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8장 49∼56절)
죽음같은 절대절망의 위기가 가득한 인생
시련과 고난 가운데도 오직 주만 바라봐야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기적과 축복 누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많은 슬픔들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냈을 때의 슬픔이 가장 큰 슬픔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외동딸을 죽음에서 일으키신 이야기입니다. 견디기 힘든 극한 슬픔을 만났을 때,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겪는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고 위로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 사랑하는 자를 잃은 슬픔
야이로는 유대교 회당의 책임자인 회당장이었습니다. 그는 사회에서는 존경받는 회당장이요 가정에서는 사랑스런 외동딸을 둔 아버지로서 매우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평안하던 그의 삶에 어느 날 갑자기 감당하기 힘든 절망의 그림자가 덮쳐왔습니다. 이제 겨우 열두 살 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외동딸이 그만 죽을 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야이로는 사랑하는 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누가복음 8장 41절은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그는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 와 주시기를 간곡히 청했습니다. 당시 유대교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모세의 율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단자로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까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유대교의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딸이 죽어가고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야이로에게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사회적인 모든 지위와 체면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의 야이로처럼, 우리 역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절박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누구를 찾습니까? 누구에게 나아가 도움을 청합니까? 고난 속에서 우리가 찾아가 도움을 청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야이로처럼 주님 앞에 나아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겸손히 주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집으로 가서 딸을 살려달라는 야이로의 요청을 수락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어 치유 받는 일이 일어났고, 그 일로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자기 딸이 그만 죽고 만 것입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죽음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인간에게 죽음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합니다. 절망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절대절망의 순간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됩니다. 슬픔이 변하여 찬송이 됩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자리에 처했다 할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대 희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사망을 이기신 주님께서 죽음의 자리를 생명의 자리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2. 절대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인간의 절대 절망을 절대 희망으로 바꾸어 놓는 분이십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예수님은 야이로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눅 8:50)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상황을 바라보면 두려움에 휩싸이고 맙니다. 두려움은 어디에서 옵니까? 두려움은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마귀는 두려움을 통해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극복하게 만들고 주님과 손을 잡게 만들어 줍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두려움이 변하여 찬송이 되고,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며, 죽음이 변하여 생명이 됩니다.
그러므로 야이로는 귀로 들려오는 두려움의 소식이 아니라, 지금 자신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절대절망에 처한 야이로를 향하신 주님의 명령이었습니다. 현실은 절망의 상황이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절대희망이신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것도 바로 그러한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고 또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10년, 20년 시간이 흘러도 자손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녀를 가질 능력마저 없어진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로마서 4장 19∼2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믿음의 사람은 환경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환경과 조건이 어떠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계속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절대 긍정의 믿음을 주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믿음의 사람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야이로의 집으로 가던 도중 예수님께서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쳐주신 것도 그녀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 안의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어려움을 만나든지 절대 요동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히 11:6).
우리가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절대희망이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 우리를 향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권고합니다. 여기서 ‘바라보라’라는 말은 우리의 눈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시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고난과 절망이 다가와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 받게 되는 그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의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속 사역을 다 이루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주님만 바라보고 시련 속에서도 힘차게 달려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삼중 축복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절망의 상황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절대 절망을 절대 희망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3.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자 온 집안이 통곡소리로 가득했습니다. 당시 유대의 장례 풍습에 의하면, 슬픈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삯을 주고 피리 부는 자들과 우는 자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고용된 사람들의 통곡소리와 피리 소리로 온 집안에 절망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믿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갈 수 있는 이러한 위협적인 상황에서 그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통곡하는 사람들에게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눅 8:52)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야이로의 딸의 죽음을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의 현장에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5장 4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떠들며 우는 무리들, 믿지 못하고 비웃는 자들을 다 내 보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기적의 자리로 나아가셨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신앙과 부정적인 생각의 습성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부정적인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기적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새찬송가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의 작사자인 다니엘 휘틀((Daniel Webster Whittle) 목사님은 남북전쟁에 참전하여 오른쪽 팔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시카고에서 무디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때 지은 시에 곡을 붙여 만든 찬송이 바로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입니다. 이 찬송의 4절은 우리에게 주님만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내 몸의 약함을 아시는 주 못 고칠 질병이 아주 없네. 괴로운 날이나 기쁜 때나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그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죽음의 자리가 생명의 자리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야이로의 딸을 향해 “아이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시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음에서 즉시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요한복음 11장 40절에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시고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외치시는 순간, 죽은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일어나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CCC 국제본부 개척선교팀 책임자이며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박태수 선교사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씨짠은 공산국가에서 존경받는 고위 공직자로서 부러울 것이 없는 인생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랑하는 아내가 말기 암에 걸리는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그는 복음을 접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아내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두 세 달 밖에 못산다던 아내가 회복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어떠한 절망의 자리에 있습니까? 어떠한 슬픔의 자리에 있습니까?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죽음의 자리가 변하여 생명의 자리가 됩니다. 절망의 자리가 변하여 희망의 자리가 됩니다. 슬픔의 자리가 변하여 기쁨과 찬송의 자리가 됩니다. 우리는 죽음의 자리, 절망의 자리, 슬픔의 자리에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놀라운 기적을 행해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아이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의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불가능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불신앙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의심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질병의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극한 슬픔의 자리에 있습니까? 절대 희망이신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죽음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를 향해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절망과 죽음과 고통의 자리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가 되었사오니 이제는 한평생 예수님 위하여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위에 절망에 처하고 슬픔에 처하고 고통에 처한 자들에게 희망의 예수님, 치료의 예수님, 구원의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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