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린도후서 13장 13절)
감사는 우리를 성숙한 신앙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들은 모두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은 고린도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축복기도이며 또한 우리를 향한 축복기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의 힘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와 상처들로 고통당할 때 하나님의 은혜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감사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은혜 중 가장 큰 은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치르심으로 우리는 구원을 은혜로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2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은혜란 값으로는 환산할 수 없어 거저 받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의 공로로 주어진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값없이 얻는 선물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모든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야 하는 절망적인 존재였습니다(롬 3:23). 로마서 6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몸 찢기고 피 흘려 우리의 죗값을 다 지불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사 우리에게 구원의 문, 영생의 문, 축복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용서와 의와 평강 그리고 성령 충만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말미암아 치료와 축복과 영생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선물을 받게 된 것입니다. 도저히 값으로도 계산할 수 없고 돈으로도 살 수 없어 선물로만 받을 수밖에 없는 은혜, 이 은혜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갚으려야 갚을 길 없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합당한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1620년 102명의 영국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65일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미국 북동부지역 플리머스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먼저 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첫해에는 심한 식량난과 추위와 질병과 영양실조 등으로 102명 가운데 44명이 죽고 나머지도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주를 섬기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1년 후 거둔 수확은 많지 않았지만 그들은 농사하는 법을 가르쳐준 친절한 인디언들과 함께 처음 추수한 곡식을 놓고 첫 추수감사절을 가졌습니다. 이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의 고난 중에 1864년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 공휴일로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이 처음 거둔 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자신들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의 예배를 드린 이 아름다운 전통을 미국을 비롯하여 복음에 들어간 나라에서 계승한 것이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에 감사하며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에 힘쓰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고전 16:23).
2.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 4:16).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요일 4:19).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롬 5:8).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 대신 죽으신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마 22:37∼39). 어느 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명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멀리 서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의 나병을 고쳐주소서”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사 제사장들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병을 치유하셨으니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하라는 뜻입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들에게로 몸을 보이러 가던 나병환자들은 도중에 깨끗이 치료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열 명의 나병환자 중 아홉 명은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고 즉시 집으로 돌아갔고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받고도 감사하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잊지 말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보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시 116:12∼14).
네 살 무렵 넘어져 이마를 다친 이후로 시각장애인이 된 신인식 목사는 고난에도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 도움을 주고자 시각장애인으로는 하기 어려운 신문배달도 했습니다. 처음 신문사를 찾아갔을 때 그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났지만 포기하지 않고 찾아가 사정한 결과 150집을 배정받았습니다. 그는 밤새 모든 집의 위치를 외워서 세 시간 만에 맡은 분량의 신문을 배달할 정도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또 한 번의 절망적인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폐결핵 말기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가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기쁨과 감사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낫게 하실 것이라고 믿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결국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그가 4년이 지난 어느 날 의사에게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를 담당한 의사도 그에게 기적이라고 이야기하며 기뻐했습니다.
죽음에서 치료를 받은 그는 현재 신문과 잡지를 음성 서비스로 제공하는 종달새전화도서관을 만들어 시각 장애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루 이용자가 5000∼7000명에 이르러 재정적으로 운영이 어려워 직원들 급여를 주는 것만으로도 빠듯하지만 그는 이렇게 감사의 고백을 합니다.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감사와 기쁨의 마음을 잊지 마세요. 찾지 못했을 뿐이지 기뻐하고 감사할 일들은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감사하고 기쁨은 큰 감사와 기쁨을 불러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고통과 절망을 뛰어 넘어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위대한 기적을 가져다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평생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야 합니다.
3. 성령의 교통하심에 대한 감사
우리는 성령의 교통하심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교통’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로 교제(fellowship), 동업(partnership), 하나 됨(unity)입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은 성령님과 교제하며 성령님과 하나 되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과 늘 교제해야 합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에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면 우리 마음에 성령의 은혜가 부어지고 성령님과의 교통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성령님을 우리의 인생의 파트너로 모시고 함께 동업해야 합니다. 성령과 함께 의논하고 대화하며 성령님의 가르침을 따르면 성령께서 꿈과 환상이나 지식이나 지혜와 총명을 부어 주사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복음을 전하려 했으나 성령께서 그 길을 막으시고 마게도냐의 환상을 통해 유럽으로 복음증거의 방향을 돌리셨습니다. 사도행전 16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마게도냐로 건너간 것이 오늘날 유럽 복음화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동업할 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과 교통하면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십니다. 초대교회는 성령과 교통하고 하나 되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다 함께 모여, 교제하고 나누고, 함께 일했습니다(행 2:44∼46). 사도행전 4장 3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된 우리는 언제나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성령과 깊이 교통해야 합니다(빌 2:1). 성령은
보혜사로서 늘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궁극적인 진리이신 예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시고(요 15:26) 천국의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또한 보혜사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비밀을 마음속에 깨닫게 해 주십니다(고전 2:10). 뿐만 아니라 성령은 세상이 위로하지 못하는 극한 슬픔과 고통을 만날 때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상담해 주시므로 자유와 평안과 승리를 얻게 하십니다.
혼자서는 숟가락도 들기 힘든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 이석희 간사는 하루의 대부분을 골방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유난히 힘들고 외롭던 어느 날 그가 컴퓨터 자판에 손을 얹고 쓴 첫 단어가 ‘은혜로다’였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상황이 전혀 은혜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성령님께서 구원받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음이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 마음으로 쓴 시가 ‘은혜로다 주와 함께’라는 찬송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외로운 골방에서 지금까지 약 900편의 시와 400편의 수필을 쓰며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의 고백을 합니다.
“저는 장애가 있어 타이핑을 치는 속도가 남보다 몇 배 느립니다. 그러나 장애가 저에게 유용한 도구가 될 때가 있습니다. 한 단어를 치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그 단어에 묻어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생각하고 주님의 음성에 더 세밀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장애가 있어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나일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외치는 유용한 도구로 살고 싶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지금도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역사하시는 성령의 교통하심에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이 추수감사절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날 위해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오니 주님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귀한 뜻을 이뤄가며 항상 감사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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