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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에 동행하시는 예수님
2016.04.0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누가복음 24장 13∼17절, 28∼31절)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은 나그네와 같이 외로운 인생길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외로운 인생길에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고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온 세상이 우리를 떠나가도 주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한평생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누가복음 24장 13절부터 14절은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절망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믿지 못하고 절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 예루살렘에서 약 7마일, 11.2㎞ 떨어진 엠마오를 향하여 내리막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내리막길 인생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도 인생의 내리막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사업을 하다가 갑자기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서 부도가 나고 파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시험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건강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으니 말기 암이라는 판단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그 마음에 절망이 다가옵니다.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이와 같이 예기치 않은 내리막길을 걸어갈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종으로 크게 쓰임을 받았던 위대한 지도자 모세 역시도 인생의 내리막길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태어났을 때 악어의 밥이 될 운명이었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애굽 바로 왕의 딸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이 안락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성한 후 동족 히브리 사람이 애굽 사람에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분노를 참지 못해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 일을 아무도 모를 것 같았지만, 결국 탄로나 그는 하루아침에 애굽의 왕자에서 도망자 신세가 되어 광야에 숨어들어야 하는 내리막길을 걷게 됐습니다.

 또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성군이었던 다윗도 인생의 내리막길을 경험했습니다. 사울의 핍박을 이겨내고 이스라엘의 통합 왕에 등극하여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열었던 다윗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부하들을 암몬과의 전쟁에 내보내고 한가롭게 늦잠을 자다가 저녁 때 즈음에 일어나 궁궐 밖을 내다보던 중 그만 한 여인, 곧 충성스런 장수 우리아의 아내의 목욕 장면을 보고 유혹에 빠져버렸습니다. 결국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간음죄를 저지르고, 충성스러운 부하 장수였던 우리아를 암몬과의 전쟁 최전선에 내몰아 죽게 만드는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십계명의 두 계명을 동시에 어김으로써 인생의 최대 오점을 남겨야하는 내리막길을 걷게 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수제자라 불렸고,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늘 함께했었던 베드로 역시 인생의 내리막길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절대 절망에 빠져버린 그는 주님께 헌신하기 전의 어부의 삶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하고 갈릴리 호수에 다시 배를 띄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헌신하기 전 그때처럼 밤새 그물을 내렸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새벽을 맞아야 했던 빈 배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게 됐습니다. 이처럼 누구나 내리막길을 만나 절망의 걸음을 옮길 때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내리막길을 가는 인생에는 이와 같은 강도가 찾아옵니다. 그 강도는 우리의 기쁨과 감사를 다 빼앗아갑니다. 우리의 물질, 건강, 자존심도 모두 빼앗아갑니다.

 그런데 놀라운 은혜는 주님께서는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강도 만난 것과 같은 나날을 보내는 우리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양치기로 40년을 보내고 있던 모세를 찾아오셔서 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워주셨습니다. 또 죄를 지은 다윗에게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 그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주님 앞에 바른 삶을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후사로 솔로몬을 허락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영광스러운 평가를 받게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어부로 돌아간 수제자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시며 예수님을 배신한 상처를 치료해주시고 복음의 일꾼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절망의 내리막길을 걸을 때가 주님을 만날 때입니다. 우리의 끝은 주님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절망으로 낙심할 때가 바로 주님의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카일 아이들먼(Kyle Idleman, 1976∼) 목사님이 『나의 끝, 예수의 시작』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인생 경험의 무덤, 바로 거기서 우리는 우리 실패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구속을 만난다. 전과자에서 교도소 사역자로 변신한 척 콜슨, 노예무역을 하다가 회심하고 나서 놀라운 찬송가를 쓴 존 뉴턴,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반대로 교회를 온 세상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 바울, 이 모두가 그 증거다. 당신의 끝으로 가라. 그곳이야말로 하나님께 온전히 쓰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하나님의 강점은 우리의 약점을 통해 가장 환하게 빛난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워오는 것처럼, 내리막길의 절망이 깊을수록 주님의 구원과 은혜를 받을 때가 가까워진 것입니다. 절망의 순간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께서 만나주시고 우리와 동행해주실 것입니다.


 2. 동행하시는 예수님


 누가복음 24장 15절은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근심 가운데 이야기하면서 내려갈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 곁에서 동행하셨습니다. 절망 길에 여러분 혼자 외롭게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 늘 우리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모욕을 다 견디시고 목숨까지도 버리신 분이십니다. 자신의 목숨보다도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허물이 있고 연약하여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끝까지 우리를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회복시켜주시고 치료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이 임박한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실 때, 제자들이 자신을 다 떠나고 특히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며 종의 모습으로 그들을 섬기기까지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4절부터 5절은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팔 제자,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할 제자,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자신을 외면할 제자들의 발을 종의 모습으로 씻겨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고, 때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때로는 당장 눈앞의 이익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숨길 때도 있다는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의 세상 죄 묻은 발을 씻겨주십니다.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랑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와 지금도 함께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보혜사는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로 우리를 변호하고, 중보하고, 돕기 위해 우리 곁에 와 계신 분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첫 번째 보혜사로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사역을 하셨고, 이제는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이 보냄을 받으셔서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하시며 우리를 돕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와 성령으로 동행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고 계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겨야 합니다. 참된 안식과 평안, 위로와 용기를 주실 분은 우리 주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성가의 빌리 그레이엄이라 불리고 ‘살아계신 주’라는 찬양의 작곡자로 유명한 빌 게이더(Bill Gaither, 1936∼)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가 1964년에 작곡한 He touched me(주 붙드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은 1970년대 미국을 휩쓴 찬양이 되었고, 한때 찬양대원으로 섬겼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Aaron Presley, 1935∼1977)가 이 찬양을 앨범에 수록하여 불러서 1972년에 그는 이 찬양으로(그래미 시상식)를 수상했습니다. 이 찬양은 외로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빌 게이더 역시 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정상에 올라섰을 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꿈이 산산조각 났을 때, 희망이 다 사라졌을 때, 아무 데도 갈 곳 없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에는 언제나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하시는 분께 달려가라. 하나님의 계획은 나의 계획보다 더 원대하다!” 이 찬양은 “험한 나그네 세상 길 나의 맘이 곤할 때 사랑스런 주의 손길 오 나의 맘을 두드리네 주 붙드네 오 날 붙드네 넘치는 기쁨 내 맘에 근심 걱정 나 없겠네 날 언제나 붙드네”라는 가사로 시작합니다. 이 찬양의 고백처럼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동행해주십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십니다. 위로와 용기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행해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절망의 순간에서도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로 살아가야 합니다.


 3. 새 힘을 주시는 예수님


 엠마오로 가던 이 두 제자는 처음에는 그들과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몰라봤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6절은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길가며 나누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이에 두 제자는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멈춰 섰습니다(눅 24:17). 그리고 두 제자 중 한 사람인 글로바가 예수님께서 참혹한 죽음을 당하셨고, 사흘째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있지만 확인할 길은 오리무중이라고 장황하게 설명했습니다(눅 24:18∼24). 이 대화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의 영적인 현주소를 파악하시고, 그들 스스로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현재 영적인 상태는 다름 아닌 믿음 없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25절은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말씀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영적인 내리막길은 마음에 믿음이 사라질 때 찾아옵니다. 특히 말씀에 대한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지 못할 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걸으시면서 구약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에 대한 예언들을 풀어 설명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26절부터 27절은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 여관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실 때, 그들의 영의 눈이 떠져 예수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0절부터 31절은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고 말씀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믿음이 없음으로 인해 절망이 우리 마음에 가득차면 예수님께서 곁에 계신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절망이 우리의 눈을 가려서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못 알아봤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4절은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영의 눈을 뜨게 하시고, 떡을 떼어 주사 육신의 건강도 회복시키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순식간에 그들 곁을 떠나시고 난 다음, 그들이 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들 마음 가운데 뜨거움이 임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마음에 성령의 감동을 주셨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32절은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죽음 이후, 낙심, 절망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지 못해 내리막길을 가던 그들이 말씀을 깨닫고 성령충만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힘없이 내리막길을 걷던 그들이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 즉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3절부터 35절은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고 말씀합니다. 두 제자는 더 이상 절망, 슬픔, 좌절, 낙심의 내리막길에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새 힘을 얻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고, 거기서 부활의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절망으로 눈이 가려진 자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을 긍휼히 보시고 그들과 동행하시고 대화하시고 눈물을 닦아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십니다. 말씀을 주시고 성령충만을 주십니다.

 20년간 성경 교사로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던 잰 해리슨(Jan Harrison, 1944∼)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녀는 최근에 『나에게 폭풍이 왔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2010년에 그녀에게 폭풍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27살이던 신앙 좋은 아들 제임스가 아프리카 케냐에서 봉사하던 중 급성 폐렴으로 갑자기 죽었다는 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그녀의 아들은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도로 건설, 쓰레기 처리, 벽돌 제작 등을 하며 현지 목회자들을 열심히 돕다가 몸을 돌보지 못해 쇠약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주님의 곁으로 갔습니다. 그녀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주님, 이 아픔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견뎌야 한다면, 제게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성경을 폈는데, 다음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하느니라”(수 1:9). 그녀는  말씀 사역자답게 “어디로 가든지 함께하겠다”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이후 자신과 같이 인생의 폭풍을 맞은 자들을 세우며, 아들의 아프리카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남편과 함께 아들이 죽은 케냐에 가서 교회(나망가 침례교회)를 세우고, 사역 장소인 회관(아들의 이름을 딴 ‘제임스 회관’)을 완공했습니다. 생전에 아들이 아프리카에 세운 ‘위드 오픈 아이즈 재단’의 리더로 아프리카 오지 선교를 하고 있으며, 23개국 39개 도시에서 부흥회 리더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죽음 이후 온 가족이 이렇게 변화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제임스 덕분에 우리는 모두 변화되었다. 모두 사역을 맡았으며,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연민으로 충만해졌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람들을 세우기 위해 오지로 선교 여행을 하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마 25:40)에게 가서 베푸는 영광을 누렸다. 천국은 더 귀해졌고 우리를 소망으로 가득 채웠다. 모든 것들이 달라졌다. 삶도, 사랑도 전부 달라졌다!” 그녀는 책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오늘 예수님께 부르짖기 바란다. 예수님은 당신 인생의 폭풍 한가운데 바로 거기에 계신다. 예측 불가능한 인생은 우리를 사납게 굽이치는 물에 내던진다. 그러나 그곳이 바로 진실하고, 한결같고, 변하지 않으시는 그리스도를 향해 손을 내미는 법을 배워야 하는 곳이다! 새로운 폭풍과 불확실한 상황을 만나거든 결코 변하지 않는 예수님의 성품을 의지하라! 그분의 신실하심은 영원히 지속된다! 예수님께 소망을 걸어라!”

 우리는 인생의 동행자가 되시는 예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절대로 우리는 혼자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외로운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예수님께서 늘 우리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내리막길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님의 사랑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잠깐 지나가는 인생길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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