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마가복음 11장 1∼6절)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고난주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마지막 한 주간이며 그 주간의 첫날을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2천 년 전 오늘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인 그때 군중들이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환영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고 해서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주님의 선택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타신 나귀 새끼는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였습니다. 이것은 순결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 나귀처럼 세상에서 크게 주목받을 만한 것이 없지만 주님 앞에 순수한 자, 때 묻지 않은 자, 순결한 자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십니다.
주님께서 귀히 쓰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은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볼품없는 그릇이더라도 깨끗이 비워져 있으면 음식을 담아 귀하게 사용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이 주님 보시기에 깨끗하면 주님이 우리를 귀하게 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음 18장 3절의 말씀처럼 어린아이와 같이 마음이 순수하고 순결해야 합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주님 앞에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람을 택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윌리엄 보든(William W. Borden, 1887∼1913) 선교사의 이야기를 담은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라는 책에 보면 그는 억만장자의 아들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의 권유로 세계 여행을 합니다.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여정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는 말씀에 따라 세계 선교를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예수님께 드리기로 결단합니다. 그는 예일 대학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임을 시작했는데 졸업할 때에는 그 모임이 1000개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받게 된 막대한 유산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슬람 지역 선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이집트로 떠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척수막염에 걸려 고열에 시달린 지 한 달 후,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소천한 후 그의 성경책 속에는 세 개의 문장이 발견되었습니다. “남김없이 다 드립니다!(No Reserves), 결코 물러서지 않으리라!(No Retreats),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No Regrets)”
짧은 선교사의 삶이었지만 그의 소식이 예일 대학에 전해지자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순수한 헌신과 삶의 이야기를 들은 수천 명의 사람이 선교사가 되어 헌신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순결한 신앙으로 온전하게 헌신하는 자를 택하시고 사용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으로 순결해질 수 있을까요? 주의 말씀이 우리를 순결하게 합니다. 시편 119편 9절은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빛이 되어 우리를 거룩한 길로 인도합니다. 시편 119편 105절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여 순결해져야 합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 앞에 순결한 신부가 되어 가장 귀하고 아름답게 주님의 일에 쓰임 받으시길 바랍니다.
2. 주님 말씀에 순종한 나귀 주인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근처 동네에 가서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어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고 말하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3절은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나귀 주인은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선뜻 순종하여 자신의 소중한 나귀를 내어주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5∼6절은 말씀합니다.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이처럼 우리도 “주가 쓰시겠다”는 명령을 들으면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명령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순종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창 22:16∼1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원하신 것은 온전한 순종이었습니다. 순종의 삶은 때로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너머에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순종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생 순종과 희생의 삶을 사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8∼11절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그 순종으로 모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8∼9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는 예수님처럼 순종의 삶을 살고 있는지 자신을 잘 살펴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순종을 본받은 수많은 헌신자들의 순종이 있기에 하나님의 구원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콩고에서 의료선교사로 사역한 선교사 헬렌 로즈비어(Helen Roseveare)는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후 선교 단체인 WEC에 가입하여 의료 선교사로 콩고에 갔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 심바 폭동이 일어나면서 콩고를 떠날 것을 요청받았으나 떠나지 않았습니다. 폭도들은 그녀를 5개월간 감금하고 폭행했고, 의료사역을 하면서 꼼꼼히 기록해 둔 모든 저널과 자료들을 불태워버렸습니다. 그때 그녀는 나무에 묶인 채 폭행을 당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에 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주님, 지난 10년간 제 의료선교사역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명확한 음성으로 그녀에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네 모든 수고와 헌신과 고난을 내가 받기에 합당하니?” 그 음성을 들은 헬렌 선교사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고백했다. “예, 주님은 저의 모든 수고와 헌신과 고난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길은 그 뜻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은 주님께서 쓰시고자 부르실 때 무조건 “예”로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
예수님 당시 왕이나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는 위풍당당하게 말을 타고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5절은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나귀나 노새는 성읍의 방백이나 일반 사람들이 타던 짐승이었습니다. 어린 나귀 새끼는 전사의 위엄스런 모습도 볼 수 없으며 전투의 행적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왕, 평화와 사랑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은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침례 요한도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자 침례 요한을 따르던 제자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침례요한을 따르던 사람이 말합니다.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선생님이 증거 하시던 예수라는 사람이 침례를 주매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갑니다” 그때 침례 요한은 오히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합니다(요 3:30).
그러므로 우리는 늘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저의 모든 것이십니다’라는 겸손한 마음의 고백을 드리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대에게서 교만이 죽지 않으면 하늘의 것이 그대 속에서 살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아는 지식, 우리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바로 그 지식에서 생긴다”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배워야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29∼30절은 말씀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빌립보서 2장 7∼8절은 말씀합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겸손과 섬김의 본을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요 13:14∼15).
구세군 성결 신학의 창시자 사무엘 로간 브렝글(Samuel Logan Brengle)은 미국의 명문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사회에서 엘리트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성령을 체험한 후 구세군 창시자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교회의 청빙을 내려놓고 영국으로 건너가 윌리엄 부스 밑에서 사역을 하였습니다. 사관학교에서 그에게 부여된 처음의 임무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다른 학생들이 벗어 놓은 흙투성이 구두를 닦아 주는 일이었습니다.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사관학생들이 벗어 놓은 구두를 바라보며 브렝글은 속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바로 그 순간 번쩍하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발을 씻기는 장면이 눈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는 분노하고 불평한 것이 마귀의 음성임을 깨닫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낮아지고 겸손해지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국 그의 사역은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주님께 쓰임 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귀 새끼조차도 귀하고 아름답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사랑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나귀를 쓰신 것처럼 우리도 일평생 주님의 위대한 사역자로 귀하고 아름답게 쓰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우리의 일생을 주님께 순결하게 바치길 원하오니 기쁘게 받으시옵소서. 그리고 평생 귀하고 아름답게 쓰임 받는 사명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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