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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으로
2016.10.30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장 16∼17절)

 우리는 불신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정부, 언론, 교육 등 사회 전반적으로 불신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마음도 변하고 환경도 변하며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중세시대 가톨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고 인간이 정한 예식과 사람의 말을 내세우면서 점점 타락하였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가톨릭의 문제를 지적한 95개조 항목을 비텐베르크 성당에 써 붙여놓음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종교개혁 5대 강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오직 성경으로 ② 오직 그리스도로 ③ 오직 은혜로 ④ 오직 믿음으로 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오늘날 우리의 삶, 우리 교회, 우리 사회, 우리나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끝없는 개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이 말을 늘 마음에 새겼습니다.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종교개혁기념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믿음을 새로이 하는 은혜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1. 복음의 능력


 우리의 삶과 환경은 오직 복음의 능력으로 온전하게 변화됩니다. 로마서 1장 16절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사실 복음은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것이며,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에서 복음을 전할 때 두려웠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3절은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희생과 포기가 요구되는 십자가의 도는 사람들에게 거리끼는 것이고 미련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3절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심각했지만, 바울은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랑했습니다. 십자가 때문에 받는 핍박과 어려움을 기쁨으로 감수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지식, 신분, 지위 등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는 십자가를 자랑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의 자랑거리입니까? 학력, 능력, 재능, 권세, 가문, 인맥 등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을 자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도 십자가가 아닌 다른 것을 자랑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큰지, 교인의 수는 얼마나 많은지, 교회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력이 있는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이루었는지 등을 자랑합니다. 중세 가톨릭교회에서도 예수님보다 교회의 재산을 자랑했습니다. 이런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교황 이노센트 4세가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화려한 바티칸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더 이상 교회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자 아퀴나스가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교회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할 능력도 없습니다!” 교회가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고 예수님 이름의 권세를 잃어버렸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33세였던 가톨릭 신부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 조항의 공개질의서를 붙인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가톨릭교회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자랑하기보다 교황의 권위나 교회의 규모를 더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 교황과 교회는 수입을 초과해서 지출했고, 그 빚을 메꾸기 위해서 면죄, 사면의 교서 등을 남발했습니다. 루터 당시 교황인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과 자신의 호사스러운 취미를 위해 면죄부를 확대해서 발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때 독일 마인츠 대주교인 알베르트는 3개 교구를 겸직하는 대가를 교황에게 지불하기 위해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면죄부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8년간 면죄부 판매를 허가받았고, 수익의 절반은 알베르트의 빚을 갚는데, 나머지는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에 사용했습니다. 그는 면죄부 전담판매원인 수도사 테첼을 고용했는데 테첼은 깃발을 흔들고 종을 울리는 등 요란하게 행진을 하며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은화가 모금함에 딸랑 떨어지는 순간에 한 영혼이 연옥으로부터 천국으로 날아간다!” 루터는 이러한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며 95개 조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52조) 비록 교황이 아니라 그 대리인이 면죄부의 효과를 보증하기 위해 자기 영혼을 담보로 세운다 해도, 면죄부를 통한 구원을 바라는 것은 헛된 것이다. (제62조) 교회의 진정한 보물은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의 거룩한 복음이다. (제93조)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 ‘십자가, 십자가’를 전하는 선지자들은 복된 사람들이다. (제94조) 기독교인들은 고통과 죽음과 지옥일지라도 그들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다. (제95조) 그리하여 안전하고 평안한 가운데서보다는 많은 환난을 통해서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자랑해야 합니다. 아무리 다른 것들을 잘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사라진 교회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유대인이나 헬라인 구별 없이 모두에게 자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에 빚진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로마서 1장 14절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방인들에게 전할 복음을 맡겨두셨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이방인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복음을 받지 못하게 되므로 그는 할 수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하고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복음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를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음을 듣기를 원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부터 20절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만민에게 전해야 하는 복음은 구원의 능력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능력, 우리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구원 앞에서 평등합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복음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믿는 자만이 복음을 복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 복음은 미련하고 부끄러운 것에 불과하지만, 믿는 자에게는 놀라운 능력이요, 위로요, 축복이 됩니다.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십시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자랑하십시오.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치료와 회복의 역사가 우리의 삶에 나타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의


 개혁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야 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의로움은 불완전한 인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의를 획득하려고 시도하는 방법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통해서는 절대로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은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율법의 요구를 다 지킬 수 없습니다. 율법의 길을 따라가면 우리는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죄인은 거룩한 하나님의 의 앞에서 결국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믿음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로마서 3장 28절은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존 파이퍼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이 말은 복음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몸소 성취하신 의가 있으며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것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를 우리에게 거저 주신다. 우리의 행위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에 근거한 일이다. 이것이 기독교가 그 자체로 기쁜 소식이 되는 이유다. 우리 스스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의, 즉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만큼 선한 행동을 해야 얻는 의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그냥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우리 자신을 의뢰하는 일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할 때, 그 의를 하나님이 값 없이 우리에게 주신다!”

 율법이 아닌 믿음을 붙드십시오. 행위가 아닌 은혜를 붙드십시오. 의로움이 믿음을 통해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대비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의입니다. 인간의 의는 하나님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 기준이 되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인간의 의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기준이 되고 결국 자기 과시와 탐심으로 이어집니다.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의 장사꾼을 내쫓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2절부터 13절은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교회의 일도 인간의 의로 하게 되면 결국 개인의 탐심을 채우는 일이 되고 맙니다. 교회를 장사꾼의 소굴로 만들지 마십시오.

 종교개혁 역시 당시 가톨릭의 탐심을 지적했습니다. 유명한 교회사가 중 한 명인 필립 샤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뜰에서 타락한 장사꾼들을 쫓아내심으로써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종교개혁은 기독교 신앙을 더럽히고 저하시킨 면죄부 판매에 대한 항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얻을 때 우리는 모든 것,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염려,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 죄성을 지닌 우리는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결국 죄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죄로 뒤덮인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가 강물처럼 흘러가게 하십시오.


 3. 믿음의 역사


 개혁을 위해서는 우리 삶 가운데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하였는데,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 남유다는 영적, 정치적, 경제적 영역에 죄와 불의가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기득권자들은 바벨론의 인사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약자들을 수탈하고 핍박했습니다. 가나안의 우상들뿐만 아니라 앗수르나 바벨론 등 대제국의 우상까지 섬겼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살아남을 수 있는 해답을 하박국 2장 4절에서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의인은 결국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영적인 전쟁 가운데 있음을 의미합니다. 마귀는 늘 우리를 향해 가난의 불화살, 질병의 불화살, 미움의 불화살, 원망 불평의 불화살을 쏘고 있습니다. 믿음은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 마귀의 공격을 막아줄 방패입니다. 에베소서 6장 16절은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있으면 마귀의 공격을 받아 쓰러지고,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마귀의 불화살을 막을 견고한 믿음의 방패를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의 자녀들을 지켜주시고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해주신다는 믿음을 붙들고 있으면 마귀의 어떠한 공격도 능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믿음을 붙들고 날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됩시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드렸는데, 그 제사로 인해서 그는 형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회자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은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믿음은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우리가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될 때 주님의 소유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믿음 안에 거하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은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힘, 죄의 유혹을 이기고 거룩함을 지키는 힘, 죽음의 절망까지도 이기는 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절대 긍정의 믿음입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믿음입니다. 어떠한 문제가 다가와도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희망과 문제 해결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 되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믿음으로 무장하십시오. 큰 믿음의 사람으로 매일을 승리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이 먼저 그렇게 살지 못함을 주님 용서하여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모든 문제를 바로잡고 우리 대한민국이 바로 서게 하여주시고, 이 일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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