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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위대한 힘
2016.06.19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창세기 50장 15∼17절)


 세상 사람들은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생 동안 마음에 아픈 상처로 인하여 절망하고 좌절하면서 어두운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하고 문제 가운데, 어둠 가운데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상처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배우자로부터,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마음 가운데 자리 잡고 더욱더 고통 가운데로 몰아넣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은혜로 모든 상처를 치료받고,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여러 용서의 모습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요셉이 자기를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용서하는 장면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요셉이 입은 상처


 야곱의 열한 번 째 아들로 태어난 요셉은 형제들 중에서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매우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창 37:3∼4). 비록 형들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지만 요셉은 꿈꾸는 소년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그에게 꿈을 주시자 기쁨으로 형들에게 자신이 장차 높아져서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게 된다고 꿈에 대해 말했습니다. 평소에도 요셉을 미워했던 형들은 자신들이 요셉에게 절하게 된다는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듣고 더욱 그를 미워하게 되었습니다(창 37:5).

 어느 날 형들이 양을 치러 멀리 나갔을 때 아버지가 형들과 양떼가 잘 있는지 알아보도록 요셉을 다녀오게 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찾아 먼 길을 왔는데 형들은 요셉을 본 후 죽일 생각부터 했습니다. 창세기 37장 18절부터 20절은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큰 형인 르우벤의 반대로 요셉은 죽음을 면하고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렸습니다. 그때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을 팔지 말라고 간청했습니다. 창세기 42장 21절은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요셉이 입은 첫 번째 큰 상처입니다. 요셉은 17세 때 자기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는 노예시장에서 애굽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렸고 그 집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만 의지하자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하는 모든 일을 축복해주셨습니다. 그가 하는 일마다 잘되자 보디발은 요셉을 신임하여 집안의 총무로 높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또 다른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요셉을 유혹하려다가 실패한 보디발의 아내가 앙심을 품고 요셉에게 누명을 씌웠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었던 요셉은 죄수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요셉이 받은 두 번째 큰 상처는 보디발의 부인에게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간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누명을 쓰고 죄수가 되어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감옥에 갇혀있는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는 곧 간수장의 신임을 얻어 감옥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왕의 신하였던 두 명의 죄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그들의 꿈을 해몽해 주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해몽대로 자신이 풀려나게 되면 왕에게 요셉의 무죄를 탄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3일 후 감옥에서 풀려나 복직한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바로가 기이한 꿈을 꾸게 될 때까지 2년이란 긴 시간 동안 요셉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세 번째 상처는 자기를 잊어버리고 바로 왕에게 자기를 변호해주지 않은 관원으로 인해 2년이란 긴 세월을 옥에 더 있었던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풀려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모두 깨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총리대신이 된 후 모두를 용서하고 그 누구에게도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마음에 원한을 품고 살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세 번에 걸쳐 큰 상처를 받았지만 하나님만 바라봄으로 그 모든 상처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중국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1937년 12월 13일부터 6주 동안 30만 명을 학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을 함락하고 나서 백기를 들며 항복한 중국군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습니다. 심지어 갓 태어난 아기조차도 함부로 죽였습니다. 여성들은 성폭행 한 후에 가차 없이 죽였습니다. 게다가 일본군은 누가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지 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 만행의 현장에 세워진 난징 대학살 기념관에 가보면 입구에 캄캄한 벽에서 물이 떨어지는데 7초마다 한 방울씩 떨어지면서 난징 대학살과 관련된 사진이 한 장씩 한 장씩 비칩니다. 이는 7초에 한 명씩 사람을 6주 동안 죽인 사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벽에 이런 문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 말자” 이것은 30만 명이나 되는 자신들의 동포를 죽인 일본군을 용서하고, 그 사건을 기억하며 앞으로 자신들은 이런 일을 행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문구입니다.

 요셉은 가족에게 버림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여 감옥에 들어갔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서 2년간이나 더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요셉은 무엇으로 견디었습니까?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고난과 상처를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우리의 상처보다 큰 하나님의 위로가 마음에 임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4절은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에 부어지면 사람이 주는 상처에서부터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요 14:27).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살아서는 안됩니다.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위로로 우리가 받은 모든 상처를 치료받고 용서하는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요셉의 용서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은 뒤 요셉을 찾아와 자신들을 용서해주기를 간구했습니다(창 50:15). 그러나 요셉은 형들에 대한 미움과 원함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들을 용서하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50장 19절은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한 절대 긍정의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과거의 상처를 바라보고 늘 낙심하고 원망, 불평하고 살지 않았고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용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우리가 용서의 삶을 살 때 내가 먼저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마음의 고통과 절망이 떠나갑니다. 그런데 진정한 용서는 단순히 그 사람의 죄를 묻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죄를 지은 그 사람을 사랑으로 품어주는 것이 진정한 용서의 모습입니다.

 용서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반역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대속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또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고 있는 사람까지도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은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용서는 우리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의 결론은 용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3절은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2절은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용서는 우리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했던 스데반 집사는 자신을 죽이려고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예수님과 비슷한 기도를 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9절부터 60절은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로서 용서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용서를 경험한 뒤에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 은혜를 받은 뒤 한동안은 용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받은 은혜가 희미해지면 쉽게 용서하지 못하고 정죄하고 미워하면서 살아갑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할 때 용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와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얼마 전 6월 12일 주일 새벽에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한 동성애자 술집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100여 명의 사상자(50명 사망, 53명 부상)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6월 17일은 1년 전인 2015년 6월 17일에 있었던 찰스턴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Emanuel AME Church) 총기 난사 사건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수요일 저녁 교회 성경공부 모임에 딜런 루프라는 21살의 낯선 백인 청년이 찾아왔는데, 그가 약 1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권총을 난사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교인들은 한순간에 남편을, 아내를, 딸을, 부모를, 그리고 목사님을 잃었습니다. 범인은 구치소에 감금된 채 화상으로 재판을 받았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관행에 따라 사건 이틀 만에 법정에서 폐쇄회로 화면으로 피해자 유족들이 가해자에게 발언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때 유가족들은 놀랍게도 용서의 말을 건넸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네이든 코이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게서 가장 귀한 것을 빼앗아갔다. 나는 다시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고, 다시는 엄마 손을 잡지도 못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을 용서한다.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하신다면, 나도 당신을 용서한다” 또 할아버지를 잃은 앨래나 시먼스는 울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할아버지와 다른 희생자들이 증오의 손에 의해 돌아가셨지만, 모두가 당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사랑으로 살았으며, 이번 사건도 사랑을 유산으로 남길 것이며, 증오는 결코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리고 이들 유가족들은 공개적으로 다음과 같이 의견을 모았습니다. “경건한 크리스천으로서 증오범죄의 연쇄를 끊기 위해서는 죄를 용서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불과 이틀 전에 흑인들을 증오하면서 자신들의 가족을 참혹하게 살해한 백인 청년에게 이구동성으로 용서를 선포하고 하나님께 회개할 것을 말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당시 그 자리에 있던 검사는 “검사 생활 10여 년 동안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라고 증언했습니다. 찰스턴 시의 시장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증오로 가득 찬 사람이 미친 생각을 품고 찾아왔지만, 이 공동체는 분리되지 않은 채, 오히려 더 단단하게 결속하고 사랑하고 있다!”

 사건 1년 후 그들의 삶을 취재한 미국 크리스천 저널에 의하면 지금도 그 교회에서는 찬양과 감사가 넘쳐나고 있다고 합니다. 용서는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상처 입힌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상처 입은 것 보다 몇 배는 더 갚아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조건 없이 용서해주신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괴롭게 한 사람을 용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은혜


 우리가 살아가면서 상처를 입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우리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졌음을 믿었습니다. 요셉의 형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행했던 악한 일들은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 원하신 하나님의 크신 계획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자신이 겪은 모든 고난을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한 요셉은 형들을 용서했고, 더 나아가 두려움에 사로잡힌 형들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50장 21절은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속에 고난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십자가는 고난이었지만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온 인류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죄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받은 은혜를 따라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용서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11절은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신 것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니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받은 용서를 귀하게 여기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는데, 세 번째에 가서는 저주하고 맹세하며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서 갈릴리로 돌아가 다시 어부로, 옛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 그물을 던졌던 사람입니다. 이전처럼 그는 그물을 던졌지만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곳까지 찾아가셨습니다. 그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그의 상처를 치료하시기 위해서 찾아가신 것입니다.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절망 가운데 있던 베드로에게 찾아가신 예수님께서는 따듯한 목소리로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1:5). 그리고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했을 때 베드로는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고, 자신들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추운 바다로 뛰어들어서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추운 바닷물로 흠뻑 젖은 베드로의 몸을 녹여주시려고 모닥불을 피우셨고 생선을 굽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배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오셔서 말씀해주시고, 따듯한 모닥불로 추운 몸을 녹여주시고, 배고픈 배를 채워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감격하여 울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신했던 베드로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은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용서받은 베드로는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의 반석이 되어 죽기까지 주님을 위해 충성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한, 미움을 품고 살아가는 한 우리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상처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고 고통을 주고 절망케 합니다. 자신을 배반하고 도망간 베드로를 먼저 찾아가셔서 용서하시고 사명을 주신 예수님처럼 이제 모든 상처를 주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용서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증오하며 살았던 모습을 내려놓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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