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카카오링크 보내기 버튼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2015.03.29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중략)…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가복음 11장 1∼10절)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살기 위해 태어납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 가운데 단 한 분,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온 인류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여 나간 희생과 섬김의 일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구원의 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성경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의 행적에 대해 약 3분의 1가량의 분량을 할애해서 설명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의 사건이 중요하고, 특히 십자가 사건은 우리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십자가 죽음의 길을 가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고 마지막 한 주간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월요일에는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습니다. 화요일에는 유대 지도자들과 논쟁을 하셨고,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요일에는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공모를 했고, 예수님께서는 종일 묵상하시며 기도로 죽음을 준비하셨습니다. 목요일에는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설교하시고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붙잡히셨고, 당시의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에게 끌려가셨다가 다시 가야바에게 끌려가셨고, 그다음 빌라도 총독에게 끌려가셨다가 헤롯 왕에게 보내지셨고 다시 빌라도 총독에게 끌려가셔서 최종 판결을 받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새벽 3시부터 6시 사이에 이루어진 불법적인 재판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6시간 동안 물과 피를 쏟으시고 고통당하신 가운데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겉옷을 펴서 길에 깔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주신 세 가지 영적 교훈을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순종의 삶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적이고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고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들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 두 제자에게 마을에 가서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1:1∼2).

 보통 왕의 행렬 때는 왕은 말을 타고, 군사들은 나팔을 불며 호위를 합니다. 또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도 당당하게 말을 타고 호위를 받으며 입성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나귀를 빌려서 타셨습니다. 그리고 나귀를 구하러 가는 제자들에게 마가복음 11장 3절에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맞은편 마을로 갔고, 거기에서 묶여 있는 나귀 새끼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본인들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나귀 새끼를 풀어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나귀 새끼의 주인들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눅 19:33)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르신 대로 말했고, 허락을 받았습니다(막 11:6).

 이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순종은 주님의 명령에 대하여 어떤 의문을 가지거나 거기에 대해서 자기의 뜻을 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가라 하시면 가고, 서라 하시면 서는 것이 순종입니다. 나귀가 그들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지만 주님께서 쓰신다고 말씀하시니 주저하지 않고 주님께 내어드린 나귀 새끼의 주인처럼 우리도 주님이 원하신다면 내가 가진 재능, 물질, 생명까지라도 아낌없이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그는 100세 때 낳은 이삭을 하나님께서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 그 말씀을 듣고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순종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는 터전이 되었음을 기억하며 언제나 “주여! 주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게 해주시옵고, 그 말씀 앞에 결단하고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5장 8절부터 9절은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선교 대국이 된 것은 130여 년 전에 오직 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이 땅에 찾아와 복음을 전한 많은 선교사님의 순종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포구 합정동에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선교사님의 묘가 있고 그 가족들의 묘가 있습니다. 이분들은 조선이 어디인지도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셔서 이 땅에 들어와 그 삶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기록을 보면 풍토병에 죽어간 무명의 선교사님들이 있으셨고, 병든 자녀를 돌보는 대신 가난에 울부짖는 백성을 향해 갔다가 복음을 전하고 돌아오니 자신의 자녀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 선교사님들도 계셨습니다. 이러한 순교적인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이와 같은 놀라운 기독교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2015년 1월에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양화진에 묻혀있는 선교사님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양화진에 제일 먼저 묻힌 분은 제중원 2대 원장으로 헌신하시던 존 헤론(John W. Heron, 1856∼1890) 선교사님입니다. 그는 미국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로 뛰어난 의술을 가진 의사였습니다. 20대에 모교 교수로 초빙 받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국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이 땅에 와서 몸이 부서져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는 병든 자를 돌보고 가난한 자를 섬기다가 본인 자신의 몸이 쇠약해지고 병이 들어서 이 땅에 온 지 5년 만인 1890년에 서른네 살의 젊은 나이로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둔 채로 순교했고 양화진에 묻혔습니다. 그는 이 땅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몸을 바쳐 헌신한 선교사였고,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순교자의 모습을 보인 주님의 귀한 종이었습니다.

 이 책에 의하면 양화진에는 총 417명이 묻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선교와 관련된 분이 145명이고 이중 선교사님이 90명, 그 자녀가 55명입니다. 대부분의 자녀가 어릴 때 목숨을 잃었다는 것과 여선교사님이 남선교사님보다 더 많이 묻혀 있는 것을 통해서 외지에서의 선교 사역이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또 책은 선교사님들의 비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선교사님의 비문은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루비 캔드릭(Rudy R. Kendrick, 1883∼1908) 선교사님의 비문은 “만일 내가 줄 수 있는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 루(G. H. Rue, 1899∼1993) 선교사님의 비문은 “나는 한국에 나의 뼈를 묻을 각오로 온 사람이었습니다” 이 책의 발간사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묘역을 둘러보다 보면 한국의 근대화와 개신교 선교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분들뿐 아니라, 이름이 낯선, 널리 알려지지 않은 분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사람들에게 기억될 만한 큰 자취를 남기지 못했지만, 조선인과 이 땅을 사랑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다른 분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억하는 자 없는 이 낯선 이국땅에 묻히기를 바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들도 이 땅의 복음화와 발전을 학수고대하였으며, 목숨이 다하기까지 정성스럽게 조선과 그 민중들을 섬긴 희생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구주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우리의 재능과 물질과 목숨까지라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순수와 겸손의 삶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순수와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구원의 메시아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순결한 나귀를 타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기 원하시는 일꾼은 죄악의 세상 가운데 살지라도 순결하고 거룩한 믿음과 삶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되려면 죄의 때를 씻어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있는 미움, 탐욕, 원망, 불평, 거짓, 잘못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정결한 모습이 되어야 주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그릇일지라도 그 안에 곰팡이가 난 음식이 담겨있으면 쓸모없는 그릇입니다. 곰팡이를 다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야 그 그릇을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묻었던 모든 죄의 때를, 죄의 곰팡이를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내고 정결케 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올 때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고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들처럼 호화로운 입성이 아닌 나귀 새끼를 타신 소박한 모습의 입성을 선택하신 것은 예수님의 겸손함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으려면 하나님 앞에서 낮아져야 합니다.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원래 근본적으로 교만하고 늘 자기중심적입니다.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합니다. 때로는 자기가 잘되기 위해서 남을 짓밟기도 하고 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평생 겸손하게 섬김의 삶을 사시다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는 겸손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겸손과 섬김의 삶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며칠 전까지도 서로 자기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싸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섬김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무릎을 꿇으시고 세숫대야를 가져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자신이 옆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갑자기 친히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발을 씻겨주시니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3:14∼15).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주여! 제가 주님 앞에 깨어지고 낮아지게 해주시옵고, 주님의 은혜로 잘될 때,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 더 겸손히 머리를 숙이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아지는 자에게, 섬기는 자에게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고 주의 사랑을 만민에게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992년에 타임지가 선정한 지난 천 년 간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열 명의 명단 중에 한 사람으로 꼽힌 중세의 성자 아씨시의 프란체스코(St. Francesco, 1182∼1226) 신부님이 계십니다. 그는 스물다섯 살 때 주님을 만나 그 인생이 변화되어 일생을 주님께 바쳐 헌신했습니다. 마흔네 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자, 특별히 한센병 환자들을 껴안고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삶은 중세 시대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가 죽은 지 10년 후, 중세 유럽에는 그의 정신을 따르는 1130개의 수도원이 세워졌고, 3만 5000명의 수도사들이 생겼습니다. 그는 겸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모욕하는 모든 사람에게 겸손하게 대하시오.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중상과 불의를 끼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시오. 이러한 모든 것들은 하늘에서 받을 보답이 클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겸손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일꾼이 되고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순수와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찬양과 감사의 삶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찬양과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 앞에 그들의 겉옷을 펼쳐놓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며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찬양했습니다(막 11:8∼10).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제사는 찬양과 감사의 제사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드릴 때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온 백성이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열렬한 환영의 배경에는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주고 다윗 왕 때의 영광과 번영을 다시 누리게 해줄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기대가 예수님에 의해 충족되지 않자 그들은 단 며칠 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주님을 배반하지 않아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늘 “주여! 찬양하며 감사하며 살게 해주시옵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오고 주변 사람들에게 모함을 받아 오해받고 상처를 받는 일이 있어도 절대로 믿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주님만 바라보며 찬양의 삶을 살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 중의 감사가 더 귀한 감사이며 고난 중의 찬양이 더욱 귀한 찬양입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첼리스트 김두민, 소프라노 이은영 부부가 있습니다. 이 부부는 독일 쾰른 대학교에서 첼로와 성악을 전공하다가 한인교회에서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이뤘습니다. 이 부부의 앞날은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평생 행복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부터 이 가정에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둘째 아이가 ‘로이스 디츠 신드롬’이라는 희귀병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결합조직이 연약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언제 심장이 멈출지 모르기 때문에 뛰지도 못하고 늘 조심해야 했습니다. 부부는 이 아이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매달려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위로해주셨고 이 아이를 통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셋째를 임신하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둘째와 같은 희귀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셋째를 임신하기 전 의사가 분명히 의학적으로 같은 병을 가진 아이가 다시 나오지는 않을 것이고, 어쩌다가 몇만 가정 중의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셋째도 희귀병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럼에도 이 부부는 불평하지 않고 주님 앞에 찬양하고 감사함으로 세 아이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더 큰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세 아이를 감사함으로 키우던 아내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결국, 치료를 위해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세 아이의 엄마는 하나님께 살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그럼 넌 날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니?”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절망의 상황에 있는 자신은 주님께 드릴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는 그녀에게 많은 사람이 찬양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초대하는 곳곳마다 가서 남편은 첼로로, 본인은 소프라노로 섬기며 찬양 사역을 했습니다. 찬양 사역을 하는 가운데 둘째가 갑자기 위독해져서 병원에 입원 했을 때도 원망과 불평이 아닌 감사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병원에서 두 달 동안 이 부부는 첼로 연주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병원에 있던 많은 사람이 이 부부의 찬양을 통해 위로를 받고, 어두웠던 중환자실이 그들의 찬양으로 밝아졌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늘 감사의 찬양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던 부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일 저희가 아픈 아이들을 낳지 않았더라면, 아픔 있는 자들의 마음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거예요. 항암 중에도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늘어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연주와 찬양이라는 귀한 달란트를 주셨잖아요. 그걸 사용해서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넓히는 일을 감당하고 싶어요. 병이 낫든지 낫지 않든지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쓰이기 위해, 깎이고 또 깎여서 온전히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부부의 고백처럼 우리 모두가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건져주신 예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주시옵고, 겸손히 깨어지고 낮아져 섬기는 삶을 살게 해주시옵고, 어떠한 고난 중에서도 감사와 찬양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