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장 28∼30절)
오직 십자가 아래만이 평화 안식의 자리
고집 교만 죽이고 온유 겸손으로 부활해야
진정한 축복 안식 얻고 주님과 동행할 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신앙의 출발점이요, 핵심이요, 우리 신앙의 전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으로 무장할 때 우리는 어려움 많은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어떤 은혜가 있을까요?
1. 우리의 쉴 자리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쉴 자리가 됩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자신이 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시편 90편 10절은 그러한 인생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무거운 짐을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짐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 져 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피곤하고 지친 우리 인생이 쉴 수 있는 곳,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그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참된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을 십자가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병든 자를 부르시고, 죄 있는 자를 부르시고, 고통과 슬픔 중에 있는 자를 부르십니다. 두 팔을 벌리고 그 모든 절망의 짐을 지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면 참된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을지라도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가면 더위를 피하고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환난의 태양이 내리쬐어서 고통스러울 때 예수님의 십자가 그늘 아래로 들어가면, 우리는 평안과 쉼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찬송가 415장에는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십자가 그늘 아래 나 쉬기 원하네. 저 햇볕 심히 뜨겁고 또 짐이 무거워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늘 방황할 때에, 주 십자가의 그늘에 내 쉴 곳 찾았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 아래가 바로 우리의 쉴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참된 평안과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남대에서 생명나노과학대학 학장을 지낸 이수민 교수는 갑자기 닥쳐온 인생의 환난 속에서 예수님께 나아와 참된 평안과 쉼을 얻은 분입니다. 그는 소위 잘 나가는 화학자였습니다. 34세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35세에 한남대 학과장 교수가 되었으며, 36세에 장로 장립을 받고 37세에 국비 해외파견 과학자로 선발되어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이 뿌연 증세가 있어 안과를 찾았다가 ‘녹내장 말기인데 너무 늦어서 실명하게 될 것’이라는 절망적인 선고를 받았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37세였습니다. 미국에서 6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수술 후 그나마 희미하게 보이던 것마저도 오히려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력을 잃고 절망의 늪에 빠지자 신앙은 온데간데없고, 그는 ‘어떻게 죽을까?’만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부인의 손에 이끌려 주일예배는 참석했지만 설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식사도 거르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살아 계신가?’라는 의문이 들었고, 우울증이 심해져 죽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러 간다는 광고를 했습니다. 이 교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폭포에서 떨어져 죽으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날 밤, 그는 성령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홀연히 ‘휙’하는 바람소리가 들리고, 눈이 안 보이는 상태인데도 번갯불 같은 것이 번쩍했습니다. 잠시 후 마치 누군가가 귀에다 대고 얘기하는 것 같이 나지막하고 생생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성령이 임하시자, 순간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장로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살하려고 했던 것을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도와준다고 하지 않느냐? 수민아, 거기서 넘어져서는 안 된다. 나를 의지하고 일어나 보려무나” 주님은 아버지 같은 큰 손을 내미셔서 아기처럼 자그마한 그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그 후 그는 메사추세츠대학교의 화학과 연구 교수로 들어갔습니다. 교수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기록을 할 수 없어 녹음을 했고, 전공 서적은 부인이 읽어서 녹음한 것을 계속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학습이었지만 주님이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결국 그는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미국인명정보기관(ABI)의 최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인 IBC로부터 “2008/2009 탁월한 과학자 2000명”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환난 중에 만날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지금 어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십니까? 어떤 슬픔의 자리에 있습니까? 지금 십자가 그늘 아래로 나오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그늘 아래로 나오기만 하면 우리의 ‘죄의 짐’, ‘질병의 짐’, ‘가난과 저주의 짐’, ‘사망의 짐’이 풀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평안이요, 우리의 안식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와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십자가 그늘 아래서 참된 평안과 안식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온유와 겸손의 자리
예수님의 십자가는 온유와 겸손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 11:29)”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온유하다’는 것은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마음이 스펀지같이 부드러운 것을 말합니다. 스펀지는 쿠션이 있어서 아무리 눌러도 곧 원래 모양대로 회복됩니다. 스펀지와 마찬가지로 온유한 사람을 누가 날카로운 말로 옆에서 쿡 찔러도 크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저 모른척하고 사랑의 쿠션으로 받아줍니다. 이러한 모습이 온유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온유함의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와도 우리 주님은 그 사랑의 품에 우리를 감싸 안아주십니다. 힘들고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께서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붙들어 주시고 상처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겸손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겸손의 일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천하가 다 예수님의 것이었으나, 주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습니다(눅 9:58).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에도 친히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가장 천한 죄인들이 형벌을 받는 장소인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죽으신 후에는 무덤조차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러한 겸손의 삶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존 비비어는 『존중』이라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린 그리스도인이었을 때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영영 잊지 못한다. 운전 중이었는데 그분의 음성이 들려왔다. ‘존, 내가 너를 나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것을 아느냐?’ 그 말씀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우주를 지으신 분이 어떻게 나같이 하찮은 사람한테, 그분 자신보다 나를 더 소중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실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빌립보서 2장 3절에 뭐라고 했느냐?’ 마침 외워 둔 구절이라 난 소리 내서 암송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주님은 ‘이것이 증거다. 나는 나 자신이 하지 않는 일은 내 자녀들에게 시키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주님은 ‘누가 십자가에서 죽었느냐? 너냐 나냐? 너의 죄와 질병과 심판을 지고 내가 십자가에 달렸다. 그것은 너를 나 자신보다 낫게 여겼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십시오. 십자가에서 나의 고집, 교만을 죽이고,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온유와 겸손을 옷 입고 변화된 모습으로 부활하시기 바랍니다.
3. 주님과 동행하는 자리
예수님의 십자가는 주님과 동행하는 자리입니다. 주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30)”고 말씀하십니다.
요즘은 멍에를 메는 소들을 보기가 힘들지만, 옛날에는 소에게 멍에를 씌워 밭을 갈도록 했습니다. 그럴 경우 대부분 한쪽에는 경험이 많은 소를, 다른 한쪽에는 경험이 별로 없는 소를 한 쌍으로 해서 멍에를 씌웠습니다. 그러면 경험이 많은 소가 일을 다 하기 때문에 다른 소는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때로는 어미 소와 새끼 송아지가 함께 멍에를 메도록 만듭니다. 그러면 어미 소가 밭은 다 갈았지만, 새끼 송아지도 밭을 갈았다는 칭찬을 듣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의 멍에를 메라”고 하신 것은 혼자 메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직접 멍에를 메고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멍에를 함께 지고 예수님과 동행하기만 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환난의 밭을 다 갈아 엎어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혼자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기만 하면 주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시고 풍성한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최근 저는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고 있는 이송용 선교사님의 책을 읽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송용 선교사님은 어릴 때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아르바이트하면서 학비를 벌었고 때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믿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잘 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교수로서 학원선교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 하나님께서 그를 선교사로 부르셨습니다. 그는 주변의 반대와 환경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임신 8개월인 아내를 데리고 몽골로 떠났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출산하느라 아내는 많은 고통을 당했고 아이에게 먹일 젖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주님께서 그에게 “이 백성들을 누가 먹이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젖을 빨 수 없어 배고파 우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죽어가는 몽골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몽골에서 5년 동안 귀한 사역을 감당한 후, 또 다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지금은 새롭게 인도네시아의 사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있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동행하는 자리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자리입니다. 때로는 그 길이 희생의 길이요, 연단의 길이요, 가진 것을 포기해야 하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진정한 축복과 안식이 있습니다.
지금 어떤 고단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어떤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십니까?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 밑으로 나아오십시오. 그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쉼을 주시고, 우리의 삶을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자리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십자가 그늘 밑에서 우리가 쉬기 원합니다. 인생의 길이 너무 힘들고 고달픕니다. 십자가 그늘 밑에 나아와 그 모든 짐을 내려놓고 쉬기 원하오니, 주님 이 시간 우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옵소서. 예수님의 십자가 그늘 밑에서 온유와 겸손을 배우고 주님과 동행하며 섬기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우리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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