 동하게 하면 먼저 뛰어간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고침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전신이 병든 환자가 38년 동안 누워 있습니다. 누가 그를 들어서 우물에 던져줄 사람이 없습니다. 더이상 꿈도 없이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때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가를 지나가시다가 그 사람을 보십니다.
 “여기 왜 누워 있느냐?”,
 누가 봐도 병 낫기 위해서 누워 있는데 주님 왜 그것을 묻습니까? 도와주기 전에 꿈부터 먼저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내가 38년 동안 누워도 물이 동하면 다른 사람이 먼저 나아버리고 저는 이 모양입니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하나님이 고치실 줄 믿느냐?”
 “믿기는 믿어도 내 차례가 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너의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라.”
 그러자 병자는 벌떡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38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어보신 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마음속에 포기해버린 꿈을 다시 살려서 그 꿈을 통해서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는 꿈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나 이젠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가 요사이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도 100세가 되고 성도 여러분도 100세가 되어서, 여러분이 지팡이 들고 오더라도, 저는 성도 여러분이 오시는 이상 설교는 할 것입니다. 요사이 60대 전후에 은퇴를 하는데 그 은퇴하고 나면 인생을 겨우 절반밖에 산 것이 아닙니다. 100세에 은퇴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60세에 은퇴하면 절반을 조금 넘게 사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노후대비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경제력을 갖추기 위해 재테크를 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운동도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준비를 빼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에 꿈을 가지는 것입니다. 늙어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꿈을 갖지 않으면, 그 후반 60년의 세월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은퇴한 사람의 40%가 우울증을 겪는데, 꿈이 없으니까 무기력하고 우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가 꿈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꿈과 소원을 주시고 이를 통해 우리 삶에 변화와 창조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원이란 꿈이 아닙니까? 꿈을 살려놓고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성령님과 자유롭게 교제하며 생각, 꿈, 믿음, 창조적 고백을 통해 성령님과 함께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꿈을 아뢰야 합니다.

 우리는 꿈과 살아갈 목표를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목표를 수립하고 달성하는 능력이 삶의 질을 높입니다. 연구결과가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뉴욕대의 캐롤라인 애덤스 밀러 교수의 연구 결과를 따라보면, 새해 목표를 세운 사람은 6개월 뒤의 목표를 달성한 비율이 46%인 것입니다. 목표를 세우지 않은 사람은 목표 달성률이 4%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로 ‘꿈과 목표가 우리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꿈과 목표를 놓아 버리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꿈은 나이를 뛰어넘어 여러분을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주요 당면 과제 중 하나가 고령화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내년에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데, 이는 65세 이상 노인이 14%가 넘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로서, 이로 인한 경제 침체 등의 문제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꿈을 품으면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고 이스라엘 민족을 430년 동안 종살이한 애굽에서 구원해주었습니다. 갈렙은 85세에 꿈을 품고 헤브론으로 가서 적군을 물리치고 그곳을 점령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꿈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 무슨 일을 하려고 합니까?” 그건 죽이는 말인 것입니다. 나이는 필요 없습니다. 꿈을 꾸면 그 꿈대로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꿈을 꾸십시오. 악명 높은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학박사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건강한 사람도 아니고, 지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절실한 이유와 살아서 해야 할 목표를 가진 사람만이 살아났다” 무시무시한 수용소지만 살아갈 목표가 있고 살아갈 이유가 있는 사람은 안 죽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요즘같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때에도, 꿈과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 살아남습니다. 꿈도 목표도 없는 사람은 희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꿈과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꿈과 희망이 없다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고 말 것입니다. 사람은 쌀독에 쌀이 떨어졌다고 굶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꿈이 떨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금식은 해도 살아날 수가 있지만, 꿈을 놓쳐 버리면 절망에 처해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꿈과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해외 많은 목사들이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에 사람들이 와서 말씀을 듣게 하겠느냐?”고 질문을 많이 합니다. 대답은 간단합니다. “희망과 꿈을 주는 메시지를 전하라. 꿈도 희망도 없는 곳에 무엇 때문에 교회 와서 앉아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꿈과 희망을 전도하면 사람들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가지고 도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꿈 없이 인간의 힘으로 노력해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꿈을 가지고 계속 도전해 나가면,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우리 삶에 놀라운 변화의 징조가 따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병들었으면 치료 받을 것을 꿈꾸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한 자매님이 제게 감사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33살의 젊은 성도인데, 3년 전 암으로 수술 받고 난 후, 어지럼증이 너무 심해서 회사도 그만 두고 하루 종일 누워서 지냈다고 합니다. 다행히 주님의 은혜로 건강이 회복 되어 작년에 직장도 다시 구하고 잘 살고 있었는데, 지난 12월에 CT 촬영을 한 결과에 “폐에 결절이 여러 개 있고, 암일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 병으로 너무 고생을 했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제게 중보기도 요청 편지를 보냈습니다. 제가 그 편지를 받아보고, 절박한 그 마음의 상태를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로 불러서 제가 안수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기도를 받고 나서도 그 자매님의 마음속에 불안함이 남아 있었는데, 2주 전 주일 예배 신유기도 때, 제가 “어떤 사람이 자기의 고통을 보고 암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암이 아니라고 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가서 조사해 보십시오.”라고 선포를 했습니다. 그때 자매님이 자기에게 하는 말로 듣고,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병원에서 CT촬영을 하셨는데 암도 아니고 폐에 있던 결절도 깨끗하게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병도 나을 것이라는 꿈과 소원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금년도에 수술을 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나은 사건을, 내 사건이 제 1호 사건이고, 이 두 번째 사건 자매님의 사건을 읽고, 하나님이 좀 더 적극적으로 역사해주시기를 고대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는 북한의 군사적인 위협과 정치적인 혼란과 경제적인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못 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이제 절망이다’라고 말하면 끝장입니다. 그러나 3차원의 세계, 물질적인 세계가 아닌 4차원의 세계, 영적인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영적인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우리는 괜찮다. 우리는 산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꿈꾼다. 믿는다. 두고 봐라. 우리는 더 나아질 것이다’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 속에 들어와서 보고, 믿고, 말하고, 감사하고, 성령과 함께 행하면,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길이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가 없습니다. 꿈을 품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나가면, 암도 그 길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루어주신 꿈을 바라보고 기도하십시오.  

 꿈을 종이에 적어서 식당 벽에다가 붙여놓고, 큰 기대가 이루어질 것을 믿는 집사님 한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녀들을 교훈하는데, 도저히 사람 힘으로는 교훈을 할 수가 없고, 자녀들이 오히려 부모를 훈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의 방에 성경구절을 크게 적어서 걸어 놓고, 식당에도 걸어 놓고,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보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자녀들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성경 구절을 보게 되고 종국적으로 변화가 되었답니다. 좋은 대학에도 들어가고, 이제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결심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을 바라보고,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모세가 430년 동안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올 때, 창 한 자루 없었습니다. 칼 한 자루 없었어요.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마음의 꿈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우신다는 그 꿈 하나가지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서 나왔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하고 부딪혀서 이스라엘 백성이 대승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은 어떤 일을 당해도 감사한 것은, 수많은 교회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산을 바다로 던질 수가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겨자씨보다 큽니다.

 “너희 두 사람이 이 땅에서 구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리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할 것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이 흥왕하고 우리 젊은이들이 소망을 두고 살 수 있는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기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되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별을 보며 믿을 수 없는 속에서도 꿈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꿈과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게 했듯이, 우리들도 꿈과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 시간 꿈꾸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들에게 성령님이 함께 하시어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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