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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으신 하나님
2016.02.28

“이제 야훼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야훼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사야 49장 5∼6절)

 모든 사람은 살면서 날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와 죄의 유혹에 공격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승리하며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지으시고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나를 지으신 하나님


 이사야 49장 5절은 “이제 야훼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냥 우연하게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에서부터 준비하시고 계획하셔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시편 139편 13절부터 14절은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은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영광을 돌리는 삶은 종의 삶입니다. 종은 주인의 뜻에 순종하고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되 하나님의 종으로,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14장 7절부터 8절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은사와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나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실패와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을 붙들 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놀라운 일을 우리에게 행하십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바라보며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옛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주님 안에서 변화된 자화상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사람, 의로운 사람이 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963년에 일가족 6명을 도끼로 살해해서 전 국민을 경악케 한 고재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당시 대대장이었던 박 모 중령 집에서 그는 잔일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집 부엌에서 당시 950원어치의 음식을 훔쳐서 나오다가 식모에게 들켰습니다. 식모는 박 중령에게 모든 사실을 알렸고, 이로 인해 그는 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6개월 동안 복역했습니다.

 그런데 출소 후에 다른 부대로 배치를 받아서 생활하던 중 사소한 도난사건이 발생하면 모두들 그를 의심했고, 비난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견디다 못해 그는 결국 탈영을 했습니다. 탈영을 하고 나서 숨어 지내는 동안 그는 박 중령이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렸다고 생각하며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도끼 한 자루를 훔쳐서 그는 한밤중에 박 중령 관사로 들어가 일가족 5명과 식모까지 총 6명을 도끼로 죽였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신문을 통해 알고 보니 자신이 죽인 가족은 박 중령 가족이 아니라 이덕주 중령 일가족이었습니다. 이미 박 중령은 한 달 전에 다른 곳으로 배치를 받아서 이사를 했고, 새로 부임한 이 중령 일가족이 그 관사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죄의식과 분노에 사로잡혀 박 중령을 끝까지 찾아내 죽이고 자살하려고 했지만 그는 체포되었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된 그는 그 어떤 죄수보다도 난폭하여 교도관의 눈을 찔러 상해를 입히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안국선 집사님을 통해서 그가 성경을 읽게 됐고, 예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나서 그는 완전히 변화되어 음식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며 다른 죄수들을 전도했습니다. 그는 감방마다 다니며 이렇게 전도했습니다.

 “제가 일찍이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믿었더라면, 깊은 밤 단잠에 취해 있는 죄 없는 여섯 명의 생명을 절대로 죽이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이토록 죄 많은 나에게도 하나님은 은총을 베풀어주셔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나는 이제 죽어 천국에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망설일 여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성경을 직접 읽으시고 내 말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해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1964년 3월 10일, 사형 집행 당일까지 재소자 1800명이 그를 통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사형장으로 가는 길에서도 교도관들을 전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는가?”라는 교도관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리고 찬양을 불렀습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그는 이 찬송을 부르고 조용히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절망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변화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2.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


 이사야 49장 5절은 “그러므로 내가 야훼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셔서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와 순종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시고 우리에게 놀라운 힘과 지혜를 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중하게 여기실 때 우리가 영화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날마다 시간을 들여서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를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과 뒤에서 지키시고 보호하셔서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을 만나도 형통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사야 52장 12절에서 13절은 “야훼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살다보면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 넘어지고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끄러워하시거나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보잘 것 없고 실수와 실패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을 때 하나님께서 가장 강력하게 일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은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붙들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은 우리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이셨던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혼자 사역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셨고, 자신의 힘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0절은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을 아름답게 지으셨지만 특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다른 모든 창조물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존귀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 모든 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할 때 모든 창조물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존귀한 존재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시편 18편 1절은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부터는 우리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하루 한 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비난하고 무시해도 하나님만 붙들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삶을 영화롭고 존귀하게 만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허망한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3. 나를 택하사 일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49장 6절은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하나님의 종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힘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야곱의 지파를 일으키는 사명이라는 것은 이방 민족의 침략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절망 가운데 살아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모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망에 처한 하나님의 백성을 일으켜야 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눌려 엎드러져있는 사람들을 주님께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주신 사명이며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40장 1절은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상처받고, 외롭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로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섬기는 일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하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우 쉬운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보다 더 큰 일도 우리를 통해서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셔서 이방의 빛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해 절망에 처한 자들에게 생명의 빛을 발하게 하십니다. 이사야 42장 6절은 “나 야훼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 세계를 복음화 하는 거룩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지상 명령은 제자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20절은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두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뒤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복음에 빚진 자의 마음으로 죽기까지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처음에는 기독교를 핍박하던 자였지만 주님을 만난 후 완전히 변화되어 주님의 일꾼이 된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처럼 하나님께 택함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주의 복음을 들고 땅끝까지 나아가 구원의 빛, 생명의 빛을 비춰야 합니다. 온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꼭 거창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들고 일어나 예수님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이사야 60장 1절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야훼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빛을 발할 때 어두움이 물러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되어 의롭고, 성실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선교 대국이 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아 이 땅에 와서 일생을 바쳐 헌신한 많은 복음의 증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 가운데 일생을 바쳐 우리나라의 복음화를 위해 힘썼던 로제타 홀(Rosetta Hall, 1865∼1951)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로제타 홀 선교사님은 의료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와서 평양에서 의료선교를 펼쳤던 윌리엄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4) 선교사의 아내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씰을 발행한 셔우드 홀(Sherwood Hall, 1893∼1991) 선교사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는 이 땅에 43년 동안 살면서 의료선교와 여성교육 및 전도에 헌신했습니다. 그녀는 원래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20살이던 1885년에 교회에서 들은 설교를 통해 의료선교에 대한 열정을 품고 다시 의대에 입학하여 의학을 배운 후 5년 뒤인 25살이던 1890년에 의료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파송되어 왔습니다.

 이때 그녀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받았습니다. “네가 진정 인류를 위해 봉사하려거든,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일을 하라!” 이 음성을 듣고 그녀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이 땅에 와서 여성과 어린 아이들을 진료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이화 학당에서 학생들을 지도해서 여성 인재들을 배출했는데 한국 최초의 양의사인 박에스더를 직접 유학까지 보내 키웠습니다.

 오늘날 이화여대 부속 병원과 고려대 의과대학은 그녀의 헌신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삶에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조선에 온지 1년 그녀와 결혼한 남편 윌리엄 홀 선교사가 1894년에 결혼한 지 2년 만에 장티푸스로 죽었습니다. 당시 첫돌을 지난 아들과 두 번째 아이가 뱃속에 있었는데 머나먼 타지에서 남편을 잃게 되었고 홀로 남은 그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명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그녀는 이러한 일기를 남겼습니다. “1897년 5월 10일. 조선으로 돌아가 일하겠다는 처음의 생각대로 다시 조선에 가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바로 이게 아닐까 생각했다”

 1897년 11월,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고 1898년부터 남편의 사역지였던 평양에서 더욱 열심히 사역에 몰두했습니다. 그런데 큰 시련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이 세상에 태어났던 둘째 딸이 이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슬픔을 극복하고 죽은 딸을 생각하며 어린이 병동 설립, 장애인 교육 등 사역의 영역을 더 확장시키며 남편과 딸을 앗아간 평양에서 제2의 선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5살이던 1890년에 조선으로 오기 위해 고향집을 떠나던 날의 일기는 빌립보서 2장 5절의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는 말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일기처럼 예수님의 마음으로 아무리 더러운 질병이라도 환자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친절하게 진료했고 환자의 피부 이식을 위해 자신의 피부를 떼어내기도 했습니다.

 이후 아들과 며느리에게 남은 사역을 맡기고 1933년 10월 2일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4월 5일, 6·25전쟁이 한창이던 한국을 안타까워하며 주님 앞에 부르심을 받았고 현재 양화진 묘지에 남편과 딸 옆에 묻혀 있습니다. 그녀가 젊은 날 잡지에 기고했던 다음 글은 실제 그녀의 삶이 되었습니다. “미래 세대가 천국이라는 도시에 이르는 보도를 닦는 데에 작은 벽돌 하나만이라도 놓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획 아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 택함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언제나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삶을 바쳐 헌신할 수 있는 모두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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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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