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야훼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야훼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야훼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백성의 모임에서 그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그를 찬송할지로다”(시 107:28-32)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소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소원을 향해 나아가는 중에 뜻하지 않은 고난의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생은 마치 거대한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아서 바다에 예기치 못한 풍랑이 일어나듯 우리의 인생의 바다에도 고난의 풍랑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난의 풍랑 앞에서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풍랑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 주십니다.
1. 풍랑을 통해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나면 아무리 크고 튼튼한 배라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덮치면 배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가 곤두박질칩니다. 그때 배 안에 탄 사람들은 마치 영혼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시편 107편 26절은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의 배에 피할 길 없는 고난의 풍랑이 다가오면 사람들의 마음이 처참하게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모시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막 4:37). 얼마나 풍랑이 심했던지 우리가 다 죽게 되었다고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막 4:38). 경험이 많고 노련한 갈릴리 어부들에게도 예고 없이 닥쳐온 풍랑은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극한 고난이 닥쳤습니다. 그 많던 재산과 자식을 다 잃고, 아내마저 그의 곁을 떠나 버리고 자신은 병까지 얻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풍랑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데 왜 내게 이런 고난이 다가오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가려할 때 풍랑이 불어오면 꿈과 비전이 흔들리고, 꿈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다가오는 풍랑은 연단의 한 과정이며 필요한 아픔입니다. 그 고난을 잘 통과하고 나면 놀라운 영적 성장을 얻게 됩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에서 4절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한 인간을 성숙한 인격체로 만드시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고난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은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C. S. 루이스 교수는 학생들이 “왜 세상에 고난이 이렇게 많은가? 하나님은 살아 계신가?”라고 질문했을 때, “그렇지 않아도 교만한 인간들에게 고난마저 없다면 얼마나 더 교만하겠는가!”라고 대답했습니다.
고난당할 때가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모든 것 되십니다.” 라고 고백할 때입니다. 풍랑은 고난으로 그치지 않고 나를 겸손하게 만들며,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합니다. 시편 119편 11절은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최근에 출간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의 저자인 마이클 오 목사님은 지난 2013년 41세의 나이에, 최연소이자 아시아인 최초로 ‘국제로잔운동’의 총재 겸 이사장에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일 뿐입니다. 나는 수줍음이 많고, 자신감도 없으며, 무척 내향적인 사람인데, 어쩌다보니 큰 무대에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나는 ‘깨지기 쉬운 그릇’입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냥 ‘작은 선교사’일 뿐이지만 ‘크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고난은 자아가 깨어지고 겸비해지는 과정이며 주님의 기적을 체험할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풍랑이 다가올 때 그 풍랑을 바라보지 말고 풍랑 뒤에서 풍랑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 우리를 건져 주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의 풍랑은 하나님을 찾으라는 신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풍랑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시편 107편 28절은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야훼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계기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폭풍 속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철저히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폭풍을 제어하십니다. 고난의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귀 기울여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를 하면서 너무나 고난이 심하여 하나님께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출애굽기 2장 23절은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3장 7절은 “야훼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심을 알고”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아시기 때문에 고난의 때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부르짖으면 주님은 광풍을 고요하게 하십니다(시 107:29). 예수님의 제자들이 풍랑을 만났을 때에도 배의 고물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며 “주님,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향해 꾸짖으시니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막 4:39). 그 예수님이 지금 우리의 인생의 배에 함께 타고 계시므로 우리는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고난의 풍랑을 잔잔하게 하사 모든 절망에서 우리를 건져 주십니다.
주에스더 선교사의 육필수기「빛이 그리워」는 죽음을 각오하고 두 번의 강제북송이라는 파란만장한 고난의 삶에서 자유를 찾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기 식량 공급이 완전히 끊겨 기아와 죽음의 무서운 폭풍이 북한 땅 전역에 밀어닥쳤습니다. 그녀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세 차례 탈북을 시도했습니다. 보안요원들은 특수 탐측기를 통해 그녀의 행방을 무섭게 뒤쫓았습니다. 허약해진 그녀의 몸은 탈진되었고, 동상으로 인해 열 개의 발가락은 모두 다 빠졌고, 도망치느라 상한 발끝은 뼈가 으스러져 더 이상 걸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참혹한 죽음의 공포에서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고통의 신음과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포위망에서 그녀를 건져 주셔서 탈북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환난의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다윗에게 대적들이 쳐들어와 사나운 개와 사자같이, 성난 들소같이 달려들었습니다(시 22:20-21). 그러나 다윗은 이 절망의 때 간절히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사 그의 생명을 대적의 칼에서 건지셨습니다. 다윗이 간절히 부르짖고 또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만 의지할 때 놀라운 승리가 주어졌습니다(시 22:22-31).
예레미야 29장 12절에서 13절은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응답받을 때까지 쉼 없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3. 꿈과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고난의 비바람과 폭풍 속에서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할 때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107편 30절은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야훼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꿈과 소원은 하나님의 언어이며, 우리를 하나님의 뜻으로 인도하는 나침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꿈과 소원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꿈과 소원을 이루기까지는 반드시 고난이 따릅니다.
요셉은 꿈꾸는 자였습니다. 그는 17세에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 곡식 단에 절하는 꿈과 열 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고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형들은 그를 시기하고 미워하여 애굽의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요셉의 고난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요셉은 감옥에 들어온 왕의 신하 떡 맡은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이 꾼 꿈을 해몽해 주었습니다. 그의 해몽대로 떡 맡은 관원장은 사형당하고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었습니다. 그때 그 관원은 감옥을 나가면 바로 왕에게 요셉의 억울한 사연을 전해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2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요셉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드디어 바로가 자신의 꿈을 해몽할 사람을 찾을 때, 하나님은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떠올리고 바로에게 추천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마침내 애굽의 국무총리 자리에 오릅니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9년 후 요셉이 22년 전에 꾸었던 대로 형들이 와서 그에게 절하는 꿈이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거룩한 꿈과 소원을 품고 나아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지난 2012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강영우 박사는 13살 때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실명하고, 얼마 후 홀로 계신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고아가 되었습니다. 삶이 절망 자체였으나 예수님을 믿고 난 후 그의 삶은 절대 희망으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러한 역경 속에도 꿈을 꾸게 된 그는 1976년 한국 최초의 시각 장애인 박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냈으며,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 겸 루스벨트 재단 고문으로 7억 명에 가까운 세계 장애인의 복지 향상을 위해 헌신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의 꿈이 이제는 그의 부인과 아들을 통해 이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유고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에게 장애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저를 보면 어둠인데 주님을 보니 빛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만 보았습니다. 당신을 지배하는 생각의 장애, 마음의 장애, 영의 장애를 뛰어넘어 당신의 장애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꿈은 이뤄집니다”
고난은 꿈과 소원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고난당할수록 불안정한 환경에 집중하지 말고 꿈과 소원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꿈과 소원이 하나님의 뜻에 합하기만 하면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 주십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에 거룩한 꿈을 품고 나아갈 때 어떠한 풍랑이 우리 앞에 엄습해 온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전진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때에 주님이 이루어 주시는 그 귀한 꿈을 이루어 나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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