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야훼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야훼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출애굽기 3장 1~4절)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만남이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만남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게 되고, 인생의 많은 부분이 만남을 통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좋은 부모에게 사랑받으면서 좋은 친구를 사귀며 자란 사람들은 그 삶이 행복하고 이웃에게 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삽니다. 그러나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나쁜 친구들과 사귀며 자란 사람들은 문제 많은 인생을 삽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만남은 구세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문제 많은 인생과 상처투성이의 인생을 살았을지라도 그 삶이 변화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주시고, 치료해주시고, 회복시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도록 인도해주십니다. 모세는 80세에 인생의 모든 희망이 끊어졌을 때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이 체험이 모세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가시떨기나무에 임한 불꽃 가운데 하나님을 만난 모세의 삶을 살펴보고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교훈을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1. 떨기나무 인생
모세는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할 때 태어났습니다. 왕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강에 던져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강에 버려진 모세는 죽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왕의 딸의 눈에 띄게 되었고, 왕자의 신분으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행전 7장 21절부터 22절은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고 말씀합니다. 모세는 왕자의 신분으로 40년 동안 자랐습니다. 당시에 최대 강대국의 왕자로서 지내며 부족함 없이 거침없는 삶을 살다보니 어느새 교만해졌습니다. 결국 모세는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겠다는 생각을 품었고, 어느 날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죽였습니다(출 2:11~12). 모세의 살인은 바로 왕의 진노를 샀고, 모세는 왕을 피해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한 순간에 모세는 왕자에서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최고의 권력을 가진 왕자의 신분에서 이제는 광야로 도망가서 40년 동안이나 양을 치는 목자가 된 것입니다. 당시 목자의 삶은 가장 천하고 낮은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교만해지면 그 교만을 꺾으십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외롭게 40년 동안 지내며 어느덧 80세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황혼 길에 접어들었고 백발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80세의 노인이 되어서 양을 치고 있을 때 호렙산 근처의 떨기나무에 불이 붙고 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불붙은 떨기나무가 타지 않았습니다. 불붙은 나무는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야 하는데 그 떨기나무는 살아있었습니다(출 3:1~2). 지금도 아프리카에 가면 뜨거운 광야에 가시떨기나무가 있습니다. 이 가시떨기가 바로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간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많은 가시를 갖고 있습니다. 미움과 분노의 가시를, 원망과 불평의 가시를 내며 살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남에게 상처를 주는 가시 돋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나 중심적인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나만 최고이고, 나만 옳다는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6절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면 가시 돋친 인생으로 살다가 사망의 길로 가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가시 돋친 인생이 변화되어서 영생의 길로 갑니다. 모세의 삶이 이 가시떨기와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는 한없이 교만했고, 폭력을 행사하여 사람을 죽인 살인자였습니다. 결국 그는 광야에서 도망자의 신세로 40년을 가시덤불처럼 살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처럼 가시 돋친 삶을 살았습니다. 430년 동안 그들은 종살이를 하면서 원망과 불평, 섭섭함과 억울함을 가진 가시 돋친 인생을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외롭게 자란 가시떨기나무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만날 때만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시떨기나무와 같은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의 세력은 우리의 모든 것을 도적질했습니다. 우리의 건강과 행복과 기쁨을 도적질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시덤불의 인생을 살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가시를 제거해주시고,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함, 자유함과 위로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홀로 살면 가시 돋친 인생을 살게 되지만, 예수님과 함께 살면 주님의 은혜로 열매 맺는 삶을 삽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하려고 하다가 우리는 실패하고 좌절합니다. 가시떨기 인생이 됩니다. 무엇 하나 남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하고, 가시로 상처를 줍니다. 부부 간에 서로를 찌르고, 가족 간에 서로를 찌르고, 이웃 간에 서로를 찔러 피투성이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다시 세워주시고,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이루십니다.
LA선한청지기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송병주 목사님이『오후 5시에 온 사람』이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그는 청소년기에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서 집안의 모든 것이 차압당하고 달동네 판자촌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빚쟁이들 때문에 부모님 없이 동생과 단둘이 살아야 했습니다. 전기, 수도, 가스, 전화가 다 끊긴 집에서 어린 남매는 빚 독촉하는 깡패들에게 협박을 받으며 지내야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후로도 여러 번 사업에 실패했고, 결국 빚만 남기고 55세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렇게 어렵고 힘들 때 그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장학생으로 뽑혀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만 같았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기 위해서 밤낮으로 억척같이 일하셨던 어머니에게 효도 할 기회도 없이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그에게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막내아들이 자폐아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이때 그는 완전히 인생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것 같았고, 잘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의 순간에 예수님께 엎드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의 삶속에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마지막이었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기적의 시작입니다. 그는 자폐아인 아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물로 여기고, 지금은 LA선한청지기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 행복하게 목회를 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인생 최고의 순간에 처절한 좌절을 경험하고 나면, 우리는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와 다른 시간표를 갖고 계신 하나님의 계획이 마침표를 찍으신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떨기나무 같은 우리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모두가 끝장이라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말할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실패도, 그 어떤 좌절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내 육신과 영혼을 할퀴고 지나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마침표를 찍으시기 전까지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지 마십시오!”
모세는 80세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혹시 “나는 다 끝났다. 이제 나는 이 세상을 살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지금이 주님께 나와서 주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일으켜 세워 주시고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얻으며,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소유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우리에게 임한 성령의 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습니다. 이 불은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출애굽기 3장 2절부터 3절은 “야훼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라고 말씀합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인생일지라도 성령의 불이 임하기만 하면 그 운명이 바뀝니다. 우리가 문제와 어려움과 많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삶을 살았을지라도 성령님께서 함께해주시면 그 삶이 바뀝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붙잡고 “주여,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주셔서 성령의 불이 우리의 가시를 덮어버리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충만을 받을 때 우리 삶이 달라지고 새로워집니다. 미움과 원망의 인생이 사랑과 기쁨의 인생이 됩니다. 모세는 불꽃 가운데 오신 하나님을 만남으로 삶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이 불꽃은 절망 가운데 비춰진 희망의 불꽃이고 생명의 불꽃입니다. 가시떨기 같은 우리 인생도 성령의 불을 받기만 하면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초기 한국 교회 부흥운동의 주역인 김익두(1874~1950) 목사님은 젊은 시절 장안의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그는 열 살 때 사서삼경을 외울 정도로 수재였지만 과거에 낙방하고, 친구 빚보증을 잘못 서서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과 모든 재산을 다 날렸습니다. 그는 술주정뱅이가 되었고, 술에 취해 주먹을 휘두르는 깡패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악명이 높았던지 사람들이 ‘안악골의 호랑이’라고 불렀고, 그 호랑이를 만나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소원이었습니다. 시장 상인들은 괴롭힘을 자주 당해서 “어이고, 저 익두 누가 안 데려가나!”라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한 그를 하나님께서 만지셨습니다. 어느 날 그가 술 취해서 장터를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어떤 선교사님이 그에게 전도지를 전해주었습니다. 그 전도지에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는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이 그의 마음에 박히면서 그는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고, 성령의 불을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김인서 교수가 김익두 목사님에 대해 쓴 책 『김익두 목사소전』에 이런 소개의 글이 있습니다. “산림 중에 들어가서… 애통하는 중에 밤이 얼마나 갔던지, 울며 사십 리 길을 걸으니 새벽에 집에 돌아갔다. 방바닥에 쓰러져 눕고 있은 지 얼마 만에 비몽사몽간에 큰 불덩이가 떨어져 가슴에 콱 안기우는지라. ‘아이구, 벼락이야!’ 소리 질렀다. 벼락이 아니라 ‘불세례’였다! 이때부터 선생은 죄를 심히 무서워하고, 죄를 심히 미워하고, 예수의 피로 사죄함을 믿었나니, 이게 선생이 중생(重生)하던 날이다!”
이후 그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 신약성경을 1년에 백 번이나 읽고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일제 강점기 때 아주 위대한 신유의 종으로 가는 곳마다 많은 병자를 고쳤습니다. 벙어리가 말을 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동아일보에 기사가 실릴 정도로 큰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이후 장로교 총회장이 되어 만주와 시베리아에 이르기까지 총 776회의 부흥집회를 인도하며 2만 8천 번의 설교를 했고, 150여 개의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우리는 늘 “주여, 우리가 성령의 불을 받게 해주시옵고,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은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여, 성령충만을 받고 복음의 증인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행 1:8).
3.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모세는 가시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 4절은 “야훼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모세야! 모세야!”라는 음성을 들은 것처럼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사람들의 음성을 듣고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얘기,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얘기, 온갖 세상적인 더러운 얘기, 잘못된 얘기를 듣고 마음에 상처를 받아 죄짓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만을 듣고 살아야 합니다. 찬송가 540장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한단 말일세 믿는 맘으로 주께 가오니 나를 영접하소서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배 피로써 나를 정케하소서” 이 찬송가 가사처럼 우리는 “주여, 날마다 주의 음성을 듣고 살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의 음성은 우리에게 절망과 상처를 주고, 우리의 삶에 가시를 만들어내는 음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를 치료하고 회복시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아시아로 가려던 발걸음을 유럽으로 옮겨서 유럽의 복음화를 이루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9절은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이 음성이 주님의 음성인 것을 알고 유럽으로 건너가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음성을 들으면 실패와 낙심과 절망이 우리에게 오지만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성공과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인 바누아투에서 선교를 하고 계신 원천희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바누아투 섬에는 지금도 원시적인 생활을 하고, 벌거벗은 채로 몸의 몇 부분만 가리고 사는 부족들이 있습니다. 그는 본래 이곳에서 선교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뉴질랜드에 어학연수를 하러 갔다가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2007년에 단기 선교팀을 이끌고 인도에 갔습니다. 인도에서 그는 “너의 안전지대를 떠나라. 너의 삶을 내게로 헌신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음성을 듣고 그는 남태평양의 바누아투라는 섬으로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해 보니, 놀라운 사실이 있었습니다. 바누아투의 노구구라는 마을에는 1894년 호주의 어떤 선교사님이 오셔서 15년간 사역을 하시다가 한국에 한센병 환자가 많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노구구 마을 사람들이 한국을 위해 쓰라고 활과 칡을 팔아 200파운드를 선교사님에게 헌금을 했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부산에 와서 상애원을 세워 30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돌보신 맥켄지 선교사님입니다. 맥켄지 선교사님의 두 딸도 일신기독병원을 세워서 의료선교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족민들은 바누아투의 섬으로 온 원 선교사님을 보며 “맥켄지 선교사님이 한국에 갔고, 원선교사님이 한국에서 노구구로 왔네.”라고 감격했습니다.
그는 생각지 못한 성령님의 섭리에 감사하며 다른 정글 부족들에게 들어갔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산을 오르내리는 것은 벅찬 일이었지만, 순간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자, 지혜를 주셨습니다. 식수가 없는 이들에게 빗물을 받아 저장할 수 있는 물탱크를 곳곳에 만들고, 산기슭에 유치원, 학교, 보건소, 교회를 세우며, 기도와 초짜 침술로 못 걷는 여인을 걷게 하고, 혀가 입 밖으로 나온 병에 걸린 추장 아내의 병을 고쳤는데, 이 모두는 성령님이 가르쳐주신 사역이었습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그를 멀리하던 추장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적대적이던 주술사까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굿모닝 추장님!』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성령님은 그분의 능력을 믿고 순종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저를 인도하시며, 기대하지 못한 결과를 이끌어 내셨습니다. 성령님이 제게 원하시는 것은 제 능력, 재능, 경험, 기술이 아니라, 성령을 100% 신뢰하는 순종이었습니다. 성령 앞에서 잠잠하며 겸손하면 그가 행하시는 위대한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7년간 좌충우돌하면서도 부족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성령님의 인도와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든 여정 가운데 어려운 순간마다 제 손을 놓지 않으셨던 하나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떨기나무와 같은 인생일지라도 성령의 불이 임해서 주님께 붙잡히기만 하면 위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주님을 만나 우리에게 성령의 불이 임하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귀하게 쓰임을 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을 받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가시떨기나무와 같았던 우리 인생에 성령의 불을 보내주시고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셔서 우리가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주님의 자녀들로 우리 모두가 쓰임 받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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