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야훼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야훼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야훼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야훼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야훼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시편 11편 1∼7절)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악인이 잘되는 것 같고 의인이 오히려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믿음으로 살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환난이 다가올 때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본문은 다윗이 사울에게 핍박받는 고난 가운데 지은 시편입니다.
1.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도망 다니던 시절에 죽을 고비를 수없이 많이 만났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피난처요,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께 피하였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굳건한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하나님께 피하였기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사울의 칼날을 피하게 하시고 결국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피난처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 46:1∼3)
우리는 환난을 당할 때, 사람의 도우심을 구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윗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위기를 만나자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고 권유했습니다. 새가 산으로 도망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산에는 나무가 무성하여 새가 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산이 아닌 다윗의 산으로 도망치라고 합니다. 산은 당시 사람들이 전쟁이나 위기 상황에서 흔히 찾는 피난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 외에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라는 것입니다. 의학의 산, 과학의 산, 친구의 산, 힘의 산, 명예의 산, 지혜의 산, 지식의 산, 물질의 산, 권력의 산같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산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환난 날에 자신의 산으로 도망가지 않았고, 하나님의 산으로 피하였습니다. 시편 121편 1절에서 2절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울을 대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의 방법으로 대하였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칼날을 피해 광야로 도망 다니던 시절 그는 사울을 두 번이나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을 치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이라 여겨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지만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울을 대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와 조롱과 온갖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침 뱉고 발길질을 했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묵묵히 십자가를 지시며 그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사 온 인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만이 온전한 승리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어떤 위기와 환난을 만날 때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도망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악인들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어두운 데서 계략을 세우나 헛된 수고일 뿐이요(시 11:2), 결국 의인이 궁극적으로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질그릇을 깨뜨려 부숨같이 하나님의 때에 악인을 깨뜨리시고 부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요원」의 저자인 봅 푸 목사님은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이 베이징의 톈안먼(천안문, 天安門) 광장에 집결할 때 대학 시위를 주도한 이유로 강압적인 반혁명분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준 소책자를 보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낮에는 공산당학교의 영어교사로 밤과 주말에는 가정교회를 섬겼습니다. 하지만 그 학교 사역이 탄로나 그와 아내는 투옥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온갖 고통과 핍박으로 인해 죽을 고비도 있었지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출소 후에도 그들 부부에게 계속 체포의 위협이 있었지만 이들은 감시망을 뚫고 홍콩으로 갔습니다. 그 때는 홍콩반환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였습니다. 그 척박한 상황에서 부부는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부부가 절망감과 싸우는 중에 도울 자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국이 이들 가족을 받아주어야 한다는 청원서에 수십 명이 서명하도록 하셨고, 홍콩반환 1시간 전에 이들 부부는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미국 망명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과 절묘한 타이밍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고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며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야합니다. 어떤 위기에도 하나님의 산으로 피하여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2. 의인의 삶
사울 왕 시대에는 무엇이 의인지 무엇이 죄인지 선악의 기준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시 11:3)라고 탄식합니다. 다윗은 세상 터전이 흔들릴 때 세상 것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았습니다. 이 세상 것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은 그 터전이 흔들릴 때 그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는 의인의 삶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터전이 무너졌을 때 의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성전 중심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하나님께서는 먼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위기를 당하고 환난을 당할 때 우리를 초월하여 계시지 않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위기의 자리에, 고통의 자리에, 슬픔의 자리에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통촉하시고 감찰하십니다. 지금 세월호의 침몰로 인해 위기와 고통과 슬픔을 당한 그 자리에도 하나님은 그들 곁에 함께 계십니다.
필립 얀시(Philip Yancey) 목사님은 그의 책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통은 늘 우리 가까이에 숨어 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왜 가만히 계실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님은 분명 그 고통 안에 계셨다. 하나님은 저 멀리에 계신 분, 이 땅의 고통에 무감각한 분이 아니시다.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도 결국 그분의 아들을 잃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느끼는 슬픔을 아신다. 슬픔은 사랑과 고통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 무엇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보상해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의 힘으로 이겨낼 것이다. 고통의 땅에서 욥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큰 그림’을 가지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우리의 ‘작은 그림’을 살펴보고 온갖 불신앙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붙드는 것이다. 믿음은 미래로 가서 되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을 미리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위기 가운데서도 상황과 조건에 따라 쉽게 흔들리는 세상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늘 우리 곁에 함께 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첫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고 교회 중심, 예배 중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이 고난의 때에 하나님께 인정받는 신앙의 모습으로 굳게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서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며, 불꽃같은 눈으로 인생을 통촉하시고 감찰하사 의인을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의인에게 상주시고 악인에게 벌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울과 다윗을 지켜보셨습니다. 사울이 은밀하게 어둠 속에서 다윗을 죽이고자 하여도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결국 사울은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사울 왕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결국 다윗은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굳건히 서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악인이 형통한 것 같고 그 기세가 등등하여 의인이 소멸 될 것 같은 위협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결정적인 순간 주님의 강한 오른 팔이 의인을 붙드시기에 의인은 다시 일어나고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잠언 24장 16절은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를 붙드시고 다시 일어날 힘을 주십니다. 시편 145편 14절은 “야훼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주 안에서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형통하게 되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3. 심판하시는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때에 반드시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시편 11편 6절은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십니다. 그물에 걸리면 고기가 빠져나오지 못하듯, 하나님의 그물에서 악인은 빠져 나오지 못하고 결정적인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과 유황의 심판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하나님은 악인을 불과 유황이 타는 지옥으로 보내십니다.
사람들은 조급하게 ‘왜 악인들이 그대로 걸어 다니게 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시편 37편 7절은 “야훼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사랑하시고 복 주십니다. 시편 11편 7절은 “야훼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얼굴을 다시 뵈올 그날까지 하나님은 의인의 일생을 책임지십니다. 의인의 삶은 장차 해같이 빛날 것이나 악인의 길은 망하게 됩니다(시 1:6).
최근 신간 「네가 가라, 내 양을 먹이라」의 저자 박운서 장로님은 화려했던 이력을 뒤로하고, 9년째 필리핀 망얀족에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입히고 먹이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는 40여 년간 열정을 아낌없이 사회에 쏟아 부었습니다. 은퇴 후 여생을 즐기려던 저의 계획은 하나님의 뜻과 달랐습니다. 필리핀 오지의 헐벗은 이들에게 ‘네가 직접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칼 같았고, 나이 65세에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드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주님만 바라보고 결단하고 나아갔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은 현직에서의 화려했던 시절보다 더 아름답고 빛나는 은혜의 삶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의인은 고통당하고 있는 이웃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의인된 우리로 하여금 부활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의인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절망의 때에 우리 주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우리는 악인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은 잡초처럼 쉬 사라져버리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의인의 길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하나님의 때에 놀라운 역사로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우리를 통하여 한국 사회가 밝고 아름답게 변화되게 하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헌신과 희생이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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