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 베드로전서 2장 9∼10절)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박해로 인해 사방으로 흩어져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바로 알아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가질 것을 권면했습니다(벧전 2:4∼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나라를 상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1. 택하신 족속
우리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입니다(벧전 2:9).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서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이사야 41장 8절에서 9절은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고 말씀합니다.
구약성경 에스더에 보면 바사(페르시아)왕 아하수에로가 새 왕비를 선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바사는 인도에서 에티오피아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토를 127도로 나누어 다스리는 막강한 나라였습니다. 이런 대제국인 바사에서 왕비를 간택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전국에서 수많은 미인들이 왕이 거하는 수산 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많은 미인들 중에서 왕비로 선택된 사람은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포로로 잡혀왔던 유다의 에스더였습니다. 그녀는 부모 없이 고아로 사촌오빠 모르드개에 의해서 양육된 불쌍한 소녀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녀를 바사의 가장 높은 자리인 왕후로 선택하여, 유다 민족을 말살하려는 하만의 음모에서 나라를 구원하는 위대한 일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같이 보잘 것 없는 자를 창세전에 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를 삼아주셨습니다(엡 1:4). 우리가 택함 받은 것은 무슨 자격이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뜻과 예정에 따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구원해주시고 죄와 사망 가운데서 이끌어 내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5절은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과 그 뜻대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우리가 예수님을 선택해서 믿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예수님을 믿도록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요 15:1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택함 받아 천국시민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절대 긍정의 믿음과 절대 감사로 무장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 왕 같은 제사장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벧전 2:9). 제사장은 하나님께 나아가 백성들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율법을 보존하고 해석하고 집행하는 귀한 직분을 감당하는 자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들만이 백성들을 대신하여 성전에 들어가 제사를 드릴 수 있었고 백성들은 성전에 들어가면 죽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 드리워져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주시는 장소였습니다. 성소에는 일반 제사장들도 출입할 수 있었으나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로 대제사장만 백성을 대표하여 1년에 한 번씩 대 속죄일에만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시던 순간,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지면서 하나님과 우리와 막힌 죄의 담이 허물어졌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제는 제사장이란 중보자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해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배드리기 위해 부름 받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예수님의 보혈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감사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히 13:15).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거룩한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한 산 제물이 되기 위해 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이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중보자 역할을 한 것처럼, 우리는 이웃과 나라와 교회를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를 회개하며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왕, 제사장, 선지자에게만 기름을 부었습니다. 우리는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인 동시에 왕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이제 의의 왕이요, 거룩한 왕이요, 치료의 왕이요, 축복의 왕이요, 영생을 얻은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처럼 권세 있게 행동하고 말해야 합니다.
“너희 마귀는 예수이름으로 물러가라, 너희 죄악은 물러가라, 세속은 떠나가라, 너희 슬픔은 물러가라, 저주는 물러가라, 질병은 사라질 지어다, 사망은 물러가라”고 단호하게 명령하고 내어 쫓아야 합니다.
또한 왕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의 모든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며,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3. 거룩한 나라
우리는 거룩한 나라입니다(벧전 2:9). 거룩한 나라는 악한 세상에 뒤섞여 사는 게 아니라 세상에서 구별되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좇아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별된 나라이며,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특별하게 구별해 놓은 거룩한 백성입니다.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죄와 허물로 얼룩져 있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주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인정받은 우리는 거룩한 백성답게 말과 뜻과 행동이 구별되게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이란 의미는 세상과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거주하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세상에 완전히 흡수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접촉하되 세상 방식은 철저히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대의 문화로부터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함은 구별됨이며 동시에 오직 주님께 집중하려는 헌신의 모습입니다. 주님께 집중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을 수 없습니다. 거룩함을 닮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의 명령인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거룩함으로 정복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죄와 싸우며, 성령과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벧전 1:15∼16).
이사야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보고 자신의 죄를 깨달았습니다(사 6:3). 이사야 6장 5절은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야훼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옷 입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미국의 차세대주자인 튤리안 차비진(Tullian Tchividjian) 목사님은 스물한 살 무렵,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면서 진정한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더 크리스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믿었던 세상은 내게 외로움과 상실감만 안겨 주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예배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뭔가를 만났다. 세상에 널리 있는 껍데기가 아닌 실질적인 알맹이를 경험했다. 그날 찬양과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초월적인 임재가 지붕을 뚫고 들어왔다. 그 바람에 나는 성전에 들어간 이사야처럼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놀랐다. 바로 하나님이셨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곧 그분의 ‘무거움’과 강력한 임재를 의미한다. 바로 그날 아침에 나는 위엄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세상과 완전히 다른 것, 오랫동안 갈망했던 그것을 그날 그 교회에서 마침내 발견한 것이다”
그는 세상의 초라함 속에서 하나님만이 자신의 깊은 갈증을 해갈해 줄 수 있는 분임을 깨닫고 망설임 없이 주님께 자신의 인생을 드렸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답게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거룩한 나라로 살아가야 합니다.
4. 소유된 백성
우리는 소유된 백성입니다(벧전 2:9).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주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엡 1:7).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마귀의 소유가 되어 죄 짓고 불의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으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피의 공로를 힘입어 마귀에게서 해방 받아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모든 소유물은 그 소유주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유명한 사람이 소유한다면 그 가치가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소유주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유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며, 하늘나라의 유업을 이을 상속자가 되었습니다(갈 3:29).
우리는 부모가 자녀를 아끼듯이 하나님께서 아끼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으므로 모든 근심, 걱정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생을 돌보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이사야 43장 1절은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일생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맡기고,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택함 받은 귀한 자녀로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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