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야훼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이사야 35장 5∼10절
아담의 죄로 인간은 에덴에서 광야로 쫓겨남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구원과 축복의 대로 열려
흔히 인생은 ‘광야’에 비유되곤 합니다. 광야는 텅 비고 아득히 넓기만 한 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들판을 말합니다. 우리네 삶을 이러한 광야에 빗대어 말하는 이유는 그만큼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광야가 아닌 에덴동산에서 살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였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천하 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아름다운 낙원인 에덴동산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과 교제하셨고, 그에게 만물을 돌보고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친구이자 청지기로서, 그의 삶에는 풍요로움과 기쁨과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아담이 받은 축복은 우리 인류가 누릴 축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담과 하와가 죄 짓고 타락한 결과, 인류는 에덴동산의 축복을 잃어버리고 광야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 들짐승이 언제 해칠지 모르는, 마치 광야 길을 지나는 나그네와 같이 두려움에 떠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야로서 인류가 빼앗긴 에덴동산의 축복을 회복시키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메시야에 대해 예언한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아 광야와 같은 고통의 시간을 지날 때, 장차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광야 같은 삶이 변해 복된 삶이 되고 포로였던 백성들이 시온으로 귀환해 영원한 복락을 누릴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1. 예비된 하나님의 축복
이사야는 영광의 때 즉, 메시야 시대가 되면 ‘맹인이 눈을 뜨고 듣지 못하는 자가 듣게 되며 저는 자가 뛰고 말 못하던 자가 노래할 것’이며, ‘광야에 물이 솟고 사막에 시내가 흐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장차 메시야가 오시면 육적인 장애가 회복되고 환경이 축복받게 된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나아가 눈이 있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며 입이 있어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는 영적인 장애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의 이 예언은 실제로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맹인과 귀머거리, 저는 자, 앉은뱅이, 벙어리 등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눅 7:21∼22). 그리고 영적으로 무지해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자들을 깨우치시고 꿈과 소망을 불어 넣어 주시며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여리고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인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막 10:51∼52).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통해 육신의 눈을 뜸과 동시에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눈도 뜨게 되었습니다. 그는 눈을 뜸으로써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자신처럼 작은 자를 위해 움직이신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한 바디매오는 영적인 흑암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망의 길에서 벗어나 예수님께서 열어놓으신 생명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고치셨습니다(막 7:32∼35).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자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시어 그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시고 ‘에바다(열리라)’라고 명하시자,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던 그가 곧바로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죄로 인해 귀가 닫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고쳐주십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귀를 열어주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축복받은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영적인 귀가 열리면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사모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말씀이 꿀 송이처럼 달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지혜를 담은 말씀은 읽고 묵상하는 자의 생각과 마음과 삶을 인도합니다. 말씀이 영혼을 치료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과 기적과 축복이 삶 가운데 베풀어지게 됩니다. 그 결과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형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걷지 못하던 자를 치료하셨습니다. 주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간 누워있던 병자를 치료하셨습니다(요 5:2∼9).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를 고쳤습니다(행 3:6∼8). 치료함을 받은 그들은 앉아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슴처럼 뛰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해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살아야 했던 자, 남에게 구걸하며 애처롭게 살아야 했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육신의 장애를 치료받고 자신을 짓누르던 흑암의 세력, 죄의 사슬을 벗어버리고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도 육신의 장애, 죄와 부정적인 생각, 왜곡된 세계관과 게으름, 나태 등 사탄이 쳐놓았던 영적 장애의 사슬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발걸음이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는 발걸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발걸음이 되게 하십니다.
넷째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말 못하는 자를 고쳐주셨습니다(막 9:17). 예수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오시면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참소하던 자, 불평하던 자, 운명을 탓하며 저주받은 인생을 살던 사람들이 변화됩니다. 주님을 찬양하고, 이웃을 높이고 칭찬하고 격려해 다른 사람을 생동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나아가 담대히 주님을 증거하여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던 자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이 세상에서 그리고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누리게 만들어 줍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은 메시야가 오시면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되고 메마른 땅에서 물이 솟구쳐 오른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의 첫 설교에서 주님의 오심으로 인해 임하게 될 은혜의 해의 축복을 선포하셨습니다(눅 4:18∼19). 이 은혜의 해는 희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구약 시대의 희년에는 종 되었던 자가 놓여나고 토지는 휴경되었으며 매매되었던 토지는 본래 주인에게 귀속되는 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은혜의 해를 선포하시며, 아담을 통해 인류에게 임했던 죄로 인한 저주를 거두고,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고 형통케 되는 축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
광야나 사막에는 길이 없습니다. 사막을 벗어날 길을 찾다가 그 자리만 맴돌다가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의 처지가 마치 사막에 갇힌 자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끌려가 있는 동안 하나님의 집에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이었던 곳에 대로가 열리듯 이스라엘이 그토록 사모하던 하나님의 전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광야에 백합화가 피고 사막에 샘이 솟도록 하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대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 14;6). 예수님께서는 사막과 같이 소망 없는 이 세상에 자기 자신을 구원의 대로로 마련해 놓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 길은 아무나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이 길은 구원받은 자만 갈 수 있는 구별된 길이요, 주님께서 계신 성전으로 나아가는 길이자,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죄를 짓고서는 통행할 수 없고,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고서는 통과하지 못하는 길입니다(욜 3:17).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자만이 이 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내기 위해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아 희생시키셨습니다(엡 5:2).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죄 값을 대신 갚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다 쏟아 죄와 사망의 값을 치러 주셨기 때문에, 그 피로 구속함을 입은 자만이 그 길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습니다(히 9:22). 이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행 4:12).
예수한의원의 최동환 원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강박증세가 시작됐습니다. 강박증세는 대학생이 되자 점점 더 심해지더니 대학 졸업 후 공중보건의사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심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조차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치료를 위해 이 책 저 책을 읽어보고, 직접 약을 조제해 먹어보기도 했으며 온갖 방법을 다 찾아봤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삶을 포기하고만 싶었습니다. 모든 소망이 사라졌을 때, 누군가 그에게 성경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기 시작하자 그는 가슴이 시원해지면서 가쁘던 호흡도 점점 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심령을 만지시자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빛이 임하면 어두움이 물러가는 것처럼, 빛에 집중하자 어두움이 저절로 걷혔습니다. 저의 강박증을 하나님이 치료하셨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후 그의 삶은 180도 변화됐습니다. 사막 같은 그의 삶에 예수님이 생명과 길이 되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는 후에 병원을 개원하고 진료에 앞서 모든 환자에게 복음을 먼저 전했습니다. 그는 이제 이렇게 고백합니다. “다시 사는 인생, 한평생 멋지게 주님의 일을 하기 원합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살 때에는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허허벌판 광야요, 메마른 땅이요, 사막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대로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 구원의 대로에는 사나운 짐승이 올라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길 되신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면 마귀는 결코 우리를 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강한 손길이 우리를 보호하고 지키시기 때문에 아무리 강한 자도 구원받은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위에 견고히 서서 마귀를 대적하며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구원의 대로를 걸어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이 길을 통과하면, 광야의 메마른 땅과 같이 절망적인 삶이 기쁨으로 가득한 삶으로 변하게 됩니다. 죄의 결과로 끊임없이 다가오는 슬픔에서 해방될 수가 있습니다(사 35:10). 이 길에서 동행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아 주시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십니다. 이 길의 최종 목적지는 거룩한 시온 곧, 천국입니다. 그 곳에는 영원한 희락과 즐거움만 있습니다. 그곳은 죄와 사망에 얽매이지 않고 영원한 복락을 누리며, 이 땅에서 겪었던 모든 성도들의 눈물을 주님께서 친히 씻겨주시는 곳입니다(계 21:4).
오늘 광야와 같이 척박해진 마음으로 성전에 발걸음을 하신 분이 계십니까? 광야의 길이 되시고, 눈먼 자와 듣지 못하던 자, 말 못하던 자, 억눌린 자를 치료하시는 주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늘나라의 소망을 품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심령에 자유함과 기쁨이 충만케 되는 역사, 광야에서 생수가 넘치는 역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통해 저희들에게 찾아오셔서 광야와 같은 인생을 천국의 인생으로 바꿔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주님만을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은혜의 해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성도님 한 분, 한 분을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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