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6장 6∼13절)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삶을 살면 남을 용서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본문은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자기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린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옥합을 깨뜨린 여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하루 전 날,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의 나병환자인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이 여인은 마리아였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절은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결혼을 준비하는 처녀들이 지참금으로 가져가기 위해 값비싼 향유를 사서 옥합에 모았습니다. 그녀가 바친 ‘나드’ 향유는 당시 동방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으로 향나무 뿌리에서 추출해 내는 아주 값비싼 향유였습니다. 더욱이 이 향유를 담은 그릇인 ‘옥합’은 귀한 옥으로 만든 값나가는 아름다운 그릇이었습니다. 주둥이가 좁고 긴 항아리로 향유가 다 차면 뚜껑을 꽉 막고 초로 완전히 밀봉했습니다. 그래서 살면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것을 팔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쓰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마리아의 가정은 넉넉지 못한 편으로 부모님 없이 삼 남매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리아가 옥합을 깨고 예수님께 부었다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 더 나아가 자기 전체를 예수님께 온전히 바치는 심정으로 향유를 부어 드렸습니다. 그야말로 마리아는 자신의 몸과 마음과 물질을 예수님께 다 쏟아 붓는 헌신을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마리아의 헌신과 향유는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자신이 가진 전부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오라버니 나사로를 살려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 감격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우리는 이제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리는 헌신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할 때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에게 모든 것을 주고도 늘 부족하고 또 주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사랑은 다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하늘 보좌의 영광도 내놓으시고 생명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귀한 향유를 가지고 나온 마리아의 모습이 바로 날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도 이 같은 마음 자세로 아낌없이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헌물이나 헌금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린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조그마한 것을 드려도 오히려 풍성하게 갚아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9장 10절은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 드리는 것은 헛되이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가장 귀한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붓는 마리아의 신앙이 우리의 신앙이 되게 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부었을 뿐만 아니라 지극한 존경의 표현으로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인격을 주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이것은 겸손과 섬김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자신의 사랑을 드린 것입니다. 이같이 우리도 내 자신을 깨뜨리고 존경과 겸손, 사랑으로 온 정성을 바쳐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2. 제자들의 비난
그런데 예수님께 부은 향유의 향기가 온 집에 퍼지자 제자들은 마리아를 향해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요 12:5)라고 비난했습니다.
당시 노동자 한 사람의 1년 소득이 삼백 데나리온이라고 할 때, 가난한 여인으로서는 전 재산을 드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칭찬은커녕 오히려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제자들의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주님의 일에 충성할 때, 비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의 비난은 그냥 넘어가기 쉽지만 믿는 성도들에게 받는 비난은 큰 상처로 남게 됩니다. 초신자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격하여 열심히 봉사를 하다가도 먼저 믿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으면 상처를 받아 믿음이 흔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가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의 비난에 상처를 받거나 뒤로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하다가 장애물을 만난다고해서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뒤로 물러가면 주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부정적 이야기는 생각지도, 듣지도, 하지도, 옮기지도 말아야합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들입니다. 남이 뭐라 해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나와의 바른 관계가 중요합니다. 믿음을 지키고 참고 견디면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되고 결국 우리의 신앙에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어떤 절망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나아가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온갖 수치와 조롱과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고난을 참으심으로 부활하셔서 인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부당하게 비난을 받을 때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는 고난을 이기는 우리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주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희망과 용기를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1장 5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고 환난 중에도 담대해야합니다(요 16:33). 그렇게 참고 견디면 믿음이 성장하고 말할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이 다가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13년 째 선교하시는 장종일 선교사님은 마약·알코올 재활센터를 운영하며 그곳에서 11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장 선교사님을 통해 전도 받은 한 우크라이나 가족은 믿음으로 인해서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13년 반, 어머니는 8년 반 동안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정은 끝까지 믿음을 지켰고 자녀 8명이 모두 주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장 선교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약에 취하고 술에 중독된 이들이 복음과 사랑으로 변화되는 모습은 십자가의 은혜였습니다. 이젠 그들이 주님의 향기에 중독되었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핍박 받고 비난 받던 부모들의 모습도, 그 길을 왜 가냐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도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고난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혹시라도 사람들의 비난으로 인해 상처받고 우리의 헌신과 섬김이 중단되어 있다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옥합을 들고 주님의 발 앞에 나아가 우리의 헌신과 섬김을 드려야 합니다.
3. 예수님의 칭찬
예수님은 마리아의 헌신과 섬김을 귀하게 여기시고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그분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입니다(마 26:12). 예수님은 그녀의 섬김의 자세와 곧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실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그녀의 헌신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그녀는 두고두고 기념될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헌신을 보시고 마리아를 칭찬만 하신 것이 아니라 축복도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이 인정하시고 기억해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일대학에서 선교와 동양역사 교수를 역임한 라토렛(K. S. Latourette) 교수님은 그의 책 「기독교의 역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를 지켜온 사람들, 그들은 신학자가 아니다. 정치가도 아니다. 부유한 사업가도 아니다. 이름 없이 주의 제단에 사랑을 바친 수없이 많은 성도들 바로 그들이 교회의 주인들이었다”
우리도 이같이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우리의 가장 귀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칭찬받고, 축복받는 삶을 살아 일생 다가도록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아름다운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4. 우리가 깨뜨릴 옥합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옥합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런데 옥합이 비록 아름답고 귀하기는 하나, 깨어지지 않으면 향기를 낼 수 없듯이 우리의 자아가 깨어져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내가 깨어져야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뜻과 고집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내 삶속에 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고 ‘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내’가 깨어져야 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A. W. 토저(Aiden Wilson Tozer) 목사님은 그의 책 「내 자아를 버려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이 더 중요하고, 자아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예수를 진정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에 얽매여 있는 자아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야 십자가와 부활을 통과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그렇게 자아가 깨어질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깃발 아래서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을 얻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자꾸 작아져야 하고, 그리스도는 자꾸 커져야 한다”
옥합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안의 향유가 더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릴 때 비로소 향유의 향기가 온 집안에 퍼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옛사람이 깨어질 때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향기가 온 세상에 번져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물질중심의 나’, ‘세상중심의 나’를 깨뜨려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나시게 하고 그분만이 영광을 받으시게 해야 합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만이 존귀함을 받으시게 해야 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늘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왔던 우리들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마리아가 과감히 옥합을 깨뜨린 것처럼 오늘 이 시간 우리도 옥합을 깨뜨려 내 삶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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