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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눈, 인간의 눈
2016.03.13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야훼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민수기 14장 6∼10절)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우리는 문제 속에서 실패와 절망밖에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고난 속에서도 축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2년 만에 가나안 입구에 도착하여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난 이후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열두 명의 사람 가운데 열 명의 사람은 인간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바라봤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인간의 눈


 민수기 13장 31절부터 33절은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한 뒤 2년 동안 광야를 지나 가나안의 입구인 바란 광야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지파별로 한 사람씩 12명의 대표를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은 부정적 보고, 절망적 보고를 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봤던 그들은 자신들을 메뚜기와 같이 연약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떠한 민족입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많은 민족 가운데 선택하여 부르신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신명기 7장 6절부터 7절은 “너는 야훼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야훼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야훼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이나 거주하며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기적을 통해 자유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주리고 목마른 자신의 백성을 위해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고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놀라운 능력을 날마다 경험한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레위기 25장 38절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며 또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의 하나님 야훼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눈으로 가나안의 견고한 성읍과 장대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백성인 그들의 대표 중 10명이 스스로를 메뚜기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우리의 삶의 문제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가장 큰 문제와 가장 비참한 실패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눈은 언제나 부정적인 것을 보는 데 익숙합니다. 늘 가능성보다 불가능을 먼저 봅니다. 그리고 원망, 불평을 합니다. 열 명의 이야기를 듣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밤새 통곡했습니다. 민수기 14장 1절은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불가능 속에서 가능성을 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과 가르침을 보고 들으며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행하실 구원의 방법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그는 대제사장들에게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마태복음 27장 3절부터 5절은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믿음이 없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의 생각은 언제나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제가 미국에서 사역할 때 있었던 잊지 못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한 집사님의 남편이 간경화로 인하여 위중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담당의사는 집사님에게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가족들을 불러 모으셔서 장례식을 준비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의사의 말대로 가족들은 장례식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연락을 받고 집사님의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기 위해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병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집사님께서 제게 “목사님, 제가 목사님 오시는 동안 기도했는데 목사님이 손을 얹으면 제 남편이 나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의사는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다고 이야기했고, 가족들은 장례식을 준비하는 상황이었는데 집사님께서는 제게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제가 인간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이분은 죽음 직전에 있는 분이었습니다. 의식을 잃은 혼수상태로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집사님께 요청받은 대로 회복의 기도를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해달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겉으로는 회복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제 기도에 집사님께서는 계속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다음 날 새벽에 빨리 병원으로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장례식을 치를 때가 됐다는 생각을 가지고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의 남편 되시는 분은 어제 밤을 넘기기 어렵다는 의사의 말과는 달리 회복되어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베푸셔서 치료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병원의 의사들과 간호사들 모두 놀라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일으켜주셔서 이후 20년 넘게 건강하게 잘 살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때 그 집사님의 믿음을 보면서 인간의 눈으로 보면 절망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인간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눈


 인간의 눈을 가지고 있었던 열 명의 정탐꾼과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달리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민수기 14장 7절부터 9절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눈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가나안을 바라볼 때 그곳에 사는 주민은 거인이고 자신들은 메뚜기와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가나안을 바라보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의 사람들을 ‘우리의 먹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개역한글 성경은 ‘우리의 밥’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붙들기만 하면 우리 눈앞의 문제와 절망적인 상황은 우리가 씹어 먹을 밥에 불과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나이가 100세가 되고 아내인 사라의 나이가 90세가 되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붙들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선물로 주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높여주셨습니다. 로마서 4장 17절부터 18절은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블레셋이 거인 장수 골리앗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때 사울 왕과 온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이스라엘은 골리앗을 이길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은 인간의 눈으로 골리앗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눈으로 문제와 상황을 바라보았을 때 골리앗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뛰어난 무기나 기발한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용하시자 다윗은 목동의 물맷돌 하나만으로도 골리앗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생각 그 이상의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펼치십니다. 크리스천들의 믿음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고난은 축복의 전주곡입니다. 로마서 5장 3절부터 4절은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의 삶에 반드시 기적이 일어납니다.

 2012년에 선교 행위 혐의로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올해 1월 16일에 풀려난 사이드 아베디니(Saeed Abedini, 1980∼)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이란에서 무슬림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되어 미국과 이란을 오가며 고아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다가 2012년에 체포되었습니다. 이란에서는 전도가 불법이며 기독교로의 개종은 사형에 처해집니다. 감옥 안의 핍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심문을 받을 때마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까지 시인하고 서명하라는 강요를 받았습니다. 이를 매번 거부하자 돌아오는 건 엄청난 폭력과 고문이었으며, 죄수들에게도 심한 폭행을 당했습니다. 결국 극심한 구타로 내복부 출혈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복통이 심해지면서 치료를 요청했지만 병원에 실려 가서도 그는 구타를 당했으며 장기 손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적절한 치료를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더 힘든 것은 심리적인 고문이었습니다. 다른 수감자들이 처형되는 모습을 강제로 지켜보게 하면서 간수들은 이런 식으로 그를 협박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이슬람 신앙으로 돌아오지 않을 경우, 형량이 더 늘어날 것이다. 죽을 때까지 맞을 것이다! 너도 곧 사형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들린 성령의 음성은 달랐습니다. “처음 6개월 동안 그들은 매일 내가 곧 죽을 것이라며 네가 저지른 일, 1000명의 무슬림을 기독교인으로 만든 일 때문에 사형당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는 제게 ‘아니다, 나는 아직 너를 위해 일하고 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사람의 음성이 아닌, 성령의 음성을 붙들었습니다. 그의 아내인 나그메 사모 역시 남편의 석방운동과 연설 등 다양한 구호활동을 전개하며 금식하던 중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이드에 관한 모든 상황을 네 손에서 놓고 내게 맡겨라!” 이에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주님께서 직접 일하셔서 올해 1월 16일에 기적적으로 풀려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석방된 사이드 아베디니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믿음으로 이 시련을 통과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를 기회로 사용하셔서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겪는 시련이 가치 있고, 의미 있으며, 이로부터 선한 것이 나올 것이라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는 절대로 절망하거나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눈으로 절대 긍정, 절대 감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때 모든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으며 해결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3.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영광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범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가야 합니다. 민수기 14장 10절은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야훼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회중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서는 안됩니다.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려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염병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들의 입술의 불평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을 떠돌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던 갈렙과 여호수아에게는 가나안 땅이 허락되었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부터 30절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합니다. 20세 이상의 장정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광야에서 죽고, 이 두 사람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광야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여 원망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9절부터 11절은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제자들에게 알리신 후 자신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을 깨닫지 못한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거부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심하게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고난이 따르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할 때 원수가 더 강하게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받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부터 12절은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이었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만든 금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진다는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결단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가 찾아왔지만 믿음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다니엘 3장 17절부터 18절은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 사람은 결국 불 가운데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의 머리카락도 그을리지 않고 입은 옷도 타지 않도록 보호해주셨습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높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일을 하던지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의 마음을 가지고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섬김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은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희망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생각을 바꾸고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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