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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를 지나 엘림으로
2014.03.16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야훼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훼임이라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출애굽기 15장 22∼27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광야와 같습니다. 광야는 더위와 갈증, 뱀과 전갈의 위험이 끊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광야와 같은 우리 인생길에도 때로 예기치 않은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통과한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가나안 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튼튼히 붙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에서 쓴 물이 단물로 변한 사건을 체험한 후 풍부한 물과 쉼터가 있는 엘림까지 이르는 가나안 여정 이야기입니다.

 1. 마라의 쓴 물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춤을 추며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수르 광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흘 동안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기진맥진하여 마라에 이르렀을 때 한 샘을 발견했지만 그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출 15:22∼25). 그래서 그 곳의 이름을 ‘마라’라고 불렀습니다. 마라의 쓴 물은 인생의 고통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마라의 쓴 물을 만났던 것처럼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 앞에도 마라의 쓴 물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마라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 마라의 쓴 물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의 쓴 물을 만나자마자 모세에게 원망과 불평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했고 그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라의 쓴 물 앞에서 출애굽의 감격을 잊어버리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 원망과 불평은 마음속의 부정적인 생각과 상처로부터 나옵니다. 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상처를 줍니다.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과거에 받은 상처인 쓴 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한 것은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7절은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고 말씀합니다.

 원망불평하지 마십시오. 원망은 은혜를 가로막고, 말씀을 가로막고, 기도를 가로막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원망불평 가득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23절에서 24절은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마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할 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출 15:25). 마라와 같은 문제들이 엄습할 때 우리는 부르짖어야 합니다. 또한 감사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넘치는 감사가 우리를 승리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시편 50편 23절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일생을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살아가야 합니다.

 마르코스 윗(Marcos Witt)의 『두려움을 이기는 영혼』에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1960년 젊은 미국 선교사 부부가 고향을 떠나 아이들 셋을 키우며 가난한 멕시코 사람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복음을 전하러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순교합니다. 부부의 꿈은 죽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24살의 젊은 여인은 선교지에서 과부로 아이 셋을 키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계속 사역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로 키우던 어느 날, 아들 삼형제 중 둘째 아들이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노래와 피아노는 물론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고 성장하여 최우수 기독교 앨범으로 라틴 그래미상을 세 번이나 수상했으며, 지금은 레이크우드교회에서 스페인어 예배 담당목사로 섬기며 미국과 남미 전역의 수많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마르코스 윗(Marcos Witt)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라의 쓴 물과 같은 고통을 만났으나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만 의지했더니 마침내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을 새로운 동역자로 키워 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부르짖는 기도는 절망을 희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놓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한 치유의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2. 십자가의 능력
 
 모세가 부르짖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한 나무를 물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나무를 던지니 쓴 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5절은 “야훼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목사님은 “그 나무는 인간의 죄를 치유하고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어떤 절망의 쓴 물도 달게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고통의 쓴 물을 만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보면 죄악의 쓴 물이 의의 단물로 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질병의 쓴 물이 건강의 단물로 바뀝니다. 이사야 53장 5절은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가난과 저주의 쓴 물이 부요와 축복의 단물로(고후 8:9), 사망의 쓴 물이 생명의 단물로 변합니다(요 11:25).

 우리가 우리의 인생길에서 만나는 고통과 실패와 문제의 마라 속에 믿음의 십자가를 던지면 그 실패와 고통과 문제의 쓴 물이 변하여 생명의 물, 은혜의 물, 축복의 물이 됩니다. 불가능한 일이 가능케 됩니다. 연약함이 강함으로,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실패가 성공으로, 고통이 기쁨으로 바뀝니다. 그리하여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살게 됩
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고 형통하게 됩니다.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법도와 율례를 정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치료하십니다. 육체의 질병, 마음의 질병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를 치료하사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아울러 이웃과의 잘못된 관계, 삐뚤어진 마음, 잘못된 상황, 헝클어진 문제를 치료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할 때 우리에게 치료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3. 엘림의 축복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에서 조금 더 행진하여 엘림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은 물 샘이 열둘이요, 종려나무 칠십 그루가 있는 오아시스였습니다(출 15:27). 하나님은 광야에서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엘림을 예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광야와 같이 거친 이 세상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인생 여정에도 하나님께서는 엘림의 축복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곳은 더위나 목마름의 염려가 없는 곳이며, 마라에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인내하지 못하고 마라에서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마라의 쓴 물과 같은 어떤 고통과 환난이 있더라도 조금만 더 인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쓴 물 마라가 있는 곳 근처에는 종려나무 일흔 그루와 물 샘 열둘이 있는 엘림이 있습니다. 이처럼 축복은 고난의 보자기에 싸여옵니다.

 광야와 같은 우리 인생길에서 때로 마라와 같은 고난을 만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절망 가운데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연단하신 후에 마침내 엘림에 도착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김영애 권사는 그의 책 『구름기둥』에서 혹독한 ‘광야학교’에서 만났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눈물 절절한 고백과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간증합니다.

 한동대학교는 1995년 개교 이후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학교에 남겨진 부채와 신설 대학의 어려운 상황, 게다가 국가적인 IMF 경제 위기까지 찾아왔습니다. 촛불처럼 위태로운 대학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들이 계속 터졌습니다. 김 권사에게 이런 시간들은 피를 말리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거기에 구속된 남편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대학이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시작한 학교인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마다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김 전 총장 부부는 무릎 꿇고 기도하며 결코 광야에서 죽게 하지 않으시는 축복의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로부터 19년, 한동대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기독교 대학인 줄도 모르고 지원했다가 자퇴할 생각을 했던 학생들은 지금 강단에서 믿음의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고, 입학 당시 소망이 없던 한 학생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며 졸업 후 장애인을 돕는 사업가로 성공하였으며, 지금은 기독교 이념에 기초한 CEO들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대학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월 김영길 총장은 19년의 총장생활을 마치고 명예롭게 퇴임했습니다. 김영애 권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인생은 광야입니다. 광야학교를 거치고 보니 장미꽃도 감사하지만 그 장미에 붙은 가시도 감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폭양이 내리쬐는 광야에서 구름기둥이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다보니 마침내 도착한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가나안 땅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엘림은 천국의 예표입니다. 천국은 엘림과 같은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절에서 2절은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도 엘림과 같은 기쁨과 축복을 누리나 이 땅에서 누리는 기쁨과 축복은 천국의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천국엔 쓴 물이 없습니다. 완전한 단물만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마라의 고통 가운데에서도 인내하고 완전한 축복을 누리는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마라의 쓴 물 같은 고통을 만나더라도 부르짖어 응답받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쓴 물이 단물로 바꿔지는 인생의 변화를 체험하십시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치유 받고, 인내하여 엘림과 같은 풍요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갚으려야 갚을 수 없는 그 사랑과 용서를 체험한 우리들이 분노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상처를 주고받았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마라의 쓴 물을 치료하지 못하고 그와 같은 고통의 삶을 살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이제부터 사랑하고 용서하며 십자가의 은혜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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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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