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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2016.10.23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중략)…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누가복음 16장 19∼26절)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끝인 줄만 알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미루어보려고 의학의 힘을 빌려보고, 운동을 하고, 보약을 먹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보지만 결국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죽음은 이 땅의 모든 고통을 끝내고 기쁨이 넘치는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출발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천국 소망을 갖고 사는 은혜를 누리시길 원합니다.


 1.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


 예수님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하여 죽음 뒤에 천국과 지옥이 모든 사람을 기다리고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부터 22절은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라고 말씀합니다. 이 부자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이 풍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고급 옷을 입고 세상 쾌락을 따라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는 영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어서 날마다 향락과 사치를 즐기느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전혀 준비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는 개인적인 즐거움만을 추구했을 뿐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자기 집 대문 앞에 있는 거지조차도 돌보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6장 20절부터 21절은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라고 말씀합니다. 거지 나사로는 부자가 먹고 버리는 음식을 얻어먹으며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했습니다. 그는 건강 상태도 매우 나빴습니다. 그는 종기와 고름이 나는 피부병을 앓고 있었는데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아 그를 더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나사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돕는 자’입니다. 그는 현실 속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고난을 견디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사람에게 갑자기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누가복음 16장 22절은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라고 말씀합니다. 부자라고 해서 자신의 생명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의 때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죽음은 예고 없이 그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모세는 인생에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과 앞으로 다가올 세계를 준비하며 살 것을 가르쳤습니다. 시편 90편 10절부터 12절은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자신이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고 해서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날을 계수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찾아옵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 앞에는 사회적 신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 물질, 건강, 지위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지 않습니다. 죽음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구별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은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벌인 유명한 대토목공사들의 규모를 보면 만리장성은 150만 명을 동원해서 만들어졌고, 아방궁은 70만 명, 진시황릉도 70만 명을 동원해서 지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부귀영화와 권세를 영원토록 누리고 싶어서 불로장생을 위한 영약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신하들에게 지시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진시황제의 명을 받은 일행이 불로초를 찾아서 제주도까지 왔다는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오매불망 불로초를 기다리던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하기 시작한 지 10년도 안 되어 49세에 사망하였습니다. 온갖 좋은 음식과 약초를 다 구해서 먹었을 진시황도 자신의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들을 손에 쥐어도 결국 죽은 뒤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물질과 명예에 욕심을 내지 말고 하늘의 것에 욕심을 내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20절은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물질, 시간, 마음을 우리의 손에 쥐고 있지 말고 하나님께 드립시다. 마태복음 6장 19절부터 20절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곳간이 아닌 하늘의 곳간에 보화를 쌓아둡시다. 주님이 축복해주셨을 때 그 물질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2. 죽음 이후 예비된 세계


 우리의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두 가지 세계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22절은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라고 말씀합니다. 천국 아니면 지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릴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생깁니다. 또한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동안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해보겠다며 자기 욕심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죽음 이후에 영원한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 천국이,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간지점은 없습니다. 누구나 죽은 뒤에는 천국이 아니면 지옥을 가야만 합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진지한 인식을 가지면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미국 코너스톤교회 담임인 프랜시스 챈(Francis Chan, 1962∼) 목사님은 자신의 저서 『지옥은 없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님은 지옥을 끔찍한 장소, 고통과 불과 어둠과 통곡으로 점철된 곳으로 말씀하신다. 확신컨대 주님의 의도는 우리가 지옥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 지옥을 피하도록 만드시려는 것이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다가올 진노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다. 지옥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안일한 마음들을 차가운 냉동실에서 건져 낼 것이다!”

 초대 교인들은 부활에 대한 확신과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고 기독교를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단지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셨을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해 천국에 거처를 예비하러 하나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부터 3절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천국은 특별한 공로를 세워야 하거나 많은 돈을 지불해야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에서 어떤 부귀를 누리고 어떤 권세를 누렸다고 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십니다.

 나사로는 돈도 건강도 돌봐줄 사람도 없었던 거지였지만 하나님을 믿었기에 죽는 그 순간 바로 천국에 갈 수 있었습니다. 부자는 생전에는 부귀영화를 누리며 세상의 기쁨을 좇아서 살았으나 죽어서는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거지에게는 ‘나사로’라는 이름을 불러주셨지만 부자에게는 이름조차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죽음 이후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으면서 살기보다는,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기쁨이 있는 천국에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때로는 갑작스럽게 천국에 가시는 분도 계십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 아드님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교수가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천국에 갔습니다. 서른한 살에 갑자기 가버린 아들 앞에 눈물을 흘리는 그의 어머님에게 뭐라고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권혁주 교수는 지금 천국에서 계시고, 주님 곁에서 지금 이 예배를 내려다보고 있을 줄 믿습니다. 제가 미국 LA에서 목회할 때도 목사님 손자가 생후 아홉 달 만에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전할지를 하나님께 기도하자 주님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이 아이는 날 때부터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평생 이 땅에 사는 동안 너무 고통 가운데 살게 되기 때문에 내가 완전한 치료를 위해서 천국에 미리 데려왔다” 저는 목사님에게도 그 아이 부모에게도 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어서 은혜 가운데 큰 위로를 받고 장례식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예수님만 모시고 있으면 우리는 눈물도, 근심도, 걱정도, 고통도 괴로움도 없는 천국에 갑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죽음 이후에 맞이할 영원한 천국에서의 영광스러운 삶을 위하여 항상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3. 천국의 축복과 지옥의 형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불순종의 대가로 저주의 세력이 들어와서, 사람들의 마음에 항상 근심, 걱정, 슬픔이 있으며 질병과 가난의 문제가 끊임없이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눈물, 근심, 걱정, 질병, 저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서 받은 모든 상처를 치유받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부터 4절은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진정한 평화와 위로를 얻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놀라운 기쁨이 가득한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에서는 늘 찬양과 감사가 넘쳐나며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이 우리에게 부어집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어 완전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고난을 당하고, 멸시받고, 때로는 순교하게 될지라도 그 모든 것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지 나사로가 굶주리고, 병들고, 멸시받아도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리며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천국에 대한 소망 때문입니다.

 존 맥아더(John MacArthur, 1939∼) 목사님은 『천국을 말하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마 6:20)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의 보물을 갖고 싶으시기 때문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신다. 천국은 주님의 거처다! 이것이 천국이 신자들에게 보배로운 이유다. 우리는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거하면서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것이며, 그분의 얼굴에서 뿜어 나오는 빛을 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알고 있는 신자라면 누구나 그런 천국을 가장 먼저 사모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 자신이 곧 천국의 영광이다!”

 반면에 지옥은 어떠한 곳입니까? 지옥은 희망이 없는 곳입니다. 영원한 불 못이 있는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0절은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고 지옥은 마귀가 다스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천국도 지옥도 모두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지옥은 본래 하나님께 반역한 마귀를 벌하기 위한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마귀에게 미혹되어 죄의 종으로 살다가 죽은 사람은 마귀와 함께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4절은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사망’이란 두 번 죽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첫째 사망’이 단순히 육체의 죽음을 의미한다면 ‘둘째 사망’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을 의미합니다. 부자는 죽고 나서 지옥에 갔습니다. 그가 절망의 지옥에서 외쳤습니다. 누가복음 16장 24절은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지옥의 고통 속에서 부자는 자기 형제만은 이곳에 오지 않도록 나사로를 보내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전하게 해달라고 아브라함에게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탁은 거절당합니다. 이미 이 땅에 복음 전도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죽은 자의 몫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을 예수 믿게 하여 천국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원로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신성종 목사님(현 신성종영성개발원 원장, 79세)은 장모님으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보게, 천국은 정말 있는 건가? 내가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어?” 목사님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알고 있는 신학적, 성경적 지식으로 답을 했지만, 자신도 마음에 확신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매일 한 끼씩 금식하면서 천국을 보여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8일 동안 환상으로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셨습니다. 목사님이 환상으로 본 지옥은 전체가 불덩어리처럼 활활 타고 있었고, 연기가 나고 냄새가 지독한 시궁창 같았습니다. 물이 없어서 견딜 수 없는 갈증을 느끼고, 유독물질이 차고 넘쳤습니다. 사람들은 손을 굽힐 수 없어 음식이 있어도 먹을 수 없어서 뼈만 앙상했으며,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환상으로 본 천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을 중심으로 12개의 줄이 원처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각기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① 순교자들. ② 이 땅에서 전도를 많이 한 성도들. ③ 주님으로 인해 많은 고난을 당하고 끝까지 변절하지 않은 성도들. ④ 이름도 빛도 없이 주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사람들. 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위로한 사람들. ⑥ 평생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원으로 열심히 봉사해 온 사람들. ⑦ 교회를 많이 건축하고 세운 사람들. ⑧ 성경을 연구하며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수들과 선교사들. ⑨ 농어촌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목회를 한 목회자들과 이들을 협력한 수많은 성도들. ⑩ 교회에서 직분 받아 충성을 다한 장로, 권사, 집사들. ⑪ 평생 믿기는 했으나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성도들. ⑫ 예수님의 오른편에서 십자가를 졌던 강도와 또 죽기 전에 믿은 성도들. 목사님은 천국과 지옥을 경험한 후, 70이 넘은 나이에 인도 오지와 캄보디아에 선교하신 후 귀국하셨습니다. ‘그 연세에 왜 오지로 선교를 떠났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고 무엇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인가를 알았기 때문이에요. 천국을 보니 맨 앞자리에 순교자들이 보였고, 그다음에 선교사와 전도 많이 한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아, 하나님이 인정하고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하는구나. 그것이 사는 길이구나!’”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전도에 힘쓸 것을 권합니다. “천국에서는 전도자들이 가장 귀하게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나가 전도해서 여러 사람을 구원받게 하고 그들이 또한 나가 전도하게 하는 것이 가장 귀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우리를 보낸 목적을 이루십시오! 전도 왕이 되려고 노력하십시오. 전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고 천국의 소망을 갖고 사십시오. 언제나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잘 믿고 복음의 증인이 되어서 살다가 하나님께 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번뿐인 인생을 살면서 예수님 잘 믿고 열심히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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