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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
2015.08.09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로마서 4장 17∼22절)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고,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 축복과 은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적이고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으로부터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게 하셨고 결국 원망과 불평을 했던 세대가 모두 죽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긍정적인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 긍정적인 사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과 함께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특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인정받은 믿음의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네 가지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의 믿음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로마서 4장 17절은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100세 때 얻은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은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의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자신이 이삭을 번제로 드릴지라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신명기 32장 39절은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또 스바냐 3장 17절은 “너의 하나님 야훼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고 말씀합니다. 구원의 길은 예수님 한분밖에 없고, 그 구원을 이루시는 분은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절망의 때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도우심을 간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합니다.

 20세기 초 영국의 유명한 부흥사이자 치유사역을 했던 스미스 위글스워스(Smith Wigglesworth, 1859∼1947)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본래 가난한 집안 출신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말도 어눌한 배관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48살이 되던 1907년에 성령침례를 받고 방언을 하게 되면서 인생이 극적으로 달라졌습니다. 그는 성령침례를 받은 후 전 세계를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치유사역을 했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치유를 선포했을 때 맹인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휠체어에 앉은 사람이 일어나 걸었습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기록도 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다섯 살 된 아이가 죽은 집을 방문했는데 관속에 누운 아이를 보니 너무나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나가게 한 후에 믿음으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사망을 꾸짖노니, 사망은 이 아이의 몸에서 떠나라!”고 외쳤습니다. 이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관속에 누워 있던 아이가 숨을 쉬기 시작하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는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87세까지 전 세계를 다니며 수많은 병자를 고쳤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요 14:12).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믿음은 힘을 발휘하는 능력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생명의 본질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 이 생명이 이뤄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믿은 그대로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2.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


 아브라함의 믿음은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믿음이었습니다. 로마서 4장 18절은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100세나 된 자신과 90세나 된 사라에게 아들을 주시고 더 나아가 하늘의 뭇별과 같이 무수한 자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귀하게 보셨습니다. 창세기 15장 5절부터 6절은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신 것은 그의 행위 때문도 아니었고 할례 때문도 아니었고 율법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4장 2절부터 3절은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은 때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통해 많은 자손을 주시리라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을 때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참 믿음은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뛰어 넘습니다. 이삭이 번제로 바쳐지려면 먼저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죽어도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신다고 하신 약속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죽은 이삭을 다시 살리시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인천 주안장로교회의 나겸일 원로목사님은 29년 전에 한창 교회가 부흥하던 어느 날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다가 급성간암으로 얼마 못 산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찾아간 병원도 마찬가지였고, 세 번째 찾아간 세브란스병원에서는 3일밖에 못 산다며 병실도 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겨우 사정사정해서 입원을 한 금요일 저녁에 목사님의 얼굴은 새까매지고 배에는 복수가 차고 온몸에 땀이 났습니다. 당시 목사님은 죽음이 가까운 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았으나 홀로 남을 아내와 6살 9살 어린 두 딸,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제 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제 간이 나을 줄 믿습니다! 제가 죽으면 하나님 영광 가립니다. 하나님 영광 위해 살려주세요!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라는 말씀을 믿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 8:17)라는 말씀을 믿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약 5:15)는 말씀을 믿습니다!”

 이때 목사님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은 성도들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일 1부에서 5부 예배 그리고 오후 7시 30분 저녁예배 때도 평소보다 많은 성도가 나와서 본당, 교육관, 보조의자까지 꽉 채워 목사님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성도들은 예배가 끝나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다음 날인 월요일 새벽예배가 시작될 때까지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주일 저녁에 간호사는 “이제 30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돌아가시면 덮으세요”라며 흰 천을 준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눈물로 기도하던 월요일 새벽쯤에 목사님의 뱃속에서 갑자기 꾸르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시커먼 핏덩어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루에 3번씩 나흘 동안 총 12번의 혈변을 쏟은 뒤 드디어 닷새째 되는 날 복수가 차서 남산만 하던 배가 쑥 꺼지면서 식사까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란 담당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의사로서, 의대 교수로서 이런 기적은 처음 봤습니다. 목사님의 경우는 1%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병원 측에서 목사님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을 받는다는 것은 곧 시체를 받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고치셨다’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뒤 나겸일 목사님은 더 건강한 몸으로 10만 성도라는 놀라운 부흥을 일으키시고 은퇴하셨습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며 주님의 기적을 가져오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나겸일 목사님처럼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로 아들을 얻은 한나같이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무엘상 1장 10절부터 11절은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야훼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야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은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할 때 절대로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절망적인 환경에 놓여도 오직 믿음의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 앞에 놓인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뀝니다.
 
 3. 믿음이 약해지지 않음


 아브라함의 믿음이 위대한 것은 자신과 사라가 자녀를 낳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9절은 “그가 100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무언가 잘 이뤄지지 않을 때 쉽게 좌절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쉽게 물러서지 않습니다. 후퇴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부터 39절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띄우기 위해서 천 번이 넘게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할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고 결국 꿈을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참된 믿음의 사람이라면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말할 때도 믿음이 약해져선 안 됩니다.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자신과 아내인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믿고 의심치 않았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고 사람들이 모두 불가능이라고 말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믿음의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과정일 뿐입니다(롬 8:28). 우리는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절대로 믿음이 약해져서 포기하고 뒤로 물러서면 안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능히 이루심을 믿음


 아브라함의 믿음은 불가능의 현실에 부딪힐수록 강해져서 약속의 말씀을 능히 이루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이었습니다. 로마서 4장 20절부터 21절은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도 응답은 오지 않고 시험과 연단만이 계속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험과 연단은 나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라고 주시는 축복입니다. 가장 어두울 때를 지나야 새벽이 옵니다. 고난이 깊어질 때가 바로 응답의 때입니다.

 여리고를 일주일 동안 돌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힘으로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지도자 여호수아를 신뢰하고 그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일곱 바퀴를 돌고 난 후 나팔을 불며 함성을 지를 때 여리고는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여호수아 6장 20절은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말씀에 근거한 믿음만이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약속의 말씀이 문제 해결의 능력이자 무기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믿음의 전진을 해야 합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 여겨주셨습니다. 로마서 4장 22절은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것은 온전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온전한 믿음 위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이 같은 은혜에 거하게 됩니다. 로마서 4장 24절은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우리 삶에 놓인 모든 불가능의 여리고 성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너뜨려주실 것을 믿는다면 큰 믿음의 용사로 하나님께 인정받게 됩니다.

 시각장애인 화가인 박환 집사님이 있습니다. 입이나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는 종종 있지만,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이 시각예술인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드뭅니다. 박환 집사님은 본래 개인 전시회를 열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화가였습니다. 그런데 1년 전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양쪽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빛조차 볼 수 없는 1급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사고 이후 화가로서의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하여 박환 집사님은 절망 속에서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고 몇 개월 동안 방안에서 홀로 울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박환 집사님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혼자 밥 먹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실과 핀을 생각했습니다. 실과 핀을 캔버스에 꽂아 손으로 더듬으며 구도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오직 손가락 감각만으로 물감의 양을 조절하며 채색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9개월 동안 노력한 끝에 박환 집사님은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이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이름으로 작은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이겨내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제게 힘들고 좌절되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수도 없이 다가오지만, 그것을 이겨내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림도 더 열심히 그리고, 또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희망을 찾아가려고 끝까지 그림을 그릴 것입니다. 젊은 날의 소망처럼 내일도 큰 힘인 희망을 좇아 달려갈 것입니다. 오늘도 저를 건강하게 지켜주시고 그림 앞에 서게 해주심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한 번 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오직 큰 믿음의 일꾼으로 살아야 합니다. 역경의 때 더욱 강해지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가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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