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야훼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야훼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중략)…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야훼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이사야 11장 1∼9절)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은 예수님께서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전부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겸손과 희생의 삶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700년 전에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자 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네 가지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성령님과 함께하신 예수님
이사야 11장 1절부터 2절은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야훼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언제나 성령님과 함께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을 때 하늘로부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강림하셨습니다. 누가복음 3장 21절부터 22절은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새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면서 마귀에게 시험당하셨을 때 성령님과 함께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절부터 2절은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충만하셨기 때문에 마귀의 그 어떤 시험도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능히 물리치실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광야 시험과 같은 어려움과 마귀의 유혹이 있지만,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 내내 성령님과 함께하셨습니다.
R. A.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 1856∼1928)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도 임하신 같은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이 땅에서 사시고, 생각하시고, 역사하시고, 가르치시고, 죄를 정복하시고, 승리하셨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에 힘입어 사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성령을 의지해야 하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역사하신 동일한 성령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함께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시고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주시고 야훼를 경외하게 하신 동일한 성령이 오늘날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여기 와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범이 되신다. 따라서 예수께서 성령을 통해 하신 일이라면, 오늘날 우리 역시 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권능을 받고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 지혜의 영, 총명의 영, 모략의 영, 재능의 영,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임하셨습니다. 이사야 11장 2절은 “그의 위에 야훼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지혜의 영이십니다. 또한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분별하는 총명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사도 바울에게 총명의 영으로 임하셔서 유럽에 복음을 전하기 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부터 7절은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고 말씀합니다. 또 성령은 상담하고 치료하는 모략의 영이며, 능력을 행하는 재능의 영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실 때 말씀을 온전히 깨닫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성령님과 함께하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는 한평생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신 예수님
믿음의 사람들은 한평생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경외하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생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셨습니다. 이사야 11장 3절은 “그가 야훼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신의 얄팍한 지식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모든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잠언 1장 7절은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은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경외하고 예배하는 하나님께서는 독생성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올 때마다 기쁨과 감사로 나와야 합니다. 시편 100편 4절은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인류구원을 완성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은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갈 때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생을 책임지십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신다고 고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로 언제나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편 18편 1절의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고백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12년째 묵묵히 쓰레기 줍기 봉사를 하여 중동 지역까지 알려지게 된 유영규(신명교회, 그리망 무역 대표) 집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마치고 강서구에 있는 개화산과 치현산 일대의 쓰레기를 줍고 있습니다. 그는 결혼한 지 8년 동안 자녀가 없어서 열심히 기도하던 가운데 기적적으로 8년 만에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쓰레기 줍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5년만 하면 깨끗해질 줄 알고 시작했는데 어느덧 12년째가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무거운 쓰레기를 옮기다보니 몸에 무리가 와서 탈장 수술까지 받게 되었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늘 감사한 마음으로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개화산과 치현산 일대가 깨끗해졌습니다. 산에 올라와 쓰레기를 줍는 그를 이상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깨끗해진 산을 보면서 그를 ‘환경대통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과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을 때는 저를 이상한 쓰레기 아저씨라며 쳐다보더니, 365일 빠지지 않고 매일 새벽마다 쓰레기를 줍자 쓰레기 선생님, 몇 년 지나자 쓰레기 박사님, 십여 년이 넘은 지금은 환경대통령이라고 부른답니다”
2008년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딸까지 낳았고, 그의 선행은 중동에도 알려졌습니다. 그는 바레인에 출장을 갔을 때 평소처럼 새벽에 일어나 숙소 주변의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이때 우연히 지나가던 뉴스 기자가 쓰레기를 줍는 외국인의 모습이 신기했는지 쓰레기 줍는 그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서 뉴스로 내보냈습니다. 쓰레기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던 중동인들에게 타국인의 자발적인 선행은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바레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성실함과 겸손함, 이 아름다운 모습은 젊은이들의 진정한 롤 모델이 될 것입니다” 이후 그 영상이 유튜브에서 150만 회가 넘게 조회되면서 그는 중동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중동 지역 22개 국가에서 그 영상을 뉴스로 내보냈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몇 번씩 반복해서 내보냈습니다. 나중에 그는 VIP대접을 받으며 바레인에 초청되어 바레인 정부로부터 환경캠페인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받았습니다. 그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표어판에 한국어와 아랍어로 된 환경표어를 만들어 바레인 시내 곳곳에 세웠습니다. 기독교인이 핍박받는 무슬림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당히 “나는 기독교인이며 새벽마다 교회 가서 기도드리고, 바레인 친구들과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바레인 사람들은 전혀 핍박하지 않고 감사하며 심지어는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사실 그는 중동 지역과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건설노동자로 파견되어 리비아에서 10년 동안 일했었습니다. 그는 리비아에서 일하는 동안 함께 일하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을 위해서 야간학교를 개설하여 그들이 글을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줬습니다.
그의 도움 덕분에 글을 읽게 되고, 집에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된 많은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그에게 영향을 받아 무슬림에서 개종하여 한인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또 그는 10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한 대가로 받은 위로금을 전부 현지 선교사님에게 후원하고 돌아왔습니다. 지금도 매일 새벽마다 쓰레기를 줍는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에 따라 섬기기 위해 쓰레기 줍기를 시작했습니다. 교만해지지 않고 변함없이 이 일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에는 약 7만 8000여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믿음 생활을 하는 분들께서 각 교회 주변의 쓰레기만이라도 묵묵히 줍는다면, 큰 변화가 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동참해주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공의와 정직으로 심판하시는 예수님
이사야 11장 4절부터 5절은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주님이신 동시에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공의의 기준은 하나님의 뜻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세리와 창녀들에게는 사랑으로 구원을 베푸셨지만, 회개치 않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는 공의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의 외식을 꾸짖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은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소득의 수단으로 삼은 성전의 장사꾼들을 몰아내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공의와 성실, 정직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실한 자에게 은혜를 더하십니다. 우리는 예배, 기도, 하나님 섬기는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굶주린 자들을 돌보는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한 몸 된 지체를 섬기는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0절부터 11절은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어 교만의 우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섬김, 낮아짐, 희생을 보이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공의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시편 1편 6절은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주변의 악인들의 모습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희생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께 인정받는 공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평화의 나라를 가져오신 예수님
이사야 11장 6절부터 8절은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끊이지 않는 갈등과 분쟁은 예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상황과 환경이 바뀌면 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완전한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할 때 죄, 분쟁, 질병 등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알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나타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날마다 충만한 작은 예수가 되어 이 땅에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공의와 평화를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미얀마 난민들의 마더 테레사로 불리는 의사이자 인권운동가인 신시아 마웅(Cynthia Maung) 여사가 있습니다. 그녀는 양곤대 의대를 졸업한 후 지역 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미얀마 군사 정권의 지식인 학살을 피해 1988년에 진료 가방 하나만 들고 국경지역인 메솟(Mea Sot)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미얀마의 군사독재와 굶주림을 피해 온 약 100만 명의 난민들과 이주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봤습니다. 그래서 이듬해인 1989년에 작은 집에서 메타오병원을 시작했고, 27년간 이들을 무료로 진료했습니다.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현재 메타오병원은 17개의 부서와 400여 명의 의료 인력을 갖춘 대형병원으로 발전했고, 하루 약 400∼500명, 연간 14만 명의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하고 있습니다. 2014년 통계에 의하면, 이 병원에서 1년간 약 3000여 명의 아기가 태어났으며, 200여 명에게 의수와 의족, 2000여 명에게 개안수술 등 안과 치료를 시행했습니다. 300여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난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차별 없이 의료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현지 의료 종사자들과 간호사들을 교육시켜 질병에 속수무책인 지역에 파송하고, 난민 자녀를 위한 학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얀마 군사정권으로부터 반정부 인사로 분류되어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등, 가족과 연락을 할 수 없는 처지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저만 겪는 고통은 아닙니다. 많은 난민이 부모를 잃거나 형제의 생사조차 알 수 없어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녀는 난민들을 향한 열정과 헌신을 인정받아 2005년에 노벨상 후보에 올랐고, 2002년에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2008년에 아웅산 수지 여사와 함께 ‘카탈로니아 국제상’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10여 개의 인권상을 받았습니다. 14살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14세 때 침례를 받은 후 기독교 신앙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서로 사랑하는 것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된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평화와 정의가 없으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약자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지켜주고 그러한 삶을 살게 하는 것,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도록 돕는 것, 이것이 제 신앙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방법이며, 신앙인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평화의 사도,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평화를 주신 주님께서 우리를 평화를 전하는 삶으로 부르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여 개인, 가정, 교회 그리고 세상에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공의를 행하고,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희생하시고 섬기시고 평화를 주신 예수님을 본받아 한평생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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