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가 야훼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왕이 보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이에 왕이 야훼의 성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야훼의 성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왕이 단 위에 서서 야훼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야훼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열왕기하 22장 2절, 23장1∼3절)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들의 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하나님께 인정받으려 하기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시편 1편 6절은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남유다의 왕 요시야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평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남유다의 왕으로 있는 동안 대대적인 개혁운동을 벌여 남 왕국 유다를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새롭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업적으로 그는 제2의 다윗이라고 평가받는 왕이 되었습니다.
1. 말씀을 통한 개혁
요시야 왕이 즉위할 즈음에 남 유다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을 삶의 주인으로 여기는 불신앙이 팽배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회가 혼탁해지고, 신앙은 내리막길을 거듭했습니다. 이에 대한 원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말씀과 무관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의 판단과 결정의 잣대가 되어야 합니다. 신명기 5장 32절부터 33절은 “그런즉 너희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 복되고 형통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 말씀에 어긋난 삶의 모습, 마음, 말과 행동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요시야 왕은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하게 된 하나님 말씀 앞에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열왕기하 22장 10절부터 11절은 “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지 않고 세상의 유혹과 죄에 물들어 세상 사람들처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간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을 따라 살며 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 돈을 사랑하고, 이웃을 미워하던 모습이 있었다면 다 회개해야 합니다. 남을 모함하고 정죄했던 모습을 회개하고, 손에 들었던 모든 비난의 돌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부터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자기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을 심판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심판하실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혈의 공로 때문에 용서받은 의인이 된 것이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가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만한 것이 있어서 의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고백해야 할 한 가지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실 때 복 있는 사람은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시편 1편 1절부터 2절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을 마음의 중심에 두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는 요시야 왕과 같이 자기가 속한 공동체가 말씀 중심으로 변화되도록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열왕기하 23장 3절은 “왕이 단 위에 서서 야훼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야훼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따를 때, 회복, 축복, 하나 됨의 역사가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임하게 됩니다.
미국의 기독교 작가 에린 킬리 마샬(Erin Keeley Marshall)은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책들이 독자의 습관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격려한다. 그러나 성경에 비할 수 있는 책은 없다. 성경과 다른 글의 차이점은 바로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이 그분의 책을 쓰신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의 죄성을 없애고 경건한 순결함으로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이다. 그와 같은 것을 바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메시지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성령님께 그 말씀을 깨닫게 도와달라고 간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하면 당신은 결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변화는 좋은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성장이 없으면 결국 뒤로 후퇴할 것이다. 성경을 펴고 하나님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2. 예배의 개혁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의 모습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하며,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자신의 삶을 의탁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우상숭배의 유혹은 매우 강력해서,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경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마저 우상숭배에 빠져버렸습니다.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참된 회개의 모습을 보이고자 우상숭배에 오염된 예배의 모습을 개혁했습니다. 열왕기하 23장 5절부터 6절은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또 야훼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라고 말씀합니다. 요시야 왕은 우상숭배를 철저히 제거했습니다. 백성들을 우상숭배하도록 만들었던 우상 신의 제사장들을 폐하고, 우상에 제사지내는 사람들을 몰아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에 있던 아세라 목상을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가 불로 태우고, 그 재는 공동묘지에 뿌려버렸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들어와있는 우상은 무엇일까요? 교회 밖에 있는 우상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섬기는 우상이 교회 안에도 들어와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질의 우상, 권력의 우상으로 인해 한국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물질과 권력을 하나님 떠받들 듯이 떠받들고 있고, 교회 안에서 물질이 있는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눠 차별대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의 모습이 교회 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성경에 입각한 바른 가치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우선은 성경적 물질관을 가져야 합니다. 물질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주신 수단입니다. 주객이 전도되어 물질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여기고 사랑하면 안 됩니다. 물질을 사랑할 때 모든 문제가 시작됩니다. 물질을 목적으로 여기고 사랑하는 삶의 태도는 결국 그 사람을 믿음에서 멀어지게 하고 걱정, 근심, 파멸로 몰아갑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하나님께 드려진 물질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것이고, 거룩하게 구별된 물질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물질관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은 언제나 바르고 귀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과거에 우리들의 잘못이 있었다면 반성하고 다시는 그 같은 일들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교회 안에 들어온 권력의 우상도 심각합니다. 교회의 제직은 섬김의 직분임에도 이를 권세로 알고 교만해져서 자기주장만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제직은 힘들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믿음 약한 성도들을 도우려고 세우신 것인데 옛말로 완장 찬 사람들이 목에 힘준다고 알게 모르게 군림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독일 경건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슈페너(Philip Jakob Spener, 1635∼1705)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저서 『경건한 열망』을 통해 형식화되어있던 독일 교회를 개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독일 경건주의가 탄생했습니다. 당시 독일은 30년전쟁 후 300개 이상의 지역으로 분리되고, 각 지역은 제후나 다른 통치자에 의해 다스려졌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 때에는 교회의 개혁을 위해 협력하던 제후들이 17세기 후반에는 교회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성직의 관료화가 성행하게 되어, 성직자들이 제후들과 귀족들 앞에서는 비굴하게 굴면서 일반 백성들 앞에게는 으스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극심한 세속화와 부패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성도들은 구원에 대한 내적 확신과 경건한 삶의 실천에 대한 관심을 상실해버렸습니다. 공적인 신앙고백과 종교의식 참여가 구원을 보장한다고 가르치는 의식주의에 빠지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슈페너는 『경건한 열망』에서 성직자들을 향해 이렇게 언급합니다. “교회의 우리 설교자들도 또한 철저하게 부패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저들이 얼마나 교구에서 교구로 승진, 이동을 모색하고 있으며 그리고 모든 종류의 음모에 가담하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교회 내에서의 대부분의 타락은 높은 계급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 대안으로 교회개혁을 위한 몇 가지를 제안합니다. “① 하나님의 말씀을 널리 사용하라. 공적 예배 이외에도 여러 경건시간들을 통해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라. ② 모든 성도들은 영적 제사장이며, 열심으로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봉사해야 한다. ③ 믿음이란 지식만이 아니라 실천이어야 한다”
예수님의 일생이 섬김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교회 안의 모든 우상을 멸하는 방법은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가 있는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초창기 성령충만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우상을 몰아내지 못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기준으로 하는 개혁은 형식적이고, 인본주의적 개혁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의미의 개혁과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려면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모든 성도가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뜨겁게 기도하며, 말씀을 사모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선교하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3. 생활의 개혁
요시야 왕의 개혁은 신앙적인 측면에서만 머문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까지 새롭게 했습니다. 열왕기하 23장 24절은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야훼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요시야 왕은 백성 개개인의 삶과 가정, 사회와 지역에 뿌리 내린 우상숭배의 습관을 제거했습니다. 우리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께 찬송 드리고, 예물 드리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삶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셔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있는 시간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우리의 시간과 모습이 다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몸을 드리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몸을 입고 사는 날 동안의 모든 것, 곧 삶 자체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주님께 드릴 때, 거룩한 제물로서 드려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랑하고 아끼는 우상들을 똑같이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면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늘 기도와 말씀으로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죄의 때가 묻습니다. 그러므로 보혈로 우리 마음을 늘 씻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서는 성실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게으름과 나태함을 버려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어느 누가 보든지, 또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복받은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제자, 그리스도인이라는 모습이 드러나야 합니다. 분명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나날이 신앙이 성장하고 교회는 큰 부흥을 이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온 백성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은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은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빛의 사명은 어둠을 밝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인 우리는 죄악과 불의로 어두워진 세상을 복음의 빛으로 밝게 비춰야 합니다. 또한 복음에 합당한 모습, 곧 선한 행실을 보여야 합니다. 소금의 사명은 녹아져 음식에 꼭 필요한 맛을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패를 막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녹아지되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세상이 죄와 불의로 썩어져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사명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감당할 수 있으며, 또한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변화를 통해 세상이 달라진 기적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에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평양대부흥은 한국교회와 사회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준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부흥입니다. 대부흥 이후 소돔과 고모라의 도성으로 불리던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렸고, 교파, 교단, 지역을 초월하여 평양의 교회는 놀랍게 성장합니다. 이 부흥은 1907년 1월 14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교회에서 신년 부흥 사경회를 하던 중, 13일째 되는 날, 1500여 성도가 통성기도를 드린 뒤 길선주(1869∼1935) 목사가 강단에 올라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 나는 1년 전 죽은 친구의 유언을 지키지 못하고 돈을 훔쳤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1년 전 죽음을 앞둔 친구로부터 셈을 할 줄 모르는 아내를 위해 재산을 대신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당시 100달러 정도의 돈을 훔쳤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그날 저녁, 600여 명이 새벽 2시까지 남아 회개 기도를 이어갔고 자신들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회개운동을 통해 교인들은 미움과 시기, 질투, 증오, 불신, 원한 등 정신적인 죄와 절도와 횡령, 사기, 방화, 노름 등 물질적인 죄, 간음과 살인, 축첩, 불효 등의 윤리적인 죄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모든 죄들을 쏟아냈습니다.
회개는 일상생활에서도 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방은덕이라는 순경은 교회에서 죄 고백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을 듣고 범죄자를 잡기 위해 집회에 참석했다가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죄를 회개하고 고향에 돌아가 맹산교회를 세웁니다. 어느 날은 강도단 두목이 호기심에 교회를 찾았다가 회심하고 경찰에 자수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북감리교 선교사 해리스(M. C. Harris)는 1908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열린 북감리교 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부흥운동의 여파로 수천 명이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면서 많은 술꾼이 술을 과감히 끊고, 도박꾼, 오입쟁이 등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됐다!” 또한 당시 유교적 통념으로 전혀 죄라고 여기지 않았던 축첩과 노비 소유 등을 죄악으로 고백하고, 첩과 소실을 정리하고 노비에게 자유를 주는 사회적 변혁이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그해 6월까지 평양 지역에서만 3만 명이 회심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후 부흥은 전국으로 확대되어, 1910년 서울에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며 결신 카드에 이름을 적어낸 사람은 1만 3000명이나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삶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전심으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열왕기하 23장 25절은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야훼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라고 말씀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도님들이 속한 공동체를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서 변화받아 개혁의 주체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변화시켜주옵소서. 새로워지게 하여주옵소서. 교회에 제2, 제3의 부흥의 역사를 이루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온 나라를 개혁시킨 요시야 왕처럼 우리도 변화의 주역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통해 교회가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는 귀한 역사를 이루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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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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