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린도전서 15장 20∼22절)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더 이상 죄와 죽음의 노예로 끌려다니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의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구약의 초실절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절기가 바로 초실절입니다. 초실절은 무교절 후 첫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레위기 23장 10절부터 11절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야훼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 익은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갔고,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도록 그것을 흔들어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레위기 23장 12절은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야훼께 번제로 드리고”라고 말씀합니다.
초실절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을 감사하며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초실절은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처음 난 것들을 죽이시던 밤에 이스라엘의 처음 난 생명이 구원을 받은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처음 난 것들을 하나님께 돌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3장 2절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처음 난 것, 첫 열매를 주님께 드리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죄와 사망의 법에 종노릇하는 절망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사망의 저주에서 벗어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물리친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이 모든 잠자는 자들의 첫 번째 열매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부활의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첫 열매가 맺혔다는 것은 두 번째, 세 번째 열매가 연달아 계속해서 열릴 것을 기대하게 해줍니다. 로마서 8장 11절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합니다. 또 에베소서 2장 5절부터 6절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영적으로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부활해서 천국에 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깐 이 세상에 나그네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나그네 길 인생을 살다가 주님께서 부르시면 우리의 본향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로 살아가야 합니다. 시편 50편 23절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제가 지난 금요일 용인에 있는 샘물호스피스를 방문해서 김태복 목사님을 만나 기도해드리고 왔습니다. 김태복 목사님은 러시아에서 선교사로 헌신하셨고, 한국에 들어오셔서 우리 교회 부목사로서 섬기셨던 분입니다. 제가 기도해드렸을 때 정말로 기뻐하시면서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목사님이 천국에 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식에 갔습니다. 장례식에 가서 가족들을 만났는데 김태복 목사님께서 임종하실 때 편안하게 주무시는 것처럼 천국 가시는 것을 본 가족들의 얼굴은 평안해보였습니다. 주님의 위로하심이 그 가족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영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부활신앙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복된 것입니다. 죽음은 지상에서 영원으로 옮겨지는 관문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신앙을 갖고, 감사의 열매를 맺으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21절은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죄를 짓고, 그에 대한 심판으로 온 인류에게 다가온 죽음의 굴레를 걷어내신 사건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한 사람 아담을 통해 죄가 온 인류 후손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옛 인류의 조상인 것처럼 두 번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인류의 조상이 되십니다. 그리고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로마서 5장 18절은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안식 후 첫날, 즉 주일날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향유를 들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보니 무덤이 비었고 천사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5절부터 6절은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그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5절부터 16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40일간 이 세상에 계시면서 10차례 더 나타나시고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9절부터 11절은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이야 말로 거짓된 일에 삶을 바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7절부터 19절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사실이 아니면 우리 신앙이 다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참으로 불쌍한 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부활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때에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부터 8절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예수님의 음성을 귀로 듣고, 예수님의 손을 직접 만져본 사람들이 살아있는 시점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고백한 것입니다.
저명한 복음주의 신학자 앨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 1953∼)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역사적 증거로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뚜렷한 변화와 기독교의 괄목할만한 발전을 들 수 있다. 초대교회에 관한 사도행전 기록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찾아낸다면, 제자들에게 있었던 뚜렷한 변화일 것이다. 그들은 비겁하고 기가 꺾인 일련의 무리에 지나지 않았으나,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잠재적인 순교자들로 바뀌었다! 또한 칼이나 무력이 아닌 설교를 통해 전파된 초기 기독교는 급속도로 확장되고 큰 영향력을 미침으로써, 4세기 초반에는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로 인정되었다. 이 신앙의 근간이 되는 사상이 바로 부활 사상이었으며, 이 부활 사상은 초기 기독교 설교의 주된 특성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어느 날 예고 없이 다시 이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부터 17절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어느 날 주님을 만나 뵐 그날에 칭찬을 받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어야합니다.
3. 우리들의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22절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죄와 사망의 저주에 묶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앞에 슬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언제고 우리는 천국에서 주님 앞에 서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육은 땅에 묻히고 영은 천국에 거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죽은 몸이 변하여 영화스러운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부터 53절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신비입니다. 우리가 씨앗을 땅에 심으면 그 씨앗이 죽을 때 씨앗과는 전혀 다른 모양의 열매가 맺힙니다(고전 15:36∼38).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의 썩어질 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영의 신령한 것이 맺히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육의 사람이 죽고 영의 사람,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만이 부활의 영광을 누리는 길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부터 26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죽음 앞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절부터 56절은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말씀합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망 권세에 대한 우리의 승리는 우리가 취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싸우셔서 이기시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삶 속에서 그 승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넘어질지라도, 승리자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를 다시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의지하면 예수님의 승리를 우리도 함께 누리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부활의 주님을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부족함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주시면 우리는 어떤 환난, 시험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시편 37편 24절은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야훼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 받아 주님의 사역에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죄와 절망, 질병과 사망의 권세와 싸워 승리하며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책 『그 청년 바보의사』의 주인공 안수현(1972∼2006) 형제가 있습니다. 그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내과 전문의로 일한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런데 2006년에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중 유행성 출혈열에 감염되어 33세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영락교회에서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는 4000명이 넘는 조문객이 찾아왔는데 이는 한경직 목사님 장례식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이 온 것이었습니다. 장례식장에 몰려온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그의 삶이 알려지면서, 그 내용이 2009년에 『그 청년 바보의사』라는 책으로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것을 챙길 줄 모르고 외롭고 소외된 사람에게 가진 것을 다 털어줘서 바보 의사라 불렸습니다. 돈이 없어 검사를 받지 못하는 조선족 할아버지의 검사비를 대신 내주고, 치료하던 환자가 숨지면 장례식에 찾아가 유족을 위로하고, 환자들의 병실을 밤마다 찾아가 기도해주며, 실의에 빠진 환자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그 가족들, 병원 동료들, 구두 닦는 아저씨, 매점 아주머니 등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 의약분업 사태로 동료들이 파업할 때, 왕따를 당하면서까지 끝까지 환자를 돌봤습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메일을 쓸 때마다 마지막에 늘 이렇게 썼습니다. “스티그마(예수님의 흔적) 안수현” 그만큼 예수의 흔적으로 살기 원한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을 혈관에 비유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의학적으로 혈관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그리스도인을 통해 흐르기 때문이다. 혈관인 그리스도인이 더 많이 나누고 베풀수록 더 많은 생명의 피가 흐르게 된다”
하루는 의사인 자신도 뒷짐만 지지 말고 헌혈을 해서 환자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자는 마음으로 헌혈을 한 뒤 일기를 이렇게 썼습니다. “내 양팔에 남은 주삿바늘 자국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그림이 있었다. 바로 예수님 양손에 있는 못 자국이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그의 상처 난 손을 사람들에게 보이실 때 얼마나 기쁘셨을까? 내가 너를 위해 내 생명을 주었다. 내가 너를 위해 피를 흘렸다. 병원생활을 시작하기 전, 기도 제목을 ‘생명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로 잡았다. 의사로서 생명을 전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환자나 병원 직원들, 선배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도록 돕는 살아있는 기억 매체(living reminder)가 되기를 소망한다. 주님께서 내 평생 사는 동안 이 기도에 응답해주시기를!” 그는 그 고백대로 살다가 주님 품에 안겼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의 흔적, 부활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선배인 김신곤 고대안암병원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만 보자면, 수현 형제의 인생은 그리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달라집니다. 사망의 권세를 넘어 부활하여 오늘 우리와 함께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사도 바울이 가졌다고 했던 것처럼(갈 6:17), 수현 형제는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잊히지 않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흔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은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마음 깊이 묵상하며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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