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누가복음 24장 13∼23절)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문제와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어려움과 문제의 자리에 늘 함께해주시기 때문에 어려움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은 날부터 천국 가는 그날까지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와 동행해주시며, 우리를 사랑으로 품으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주님의 은혜로 인도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병을 고치려고, 기적을 구경하려고, 호기심으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는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한자리 차지하려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무엇인가 얻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그들은 모두 실망하고 떠나갔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마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자가 절망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모른 채, 그리고 부활의 소식을 들었으나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낙심 중에 각기 제 갈 길로 갔습니다. 글로바라는 제자와 그의 친구도 예수님을 진실로 믿으려고 따라다녔으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절망에 빠져 예루살렘을 떠나 그곳에서 이십오 리 떨어진 엠마오라는 곳을 향하여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제자들과 동행해주셨으며 제자들에게 말씀과 성령충만을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동행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제자였던 글로바와 그 친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극한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제자들 사이에 퍼지긴 했지만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결국, 두 제자는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절망의 발걸음을 옮겼습니다(눅 24:13). 예루살렘을 떠났다고 하는 것은 영적으로 은혜의 자리를 떠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환란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오고, 괴로움이 다가와도 절대로 은혜의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시험이 들고, 문제가 생길 때 교회를 떠나고 예배를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은혜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교회에 머무르며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절망의 길을 걸어갈 때 예수님께서 동행해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4장 15절은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은 두 사람에게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고자 했던 모든 꿈을 다 잊어버리고 절망 가운데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 절망의 때에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 곁에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글로바와 그 친구는 막달라 마리아가 눈앞에 계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절망과 불신앙으로 눈이 가려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눅 24:16). 우리는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새찬송가 88장에 “내 맘이 아플 적에 큰 위로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 찬양의 고백처럼 우리는 믿음으로 영의 눈을 떠서 늘 우리와 동행하시고 도우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최자실(1915∼1989) 목사님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처음 설립될 때 조용기 목사님과 함께 대조동에서 천막 교회를 시작하신 목사님입니다. 최자실 목사님은 12살 때 우연히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해방 후에 사업으로 성공하여 큰돈을 벌면서 주님을 멀리 떠났습니다. 그런데 1953년 어느 날 큰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늘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주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열흘 후에 큰딸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많던 재산도 사업 실패로 인하여 다 잃고, 가정불화가 생겼습니다. 게다가 심장병까지 발병했는데 매일같이 찾아오는 빚쟁이들의 독촉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해 자살을 결심하고, 삼각산 골짜기로 올라가서 극약을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돌개바람이 불어와 손에 있던 약이 모두 다 날아갔습니다. 이렇게 자살을 실패한 후 망연자실해 있을 때 산속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나 삼각산 부흥회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친구를 따라 갔던 부흥회는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였습니다. 32년 만에 이성봉 목사님을 만나 신앙을 회복하고 회개하여 성령님을 만나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최자실 목사님은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라는 책에서 당시의 놀라운 은혜를 이렇게 간증합니다.
“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어린아이가 엄마를 떠났다가 다시 만나서 어머니의 품속에 안겨 우는 울음, 바로 그런 울음을 울고 있었다. 나는 높은 바위 위에 올라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어디서 기운이 나오는지 내 기도 소리는 천지를 진동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하룻밤과 하루 낮을 기도와 찬송으로 보내고 나니 아쉽게도 부흥회는 끝나고 말았다. 목숨을 끊기 위해 삼각산 골짜기로 찾아들었던 최자실을 거듭난 새사람으로 변화시켜 놓고!” 부흥회 이후 최자실 목사님은 신학교를 졸업하시고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설립 될 때 귀한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천국 가실 때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셨습니다. 최자실 목사님은 죽음을 결심하고 삼각산 골짜기에 올라가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함께 해주셨고, 다시 신앙을 회복시켜주셨고,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절망할 때, 괴로울 때, 포기할 때마다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일으켜주십니다. 우리는 일생 동안 함께해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2.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글로바와 그 친구에게 서로 주고받던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눅 24:17). 이에 그들은 예수님께 “당신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왔으면서 아직도 그 소식을 못 들었소? 우리가 메시아로 믿고 바라던 그분이 돌아가셨는데, 지금 사흘째가 되었소. 그런데 누가 얘기하기를, 여인들이 무덤에 가보니 시체가 없어졌고 천사들이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는데, 살아나셨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눅 24:18∼24). 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부족하고 말씀에 대해 무지한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25절은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참의미에 대해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을 비롯한 모든 성경의 기록을 가지고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눅 24:26∼27).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을 가지고 이 땅에 메시아가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고난 후에 영광이 있음을 믿습니다. 십자가 후에 부활이라고 하는 놀라운 승리와 축복이 있음을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절망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에게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가서 질병의 짐을 내려놓고, 절망의 짐을 내려놓고, 슬픔의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다 내려놓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십니다. 이사야 41장 10절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수아 1장 5절부터 6절은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함께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고난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에게 놀라운 믿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귀 기울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시고 복을 내려주시고, 우리의 믿음이 날마다 자라나게 됩니다.
설교의 황태자로 불렸던 찰스 스펄전(Charles H. Spurgeon, 1834∼1892) 목사님은 영국의 크리스탈 궁에서 드리는 집회에 설교자로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집회 전날 현장 답사 차 궁을 방문했다가 음향을 점검하려고 요한복음 1장 29절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말씀을 크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쪽 구석에서 집회를 준비하던 인부 한 사람이 그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 통곡하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이 집회는 우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한 인부의 변화로 시작하여 런던 역사상 최대 규모인 23만654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놀라운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늘 믿음으로 충만할 뿐만 아니라 말씀을 온전히 깨닫고 그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으로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3. 성령충만을 주시는 예수님
글로바와 그 친구는 목적지에 다다르자 예수님께 함께 유숙하기를 강권했습니다(눅 24:28∼29). 그들과 함께 유숙하시게 된 예수님께서는 식사 자리에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그들에게 떼어주셨습니다(눅 24:30). 이때 그들은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았지만,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눅 24:31). 그 후 그들은 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풀어주실 때 마음이 뜨거웠노라고 서로 고백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2절은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할 때 우리의 심령이 뜨거워지고, 이는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을 만났습니다. 원래 그는 성공회 신부로 미국에 가서 선교 사역을 3년 동안 감당했지만 큰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탄 배가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났고 그는 두려움에 떨며 죽음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옆에서 성령충만한 모라비안 교도들이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찬송을 부르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에 그는 그들이 예배드리는 그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그 예배 시간에서 들은 말씀을 통해서 그는 불같이 뜨거운 느낌을 받으며 성령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때의 경험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이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이후로 그는 88세까지 살면서 4만 번 넘게 설교했고, 수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부터 5절은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분부하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열흘 동안 그들이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그들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행전 2장 1절부터 4절은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성령충만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충만을 통해서 권능을 받아 증인이 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이니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령충만을 통해서 권능을 받아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증인이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스데반은 복음의 증인으로 살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고, 사도 바울은 목 베임을 당하여 순교했습니다. 초대교회의 폴리캅 감독은 펄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져 순교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깡패의 삶을 살다가 최초로 제주도에 선교사로 가셨던 이기풍(1868∼1942)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젊은 시절 술과 박치기로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장대현교회를 세울 때 가서 교회를 때려 부수고, 마펫(S. A. Moffett) 선교사님에게 돌을 던져서 선교사님을 다치게 한 망나니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자신이 던진 돌에 맞아 피가 철철 흐르는 선교사님을 생각하면서 도대체 선교사님이 전하는 예수가 누군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방안이 환해지면서 가시관을 쓰신 분이 나타나셔서 그에게 “기풍아! 기풍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너는 나의 증인이 될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고 이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의 딸인 이사례 권사님은 아버지에 대해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후부터 아버지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동만 트면 나가서 전도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완전히 예수께 미쳐버렸다! 어떻게나 열심히 전도하고 다녔는지, 하루는 집주인에게 쫓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함을 입은 이 감격을 무슨 방법으로 표현해야 될지 몰라, 아버지의 젊은 가슴은 성령의 불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불량배로 유명했던 아버지는 어린아이들에게까지도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시할 정도로 겸손과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이후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서 장로교 최초의 목사 일곱 분 가운데 한 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08년 복음의 불모지였던 제주도에서 사역을 감당한 것을 시작으로 제주도에서 13년 동안 11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후 복음화율이 낮았던 광주, 순천, 고흥, 벌교, 여수 등 호남 지역의 시골 교회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집에는 항상 아침에는 굶주린 거지들이 몰려왔고 낮에는 한센병자들이 가득했지만, 늘 사랑으로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는 일본의 신사참배 명령에 반대하여 심한 고문을 받다가 1942년 순교했습니다. 그는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일본 순사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죽어도 일본 귀신한테 절할 수 없다. 너희들이 지금 총을 쏘아 죽인다 해도 나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길 수 없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뜨거워져야 합니다.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여, 언제나 함께 해주시옵고,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해주시옵고, 성령충만하게 해주셔서 주의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 받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말씀충만하고 성령충만하여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어떤 절망의 자리에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해주셨는데,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상처받고 낙심하여 주님께서 계신 곳을 떠나 세상으로 갔습니다. 엠마오로 향해가던 제자들처럼 주님의 품을 떠났던 저희들을 용서해주시옵고, 이 시간 저희들에게 찾아오시고 말씀으로 위로해주시고 성령충만하게 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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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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