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장 1∼7, 13절)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가장 완전하게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죄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십자가 사랑입니다. 또한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완성입니다. 오늘날 가정, 사회, 교회의 모든 문제 해결의 길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십자가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며 살아가야 합니다.
1. 사랑이 없는 은사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많은 은사를 받았지만 은사의 목적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눈에 보이는 은사만을 최고로 여기고 자랑하며 은사가 없는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교회는 큰 혼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알게 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를 쓰면서 은사는 사랑의 원리에 기초해서 사용해야 함을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방언을 말하고, 하늘에서 쓰는 천사의 말을 할 정도로 말을 잘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마치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이 남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변이 부족하고 표현력이 어눌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모든 비밀을 깨닫고 모든 지식을 소유한 은사를 가져도, 산을 옮길 만한 큰 믿음이 있어 많은 능력을 나타내도,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가치 없는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재산으로 구제하고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한다 해도,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정도로 헌신을 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남에게는 물론 우리 자신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지도 못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기도할 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서 자기의 선행을 자랑했습니다. 또한 구제할 때 자기들의 행함을 알리기 위해 회당이나 거리에서 나팔까지 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구제를 내세워 자기들이 영광을 받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요일 4:8)이시기 때문에 사랑 없는 모든 행위는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4장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방언이나 예언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 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되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장기려 박사(1911∼1995)는 평생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가난하고 절망에 처한 자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환자의 치료비를 자신의 월급으로 대신 내 주기도 했으며, 입원비 낼 여력이 없는 환자에게 몰래 도망가라고 뒷문을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뇌경색으로 반신이 마비될 때까지 무의촌 진료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병원 옥탑 방에서 지내며 성탄절 새벽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환자를 돌보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의사가 된 날부터 지금까지 치료비가 없는 환자를 위한 책임감을 잊어버린 날은 없었습니다. 나는 이 결심을 잊지 않고 살면 나의 생애는 성공이요, 이 생각을 잊고 살면 실패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보라는 말을 들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승리는 사랑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그의 삶은 의사로서의 삶보다는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사랑과 섬김으로 이웃을 위하여 사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준 삶이었습니다.
모든 일을 사랑의 동기로 해야 합니다.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는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행 2:44∼45).
우리가 아무리 위대한 일을 행하여도 사랑이 전제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슨 일이나 사랑으로 행할 때만이 그 일에 진정한 존재 가치가 있으며 공동체에 덕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Henri J. M. Nouwen) 교수님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닫고 하버드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10년 동안 정신지체아들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날 출판된 책 『안식의 여정』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곳에서 장애아들을 돌보는 동안에 그 아이들은 내 명성, 내 지식, 내 인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오직 그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던 것은 내가 그들을 사랑해 주고 그들의 사랑을 순수하게 받아들여주는 것 한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이들을 통해서 사랑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새롭게 체험한 굉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의 삶을 살았던 헨리 나우웬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은사와 행위가 가치 없는 것이며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증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2. 참 사랑의 모습
우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참 사랑에 대해 15가지 모습으로 말씀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여기에 나타난 사랑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 사랑의 출발은 ‘오래 참음’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서 7절에는 참는 것에 관계된 말씀이 5번이나 나옵니다. ‘오래참고’, ‘온유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오래 참음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원망과 불평의 감정을 억제하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손해를 입었을 때 보복할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복하지 않고 자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래 참지 못하여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입구인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여 물이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되자 그들은 또 다시 모세를 향해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과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지팡이를 잡고 ‘반석을 향해 물을 내라’고 명령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할 때에 반석에서 물이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짐승들이 물을 마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새로운 세대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혈기를 참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중대한 실수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반석을 향해 물을 내라고 명하셨으나, 모세는 회중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며 그 반석을 두 번이나 과격하게 내리쳤습니다. 모세의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발언은 마치 자신이 물을 주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진노하셨고 결국 모세는 이 일로 인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만 보았을 뿐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민 20:10∼12).
사람들은 오래 참지 못하여 실수하지만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출 34:6).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지만 아직 오시지 않고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시는 이유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여 구원을 얻기 바라시는 그 사랑 때문입니다(벧후 3:9). 우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에 이른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사랑을 입은 자들로서 마땅히 그러한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오래 참음과 함께 우리가 꼭 행해야 할 것은 용서입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1절에 보면 베드로가 한 번은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
진정한 사랑은 오래 참고 기다리며 용서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용서의 완성과도 같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의 결론도 용서요(마 6:14∼15), 예수님의 부활의 메시지의 결론도 용서입니다(요 20:23). 우리는 다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요, 용서해야 할 사람입니다. 용서는 마음속의 분노를 지워버리는 지우개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모습을 본받아 사랑의 화신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믿음, 소망, 사랑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고전 13:13).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인 사랑만이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사랑은 가장 위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그 사랑으로 희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란 책을 쓴 조엘 소넨버그(Joel Sonnenberg, 1977)는 생후 20개월 되던 해 고속도로에서 40톤 트럭과의 충돌사고로 전신에 3도의 중화상을 입었습니다. 손과 발 그리고 얼굴이 다 녹아내리고 두개골까지 화상을 입었지만 50여 차례가 넘는 수술 끝에 그는 살아났습니다. 그는 손가락과 발가락은 없었지만 자신의 신앙과 가족들의 사랑의 돌봄을 통해 장애를 극복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 세계에 예수님의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997년 트럭으로 그를 치고 도망갔던 운전사가 체포되어 재판장에 출두했을 때 그는 범인을 용서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주님 없는 세상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증오심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증오는 또 다른 고통을 낳습니다. 대신 저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무한한 사랑에 감싸여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의 빚진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이유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오래 참고 용서하며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갚을 수 없는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주의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이 연약해서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증오와 분노와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좀 더 오래 참고 인내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온 천하에 드러내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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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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