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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소유할 자
2014.05.04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장 15∼17절)


 어린아이들은 가정의 꽃이요, 희망입니다. 그들은 국가의 미래요, 장차 교회의 기둥과 일꾼들이 될 재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어린아이같이 순수하고 겸손한 자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자랑하고 높이는 자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1. 천국을 예비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천국을 예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을 향해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죽으면 끝이 아니라 믿는 자는 천국으로 불신자는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는 죽음 이후에 실제로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누가복음 16장 22절에서 24절은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나사로는 비록 거지로 살았지만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던 사람이었기에 죽은 후, 그 영혼은 낙원으로 들어갔고, 불신자인 부자는 음부로 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좌우편에 두 행악한 자들도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들 중 한 행악자는 예수님을 조롱하였지만, 다른 행악자는 예수님을 향하여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고백하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눅 23: 43).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천국은 너무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절에서 5절은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천국은 질병과 고통, 죽음과 슬픔이 없고, 유혹과 죄가 없으며, 두려움과 불안과 원망이나 불평이 없는 곳입니다. 모든 근심과 걱정, 눈물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만이 충만한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은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과 기쁨이 충만하고 영원한 즐거움만 있는 곳입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에 대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 5:1)

 우리 육신의 장막은 병들고 쇠약해지고 무너집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인생의 허무함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언젠가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우리는 어디로든 가야 합니다. 인생의 밤에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천국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충만한 천국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고전 15:58).


 2. 순수한 믿음의 소유자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6절에서 17절은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큰 위인이나 훌륭한 랍비에게 자녀들을 데리고 가서 축복기도를 받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 풍습대로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 안수받게 하려고 데리고 왔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것을 막은 것입니다.

 당시 유대에서는 여자와 마찬가지로 어린아이를 온전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불완전한 존재로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수를 셀 때에도 여자와 어린아이는 빼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시며 천국은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의 특성은 세상의 죄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입니다. 어린아이는 으뜸이 되고자 악한 계략을 꾸미지 않습니다. 높은 지위나 권력을 탐내지 않고 서로 다투지도 않습니다. 부모님의 말에 절대 순종하며, 가르침을 단순하게 잘 받아들이고,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합니다.

 평신도 선교사이자 사진작가인 김성민 씨는 남아프리카의 에이즈에 걸린 고아들을 모아 사랑으로 돌보는 ‘엔젤스 홈’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인 「그래도 행복합니다」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엔젤스 홈 고아들은 ‘세상은 우리에게 절망을 줬지만, 우린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습니다. 그 아이들은 전혀 가난하지 않습니다. 많이 가지진 못했지만 그 아이들은 자신의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러기에 더욱더 주님께 기댑니다. 이들은 그럴듯한 기도방도, 큼직한 예배당도, 잘 짜여진 오케스트라도 없지만, 하나님을 향해 늘 기쁨으로 노래하고 춤춥니다. 스스로 부모나 건강한 육체를 선택할 수 없었지만, 당장 내일의 삶이 불안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꿈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행복합니다. 아이들은 아픈 것보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보다, 오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합니다”

 고통과 가난 속에서도 그저 예수님 때문에 행복해 하고, 하나님을 향해 늘 기쁨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어린아이들입니다. 이처럼 천국은 어린아이같이 순수하고,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자들의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는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범사에 감사하며 늘 찬양하는 순수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어느새 순수한 열정과 헌신의 모습은 사라지고 형식적으로 주님을 섬기며 교회의 직분을 내세워 서로 시기하고 분내며 원망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토미 테니(Tommy Tenney) 목사님은 그의 책 「간절한 매달림」에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가장 귀한 피조물인 인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신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뻐하고, 찬양하고, 배고파하고, 두려워하고, 그분께 매달릴 것을 요구하신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되기를 바라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쉽게 불평하는 모습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주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며, 순수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하고(계 2:4∼5), 감사와 찬양과 신앙의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3. 겸손한 신앙의 소유자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같이 낮아져야 천국을 소유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높아지고 칭찬받고 대접 받기만을 좋아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마 18:1)라고 질문하자 그때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를 불러 세우시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2∼3)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조금 더 가졌다고 교만하고, 조금 더 배웠다고 우쭐거리고, 조금 더 권력이 있다고 해서 사람을 우습게보고, 남보다 조금 더 능력이 있다고 해서 잘난 체하는 인간의 모습을 비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내세우시면서 바로 이 어린이와 같이 낮아지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서 높임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뭇 사람의 끝이 되어야 합니다(막 9:35).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자인가를 발견한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섬기는 자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6절에서 27절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섬기는 자는 다른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타인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허물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허물과 죄악을 나의 허물과 죄악으로 여기고 그가 회개하기까지 오래 참고 돕는 사람입니다.

 요셉은 섬기는 자였습니다. 그는 노예가 되었을 때도 주인을 섬겼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죄수를 이해하고 섬겼습니다. 그 결과,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도 형들의 내면이 변화되기까지 섬겼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야말로 천국 시민이 되기 위한 필수 자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신다’는 겸손의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목사님은 그의 저서 「나를 낮춰야 주님이 높아진다」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이 되도록 우리의 자아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겸손, 우리의 자아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겸손을 구해야 한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이 높임을 받도록 해야 한다”

 온유와 겸손은 예수님의 성품입니다(마 11:29). 그러므로 우리는 온유와 겸손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나병 환자의 아버지라 불리는 다미엔(Damien) 신부는 나병 환자를 돌보다가 그에게도 나병이 찾아왔습니다. 나병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에게 나병을 허락해 주심을 진실로 감사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제가 저들 앞에서 ‘우리’라는 말을, 떳떳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저들에게 ‘하나님은 나병에 걸린 우리도, 지극히 사랑하신다’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이 모습에 모든 나병 환자들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섬김과 희생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낮아져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스스로 세상 사람들과 같은 수준으로 낮아지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낮아짐과 섬김이 온 세상을 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한 평생 겸손과 온유함으로 섬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할 때 만입이 있어도 다 감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의 그 모습으로 변화되어서 주님 앞에 가장 순수하고, 또 주님의 은혜를 받은 그대로 가장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으로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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