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은 1620년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신대륙인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미국 북동부지역인 메사츄세츠 주 플리머스라는 곳에 도착했고 제일 먼저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원주민에게 배운 농사법으로 얻게 된 첫 추수 곡식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미국 북부지역 중심으로 지켜지던 추수감사절은 남북전쟁이 한참이던 1863년에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에 의해서 정식 국경일로 정해졌습니다. 이때 링컨 대통령은 이러한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뼈아픈 남북 갈등에서 비롯된 미망인, 고아, 가까운 이를 잃어 슬퍼하는 자, 전쟁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포함한 모든 미국인과 상처 난 미국에 하나님의 돌보심을 구합니다” 이처럼 추수감사절에는 고난 중에 감사하고 고통당하는 이들을 돌보고자 하는 정신이 담겨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나병으로 절망 가운데 있던 한 사마리아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고침을 받고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절망적 존재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경계에 있는 한 마을에 들어가려 하실 때,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보고 긍휼히 여겨달라고 소리쳤습니다. 누가복음 17장 12절부터 13절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이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나병은 부정한 병이었기 때문에 나병환자들은 건강한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 열 명의 나병환자들도 마을 안에서 살지 못하고 마을 밖에서 사람들과 격리된 채 살았습니다.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혹시 사람을 만나도 돌을 던져 맞지 않을 정도의 먼 거리에 있어야 했습니다. 특히 나병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윗입술을 가린 채로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쳐 자신이 부정한 존재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했습니다(레 13:45).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보았을 때도 다가가지는 못하고, 멀리 서서 예수님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고서는 그들은 고침 받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절망적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절망적 존재의 모습이 바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된 모든 인간의 모습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죄로 물든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갈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그러한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러한 비참한 현실을 너무도 잘 아시고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길, 은혜의 길을 사람에게 열어주셨습니다. 모든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 예수님의 긍휼을 입어 모든 죄를 속량 받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온갖 죄로 물든 불의한 인간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의로운 자라 칭함을 받습니다. 더 이상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쳐야 하는 존재가 아닌, “나는 용서받았다! 나는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나는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고 담대히 고백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그러므로 문제 해결의 길은 구주 예수님께 긍휼히 여기심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은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가정의 문제, 사업의 문제, 건강의 문제를 놓고 주님 앞에 엎드려 우리는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통당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주시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절대 절망으로 이끄는 모든 문제를 해결 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긍휼을 간구해야 합니다.
2. 치료자 예수 그리스도
온 인류의 절대 희망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희망이 되시고, 우리의 치료자가 되십니다. 이사야 53장 5절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사역은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을 고치신 일입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부터 24절은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병 고침의 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공생애 동안 많은 시간을 병을 고치시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치료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열 명의 나병환자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눅 17:14)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나병환자들 입장에서 매우 당황스러운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율법에 따르면 나병환자가 제사장에게 갈 경우는 단 하나, 그가 고침을 받았을 때 검사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네 믿음이 너희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병환자에게 하셨던 것처럼 손을 대시고 “네가 나음을 입었다”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의심하지 않고, 또한 자기 생각, 자기 경험을 가지고 따지거나 계산하지 않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의 말씀에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따를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때때로 기적을 경험하기 원한다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며 예수님께 매달리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예수님 말고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고도 희망을 거는 무언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자아가 깨어지지 않은 채로 있어서 주님을 전적으로 따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39편 7절은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고 치료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만 절대 희망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돈, 명예, 권력, 내 지식, 내 경험, 세상의 어떤 것도 참된 희망, 진정한 치료를 줄 수 없습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헛된 희망, 헛된 기대를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직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예수님께 순종하고, 그 말씀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완전히 깨어지고 낮아져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자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너무 기뻐서 제사장에게 달려가는 도중에 그들의 병이 다 나았습니다. 누가복음 17장 14절은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순종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 치료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우리가 순종의 길을 걸어갈 때 기적이 찾아옵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 물을 떠다 연회장에게 가져다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하인들이 순종하여 물을 떠서 가지고 가는 그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됐습니다. 주의 말씀을 의지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놀라운 치료, 회복이 임합니다. 이러한 기적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치료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헛된 희망, 헛된 기대를 가지고 여기저기 기웃기웃하지 말고 치료자 되시는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당하는 모든 자를 지금도 초청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교회 마포1대교구 이형순 집사님은 2006년에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혈액암의 일종인 ‘급성호지킨림프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지역장을 알게 되면서, 2007년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던 중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읽으면 네 병이 낫는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당시 항암주사로 몸이 극도로 약해져 있어서 성경일독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읽기 시작했습니다. 땀이 비 오듯 흘렀고, 기운이 없어 성경책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옆으로 넘어져 못 일어나 그대로 쓰러져 울며 정신을 잃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던 중, 기도처에서 하는 다니엘 기도회에 참석해 성령침례를 받아 방언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4월 18일에 드디어 성경 일독을 마쳤는데, 약 2주 후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암이 깨끗이 없어졌습니다. 이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하루에 7~8시간씩 눈물을 흘리며 성경을 읽었고 2007년 12월 24일에는 성경 3독을 마쳤습니다. 원래 병원에서는 항암주사를 16번 맞아야 한다고 했지만, 8번만으로 항암주사를 끝냈고 현재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집사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4월 18일 성경을 처음으로 일독하고 약 2주 뒤에 펫시티(PET-CT) 촬영을 했는데 암이 깨끗이 없어졌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 더욱 힘써 성경을 읽었습니다. 제가 지은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죄이며, 가장 잘한 일은 하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다닌 거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암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믿음의 고백이 나왔습니다. 이 암이 아니었으면 교회에 다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병원에서 의사는 항암주사를 16번 맞아야 한다고 했지만, 저는 8번으로 항암주사를 끝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저를 구원하시고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가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입기 원한다면, 오늘도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3. 감사하는 믿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열 명의 나병환자 모두 깨끗이 고침을 받았지만, 그중에 한 사람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돌아와 그 발아래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누가복음 17장 15절부터 16절은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열 명 중 한 사람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에게는 병이 나은 것도 중요했지만, 그 병을 낫게 하신 분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에게만 삶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감사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주시고, 우리 삶에 축복과 형통, 기쁨과 평안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또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 찬송, 존귀, 영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시편 50편 23절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 17:17∼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 명 중 아홉 명은 예수님께 감사도 드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가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평생소원이었던 나병에서 치료받는 기적, 그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는데 예수님께 감사하기 위해 돌아온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시편 103편 2절은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각자의 길로 가버린 아홉 명의 사람은 유대인이었고,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감사하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옛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에 사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당하고 난 후,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수르의 혼혈 정책으로 이방인들과 결혼해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피가 섞인 사마리아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이방인으로 취급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과 상종하지 않았고 사마리아 지역에 들어가는 것조차 꺼렸습니다. 예수님도 이 사마리아인을 이방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마리아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예수님께 감사하기 위해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보다 더 큰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했던 유대인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었다고 자부하는 사람, 교회의 중요한 위치에서 많은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자만하는 사람일수록 감사가 메마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문제와 어려움을 당해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사의 고백을 드렸던 사마리아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7:19)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아홉 명은 예수님께서 베푸신 치료의 기적을 경험하고도 정작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절망에 처해있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모르고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감사하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주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며,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사람입니다.
오른팔과 두 다리가 없는 절단 장애인이지만, 절망을 극복하고 공무원(서울도서관 사서)으로 일하고 있는 신명진(인천제일감리교회) 형제가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섯 살 때 기차에서 놀다가 떨어져 기차에 깔려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장애인이 되자 아버지는 충격을 받아 매일 술을 마셨고 어머니는 날마다 옥상에 올라가 우셨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그를 데리고 옥상에 올라가서 “명진아, 엄마랑 그냥 죽자. 여기서 뛰어내리면 끝나지 않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그는 남은 왼팔로 엄마의 목을 감싸며 “엄마,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어머니는 “엄마가 미안해!”라며 정신을 차리고, 술로 아픔을 달래던 아버지 역시 “옥상에 올라가 죽을 생각만 하지 말고 우리가 명진이의 손과 발이 되어주자”라며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의족을 착용하고 걷는 것을 연습하며 열심히 혼자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자신의 장애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왜 저를 이렇게 만드셨나요? 5살짜리가 뭘 안다고. 왜 저여야 되요? 제가 상처받고 아플 때 어디 계셨어요? 왜 저에게 이런 고난과 아픔을 주시나요?”
그러나 차차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원망으로 가득 차 있던 인생이 감사의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특별히 자신과 같은 장애인이면서도 긍정적으로 사는 원용이 형이라는 한 장애인(인천시 수영 대표선수)과의 만남을 통해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여 장애인 전국체전 수영 부문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수상했습니다. 2009년에는 백두산을 등반했고, 2011년에는 뉴욕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서 42.195km를 9시간 50분 만에 완주했으며, 2012년에는 한강도 건넜습니다. 그리고 사서에 도전해서 서울도서관 사서(공무원)로 채용되고,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이제는 자신도 넘어져 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싶다며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한때는 차라리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때 죽지 않고 살아있음이 너무 감사해요. 제 옆을 지켜주었던 사람들처럼 저 또한 용기와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나님은 이겨낼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주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저를 닉 부이치치처럼, 희망과 꿈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시편 136편 1절부터 3절과 26절은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한평생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절망적 존재였던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치료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으로 한평생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그동안 감사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원망하고 불평했던 모든 우리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옵고, 한평생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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