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7∼10절)
사람은 누구나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크기와 강도가 다를 뿐, 크고 작은 고난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 안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1. 질그릇과 보배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진흙으로 우리를 빚으셨습니다. 이사야 64장 8절은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가치 없고 쉽게 부서지고 깨어지는 연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 한 마디에 마음이 무너지고,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지며 노화와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질그릇 같은 우리가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고후 4:7). 그릇에 무엇이 담겨있느냐에 따라 그 그릇의 이름이 정해집니다. 밥을 담으면 밥그릇, 국을 담으면 국그릇, 빵을 넣으면 빵그릇, 보석을 담으면 보석그릇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보배로운 그릇입니다.
이처럼 그릇의 내용에 따라 가치와 용도가 변합니다. 질그릇처럼 스스로는 볼품없는 그릇도 보물을 담고 있으면 가치 있고 소중하며 귀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과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 어떤 보배와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보배이십니다.
우리는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우리 안에 모셨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이며,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요 1:12).
왜냐하면 보배롭고 존귀하신 예수님께서 내 속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존귀하고 보배로우신 예수님을 귀중히 여기고 예수님이 우리 삶의 중심에서 떠나시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영원한 보배이신 예수님만 높이고 자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적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하거나 뒤로 물러가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큰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의지하여 넉넉하게 이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을 자랑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은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사사 삼갈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군대 600명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삿 3:31).
이처럼 하나님은 세상에서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우리 스스로 질그릇 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하사 육체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십니다(고전 1:27∼29).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의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요 16:33).
우리는 능력이 없어 자주 넘어지고 불안해하고 낙심하고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보배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므로 예수님의 능력이 내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대적을 물리쳐 나가야 합니다(요일 4:4).
로마서 8장 37절은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내 힘만 의지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으나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우리는 넉넉히 이깁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여전히 고난을 당하고 환난을 당하지만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므로 쓰러져도 다시 일어납니다(잠 24:16). 시편 37편 24절은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야훼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감당할 새 힘과 능력을 계속해서 공급해 주십니다.
유해석 선교사의 저서 「높여주심」은 1990년부터 이집트에서 16억 이슬람 영혼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유 선교사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신문팔이와 구두닦이를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도왔습니다. 중3 때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했지만 회사가 망하면서 실직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현실을 비관하고 16살의 어린 나이에 음독자살을 시도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다행히 우연히 인도받은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고 그 이후의 삶은 주님을 향한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한 권사님의 도움의 손길을 통해 어렵게 신학대학과 대학원을 마친 뒤 1990년에는 한국 오엠 선교회 1기생으로 영국에서 선교 훈련을 받고 이집트 빈민가에서 첫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4번의 말라리아로 왼쪽 청각을 잃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온 몸의 상처가 심하였지만, 그 고난의 길은 영광의 길이 되었다며 이런 고백을 합니다.
“깜깜한 절망 속에서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때 주님이 한 줄기 빛으로 찾아오셔서 기댈 곳 없는 저에게 능력의 언덕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품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하는 생면부지의 이슬람 영혼들을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죽기를 소망했던 16살 소년을 16억 영혼을 품은 거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며,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무릎 꿇는 자리에서 주님은 비로소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이르자 더 이상 앞으로 나아 갈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 왔습니다. 백성들은 진퇴양난의 위기에서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백성들을 향해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홍해가 갈라져 그들은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이미 우리에게 임하여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절대 긍정의 믿음과 성령충만입니다.
3. 우겨쌈을 당하여도
하루아침에 욥에게 큰 시련들이 닥쳐왔듯이 우리에게도 대적들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야훼가 함께하시기 때문에 전혀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먼저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는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습니다(고후 4:8). 사도 바울도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다툼과 두려움이 그를 엄습했지만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겨쌈을 당하지 않았습니다(고후 7:5). 우리가 우겨쌈을 당할 그때가 바로 주님께서 일하실 때입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기 위해 밤중에 몰래 도단성을 포위했습니다. 아침에 이것을 본 엘리사의 사환은 두려워 떨며 이러한 사실을 엘리사에게 고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하나님께 사환의 영안을 열어주시도록 기도하자, 사환의 영안이 열려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싼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왕하 6:17). 결국 아람군대가 엘리사를 잡으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히려 그들이 엘리사에게 잡힌바 되어 사마리아 성으로 끌려갔다가 풀려났습니다.
어떠한 우겨쌈을 당하였다 할지라도 보배이신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면 죄악과 유혹의 지배를 받지 않고, 미움과 증오와 고통과 시련이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또한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고후 4:8).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길이 막혀 아무리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방법이 없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근심과 걱정, 불안으로 고통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길이 열립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런데 여종을 통해 수입을 얻던 주인들의 고소로 감옥에 갇히게 되는 참으로 답답한 일을 당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바울과 실라는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빌립보 감옥에 지진을 일으켜 옥터를 흔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결과 바울과 실라는 간수장도 전도하고 감옥에서 석방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5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말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해야 합니다(빌 4:6∼7).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고후 4:9). 사도 바울의 일생은 모진 박해가 끊이지 않은 삶이었습니다(고후 11:23∼25). 그러나 바울은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고 버림을 받아도 하나님께서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 직장을 잃고, 물질의 어려움을 당하며, 심한 고문과 죽임을 당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교의 자리까지 가면서도 결코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그들은 모진 박해와 고난을 능히 이겼던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박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를 배반하고 버린다 할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주님은 우리가 박해를 당할수록 하늘에 큰 상을 준비하고 계십니다(마 5:10∼12).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용하시는 보배로우신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고후 4:9).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전도를 할 때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을 돌로 쳐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죽지 않고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했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때로 죄에 실족하거나 사업에 실패하거나 대적자들로 인하여 넘어져도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롬 8:35).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렵고 잘 안 되는 것 같아도 우리 안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면 절대로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환난을 통과할 때 우리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승리의 영광에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환난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고후 4:10).
우리는 질그릇과 같이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했기에 더 이상 나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이 보배를 소유한 우리는 어떤 고통과 환난이 다가와도 우겨쌈을 당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으며, 버린바 되거나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배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능력 있고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질그릇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우리를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일생 살아가는 동안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지면보기
행복으로의 초대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