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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과 분노
2014.07.13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 15장 25∼32절

 우리는 ‘탕자의 비유’에서 언제나 집 나갔다가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본문 내용을 자세히 보면 또 하나의 탕자가 등장합니다. 둘째 아들이 집 나간 탕자라고 하면, 맏아들은 몸은 아버지 곁에 있었으나 마음은 아버지를 떠나 있는 집에 있었던 탕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분노하는 세대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 축하 잔치를 열었습니다. 맏아들이 밭에 나가서 일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자기 집에서 들려오는 풍악 소리와 춤추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눅 15:25). 그래서 맏아들은 종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종은 집나간 동생이 돌아와 주인님이 너무 기뻐서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베풀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눅 15:26∼27). 맏아들은 아버지가 동생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며 잔치를 베푸신 이야기를 듣고 매우 분노하여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맏아들이 화가 나 밖에 서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가 맏아들을 데리고 들어가려고 나왔습니다(눅 15:28).

 그는 자신의 동생이 집을 나갔다가 돌아왔는데도 하나도 기뻐하지 않았고, 오히려 재산을 탕진한 아들을 용서한 아버지의 사랑에 분노했습니다. 우리는 분노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부부간에 또 부모와 자식 간에, 그리고 가까운 이웃을 향해 너무나 쉽게 분노합니다. 물론 사람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때로 슬퍼하는 것처럼 분노의 감정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폭발시키면 자신은 물론 이웃과 공동체를 파괴시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6절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말씀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의 큰 아들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기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동생 아벨의 제물만 하나님이 받으시자 분노했습니다. 가인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여 결국 동생을 들로 유인해 돌로 쳐 죽임으로써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마음에 분노가 쌓이면 미움으로 변합니다. 미움은 분노의 극치이며 무서운 살인 동기가 됩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분을 계속 품지 말아야 할 이유는 마귀가 틈 탈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마귀로 하여금 그 분노를 발판으로 삼아 우리를 죽이고 도적질 하고 멸망시킬 통로를 열어놓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향하여 분을 품은 것은 마귀로 하여금 틈 탈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악신에게 시달렸고, 민족의 영웅이었던 다윗을 죽이려고 군사를 보내 추적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결국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미움과 분노는 불신과 대립을 불러오고 갈등만 깊어지게 할 뿐,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분노는 다툼을 일으키고, 건강을 해치고,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됩니다. 의학 연구에 의하면 분노는 동맥경화, 고혈압이나 심장질환 등 질병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며 인체의 저항력을 감퇴시키고 암세포를 급속도로 자라게 한다고 합니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카렌 매슈스 박사는 분노를 마음속에 묻어 두는 여성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경동맥(頸動脈)이 두꺼워져 동맥경화의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정신의학전문지(Psychosomatic Medicine)에 발표했습니다.

 분노는 판단력을 잃게 합니다. 모세는 좋은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분노로 인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어 불평하자 그는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반석을 내리치며 혈기를 부렸습니다. 결국 모세는 그 분노 한 번 때문에 4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도 그가 그리도 소원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7절은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분노가 일어날 때 예수님을 생각하므로 참고 인내하고 잘 다스려야 합니다. 성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분노가 일어날 때 말을 절제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잠언 15장 1절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분노가 일어날 때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분노를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화가 나는 상황을 잘 다스리고 올바른 반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잠언 16장 32절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무엇보다 분노가 일어날 때 우리는 그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 밀려오는 분노의 감정을 주님께 아뢰고 기도와 찬송으로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또한 분노 배후에 역사하는 마귀를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여 물리치고 주님의 은혜에 잠겨 분노를 억제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2. 자기 의로움 위에 선 사람들


 맏아들은 여러 해 동안 부지런히 아버지를 도와 집안일을 했고,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눅 15:29). 맏아들은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 의로움’을 내세우는 한편 재산을 탕진한 동생을 향해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죄인이라고 정죄했습니다.

 이처럼 ‘자기 의’에 도취된 사람은 이웃의 허물과 실수를 향해 정죄하고 비난하기를 즐겨합니다. 예수님 당시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자기 의’에 도취되어 자신들의 편협한 결정이 옳음만을 주장하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집안에 있던 아들, 또 하나의 탕자였습니다.

 신앙생활 할 때 이 같은 모습에 빠져서는 절대 안 됩니다. 늘 자기만이 옳다고 하는 생각에 남을 쉽게 정죄하고 판단하고 비판하는 모습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마태복음 7장 4절은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이 세상에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의로우신 분입니다. 시편 7편 11절은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만이 의로우시고, 만물의 창조자요 주관자가 되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헌신하고 충성할 수 있었던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랑할 것은 자신의 헌신이나 선행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수고는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께서 하늘의 상급과 면류관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에게 받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칭찬받고자 헌신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상 받으려고 하면 적게 받지만 하나님께 상 받으면 크게 많이 받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1절은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가정의학과 의원’ 최재빈 원장은 모태신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장자가 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하나님을 가슴으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의사가 된 후에도 하나님께 자신은 더 특별한 사랑과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남을 쉽게 판단했습니다. 외적으로 보면, 교회에 건축헌금, 십일조, 감사헌금 등 많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고 교회에서는 열심히 봉사하는 모범적이고 신실한 성도의 모습이었지만, 선행하는 자신 안에 숨겨진 바리새인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탄 자동차가 주차 타워에서 추락해 야곱과 같이 환도뼈를 크게 다쳤습니다. 이때 자기 의로움에 빠져 ‘맏아들 탕자’처럼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캄보디아에 가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치유를 경험한 그는 매달 에이즈 아이들을 후원하며, 캄보디아에 우물을 만들어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겸손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만이 의로우심을 고백하며 십자가만 자랑하고 예수님만 자랑해야 합니다.


 3. 부정적 자화상


 맏아들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서는 송아지를 잡아 잔치해 주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버지가 염소 새끼 한 마리 잡아 준 일이 없다고 불평했습니다(눅 15:29). 그는 아버지를 사랑 없는 인색한 아버지로 잘못 알고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동생도 ‘이 아들’ 즉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표현하면서 자신의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할 대접을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에게 베풀었다고 아버지께 항의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진정한 사랑도 없고, 좋으신 아버지에 대한 의식도 없었습니다. 그런 맏아들에게 아버지는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5:31).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 다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죄에 빠진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내어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부정적인 자화상을 긍정적인 자화상으로 바꿔야 합니다.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믿음의 말, 긍정적인 말, 창조적인 말을 합니다. 어두운 면을 보지 않고 밝은 면을 보며 ‘못한다, 할 수 없다’라고 말하지 않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고 말합니다.

 대한민국 최초 시각장애인 골프선수 최규일 선수의 간증 이야기입니다.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다행히 남들보다 손재주가 뛰어나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귀금속 공장을 차릴 정도로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28살이 되었을 때, 베체트 병(자가면역증)이라는 희귀난치성질환 진단을 받았습니다. 양쪽 눈이 1.5로 좋았던 시력을 점점 잃어갔고, 심지어 약의 부작용으로 치아가 녹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고통스러운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력을 잃어도 할 수 있다’ ‘열심히 살아가는 당당한 아버지가 되자’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습니다. 당시 국내에는 시각장애인 골프선수가 없었고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무한 반복 연습을 하다 보니 늑골이 부러지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2008년 골프 경력 겨우 1년 만에 국내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고 2009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 시각장애인 골프대회에서 세계 3위를 차지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프 선수가 되게 하셨고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배가 항해할 때 ‘키’가 그 방향을 결정하듯 우리 인생에도 마음속에 자화상이 ‘키’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부정적인 자화상을 긍정적인 자화상으로 바꿔야 합니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 다 큰 아들처럼 자기 의로움을 내세우고 남을 판단하고 비판했던 또 하나의 탕자였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후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미움과 분노를 내려놓고 사랑과 용서로 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로 무장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도록 우리의 일생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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