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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예비하신 축복
2016.03.06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야훼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야훼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야훼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민수기 6장 22∼27절)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복을 받기 원합니다. 그래서 저마다 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진정으로 우리를 살리고 만족하게 하는 복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세 가지 축복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복을 주시고 지키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민수기 6장 24절은 “야훼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 가장 먼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스리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다스림을 받으면 우리는 비참한 존재가 됩니다. 물질의 다스림을 받으면 물질의 노예가 되고, 환경의 다스림을 받으면 환경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는 환경을 다스리고, 물질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75세에 부르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실 때에 “너는 복이 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2절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자녀가 하나도 없던 아브라함이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주시는 복을 약속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은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복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아브라함이란 그 이름 자체가 믿음의 후손들에게 복되고 아름다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내 형편이 아무리 어렵고, 아무도 날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놀라운 일이 내 삶에 이뤄집니다. 복받은 우리 삶을 통해 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시편 67편 7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고, 보잘 것 없는 부족한 인생이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이름, 축복의 이름으로 새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아브라함의 복은 우리 존재 자체가 새로워지고 우리 자체가 복이 되는 복입니다. 즉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된 우리 삶 자체가 하나님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다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복을 우리 삶에서 누리고 나누며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 말씀의 사람, 성령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부정적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부정적 사고는 복을 가로막습니다. 우리는 염려, 의심, 두려움에 익숙한 사고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또 우리를 모든 환난 가운데서 지켜주십니다. 시편 121편 7절부터 8절은 “야훼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야훼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산성, 방패, 요새이신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시편 18편 2절부터 3절은 “야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야훼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암 투병에 급성 폐렴까지 겹쳐 생사를 오가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깨어난 박동률 집사님(마포2대교구)이 있습니다. 2013년에 집사님은 전립선암과 임파선암으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당시 전립선암은 계속 항암치료를 해야 했고, 임파선암은 제거가 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 급성 폐렴이 찾아온 것입니다. 결국 작년 2015년 8월에 응급실에 입원하게 되었고 체내 산소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혼수상태에 빠져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폐가 하얗게 보였고, 의사가 “2∼3일 안에 깨어나지 않으면 살 가망이 없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부인되시는 오양순 집사님은 교구 담당 목사님과 교구 식구들에게 중보를 요청하고, 기도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또 8월 30일 주일에 저도 심방을 가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9월 초 검사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엑스레이로 보니 폐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의사는 늘 기도하던 부인을 보고는 “더 기도해보세요.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요”라고 격려했습니다.

 살 가망이 없다던 남편이었지만, 기도하자 20일 후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고, 10월 첫 주부터는 재활 치료를 시작했는데 얼마나 회복이 잘되는지 10월 24일에 아들 결혼식에도 참석할 수 있었고, 11월 24일에는 퇴원을 했습니다. 기적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폐렴으로 중단됐던 전립선암 치료를 하려고 하니 비뇨기과 담당 의사로부터 “희한하게 암 수치가 떨어져가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항암치료 중 합병증으로 수술을 하면 암수치가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암 수치가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떨어지고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 오 집사님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남편은 현재 18층까지 혼자 계단을 올라갈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호흡기내과 선생님은 ‘죽을 사람이 살아났다. 기적이다’라며 더 이상 병원에 올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폐렴으로 인해 잠시 중단됐던 전립선암은 비뇨기과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희한하게 암 수치가 떨어져가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남편의 전립선암이 머지않아 하나님의 손길로 치유될 것을 확신합니다. 남편을 위해 기도해주신 담임목사님과 모일 때마다 박동률 집사를 살려달라고 기도했던 교구 성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박동률 집사님은 현재 건강을 회복하셔서 건강하게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모든 환난에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복을 내려주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2. 얼굴을 비추사 은혜를 베푸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얼굴을 비춰주시는 복을 주셨습니다. 민수기 6장 25절은 “야훼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여기서 얼굴이란 사람의 얼굴과 같은 형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요한일서 4장 16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 정도가 아니라 사랑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을 비추신다는 것은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그 무한한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이 사랑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사랑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을 말하지 않는 드라마, 영화, 소설, 광고가 없습니다. 모두가 어디서나 사랑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날 세상에 넘쳐나는 인본주의적이고 육신적인 사랑은 인간의 영혼에 참된 만족을 가져다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사랑이 있고, 인간은 그 사랑을 경험할 때만이 참된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빛이 우리를 비출 때 염려, 근심, 걱정이 물러갑니다. 시험, 환난, 핍박이 다가와도 사랑의 빛 안에서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게 됩니다. 로마서 8장 35절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말씀합니다. 또 로마서 8장 37절은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험한 세상, 광야 같은 인생길을 가는 동안 인생의 밤이 찾아와 어두움 속을 헤맬 때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사모하고, 그 빛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 모든 어두움을 밝혀주시는 사랑의 빛이 임할 때 그 빛을 모아 기적을 불러오는 돋보기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감사와 찬양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나 빌립보에 당도한 바울과 실라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주었다가 억울하게 고발을 당해 심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빛에 힘입어 감옥 안에서도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행전 16장 25절은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고 말씀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드리자, 그들의 감사와 찬송을 타고 임한 하나님의 사랑의 빛이 옥터를 흔들고 옥문을 열어젖히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사하고 찬송했을 뿐인데,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 막 시작한 빌립보 선교에 큰 역사가 더해졌습니다.

 우리는 감사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빛이 더욱 강력하게 우리 삶에 임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가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난 데가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해서 사랑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고, 그 은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와 같은 고백이 우리의 삶에도 넘쳐나야 합니다.

 ‘나는 은혜로만 사는 자입니다’라는 책은 유명한 찬양사역자가 쓴 책입니다. 그는 불미스러운 일로 이혼을 하게 되었고, 이후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지내다가 주님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고, 다시 주님의 은혜로 회복하고 나서 이 책을 썼습니다. 책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제가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그것을 제대로 몰랐습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은혜가 아니면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오염되어버리는 나는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하는 그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는 날마다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오늘도 나를 살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나는 은혜로만 서 있습니다. 은혜로만 삽니다’ 이 말보다 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은혜 없이 살 수 없음을 고백하며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의 빛이 우리의 삶에 비취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3. 얼굴을 향하사 평강을 주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얼굴을 향하시고 늘 우리를 돌보아주십니다. 민수기 6장 26절은 “야훼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빛을 비추실 뿐만 아니라 그 얼굴을 향하시는 복을 주십니다. 그 얼굴을 우리를 향해 드신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를 돌아보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굴을 향하시는 것, 곧 우리를 바라봐주시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세상의 어떤 것과 바꿀 수도, 비교할 수도 없는 축복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권세자, 재력가 등 힘 있는 사람들의 눈에 한 번 띄어서 호의를 얻으려고 얼마나 수고하고 애쓰고 있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이 봐주기를 바라지 말고,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봐주시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시편 4편 6절은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야훼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시면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됩니다. 우리가 부르짖을 때 들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시편 22편 24절은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앉아 예수님이 자기 앞을 그냥 지나쳐가시지 않도록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던 바디매오의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져 열두 해 동안 시달렸던 혈루증을 이제 그만 떨쳐버려야겠다는 여인의 절박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이 우리를 바라보시고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었던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해주십니다.

 주님은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그분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문제를 만났을 때 금식하며 기도하고,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부르짖어 기도하다보면 어느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평강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응답으로 임하는 평강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부터 7절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최근에 ‘레터스 투 갓’(Letters to God)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는 소아암 환자 타일러 도우티(1995∼2005)라는 소년의 삶을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처럼 우리나라에도 하나님께 편지를 쓴 어린이가 있습니다. 바로 한신대 전 총장 오영석 목사님입니다. 그는 전라남도 해남에서 머슴 집 아들로 태어났고, 어릴 적 홍역을 심하게 앓아 몸이 매우 허약해서 늘 어머니가 “사람 노릇을 할까?”라고 걱정했던 약골이었습니다. 그는 공부는 잘 했지만 집안이 어려워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를 가지 못하고 농사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3살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던 그는 40일 동안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당시 교회 종지기로 아침저녁 종을 쳤는데, 하루는 갑자기 눈물이 터져서 앞이 보이지 않더군요. 한참을 종각 위에서 울다가 땅으로 내려와서 종을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도도 엄청 했지요. 낮에는 산과 들에서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라고 기도하고, 저녁에도 잠이 깊이 들면 하나님이 부르는 것을 듣지 못할까 봐 자다가 깨다가 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님, 저는 공부하고 싶습니다. 길을 열어주세요.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해도 좋고, 굶어도 좋으니, 공부만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편지 겉봉 수신자란에 ‘하나님 전상서’라고 쓴 후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어린 소년의 눈물 어린 편지를 본 우체국 직원들은 편지를 수취인 불명으로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체국장에게 전했는데, 마침 해남읍교회 성도였던 우체국장은 그 편지를 담임목사인 이준묵 목사님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결과 소년은 해남읍교회 장학금으로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신대학교에 수석 입학한 후 대학원을 마치고 스위스 바젤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박사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교인 한신대에서 교수가 되고 총장까지 역임했습니다.

 기도를 통해 기적을 이룬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어린 저의 기도를 듣고 제 편지에 어떤 방식으로든 대답하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마 7:7)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이뤄진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개를 돌리시면 응답이 다가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이며 넘치는 평화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조건적인 평화,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그런 평화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모든 근심과 두려움을 물리치는 무조건적인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주님을 통해 참된 만족과 행복, 참된 평화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날마다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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