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카카오링크 보내기 버튼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15.02.15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세기 50장 19∼21절)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물질의 문제, 질병의 문제,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일은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절망과 상처, 미움과 증오심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만듭니다. 사람은 연약하기 때문에 상처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의 지배를 받습니다.   

 우리는 믿었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평소에 의지했던 사람, 존경했던 사람, 그리고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심지어 피를 나눈 가족에게도 상처를 받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우리를 더욱더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아픔과 상처가 모두 지나가는 것이고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상처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합니다. 상처는 하나님께서 신앙인을 온전케 만드시는 훈련입니다. 우리는 상처가 우리의 삶을 절망으로 이끌기 위해 다가온 것이 아니라, 상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듬으시고 낮추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상처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과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 있더라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우리를 둘러싼 대적들

 우리의 삶에는 우리를 둘러싼 대적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살 수는 없지만, 이유도 없이 시기와 질투, 근거 없는 비난과 악한 모함의 대상이 된다면, 이는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이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욱 큰 상처를 받습니다.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에게는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던 아픔이 있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그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특히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만 아름다운 채색 옷을 지어 입힌 것에 대해서 질투했습니다. 형들은 채색 옷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 그리고 미움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게다가 요셉은 아버지에게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은 형들에게 ‘꿈에서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이 장차 자신들보다 높은 위치에 오르게 될 것을 의미하는 꿈 이야기를 하자 형들의 마음속에는 미움이 변하여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자신들에게 찾아 온 요셉의 채색 옷을 벗기고 웅덩이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던 상인들에게 은 20개를 받고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렸지만 형들은 분노로 가득하여 듣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인 다윗도 장인인 사울 왕과 아들인 압살롬에 의해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다윗의 장인인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의 장군인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음 모든 백성들이 그를 칭찬하자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 미움이 가득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고자 군사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오랜 시간동안 떠돌아다니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또한 다윗은 인생의 말년에 자신이 낳은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다시금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때의 상황을 시편 3편 1절에서 “야훼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에게는 골리앗을 무너뜨린 이후로 말년에 이르기까지 많은 대적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느 대학교 총장님이 어느 날 고발을 당해서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20년 이상 함께 일해 온 믿었던 사람이 고발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 큰 낙심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미움과 분노가 우리의 마음을 뒤덮으면 우리는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시편 3편 5절부터 6절은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야훼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울 때 함께해 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난 이후 주님의 사도로 남은 인생을 바쳤는데 많은 대적들이 그의 일생을 따라다녔습니다. 사도 바울의 동족인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한때는 40명의 결사대를 만들어서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당한 핍박과 고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을 맞았고, 돌에 맞아 정신을 잃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환난과 핍박에도 사도 바울은 좌절하거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서 로마서 8장 37절부터 39절에서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고백했습니다.

 유명한 강해설교자인 찰스 스윈돌(Charles R. Swindoll, 1934∼)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셉은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쓴 뿌리를 갖고 살지 않았다. 그는 그의 삶에 닥친 모든 역경과 불행에도 불구하고, 쓴 뿌리에서 자유로웠던 것이다. 요셉처럼 하나님을 모든 상황 속에서 신뢰하자. 오랫동안 우리를 포로로 사로잡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방해해온 모든 존재들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우리의 남은 생을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심어주면서 은혜라는 전염성 강한 매력을 퍼뜨리면서 그리고 소망 가득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면서 보내자”

 우리는 마음의 모든 상처와 고통, 아픔과 괴로움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고,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돌보시고 인도해 주시리라는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2.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우리 삶에 우리를 둘러싼 많은 대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악을 선으로 바꿔 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형들이 요셉에게 행한 악한 일들을 사용하셔서 요셉으로 하여금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고,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을 통해 많은 생명을 살리는 선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악행을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셨다고 고백했습니다(창 50:2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어떠한 악한 계획도 선으로 바꿔 주십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다가오게 만들어 주십니다. 사도행전 7장 9절부터 10절은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해 주셨고 요셉을 높여 주셨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팔았을 때, 그의 나이는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그런데 13년 후에 그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총리가 된 후 7년간 큰 풍년이 왔고, 그 다음 7년간은 큰 흉년이 왔습니다. 그 흉년은 이전에 그와 같은 것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극심한 흉년이어서 애굽뿐 아니라 주변 나라들이 다 흉년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흉년이 2년째 되던 해에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사러 애굽에 왔습니다. 노예로 팔려 간지 22년 만에 요셉의 꿈대로 형들이 그 앞에서 절을 합니다. 아마도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을 노예로 판 못된 형들이 왔을 때 22년 동안 마음속에 겪었던 고통들을 하나하나 되갚아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요셉이 분노해서 복수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분노하거나 복수하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악을 멸하시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고난이 심할수록 우리를 더 높여주시고 더 위대하게 세워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게 해 주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늘 고백하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를 눈으로 그려 보아야 합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악을 저질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23절부터 24절에서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고 설교했습니다. 십자가에서 구원의 놀라운 역사가 완성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은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는 순간 죄와 사망의 권세가 거꾸러졌습니다. 질병과 고통을 주는 모든 흑암의 권세가 물러가게 됐습니다. 가난과 저주를 불러왔던 모든 어둠의 세력이 떠나가게 됐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러한 역사가 우리의 삶에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고난이 기적으로, 축복으로 바뀝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고난은 끝이 없고 계속적으로 일어난다고 부정적으로 말해도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주변에 악한 사람들이 우리를 아무리 힘들게 하더라도 결과는 이미 주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시편 1편 6절은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의의 길을 걷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평생 동안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 37편 39절부터 40절에서 “의인들의 구원은 야훼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야훼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12장 21절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악하다고 세상에 대해서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고, 우리를 괴롭히는 악한 이웃들에 대해서 분노하지 말고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로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믿어야 합니다.


 3. 용서와 사랑의 삶

 악을 선으로 바꿔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삶,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은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요셉이 자신들을 돌봐줬지만 아버지가 죽고 나면 복수하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죽자마자 형들은 요셉에게 사정을 합니다. 형들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자신들을 용서하라고 했으니 용서해달라고 요셉에게 간청합니다. 이에 대해서 요셉은 창세기 50장 21절에서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판 형들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형들의 가족을 사랑으로 돌봐 주었습니다. 용서는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하나님의 축복을 동반하게 됩니다. 용서가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 전문적으로 연구한 위스콘신대학교 교수이며 심리학자인 로버트 D. 엔라이트(Robert D. Enright) 박사가 용서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선택이고, 가해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며, 가해의 피해에서 해방되어 내 자신의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자유로움의 선언이다”

 로마서 12장 17절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진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미움과 분노를 버려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31절부터 32절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장 35절에서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은 마음속에 있는 미움, 분노, 섭섭함, 상처를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미움은 미움을 낳고, 복수는 복수를 낳고, 증오는 증오를 낳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했지만 형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형들의 자녀까지도 사랑으로 돌봐 줬습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우리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사람들을 다 용서하고 더 나아가서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절부터 2절은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희생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미움과 섭섭함과 원한과 상처를 다 내려놓고,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드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꾼으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미움과 분노를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자신을 못 박은 자들을 용서하신 예수님처럼 우리에게 돌을 던지고 상처 입힌 사람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우리 자신이 치료받고 회복되어서 변화받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찬송가 337장에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우리가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우리를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 한분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셔야 가능합니다. 

 원수의 관계에서 친구가 된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낸 9·11테러 사건이 있습니다. 이 테러 사건으로 인해서 3000명 이상의 많은 희생자가 났습니다.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비행기에 충돌해 무너지면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때 뉴욕에 사는 로드리게스(Phyllis Rodriguez, 72세) 씨는 외아들을 잃었습니다. 당시 서른 한 살이던 그녀의 아들은 이 빌딩에 있는 한 증권회사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사건 당일 아침에도 아들은 별일 없다고 그녀에게 안부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전화통화를 끝으로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고 아들의 시신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사진을 볼 때마다 아들이 그립고 마음이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사진 옆에 어떤 중년 여성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9·11 테러 가담자의 어머니인 아이사 엘와피(Aicha el-Wafi,  68세)라는 여인의 사진이었습니다. 로드리게스 씨는 아들을 잃고 처음에 실어증에 걸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을 통해 테러 가담자로 종신형을 받은 무사이라는 청년의 어머니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엘와피 씨는 모로코 출신의 여성으로 14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여 15살에 첫 아이를 낳고, 16살에는 둘째 아이가 죽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가난한 이민자 생활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청소부 일을 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네 명의 아이들과 그녀에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더러운 아랍인이라는 조롱을 받으며 자란 그녀의 아들 무사이는 결국 이슬람 과격주의에 빠져서 테러에 가담하고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된 두 어머니는 이후로 전화와 이메일 통해서 소식을 교환하면서 친구가 됐습니다. 친구가 된 이후 로드리게스 씨는 무사이에게 사형이 선고 되었을 때 미국 정부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로드리게스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둘 다 아들을 잃었는데, 나는 동정이라도 받지만, 엘와피 씨는 동정조차 못 받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아들을 죽인 테러범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습니다. 지금도 테러 행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행위를 하게 됐는지 과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용서가 가능해집니다.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신을 위한 행동입니다. 가슴을 짓누르던 분노와 증오를 걷어가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미움과 증오와 복수와 원한의 칼을 뽑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자유함을 받고 주님의 사랑으로 변화되어 남을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예수님께로부터 이미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모든 마음의 상처, 미움, 증오, 복수, 원한의 마음을 내려놓고 사랑과 용서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랑과 용서로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우리가 미워하며 살았던 모습과 우리 마음속에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왔던 연약한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후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