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카카오링크 보내기 버튼
나는 믿음의 사람인가?
2016.06.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장 1∼3절)

 크리스천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힘들어하는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믿음은 영적인 그릇을 의미합니다. 영적 그릇을 준비한 후 기도드리면 하나님이 그 그릇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현재의 것으로 품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뛰어넘어, 현재 우리의 가슴 속에 품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에는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노아가 얼마동안 방주를 만들었는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방주의 크기를 볼 때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방주의 길이가 축구장보다 길었고, 높이가 7층 건물정도였다는데, 당시 기술로 배를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겠습니까. 3차원에 속한 사람들은 노아를 미쳤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보십시오. 자녀도 없는 노부부가 만국의 아비요, 만국의 어미라고 서로 부르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있는 것처럼 민족의 조상이라고, 또 아기를 낳아본 적도 없는 아내를 여주라고, 자식을 많이 가진 주인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를 현재의 것으로 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을 사용하면 우리의 삶은 상상 이상의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믿음은 먼 훗날에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아무리 훗날의 일이라도 그것이 오늘 내 속에 일어난 것을 바라보고서 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인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바라는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1. 미래를 현재의 것으로 품는 사람


 미래를 현재의 것으로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현재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귀에는 아무 소리 들리지 아니하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탄식하지 않고,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뛰어넘어, 장차 다가올 것이 현재 내 품에 와 있다고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지금 믿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믿음대로 이루어지지, 가만 내버려두고 늘 탄식만 하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소원을 두고서 행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소원을 두고’라는 말은 꿈과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꿈과 믿음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바라면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꿈도 지금 내가 꾸는 것이고,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지금 받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가슴에 품고 살면 말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말하고 행동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행동하면 하나님의 창조적인 역사가 현재에 나타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시편 103편 5절에도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소원을 현재 내 마음에 품고,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그것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2. 물질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


 유대인의 스승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와서 대화를 요청했지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예수님이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말씀을 하시니깐 니고데모는 안 보이는 세계의 이야기를 전혀 못 알아들었어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하기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알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3차원의 세계를 통해서 살지만 예수님을 믿는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은 성령과 더불어 살게 되므로 묵시의 세계, 기적의 세계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세계는 묵시의 세계입니다. 묵시의 세계에 들어가서 성경을 보고 기도할 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묵시의 세계는 영의 세계인데, 영의 세계에서는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빌립도 예수님과 대화하는데 4차원의 세계를 갖지 못해서 스승의 말을 못 알아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기만명이 나왔는데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빌립은 하나님의 계시적인 말로써 받아들이지 못하고, 돈이 없는데 어떻게 만 명 가까운 군중들을 먹일 수 있냐고 되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먹이라고 말할 때 빌립이 영적인 세계를 알았다면 “예수님, 말씀만 하십시오. 순종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베풀어서 먹일 수 있으십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4차원의 세계는 꿈의 세계요, 묵시의 세계요, 기적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인간적인 지혜나 총명이나 모략이나 재능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어 벽에 부딪혔을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서 기도하면 묵시의 세계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하셨을 때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1차원, 2차원, 3차원의 세계가 파괴 되어 손댈 수 없는 처지에 있었을 때, 그 위에 운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의 영이셨습니다. 4차원의 세계가 하나님의 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오늘 우리의 세계에도 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꿈과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말을 통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로 3절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우리는 성령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하고, 보완하기도 하고, 모든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입니다.

 생각과 꿈과 믿음과 창조적인 언어를 개발하지 않으면 이 영적인 세계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읽어보면 엄청난 하나님의 세계가 사람들 앞에 전개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서 4차원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하늘나라가 생각 속에 들어오고, 꿈을 꾸고 “믿습니다”라고 외치고, 창조적인 선언을 하게 되고, 그리고 나면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현재의 것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수 1:2∼3)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줄 것이다”라고 말씀한 것이 아니라 “이미 너희에게 주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현재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천하 만물은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이  나에게 아직 다가오지 않았어도 “이미 내가 너에게 주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손을 내밀지도 못할 것을 주님께서 “이것이 네 것이다. 내가 너에게 주었다. 믿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으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3.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꿈꾸는 사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꿈꾸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사람은 꿈을 꾸고 사는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매일 꿈꾸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꿈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를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요셉은 꿈꾸는 자였습니다. 창세기 37장 6절로 7절에는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라고 요셉의 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또 창세기 37장 9절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형들 입장에서는 세상 말로 환장할 소리입니다. 형들은 다 나가서 양을 치면서 일을 하는데, 동생은 한 참 늦잠을 자더니 한다는 소리가 형들이 자신에게 절할 것이라는데 곱게 보이겠습니까? 창세기 37장 18절로 20절에 형들은 요셉을 죽일 기회를 얻어서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이미 꿈은 벌써 꾸었기 때문에 그 꿈을 마음대로 못합니다. 이미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으로 말씀을 하셨고, 요셉은 하나님의 꿈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형들은 문안 오는 요셉을 붙잡아서 “죽여 버리든지 애굽으로 팔아먹자”고 했지만, 그래도 그들 마음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한 자기들이라는 것을 결국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4. 미래를 현재의 것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


 우리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미래의 사건을 현재처럼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해야 되고, 장차 일어날 일을 지금 이미 일어난 것으로 마음에 포옹해야 되고, 그 다음에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도록 축복해 주셨다는 것을 믿고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3차원을 따라 사는 세계가 있고, 그곳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생각과 꿈과 믿음과 창조적인 입술의 선언을 통해서 사는 세계가 있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미래의 사건을 현재처럼 말하면 하나님은 “네 입술에서 말하는 그 말을 듣고서 그대로 시행하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말을 해야 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되는 것입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벽에도 귀가 있다’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가득히 담고 입술로 고백하면 우리의 삶은 젖과 꿀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환경을 만들어야 주님이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이 종이 병들어 죽어가니 예수님께 좀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 8절은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이란 요즘 군인으로 대위쯤 됩니다. 부하가 병들어 죽어가니깐 예수님 보고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서 고쳐주시려고 하자 백부장은 “오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밑에 있는 종들을 보고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는데, 하물며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세를 가지고 있는데 말만 하면은 병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깜짝 놀라서 “유대인 중에도 이렇게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 했다”라고 칭찬을 하시고 “네 종이 살아났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보니깐 종이 살아나 있습니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마 8:13)

 우리는 100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평균 60대 전후에 은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합니다. 경제력을 갖추기 위해서 재테크를 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운동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준비를 빼놓습니다. 그것은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길게 살면 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은퇴한 사람의 40%가 우울증을 겪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꿈이 없으니 무기력하고 우울할 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은퇴한 어떤 분이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머리가 아프고 입맛도 없고 눈까지도 침침합니다. 좀 봐주십시오” 그러자 의사가 진찰을 해보더니 “비타민 V가 부족하군요. 왜 비타민 V을 안 드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환자는 “처음 듣는 말인데요. 비타민 V가 뭡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귀한 것이지요. 비타민 Vision(비전)이라는 것입니다. 영양분이 있는 비타민이 아니라 꿈을 가지고 있는 비타민이 비타민 V입니다. 꿈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깐 머리가 아프고, 몸도 아프고, 우울하고 고통에 빠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꿈과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여기 저기 아픈 것입니다. 꿈을 잃으면, 몸도 아프고 나중에는 소망까지 잃어버리게 됩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꿈과 희망은 ‘장차 미래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대’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이 말하는 꿈과 희망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우리가 꿈과 희망을 가지는 것은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당당히 소유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갈보리 십자가 밑에 가서 십자가를 쳐다보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죄 사함 받은 것을 믿으면 이 죄 사함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영원한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죄 사함은 영원한 죄 사함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우리는 영원히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영원히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 앞에 막힌 담이 무너져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고, 그로인해 병 고침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 질병의 고통을 다 담당했기 때문에 우리의 병은 2000년 전에 이미 나은 것입니다. 법적으로 이미 나은 것입니다. 우리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믿고, 담대하게 일어서면 병은 한 길로 왔다 일곱 길로 도망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물질적인 환경도 그렇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바울 선생이 말씀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확실한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예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희망과 꿈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는 꿈과 희망은 십자가를 통하여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여러분 좀 더 가슴을 펴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신앙을 갖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도>-----------------------------------------------------------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니 감사합니다. 성령님과 함께 영적인 세계에서 묵시를 얻고, 기사와 이적을 체험할 수 있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믿음과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케 하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