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중략)…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요한복음 21장 2∼11절>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사랑과 용서입니다. 십자가에서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배신한 베드로가 주님께 용서받고 다시 사랑을 회복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상처 입은 인생
베드로는 예수님께 택함을 받아 3년 반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말씀을 듣고 주님을 도와 일했던 수제자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실 때,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실 때 동행했던 세 명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예수님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모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신임을 받고 사랑을 받았던 베드로가 정작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73절부터 74절은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고 말씀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라고 고백했고, 다른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떠나도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막 14:29)라고 고백했던 베드로는 예수님 때문에 자기 목숨이 위험하다고 판단되자 예수님을 “그 사람”이라고 하고,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저주하며 맹세까지 했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고, 칭찬받는 신앙고백도 했지만, 결국 예수님께서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베드로 같은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배신도 합니다. 누군가 나에게 도움이 되고 혜택을 줄 때는 그 사람을 위해 뭐든지 다 할 것처럼, 결코 떠나지 않을 것처럼 호언장담하지만 그 사람 때문에 나에게 피해, 손해가 오고 문제가 생기면 어느새 원수가 되고 맙니다. 쉽게 변하는 사람의 속성에 대해서 시편 62편 9절은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만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기 바빴습니다.(막 14:50) 마가라는 제자는 홑이불을 덮고 자고 있다가 놀라서 덮고 있던 홑이불을 벗어 던지고 벌거벗은 상태로 도망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이러한 연약함과 위기 앞에 결국 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신실하지 못한 모습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4장 38절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들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23절부터 25절은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멸시와 천대의 십자가를 지셨고,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셨고, 옆구리는 창에 찔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안 믿는 직장 상사에게 불이익을 당할까봐, 사업상 금전적인 손해를 입을까봐, 안 믿는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할까봐, 안 믿는 일가친척들에게 핍박당할까봐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때로는 유난스럽다는 말을 들을까봐 적당히 믿는 척까지 했습니다. 사람들 보는 앞에서 식사 기도할 때 하는 둥 마는 둥 할 때도 있었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예배를 빼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모습들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모습을 돌이켜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한 후 양심에 가책을 느껴 통곡하고 울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75절은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닭 울음소리를 듣고 베드로는 마음 가운데 배신자라는 죄책감과 깊은 상처를 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주님을 배반하고 때로는 세상과 타협하면, 죄책감이 쌓이다가 주님에게서 점점 멀어집니다. 주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신앙 양심이 완전히 무뎌져 주님을 떠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외면하고 떠난 사람은 믿음을 지키지 못한 상처 입은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상처 입고 살아가는 자에게 찾아오셔서 상처를 치료해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처 속에서 허우적대며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료해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2. 배신한 베드로를 찾아오신 예수님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상처를 가지고 갈릴리로 돌아가 배에 올랐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는 옛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요한복음 21장 3절은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떠난 인생은 빈 배 인생입니다. 아무리 그물을 던지고 또 던져도 주님을 떠난 인생은 빈 그물만 걷어 올리게 되고 빈 배 인생으로 허무한 삶을 살아갑니다. 베드로가 처음 부르심 받았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 16절부터 18절은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주님께서 주신 꿈과 희망을 좇아 이전까지의 자신의 삶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만큼 주님의 부르심에 감사, 감격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부르심에 감사, 감격했던 베드로가 이제는 예수님을 배신한 배신자가 되어 예수님께서 주신 비전 역시 헌신짝처럼 버리고 다시 갈릴리로 돌아왔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그 외의 모든 것은 주님께서 책임져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주님을 좇았던 베드로가 이제는 생계를 위해 다시 고기를 잡을 수밖에 없는 어부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떠나서 아무리 그물을 던져도 무엇 하나 얻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 것일 뿐입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주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늘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비전과 사명을 잃어버린 인생은 삶의 목적도, 방향도 없는 공허한 빈 배 인생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가 절망에 처했을 때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삶의 목적과 방향을 상실한 채 어부로 돌아온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4절부터 5절은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날이 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셔서 바라보고 계셨지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시선을 돌리시기 위해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향해 “얘들아”라고 다정하고도 따뜻하게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나를 떠나서 세상에서 열심히 산다고 했는데 얻은 것이 있느냐?”라고,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손해 보지 않으려고 세상과 타협하고 살았는데 무엇을 얻었느냐?”라고 묻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떠난 인생은 빈 배 인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가득찬 배의 인생으로 바뀝니다. 요한복음 21장 6절은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는 밤새 배 오른 편, 왼 편 할 것 없이 그물을 던지고 거두기를 반복했지만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지자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물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같은 일을 해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면 풍성한 삶을 삽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떠난 인생이 공허하고 허무한 빈 배 인생을 살아가지 않도록 찾아오셔서 말씀해주시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빈 배 인생에 예수님을 모셔들여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고 우리를 절망에서 구원해주실 수 있으십니다.
수술조차 불가능한 악성 종양을 신앙으로 이겨 낸 차인태(71세, 서울영락교회) 장로님이 있습니다. 그는 1973년부터 1990년까지 17년간 ‘장학퀴즈’를 진행하면서 스타 아나운서가 됐습니다. 1주일에 14개 프로그램 외에도 동요제, 가요제, 기념식, 대통령취임식 등 중요 행사 진행을 맡았습니다. 그러던 2009년의 어느 날 40도가 넘는 고열과 함께 급성폐렴 증세를 보였고, 2주간의 진단 끝에 ‘악성 림프종양’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심장과 폐 사이에 꽈리모양으로 악성 종양이 생겨서 수술조차 어렵고 수술을 하더라도 완치 가능성이 40% 정도이며 여러 차례 수술을 해야 되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됐습니다. 육신의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고, 자신에 대한 원망, 서글픔, 부끄러움, 분노, 허탈, 실망, 무기력에 짓눌렸습니다. 게다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그때 그런 그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며 위로해주셨고, 그는 평생 기도하며 더 낮은 자세로 섬기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가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는 말씀과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는 말씀을 붙잡고 간구하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술조차 불가능했던 종양이 떨어져나갔습니다. 그 후에도 아홉 번의 수술(심장판막치환)을 받았지만 쉬지 않고 봉사하며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를 인터뷰한 기자가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느냐?”라고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음이 늘 가까이에 있었고 그러한 가운데서도 주님은 저를 구원의 길로 이끌고 계셨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산 것, 누린 것, 대접 받았던 것이 본래 제 모습에 비해 얼마나 부풀려지고 과장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저는 혈루병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병 고침을 받은 것처럼 치료하시는 예수님, 능력의 예수님을 믿습니다. 저보다 위중한 분들께 제가 조그마한 희망과 기도 제목이 되었으면 합니다.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제가 원하는 것은 오직 주님과 최후에 기쁘게 마주하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 주를 증거 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이 모든 것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떠난 사람이 공허하고 허무한 빈 배 인생을 살지 않도록 찾아오십니다. 주님 안에서 삶의 목적과 방향을 찾아 풍성하고 형통한 삶을 살도록 인도해주십니다.
3. 치료하시는 예수님
물고기가 잡혔을 때 베드로와 제자들은 이 같은 놀라운 일을 행하실 분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한복음 21장 7절은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아본 것은 예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 즉 사도 요한이었습니다. 그가 “주님이시라”고 말하자 베드로가 제일 먼저 호수에 뛰어 들어가 헤엄쳐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숯불을 피우시고 생선을 굽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온몸이 젖어 추워 떨고 있는 베드로를 숯불 앞에서 몸을 녹이게 하시고 음식을 준비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9절은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와 함께한 제자들을 맞아주신 예수님께서는 미리 준비하신 숯불에 구운 생선과 떡으로 아침식사를 차려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2절부터 13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식사 후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숯불 앞에서 세 번 물으심으로써 그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그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부터 17절은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전까지 베드로는 자기 자신의 열심이 앞섰습니다. 자신이 뭔가 해보겠다는 자만심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주님의 세 번의 물으심 앞에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세 번의 물으심으로 인해 베드로는 나 중심의 옛 사람을 버리고 예수님 중심의 새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세 번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세 번의 물으심은 세 번의 배신에 대한 완전한 용서의 상징이고, 완전한 치유의 과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그의 상처에서 완전히 치료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내 양을 먹이라, 치라, 먹이라”라고 세 번 반복해서 사명을 확인시켜주셨습니다.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치료하시고 다시 사명을 맡겨주신 주님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기독교 역사상 주님께 쓰임 받고 헌신했던 사람은 모두 주님의 이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고, 그 사랑과 용서에 감사, 감격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또 골로새서 3장 13절부터 14절은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받은 주의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시기, 질투, 미움, 분노와 같은 옛 사람의 모습과 세상과 타협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다 버리고 이제는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 하나가 되어 믿음으로 전진해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힘입어 살아온 자로서 앞으로 주님께 받은 사랑과 용서를 나누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치료를 받은 축복받은 자녀로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십자가 은혜를 나누는 삶을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지면보기
행복으로의 초대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