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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2015.03.15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마가복음 10장 46∼52절)

 사람은 늘 자기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독선, 교만, 편견에 빠지거나 열등의식, 우울증,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독선적이고 교만한 사람이 되고, 편견을 가지고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 하니 많은 문제와 어려움, 갈등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하루 한 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여,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은혜로 살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받은 자녀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자기중심적으로 살던 모습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긍휼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면 놀라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 바디매오가 주님께서 불쌍히 보셨을 때 눈을 떴습니다. 오늘 이 시간 맹인 바디매오가 눈을 뜬 사건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육적 맹인의 삶

 바디매오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절망 가운데 태어나서 절망 가운데 살다가 절망 가운데 죽어갈 운명이었습니다. 우리도 바디매오와 다를 바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절망적인 존재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축복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은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라고 말씀합니다. 바디매오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인 예수님을 여리고에서 만났습니다. 바디매오가 살던 당시에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디매오는 그저 남에게 구걸하여 하루하루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몸에 장애를 안고 살아갑니다. 육신의 장애는 당사자와 가족에게 많은 눈물과 아픔, 시련과 역경을 가져다줍니다. 특히 장애인에 대한 차별대우와 비장애인만을 위한 시설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더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남다릅니다. 건물을 지을 때 입구 쪽에는 장애인 주차 구역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장애인을 위한 통로와 엘리베이터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건축 허가가 납니다. 작은 일에도 장애인을 우선합니다.

 이에 반해 아직 우리나라는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 믿는 사람들이, 교회가 앞장서서 그러한 노력과 사랑의 실천을 해야 합니다. 그 목적으로 우리 교회는 장애인대교구를 만들어 장애인분들이 신앙생활 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2015년 2월 13일에 꿈친장애인복지센터를 은평구에 건립하여 장애로 인해 세상에 나가는 데 두려움을 안아야 했던 이들이 꿈을 안고 세상에 나갈 수 있도록 돕는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이곳은 장애를 가진 분들이 제빵 기술과 바리스타 기술을 배워 취직하고 비장애인과 같은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곳입니다. 앞으로 이곳을 비롯하여 서울시 전체에 장애인을 위한 복지센터를 만들어 어렵고 힘든 삶 가운데 있는 장애인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랑의 실천을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도 몸에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장애에 대해서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겸손케 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서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중요하게 쓰임 받는 종이었습니다. 그는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했고, 가는 곳곳에서 많은 병자를 고쳤고, 그가 가는 곳마다 귀신들이 떠나가고, 큰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 27권 중의 13권이나 기록을 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사도 바울은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구름 떼 같이 몰렸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를 사람 이상으로 생각하여 신격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가시를 주셨고, 그 가시를 통하여 자신을 끊임없이 깨뜨리시고 낮추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장애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어떤 큰일을 하고 어떤 큰 업적을 이뤘을지라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내는 순간부터 우리는 교만의 덫과 올무에 갇혀서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여, 우리가 한평생 주님을 모시고 살면서 늘 깨어지고 낮아지게 해주시고,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신유의 종으로 쓰임 받고 천국 가신 오랄 로버츠(Oral Roberts, 1918∼2009)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어릴 때 심하게 말을 더듬어서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자서전에서 그때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렸을 때 학교 선생님께 내 이름조차 말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말을 더듬었습니다. 한때 친척들이 ‘오랄은 결코 큰 인물이 되지 못할 거야.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걸’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몇몇 친척들과 소꿉친구들은 나의 말더듬을 흉내 내며 조롱하곤 했습니다. 나는 늘 열등감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거의 파멸해가며 살았습니다” 그는 17살 때 폐결핵에 걸렸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폐결핵은 치료하기 어려우니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그는 피를 토하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온 가족이 모여 함께 기도할 때 마음의 문을 열어 예수님을 영접하고, 부흥회에 참석해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후 주의 종이 되어 요한삼서 1장 2절의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을 갖고, 천막집회와 라디오, TV 방송을 통해 수많은 사람의 병을 고치고, 오랄로버츠대학을 설립하여 많은 젊은 크리스천 인재들을 양성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비웃음 받던 말더듬이 소년이, 17살 때 폐결핵으로 죽어가던 소년이 하나님의 은혜로 육체의 장애를 극복하고 91세까지 장수하며 복음을 전한 세계적인 신유의 종이 됐습니다. 생전에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기도의 능력이 우리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를 통한 치료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병을 고치시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위대한 방법입니다. 나는 기적을 기대합니다! 당신은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바로 지금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절대 긍정과 절대 희망의 종교인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의 죄 문제, 질병의 문제, 가난과 저주의 문제를 다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나아오는 모든 자를 고쳐주셨습니다(마 4:23∼24). 따라서 우리는 어떤 육신의 질병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치료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2. 심적 맹인

 마음의 장애는 육신의 장애만큼 인간의 삶과 인격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때로는 육신의 장애보다 마음의 장애가 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장애가 마음의 장애로 이어지면 아무것도 아닌데 쉽게 상처받고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분노와 미움과 증오심으로 가득 차서 남을 탓하고, 세상을 저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만나셨습니다. 그 병자는 38년 동안 누워있으면서 철저히 부정적인 사람이 되었고, 남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도 낫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요한복음 5장 7절은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병자는 자신이 이곳에 38년 동안 누워있었는데 누구 하나 자신을 물에 넣어준 사람이 없었고, 옆에 있는 사람조차도 자기가 살겠다고 먼저 들어가 건강하게 되므로 오늘까지 자신은 절망 가운데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38년 동안 그의 마음에 쌓인 것은 마음의 장애입니다.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불평입니다. 그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버림받았다는 좌절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혔습니다. 육신의 장애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마음의 장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여, 우리 마음의 장애를 치유해주시고, 우리가 긍정적인 신앙인이 되게 해주시며, 우리 마음에 기쁨과 평안과 사랑과 용서로 가득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더는 과거의 상처, 절망, 고통, 좌절에 매여 있으면 안 됩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다 털어버리고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해나가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로마서 8장 28절의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을 붙잡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전진해나가야 합니다.

 바디매오는 주님의 긍휼을 입을 때까지 더욱 간절히 기도하고 믿음으로 전진해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긍휼을 구하는 바디매오를 꾸짖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더 크게 소리치며 예수님의 긍휼을 바랐습니다(막 10:47∼48). 바디매오 처럼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어떠한 말을 하든지,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이 다가올지라도 더 크게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응답해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환경의 어려움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수아 1장 9절은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핍박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응답받을 때까지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장애에서 사명을 발견한 고정욱(1960∼) 작가님이 계십니다. 유명한 아동 문학가이며 인기 강연자입니다. 그는 한 살 때 소아마비로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장애인으로 자라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어릴 적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런 애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공부도 못해, 직업도 구할 수 없어. 그냥 해외 입양 보내는 게 나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 마음이 무너지고 또 무너졌습니다. 대학 입학 때도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의대를 지원했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도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 성균관대 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주변 사람들로 부터 “세상 경험이 부족한 장애인이 어떻게 작가가 되려고 그래?”라는 말을 들으며 무시당했습니다. 결혼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교제하던 자매들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가정에서 반대하자 다 떠났습니다. 그는 절망 가운데 “왜 내가 장애인이 됐습니까?”라며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정욱아! 이제 비로소 대답해주마. 너처럼 말 잘하고 글도 잘 쓰는 똑똑한 장애인이 있어야 장애인의 아픔과 고통을 나 대신에 세상에 알릴 수 있지 않느냐. 그래서 내가 너를 장애인으로 만들었단다” 이 주님의 음성 앞에 그는 울면서 “하나님, 알았습니다. 죽는 날까지 이 길로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자 더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장애를 소명으로 받아들이자 마음의 장애가 극복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단편소설은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그는 더 공부하여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애인을 주제로 한 200권이 넘는 책을 썼습니다. 그의 책은 350만 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중국, 일본, 대만, 태국, 미국 등지에서도 출간되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게 해주셨고 슬하에 1남 2녀의 세 자녀를 주셨습니다. 그는 현재 국제장애인연맹 이사, 새날도서관 관장, 삼애복지포럼 총무로 활동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전국을 다니며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든 사람은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학적인 의미의 장애가 아니더라도, 남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장애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학벌이 좋고 조건이 좋으면 불만이 없을 것 같죠? 아닙니다. 명문대 학생들은 의대나 법대를 못 갔다고 불평하고, 법대 학생들은 사법고시에 붙지 못했다고 불평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은 판사나 검사가 되지 못했다고 불평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속해 있냐’가 아니라 ‘내가 처한 상황에서 어떤 꽃을 피울 것이냐’입니다. 여러분에겐 이 땅에 온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겪은 아픔과 고통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거기에서부터 딛고 올라가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히 열립니다!”


 3. 영적 맹인의 삶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의 눈이 먼 사람이 진짜 맹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죄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영적인 맹인입니다. 영적 맹인에서 벗어나려면 죄악 된 삶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의 눈이 떠져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축복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그의 유일한 소유인 겉옷을 내버리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막 10:50). 그 겉옷은 그가 가진 전 재산으로 비가 올 땐 우비가 되었고, 잠을 잘 땐 담요가 되었고, 구걸할 때는 방석이 되었으며, 추운 겨울에는 추위를 막아주는 외투가 되었던 옷입니다. 바디매오는 삶 전부인 그 겉옷을 던져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새 삶을 허락해주실 것을 믿고 맹인으로 구걸하던 옛 삶을 다 던져버린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바디매오처럼 열등의식의 겉옷, 실패 의식의 겉옷, 좌절과 절망과 상처의 겉옷들을 다 내던져 버리고 새사람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달려나가야 합니다.

 바디매오가 겉옷을 내버리고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고 바디매오는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답했습니다(막 10:51).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가 확고한 믿음으로 예수님께 매달리는 것을 보시고 그의 눈을 고쳐주시고 그를 구원해주셨습니다(막 10:52).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그 믿음이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바디매오는 눈을 뜨고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본다’라는 말의 헬라어 원어의 뜻에는 ‘다시 본다’라는 뜻과 ‘위를 본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는 바디매오가 육신의 눈을 뜬 것뿐만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는 영의 눈도 함께 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모든 절망의 모습에서 자유함을 얻고 새사람의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장애, 마음의 장애, 영적인 장애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어 믿음으로 전진해나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보시기만 하면 지금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의 고백으로 소리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의 눈을 떠야 합니다. 영생을 소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눈을 떠서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모든 것을 바꾸어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았던 모습에서 벗어나서 절망과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오니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맹인 바디매오가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소리쳐 그 믿음대로 눈을 뜬 것처럼 오늘 우리 모두가 육신의 맹인에서, 마음의 맹인에서, 영의 맹인에서 벗어나서 눈을 뜨게 해주시옵소서. 이제 모든 장애를 치료받고 회복되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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