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사도행전 3장 1∼10절)
사도행전 3장에는 오순절 성령강림 후 초대교회에 나타난 기적으로서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이 고침 받는 사건이 첫 번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 절망적인 상황으로 그와 같은 형편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그 고통과 슬픔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기도하는 신앙
우리는 기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3장 1절은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라고 말씀합니다. 제 구 시는 오후 3시입니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 세 차례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오후 3시에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기도할 시간이 다가오자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성전으로 향했습니다. 그 어떤 일보다도 기도하는 일을 우선시했던 베드로와 요한처럼 우리도 늘 언제나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교회 일에 너무 바쁜 나머지 정작 기도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쉴 새 없이 많은 사역을 감당하셨지만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35절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말씀합니다. 또 누가복음 5장 15절부터 16절은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제자들을 돌보셔야 했고, 수십 수백 수천 명을 상대로 말씀 사역을 하셔야 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을 찾아오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병든 자, 귀신 들린 자였기 때문에 치유 사역, 축사 사역에 기진맥진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두시고 기도하기 위해 감람산에 있는 겟세마네를 찾으신 것도 평소 습관대로였습니다(눅 22:39).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끊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말을 많이 하면 실수가 많지만(잠 10:19), 기도를 많이 하면 더 큰 기적이 나타납니다. 기도는 축복의 통로이며 기적의 통로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제자들, 서기관들, 사람들이 뒤섞여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막 9:14∼18). 이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시고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이 사건 후 거처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이 왜 자신들은 불가능했나를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9장 29절에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축복의 문, 치료의 문, 응답의 문을 여는 열쇠는 오직 기도뿐입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문제 해결의 문이 열립니다(마 7:7∼8).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기도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주님께서 나의 모든 것이 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주님 앞에 깨어지고 낮아집니다. 기도를 통하여 나의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을 깨뜨리고 주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 주님의 은혜와 축복과 기적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중보기도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은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눈물의 기도, 믿음의 기도는 반드시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한평생 기도의 인생을 살고계신 류태영(현 농촌·청소년미래재단 이사장, 건대 부총장 역임, 1936∼) 박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두메산골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서 학교는 커녕 하루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가면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교회에서 기도를 배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새벽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늦은 나이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구두닦이, 신문팔이를 하면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1968년에 그는 덴마크로 유학을 갔는데 이 역시 새벽기도 중에 하나님께 받은 응답이었습니다. 그는 농업선진국인 덴마크에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너무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새벽기도 중에 하나님께서는 덴마크 국왕에게 편지를 쓰라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대로 주소도 없이 덴마크 국왕의 이름만 적은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편지를 쓴지 한 달 후에 덴마크로부터 연락이 왔고 덴마크 국왕의 초청으로 국비장학생이 되어 덴마크로 유학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그는 청와대 초대 새마을운동 담당으로 새마을운동을 이끌었고 다시 이스라엘로 유학을 가서 동양인 최초로 이스라엘 대학교 교수가 되었습니다. 이후 건대 부총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79세 나이에도 농촌과 청소년 발전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한글도 깨치지 못한 어머니셨지만 늘 기도로 여덟 자녀를 키우신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부모인 저는 무식해서 우리 태영이를 가르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너무 가난해서 양육도 제대로 못 하고, 아파도 약 한 첩 못 먹입니다. 이 아이를 맡아주세요!” 어머니는 평소에도 늘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라는 너를 위해 예수님을 주셨단다. 그러니까 너는 천하고 가난한 농가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 믿음을 가져라. 네 육신의 부모는 무식하고 가난하고 돈도 없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의지하면 반드시 너를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기도를 늘 생각하면서 일평생 기도의 사람으로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만약 제게 기도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제 숨통을 끊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기도는 제 영혼의 생명줄입니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상황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더 분명한 것은,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바꾼다는 사실입니다. 불가능한 것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보게 하고, 이룰 수 없는 많은 장애요인보다 이루어야 하는 더 절실한 목표를 볼 수 있는 눈을 띄워주며, 그 길로 인도해줍니다. 저는 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고민해야 했지만, 하나님은 늘 저에게 더 높은 가치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고, 더 높은 기도제목들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기도가 있었기에, 초등학교도 가지 못할 형편에서 꿋꿋이 일어나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2. 예수 이름의 능력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킬 수 있었던 힘은 예수 이름의 능력이었습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걷지 못하던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걷고 뛰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모두 동일한 예수 이름의 권능을 갖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 2절부터 3절은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올라갈 때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나면서부터 걷지 못해서 구걸하려고 사람들이 메어 오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기도시간에는 사람들이 많이 올라오므로 그는 목청을 높여 “한 푼 주세요. 저를 좀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세요. 저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고 이렇게 불구가 되었습니다. 나를 불쌍히 보시고 한 푼 좀 도와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죄와 불의, 가난과 저주 가운데 살면서 늘 구걸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힘쓰고 애써도 삶에 참된 만족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남이 던져주는 돈을 얻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걸하는 인생과 같은 절망적인 모습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모습입니다.
미문은 헤롯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 통과해야 되는 문입니다. 헤롯 성전은 헤롯 왕이 다스리던 주전 20년부터 대를 이어서 주후 63년까지 무려 83년 동안 지은 웅장한 규모의 성전입니다. 성전 안에 있는 이방인의 뜰에서 본 성전으로 들어가려 할 때 꼭 통과해야 하는 곳이 미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미문에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이 앉아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천국 문을 통과해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늘 외롭게 절망의 자리에 앉아서 구걸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마음에 천국이 임해서 영적으로 이미 천국에 들어와 있게 됩니다. 그리고 먼 훗날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본향인 천국으로 다 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앉은뱅이를 메고 와서 그 자리에 놓았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 지은 인간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아주 훌륭한 의사도 고치지 못하는 병이 매우 많습니다. 그 누구도 가정이 깨어져가는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해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이러한 모든 절망에서 건져주십니다. 우리를 가정의 문제, 질병의 문제 등 모든 어려움 가운데에서 건져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놀라운 축복과 은혜가 임합니다. 수십 년간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도 예수님을 만난 그 순간 절망을 딛고 일어나서 기뻐 뛰고 주님을 찬양하며 성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 들어가려고 할 때, 앉은뱅이가 구걸하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행 3:4∼5). 우리는 절망에 처해서 우리에게 도와달라고 손짓하는 사람들을 지나치면 안 됩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눠줘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에 처한 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전한 것은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 몇 닢이 아니라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삶에 기적을 가져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선포한 말씀으로 인해서 그 앉은뱅이의 삶에 놀라운 기적과 축복이 임했습니다. 사도행전 3장 6절은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구원, 생명, 축복, 기적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해야 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질병아, 물러갈지어다. 앉은뱅이야, 일어나라. 가난과 저주는 물러갈지어다. 절망은 떠나갈지어다” 이렇게 믿음으로 외칠 때 기적이 일어나고 은혜와 축복이 다가옵니다.
중세 때 교황 이노센트 4세가 당시 최대의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바티칸의 화려한 영광을 보여주면서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교회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교회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할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물질과 권세를 의지할 때 주님의 권능이 떠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첫째도 예수님, 둘째도 예수님, 마지막도 예수님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꼭 붙잡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고 믿음으로 전진해나가야 합니다.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한 후에 그를 붙들어 일으켜 세웠습니다. 사도행전 3장 7절부터 8절은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이름에 위대한 권세가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한평생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성령의 역사
세 번째 축복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성령받기 전까지는 무기력하고 두려워 떨며 숨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자 그들의 삶이 놀랍게 변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그 순간 그들은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온 예루살렘이 주의 복음으로 뒤덮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은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부흥의 비결은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께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일어났습니다. 그 예수님이 바로 우리가 믿고 섬기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변하심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굳건한 믿음을 갖고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켰는데 우리는 믿음이 약해서 앉은뱅이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박종순 목사님이 재미있는 간증을 했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마음에 뜨거운 열정을 받고 ‘나도 앉은뱅이 한 번 일으켜봐야 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역에 갔더니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주위를 둘러보고 그 사람을 업고 뒷골목으로 가서 “일어나라, 일어나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안 일어나니까 내버려두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강한 믿음을 갖고 선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믿음 없이 시험삼아해서는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한 믿음과 기도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고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6절은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주셔서 우리의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에베소서 5장 18절 말씀처럼 세상 유혹에 취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힌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핵심은 가진 것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 우리의 할머니들은 종종 밖에서 맛있는 음식 등을 얻어 오시면 할아버지만 드린다고 장롱 한 구석에 그것을 숨겨놓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잊어버리실 때가 많았습니다. 한참 후에 사람들이 우연히 장롱 속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곰팡이 난 떡, 곰팡이 난 곶감 등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장롱 속에 귀한 것을 묻어 놓고 잊어버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썩히지 말고 그것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에 권세를 주시고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잘 활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고 아름답게 쓰임 받는 주님의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이미 주신 그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활용할 수 있게 해 주시옵고 우리에게 주신 기도의 능력, 예수님 이름의 권세, 성령의 권능을 가지고 땅 끝까지 나아가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며 병자를 고치고 문제를 해결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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