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중략)…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출애굽기 2장 1∼10절)
이 세상에 우연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인간의 힘과 계획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을 당할 때
야곱이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이주한 이후로 약 4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애굽으로 이주할 당시 70명에 불과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죽고 난 후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출 1:8) 새 왕은 애굽 내에 이스라엘 백성이 크게 번성하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출 1:9) 그는 크게 번성하는 이스라엘 민족에 위협을 느끼고 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애굽 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피곤케 함으로 자손의 증대를 막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 힘든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고역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번성했습니다.(출 1:12) 바로의 어떤 탄압정책으로도 이스라엘의 번성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바로가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은 히브리인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져서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남아 살해정책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절대절망의 상황 속에서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 요게벳은 갓 태어난 모세에게서 장차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하고 믿음으로 아이를 석 달 동안 숨겨서 길렀습니다.(출 2:2) 그러나 석 달이 지나 더 이상 아이를 숨길 수 없게 되자 모세의 부모는 갈대 상자에 그를 담아 나일 강에 띄웠습니다.
나일 강에 갈대 상자를 띄운 것은 믿음의 결단입니다. 그들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 하고 이후로는 아이의 생명을 자신들의 손이 아닌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제 스스로 더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는 절대절망의 순간에서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뒤 하나님께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는 우리가 두 손을 들고 주님께 다 맡길 때 시작됩니다. 시편 37편 5절은 말씀합니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뇌성마비를 가진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신앙을 가진 그 아이의 부모님은 믿음으로 이 아이를 주님의 손에 맡기고 아이에게 재활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이 아이를 양육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를 보내 일반아이들과 같이 어울리게 했습니다. 부모님의 노력에 힘입어 아이는 몸을 비틀며 힘겹게 말하면서도 용기 있게 자기를 소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사람은 미국의 버지니아에 있는 조지메이슨 대학의 정유선 교수입니다.
정유선 교수는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라는 그녀의 책에서 어린 시절에 또래 아이들이 그녀를 보면 괴물과 같다고 피하고, 주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등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외롭게 자랐지만 울릉도 트위스트를 부른 이시스터즈 멤버였던 그녀의 부모님은 딸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아픔 가운데서도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고도 쉬지 않고 노력하여 결국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조지메이슨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 후, 2006년도 8월에는 독일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보조기구를 만드는 교수와 관계자들이 모인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고, 작년에 조지메이슨 대학의 교수 가운데 최고 교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따뜻한 동행’이란 단체의 홍보대사로도 귀하게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넌 할 수 없다. 그건 네게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세뇌시키는 세상의 편견을 향해 멋지게 한 방 날려보자. 편견이란 깨지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우리는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삶의 전면에 나타난 고난을 바라보지 말고 고난 배후에 숨겨진 축복을 바라보는 믿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축복은 고난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섭리를 헤아려야 합니다.
2. 하나님의 구원역사
모세의 부모가 아이를 담은 갈대 상자를 나일 강에 띄운 바로 그 시간, 하나님의 위대한 간섭이 시작되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갈대 상자에 물이 새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한 후에 아이를 뉘인 갈대 상자를 나일 강가 갈대 사이 물 위에 띄웠습니다. 그리고 요게벳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을 시켜서 갈대 상자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게 했습니다.(출 2:4) 이는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6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야훼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요게벳은 미리암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지켜보게 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갈대 상자가 나일 강에 놓이는 바로 그 시간에 정확히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갈대 상자를 발견하고 모세를 건져내었던 것입니다.(출 2:5)
이것이 하나님의 시간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바라보며 어떤 고난의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확무오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때에 반드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이 모든 일은 섭리 속에서 다스리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 갈대 상자를 연 바로의 딸은 갈대 상자 안의 아기가 ‘히브리 사람의 아기’임을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출 2:6) 바로의 딸은 그 아이가 히브리 아이인 줄 알고도 그를 죽이려하지 않고 오히려 아이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히브리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는 명을 잘 알고 있는 바로의 딸이 오히려 아버지인 바로 왕의 명을 거역하고 떠내려 온 아이를 불쌍히 여기고 구원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딸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죽을 운명이었던 아기를 기적적으로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적진도 피난처로 변합니다. 사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깨뜨리기 위해 통치자 바로를 사용하여 모세를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바로의 딸을 사용하셔서 모세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모세라는 이름의 뜻은 히브리말로 ‘물에서 건져내다’라는 의미입니다.(출 2:10) 모세의 이름 속에는 죽음의 강인 나일 강에서 건짐 받은 그가 바로의 폭정으로 인해 죽음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이스라엘을 건지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쓰임 받게 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의 끈이 끊어질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갈대 상자가 어머니의 손을 떠나는 순간에 하나님이 갈대 상자를 붙드시고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기독교 영성작가 브레넌 매닝(Brennan Manning)은 그의 책 『신뢰 - 하나님께로 가는 거침없는 믿음의 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인생여정의 가장 가슴 아픈 시간에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베일에 가려진 자상하신 하나님의 임재의 시간입니다”
아픔의 순간은 하나님의 구원의 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지켜보고 계셨듯, 오늘도 우리 가정과 교회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십니다. 이사야 41장 10절은 말씀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인도하심
믿음의 여인 요게벳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모세를 담아 띄운 갈대 상자를 바로의 딸이 발견한 것은 철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또한 모세의 친어머니가 유모로 들어가 그를 양육하며 신앙교육을 시키고 그 후, 모세가 바로의 딸의 양아들이 되어 애굽의 궁중교육을 받아 장차 이스라엘의 해방자로 준비된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하나님은 때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길을 지시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목회자 전문 병원을 운영하며 목회자들을 치료하는 삶을 살고 있는 이태훈 원장은 어린 시절 2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6살 때 남의 집 양자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알코올중독자인 양부의 팔다리를 밤새 주물러야 했고, 온전한 정신이 아닌 양부에게 맞고 밖으로 쫓겨나가기 일쑤였습니다. 중학교 때는 폭력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 살아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절망 가운데 있던 그에게 하나님께서 소망을 주셨습니다. 한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자취하며 끼니를 때우기 위해 물을 마시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수능 100일 전 이유도 없이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벽을 짚고 다니며 간신히 수업을 귀로만 들어야 했습니다. ‘시험을 포기하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습니다. 그는 수능을 10일 남겨 두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동안 자신의 힘으로 계획하며 열심이었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그때 처음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치며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시험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 주세요’라며 세 시간이 넘도록 기도했습니다.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점점 눈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조그만 글씨까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좋은 성적으로 한의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노점상으로 일하며 한의대를 졸업하고 개원한지 6개월 만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여 심한 외상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천국을 보았고 기적처럼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살 것을 서원합니다. 팔이 움직이고 몸이 회복되는 데는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서원대로 목회자들을 치료하며 “저의 인생은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신 뒤 변화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기적이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절망과 사망에 처한 저를 살리시고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고난 속에서도 눈에 보이는 고난이 아닌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놀랍고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뚜렷이 체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절망에도, 어떠한 고통에도, 어떠한 괴로움에도, 어떠한 슬픔에도 낙심하여 뒤로 물러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믿음의 전진을 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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